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 -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 중국인의 지혜 시리즈 1
스유엔 지음, 김태성.정윤철 옮김 / 더난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활동했던 호설암(胡雪巖/후쉐엔, 1823∼1885)이라는 인물의 '상술'과 '상도'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호설암은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출신이었으나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특수성과 권력의 흐름을 이용하여 당대의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거대한 재산을 쌓아올렸던 인물이다.

이 책은 호설암이 직접 기록하지 않고 전업 작가가 쓴 책이다. 그런데다가 책의 형식 또한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인 연대기적 서술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의 구성은 '호설암 어록'과 '본문' 그리고 '상경에서 배우는 경영정신'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렇다보니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에 대한 '온전한 모습'을 계속해서 이리 저리 꿰맞춰보아야 하는 어려움도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흔히 에피소드의 나열 식으로 구성된 이런 류의 책은 각 장 마다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결여되기 쉬워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조차도 파악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며, 때로는 각 장 마다의 단절이 주는 묘한 불편함과 산만함 등에 따라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도 들게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도 그리 예외는 아닌듯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단히 실용적인 책일 뿐만 아니라 교과서적인 의도를 가지고 씌어진 책이기 때문에 책의 구성에서 오는 압박감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많은 실제적인 교훈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인 스유엔이 호설암이라는 인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고전과 역사로부터 뽑아낸 수많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다양하고도 풍성하게 덧대어 놓았기 때문에, 저자가 골라 뽑은 호설암의 핵심적인 경영 철학과 다른 여러 본받을만한 사례들을 함께 비교해 가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호설암에 관한 책으로 그치지 않고 중국인의 상술에 대한 '집대성'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이라고까지 내세우는 점은 다소 지나친 과대포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측면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다름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될 호설암에 대한 숭배의 감정을 다소나마 누그려뜨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관한 부분이다. 이 점은 '작가에게 맡겨진 영웅에 관한 기록들'이 흔히 내포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구태여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호설암에 관한 어록과 성공담들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주인공에 대한 미화와 합리화에 너무 많이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약간은 당황스럽다. 저자의 이런 노력은 호설암이 이미 중국의 후대 상인과 기업가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만큼 유명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대륙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다른 의심없이 쉽게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해 금시초문인 다른 많은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할인'도 필요하겠다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상반된 요소들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나면 이 책의 알맹이들을 끄집어 내는 일이 남는다. 호설암이 가장 중요시했던 상도의 핵심 요소를 단 3가지로 요약해 볼려고 한다면 그것은 첫째가 사람, 둘째가 신뢰, 마지막으로 셋째가 관계(關係)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를 좀 더 세분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호설암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었던 비법은 '인재의 쓰임을 아는' 용인관과 '시세를 잘 활용하는' 시국관, '정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관상관, '과감한 지모와 재빠른 행동을 앞세우는' 모략관, '시장을 조정하고 만들어가는' 영업관, '폭넓게 통찰하여 지리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처세관 등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호설암의 성공을 뒷받침한 핵심 개념들은 동서고금의 성공적인 기업가들로부터 살펴볼 수 있는 지배적인 원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호설암의 경우에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서구 자본주의의 경영 환경을 바탕으로 한 많은 성공적인 기업가들의 사례와는 다소 동떨어진 요소들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연히 호설암이 주로 활동했던 무대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있어서도 서방세계의 그것들과는 여러모로 사뭇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즉, 1,800년대 중후반의 중국 중.남부는 서구 열강들의 중국 대륙에 대한 접촉이 매우 활발해지던 시기였는데다가, 중국 내부에서는 청나라 말기의 온갖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봉건주의적 유교문화와 양무운동 및 태평천국의 난 등과 함께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시대였었으며, 호설암의 성공 전략도 그와 같은 바탕에 최적인 전략들이 많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설암 상술의 특징들은 심리전에 매우 능통하며, 전략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과 동양적 연고주의를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관계에 대한 다양한 로비와 뇌물수수 등 비합리적 관행까지도 핵심적인 요소로 포함시킬 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호설암의 상술 및 상도에 관해 읽다보면 조선시대 후기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상도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는 느낌도 들며, 좀 더 가까이는 한국의 산업화 초창기 시대의 주역들이었던 여러 재벌 창업주들도 떠오르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히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설암을 특징짓는 면모들 가운데 고 정회장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시대의 흐름과 외부조건을 최대한 활용 ② 과감한 처신 ③ 정치적 감각 및 관계와의 로비 ④ 성실과 신의 ⑤ 돈을 버는 진짜 마술 ⑥ 원대한 시야와 날카롭고 정확한 안목 ⑦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 자세 등

이 책에 나오는 호설암의 많은 어록들 가운데에는 중국인의 독특한 상술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된 중국의 속담들과 함께 중국 상인들의 지혜의 깊이를 풍성하게 맛볼 수 있어서 마음속에 새겨둘 만한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의 각 장 마다 한자 두 글자로 표현되는 18가지의 비방들도 재미있는데 이들 가운데 몇 가지만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ㅇ기회를 만들 줄 아는 지혜 : 지신(砥身)
   '지(砥)'란 연마를 뜻하고 '신(身)'이란 마음의 형상을 말한다.
   스스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반드시 강해진다.
   자고로 좋은 일에 힘이 많이 드는 법이니,
   역경에 처했을 때는 인내하는 것이 바로 지신(砥身)이다.

ㅇ큰 상인과 작은 상인의 구별 : 용모(勇謀)
   '용勇'이란 결단을 말한다. 시기를 잘 잡아 일을 결정해야지 우유부단해서는 안된다.
   '모謀'는 남이 알지 못하는 전략을 말한다.
   '모'는 '용'의 근거가 되고 '용'은 '모'의 추진력이 된다.

ㅇ사업을 일으키는 근본 : 수활(手活)
   '수手'란 인간이 갖고 있는 도구로서 수법 또는 수단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활活'이란 활발하고 민첩한 것을 말한다.
   손이 활발하고 민첩하면 사업이 번성하고 일이 순조롭지만,
   손이 둔하고 느리면 사업이 부진하고 하는 일이 위태로워진다.

끝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살펴보니《중국인의 상술》(강효백 지음)이라는 책에서 호설암에 대해 '관상결탁으로 일어나 관상결탁으로 쓰러졌으며, 한 20년 간 반짝했다가 말년에 폭삭 망한 별로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되는 상인'으로 혹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근세의 비즈니스 환경과 역사뿐만 아니라 대륙 고유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중국인들의 상관습과 상술 및 상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지혜들을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실상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보려는 시도로서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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