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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하여 ㅣ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생물다양성'과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56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도 은퇴한 칠순을 넘긴 노학자이다.
또한 그는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저술가로서 이 책『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와『개미 The Ants』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 밖에도 미국 국가과학메달, 국제생물학상, 크러포드상 등을 수상했으며,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최근에 와서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한 데 이어 생명복제기술의 영역까지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복제인간의 탄생'이라는 미증유의 새로운 신화(?)가 눈앞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 탄생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풀어나가야될 것인지에 대해서 뜨거운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윌슨은 이미 이러한 과학적 진보가 초래하게될 필연적 논쟁들을 오래전부터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바로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해결과제로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인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려는 노력을 꽤나 많이 진척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새롭게 추구한 시도는 오늘날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영역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것으로서, 이 책이 출간된 1978년 당시에도 물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윌슨의 주장은 수많은 논쟁속에 휩싸여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의 최적의 대안을 '생물학적 본성으로의 통합'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본성'에 관한 주제에 당면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을 자연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이론이 자신과 가장 관련이 깊은 집단생물학 및 진화론이라는 자연과학과 접목되었을때 나타날 심오한 결과들을 다룬 사색적인 에세이'라고 저자 스스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과학적 유물론을 지나치게 확신한다는 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생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현저한 거리를 줄일 시기가 도래했으며 '인간 본성'에 접근할려는 주된 추진력으로서의 '생물학적 탐구'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윌슨의 논리를 짧게 축약한 표현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해볼 까닭은 없지만, 생명체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을 보낸 다음 어김없이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점에서 보면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면면이 명맥을 유지해 온 DNA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DNA를 가리켜 '불멸의 코일'이라고 부르고 생명체는 그저 '생존기계'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른바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논리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될 점 한가지가 있다. 즉 윌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생물학자들은 결코 생명체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체는 누구나 유전과 환경의 공동 작업에 의해 형성되는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모든 성품이나 사고까지 똑같은 복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제양 둘리가 태어난 이후의 상황에서 '복제 인간'의 출현이 그렇게도 온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유전자를 복제한 것이지 생명체를 복제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복제 인간은 출산 시간이 많이 늦어진 쌍둥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가령 내가 만일 지금 나를 복제한다면 '그'는 유전자는 나와 완벽하게 같을지라도 그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환경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결코 간단치 않는 답들을 내어놓는다. 그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이들 딜레마로부터의 해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인간은 포함한 그 어떤 종도 자신의 유전적 역사가 부과한 의무를 초월하는 다른 어떠한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의 주된 도구는 물론 '유전적 진화'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수많은 생물학적 다양성들이 사례로서 제시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원리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원숭이가 이럭저럭 문화적 진화의 임계점을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영역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저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가 대부분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인 500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 약 만 년 전, 농경과 도시가 출현한 뒤에는 훨씬 더 대규모의 문화적 진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질주하는 동안에도 일부 유전적 진화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 형질 중 미미한 부분만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고 한다.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폭넓게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 충분하고 강력한 수렴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역설을 붙잡고 씨름해 왔다. 신경생물학의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자기애나 불멸의 꿈이 아니라 의지이다. 일차 작동자, 즉 번쩍이는 북들을 지휘하는 직녀는 과연 누구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타협안은 인지심리학자들이 스키마 또는 지식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사회적 행동은 인간 본성의 단순한 특징들이 이상 발달한 과잉 성장물들이 한데 모여 불규칙한 모자이크를 형성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상 발달 중 가장 극단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지식의 집적과 공유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자아에 대한 지식은 현대 사회 생활 속에서 온갖 낯선 형태로 증식되어 온 생물학적 인간 본성의 요소들을 밝혀낼 것이며 , 또한 미래의 행동이 나아갈 위험한 경로와 안전한 경로를 더 정확하게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 9장으로 된 이 책의 내용 가운데 4개의 장은 인간 행동의 네 가지 기본 범주인 공격성, 성(性), 이타주의, 종교를 사회생물학 이론의 토대 위에서 다시 검토해 보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모두 결속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성애 또한 생물학적 의미에서 정상일 뿐 아니라, 초기 인류 사회 조직의 중요한 요소로서 진화해 온 독특한 자선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결합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주의도 근거를 따져보면 포유동물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ambivalence)에 물들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숭고한 도덕 가치들의 문화적 진화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 추진력을 획득하여 유전적 진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철학적 의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gene pool)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인 종교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철저한 오만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원시원한 논리적 폭격은 강철 탄환처럼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는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학이 고대 신화들을 하나씩 붕괴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신학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발판을 딛고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며,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9장의 제목은 '희망'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왜 과학정신을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번 말한다. 교조화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뇌의 진화 산물로서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종교가 지닌 도덕성의 외부 근원으로서의 힘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인간 본성의 두번째 딜레마의 해답은 현실적인 필연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 신학자들까지도 결국은 과학적 자연주의가 정신 과정 그 자체를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의 체계적인 탐구의 토대를 바꿔놓을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수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마침내 냉철한 정신이 따뜻한 가슴과 만날 때, 인간 본성의 유전 법칙에 속박된 진화 궤도의 집합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류는 세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 서사시의 풍요로움 속에서 고전 신화의 영웅들을 소환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실존주의적 시지프스나 재앙의 판도라 뿐만 아니라 결국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믿음으로 되돌아가서 끝끝내 맹목적인 희망을 굳건히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맺는 말이다.
이 책의 서평글이 윌슨의 주장에 대한 두루뭉실한 요약으로 대체되고만 느낌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많은 인용문구들과 수많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책의 문장들에 대한 나 자신의 어설픈 이해로부터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마치 힘든 운동을 통해 신체가 단련되듯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좋은 운동을 했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다른 책의 참고문헌으로도 많이 인용될 만큼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은 점에 비춰보면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도 꼭 얘기하고 싶다. 2000년 '커밍 아웃'을 선언한 홍석천씨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선정한 '올해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뽑혀 다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고보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의 생물학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무게와 깊이 만큼이나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 속의 유전자가 걸어온 엄청나게 머나먼 길을 내내 따라온 여행은 흥미로움과 유익함과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그에 대한 벌로서 독수리에게 쪼아먹히게 될 그의 간이 낮이면 다시 자라나듯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심 또한 우리가 인간의 굴레에 결박되어 있는 한은 계속해서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