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지배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오늘날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지배적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자본주의에 있어서 그 근원적 매개라고 할 만한 '돈'에 관한 책이다. 단지, 돈이라는 다소 저속한 표현 대신에 '황금'이라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속을 빌어 썼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단순히 인간의 황금에 대한 탐욕의 역사에만 촛점을 맞춰 쓴 것으로 속단할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화학기호 AU(빛나는 새벽Aurora에서 유래)로 채워진 금송아지를 만들어 저주받은 유대인들의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목구멍에 끓는 황금을 부어 살해당한 크라수스, 미다스의 손, 미 골드러시에 참여한 10만명중 400명만 부자가 된 얘기 등으로 이어지면서, 책의 중반부터는 금본위제에 이르기 위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과 브레튼 우즈 체제의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국제금융시스템과 통화제도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달러가 세계의 중심통화가 된 오늘날에 이르러서, 과연 달러 또한 과거 금본위제 시절의 황금이나 다름없이 흔들리는 위상을 예고하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한 물음까지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물질문명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돈(황금)과 그 돈의 흐름을 다루는 금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여길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인류 역사의 중대한 시기마다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황금을 통해 거대한 스케일로 다룬 인류경제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저서인《리스크》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이유는 황금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흥미로운 얘기거리를 만들어 왔으며, 황금을 둘러싼 얘기 하나 하나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일화의 다른 일면까지 세세하게 파헤쳐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얘기는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 왕 전설로부터 시작해 로마시대, 중세 흑사병의 전염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대변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살펴보면 이 책의 밑바탕에 깔린 저자의 인식에는 항상 인간의 의지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대한 관점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점은 이 책의 원제목 아래에 '망상의 역사'(The History of an Obsession)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수많은 인용서적과 논문 리스트를 보면 학술서 같은 느낌도 없지 않으나, 주제는 오히려 '황금과 인간 이야기'에 가까워지는 묘한 매력을 던져주기도 한다.

반짝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금이 인류경제의 중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은 황금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그것에 부여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돈은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보다 근원적이며 교훈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 또한 번스타인의 방대한 참조 자료와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빛나는 금실로 얼기 설기 엮어 놓아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다.
경제학자의 열정, 역사학자의 눈 그리고 사회학자의 분석력을 겸비한 번스타인은 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책 속에서>
약 100년 전에 존 러스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어떤 남자가 그의 전 재산인 금화가 가득찬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배를 탔다. 그런데 항해가 시작된 지 며칠 후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서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라는 경고가 터져나왔다. 그 남자는 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갑판으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의 몸은 곧장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여기서 러스킨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 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앞서 제기된 러스킨의 질문에 대한 번스타인의 답은 분명해진다. 러스킨의 주인공 자신이 금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금이 그를 소유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번스타인의 결론은 이렇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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