'TV 안 보기 시민모임’이 오늘 발족한다. 10년 넘게 이 운동을 펴온 교수, 학부모들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가톨릭다이제스트 같은 단체가 모였다. 이 기구는 5월 어린이주간과 9월 독서주간마다 범국민적 TV 안 보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간 여러 시민단체들이 TV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성토해왔지만 방송사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이 시민 모임의 모델이 된 미국 ‘TV 끄기 네트워크’는 4월 마지막 주를 ‘TV 끄기 주간’으로 정해 800만명씩 동참자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TV 없는 1주일이 가족, 책, 운동과 가깝게 해주는 데 감탄했고 나중에도 절제된 시청 태도를 이어갔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큰 반향을 모은 EBS의 ‘20일간 TV 끄고 살아보기’도 우리 사회에 이 운동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줬다.
TV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사람을 수동화시켜 주체적 개인으로 설 수 있는 사고능력을 마비시킨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사고하거나 반응할 필요가 없다. 뇌와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은 채 쏟아지는 전파의 흐름에 그저 내맡길 뿐이다. ‘TV 끄기 네트워크’ 베스피 총재는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의식적인 힘과 노력을 요구하지만 TV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의학협회, 소아학회, 공중보건협회 등 미국 의학·보건단체 10곳은 TV 시청을 “인간이 깨어나서 하는 가장 정지된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과학자들은 TV가 뇌에 미묘한 이완감과 편안함을 줘서 계속 TV를 켜고 싶게 만드는 과정이 약물 중독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통계청 통계를 보면 96년 주당 21.4시간이던 TV 시청이 지난해 22.2시간으로 느는 동안 16.2권이던 1인당 연간 독서량은 13.9권까지 줄었다. 책은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맹목적 TV 시청은 문자와 책을 파괴하고 삶과 문화에서 깊이를 앗아간다. 자라는 2세들이 넋을 놓은 채 TV 앞에 마냥 앉아 있게 놔둘 수는 없다. TV 안 보기 운동에 보다 폭넓게, 많은 단체들이 참여할수록 보다 많은 국민들이 TV 끄는 즐거움에 눈뜨게 될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05-01-17 17:5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