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 일간지에 실린 '좋은 문장이란'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글쓴이는 시인이자 건축가였는데, 매우 짧은 글 가운데에서도 눈에 번쩍 띄는 부분이 있어서 일부만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누구의 문장은 악문(惡文)이라는 둥 비문(非文)이 남발되고 있다는 둥...... 그럼 좋은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소설가 최시한씨가 거침없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절박해야 할 것, 정확해야 할 것, 아름다워야 할 것. 명쾌한 답변이었고 ......

예전에는 학교 졸업한 후 편지 한 번 써본 일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인터넷이 일반화 된 요즘에는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읽는다. 그렇지만 글을 써야 하는 절박함과 글쓰기의 정확함을 통해 읽는 이에게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노력은 반대로 더 적어졌다....."


비단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이곳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악문(惡文)과 비문(非文)의 남발은 요즘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한 편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난 뒤에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된 영화 관람평까지 쓰는 일'은 어떨까? 쉽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내 나름대로 영화 관람평을 한 번 쓰려니까 왜 이리도 어려운지... 소설가 최시한씨가 제시했다는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은 사실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위의 '세 가지 기준'에 어설프게 짜맞추는 흉내라도 내면서 영화 감상평을 어거지로 써보자면...



① 절박해야 할 것.

그리 절박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이 글이 '좋은 문장'이 되지 못하는 절박한 사정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본다.

〈하울의 ...〉는 요즘 극장가에서 꽤나 인기를 끄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관람객들의 평가는 감동적이었다는 호평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상과열에 가까운 흥행몰이 성공 및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대해 다소 의아해 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또다른 많은 관객들은 아예 자기 자신의 반응 자체를 여러 극단적인 호평과 악평 사이의 어느 적당한 중간 지대에 편리하게 자리메김해 두는 것으로서 별다른 감정적 혼란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내가 이 영화를 본 느낌은 어떠한가? 아직까지는 '절박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감동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② 정확해야 할 것.

우선 객관적인 흥행 성적을 두고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2004년 말 무렵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선을 보인 미국과 일본의 유명 영화사(혹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3편의 애니메이션, 즉 〈하울...〉, 〈인크레더블〉및〈폴라 익스프레스〉의 세 작품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인기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서는 '미국의 디즈니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와 존경심까지 품고 있는 터라, 영화 개봉초부터 전폭적으로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테니 굳이 흥행성적에 대해 그다지 많이 놀랄 필요도 없어 보인다. 개봉 44일만에 벌써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일본 영화 관객 동원 1위 기록을 보유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종전 신기록을 갈아치울지도 모른다고 하니 말이다.


국내에서도 개봉 2주째에 접어든 지난 2일에는 관객 162만명을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영화팬들이 이 영화에 몰리고 있다. 단지 어떤 애니메이션이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서 월등한 흥행 성공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우수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관객들이 몰리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도 그리 불합리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와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요인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재미있게 만든 애니메이션인〈인크레더블〉같은 영화에 관객들이 너무 많이 식상해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미국식 수퍼맨의 영웅적 활약을 펼치는 뻔한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 왔으니까 말이다. 너무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현실세계 속의 미국의 힘이 연상될 때는 웬지 영화속의 통쾌함과 유쾌함이 조금은 반감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최근의 극심한 경기침체 등에서 비롯된 답답한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 보려는 욕구와 맛물린 '동화같이 아름다운 로맨틱 환타지'에 대한 신드롬 또한 무시하지 못할 요소로 보인다. 2004년에 대히트한 드라마《파리의 연인》만 떠올려 보더라도, 막강한 능력을 소유한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을 통해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라는 신종 캐릭터를 창조해 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좀 더 고상한 이유는 없을까?


③ 아름다워야 할 것.

사실 '아름다워야 할 것'은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이었다.

그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 한 편이 던져주는 수많은 아름다운 요소들을 제쳐 두고, 단지 영화 감상평을 구성하는 '짧은 문장'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에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하고 부르짓는 영화속 하울의 대사 한 마디야 말로 이 영화가 던져주는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여기서 약간만 패러디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니까 말이다.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면 볼 의미가 없어...'

연말 연시에 집중적으로 봤던 영화 가운데에서는 사실 개인적으로〈오페라의 유령〉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심금을 울려대는 음악이나 화려한 무대의상 뿐만 아니라 ‘크리스틴’ 에미 로섬의 깊은 눈망울과 낭랑한 울림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관객들은 많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막상〈인크레더블〉이나〈알렉산더〉같은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을려고 한다면 이야말로 생뚱맞은 일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지니는 최대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실사 영화에서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한계를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데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보고 나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잠시라도 망연자실할 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온 정신을 집중하고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벌레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벌레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확대경으로 본 세계가 아닌 진정한 벌레의 눈으로 보게 되면 풀은 거대한 거목이 되고 지면은 평탄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비나 물방울 등의 물의 성질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그려지면 재미는 물론 ‘진실’한 세계가 탄생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비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 스튜디오만 이런 특장점들을 유난히 잘 살리는 것도 아니다. 디즈니와 픽사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멋진 애니메이션 작품들, 가령〈벅스라이프〉,〈토이스토리〉,〈니모를 찾아서〉등등만 살펴봐도, 실사영화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표현할 길도 없는 아름다운 세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들을 우리들 앞에 마음껏 펼쳐내 놓았으니까...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선보였던 애니메이션들은 앞에서 언급한 서구 자본에서 추구하는 만화 영화의 전형과는 꽤나 다른 독특한 매력과 감성들을 우리들에게 풍성하게 제공해 왔음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은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듯이〈이웃집 토토로〉,〈천공의 성 라퓨타〉,〈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그리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등일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물론 '환경보호'라든가 '전쟁 반대'등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강력한 메시지들도 포함하고 있지만, 어느 작품이든 한결같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집요한 노력이 베어있지 않은 작품은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 영화를 두고 두고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해왔던 '아름다움'을 가장 거리낌없이 드러내놓고 맘껏 펼쳐 내보인 작품이 사실 이번에 나온〈하울...〉이 아니었을까? 그림의 배경과 음악과 등장인물 등 모든 요소에 대해 '아름다움'으로 맘껏 채울려는 감독의 욕심은 화려한 꽃으로 온통 채색된 장면들에 이르러서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조차 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

또한 여태껏 '하울'만큼 남자 주인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성우는 또 어떠하며, '마음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 여주인공 소피와 말 한마디 제대도 못하는 허수아비의 마음씨는 또 어떻고..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인〈하울...〉을 보고난 관객들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대해 두 갈래의 이율배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의 일단을 나름대로 해석하기 위해 심리학적 접근 방법을 조금 시도해 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기만 하다. 심리학자인 칼 융이 제시한 '4등분 지도'를 바탕으로 살펴본다면 '연인의 원형'이 두 갈래의 반응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매우 쉽게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된다.

연인의 원형은 죄의식을 갖지 않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거나 내보이기도 한다. 이는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연민, 또는 타인이나 사물과의 일체감을 의미한다. 연인의 원형은 예술과 아름다음에 대해 민감하다. 그렇지만 '연인의 원형' 또한 두 개의 그림자를 갖고 있는데, 너무 지나친 경우인 성중독과 너무 적은 경우인 성무기력을 들 수 있다. ...... 여기에서 이성과 과도한 이성(hyper-rationality)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엄격한 이성이나 빼어난 추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성이 세계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주관한다고 주장할 때 과도한 이성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는 말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여주인공 소피가 군인들 앞에서 당황해할 때 멋진 꽃미남 마법사 하울이 등장하여 황야의 마녀의 부하들(소위 '고무인간')을 따돌리기 시작하면서 부터 어느새 소피와 하울은 하늘위를 꿈속처럼 날아올라 걸어다니게 되고, 히사이시 조의 환상적인 주제 음악인 '공중의 산책'이 영화 관람객들의 감각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순간에서부터, 이미 이 영화는 짧은 네 다리로 불안하게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하울의 성처럼 관객들 사이에서도 뭔가 약간씩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만든 게 분명하며,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관객들 스스로가 전혀 다른 색깔의 문을 통해 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침〈하울...〉에 대한 영화 감상글 가운데 '과도한 이성화'에 대해 경계하는 멋진 글을 네이버 블로거 한 분의 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었다. 여기에 그 일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삐그덕 거린다.
움직이는 성을 구성하는 철골 구조마디에 미처 다 조이지 못한 나사가
수천개씩 맞물리며 불협 화음을 내듯,
이야기 구조는 엉성하고, 결론은 허겁지겁하며, 캐릭터는 의아스럽다.
게다가 그 많은 사건의 동기도 불분명하고, 캐릭터간의 관계도 불확실하다.
결국, 영화는 그렇게 모든것을 열어둔 채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웰 메이드 영화에 길들여진 어른들에게 흡족스러워야 한다고,
그 누가 주장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배워버린 눈은,
더 이상 하울과 꿈을 같이 꿀 수 없다.

☞ 출처 블로그 : LENS 나의 렌즈로 보는 세상... http://blog.naver.com/draiburn.do)

좌충우돌하며 여기까지 이래저래 덜컹거리며 마음대로 내달렸던 영화 관람평도 거의 마무리할 대목이 되었다. 애시당초에 얘기를 시작할 때 의도했던 '좋은 문장'을 써서 읽는 사람들에게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은 온데 간데 없어졌고, 결국 이상한 마법에 걸리게 되면 소피가 되어〈하울의 움직이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마법을 쓰는 하울과 같이 잠시나마 하늘을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도 있게 된다는 영화속 얘기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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