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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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핑커
<빈 서판>,<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언어본능>,<사이언스 북>,



















스티븐 핑커의 이 두툼한 책(962쪽)에 담겨진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말했다.

리뷰를 쓰기엔 너무 벅찬 일인 것 같아 포토리뷰의 형식을 빌어,
일부러 찍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밑줄친 스티븐 핑커의 '생각들'을 뽑아서,
임의대로 붙인 소제목과 해당 쪽수를 덧붙여 정리하여 옮겨 놓는다.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임의로 ① ② ③ ④로 나누어 정리)



(이미지를 크게 볼려면 사진 위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 가장 아름다운 풍경 (5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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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 559


목표 574


어떤 동물이든 모든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진 못한다. 우화 속의 당나귀는 두 짚단의 중간에서 굶어 죽었지만, 배가 고픈 동시에 목이 마르다고 해서 딸기나무와 호수의 중간에서 고민하는 동물은 없다. 그리고 딸기 하나를 따서 먹고, 호수로 가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딸기 하나를 따서 먹는 동물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동물은 한 번에 하나의 목표에 전념하는데, 각각의 목표는 성취하기에 가장 좋은 순간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 578

자연미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야말로 우리의 조상들을 알맞은 환경으로 이끈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사바나를 아름답게 보지만, 또한 탐험하고 기억하기 쉬운 풍경과 안팎을 잘 알 정도로 오랫동안 몸담고 살아온 풍경을 좋아한다. (중략)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풍경은 최적의 사바나 환경과 똑같다. 즉 반쯤 열린 공간(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면 공격에 취약하고, 너무 무성하면 시야와 행동을 가로막는다), 평탄한 지형, 지평선까지 열린 시야, 큰 나무, 물, 고도의 변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풍경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조망과 대피, 즉 보이지 않으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된 땅이라야 안전하게 지형을 답사할 수 있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 580

사람들은 또한 동물과 식물, 특히 꽃이 있으면 좋아한다. 만일 당신이 집을 비롯하여 쾌적하지만 인공적인 환경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면, 아마도 주변에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꽃을 주제로 한 장식물이 있을 것이다. 동물에 매혹되는 현상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동물을 먹고 동물은 우리를 먹는다. 그러나 꽃은 사치스런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샐러드가 아니면 먹을 일이 없으므로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설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직관적인 식물학자인데, 꽃은 풍부한 정보원이다. 식물은 함께 모여 있으면 초록 일색이어서 종종 꽃을 봐야만 식별이 가능하다. 꽃은 성장의 전조로서, 약간의 지능을 가진 생물에게는 미래에 과일, 견과, 덩이줄기 등이 생길 자리로 기억된다.

일몰, 천둥, 짙은 구름, 불과 같은 몇몇 자연현상들은 감정을 크게 환기시킨다. 오리언스와 헤르바겐은 그런 현상들은 어둠, 폭풍우, 화재 같은 중요한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려준다고 지적한다. 환기된 감정들은 마음을 사로잡고, 일손을 멈추게 하고, 주의하게 하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하게 한다.


잡식성의 딜레마 587

역겨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로진은 인간이 '잡식성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유칼립투스 잎을 주식으로 먹기 때문에 그것이 부족해지면 위기에 처하는 코알라와는 달리, 잡식성 동물들은 광범위한 메뉴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단점은 많은 음식들이 유독하다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물고기, 양서류, 무척추동물이 강력한 신경독을 갖고 있다. 평상시에는 무해한 고기에도 촌충 같은 기생충이 있을 수 있고, 상한 고기는 부패를 야기하는 미생물들이 청소동물들을 막고 고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독을 분비하기 때문에 굉장히 치명적이다.


음식 금기 592

어떤 집단에서든 젊고 가난하고 참정권이 없는 구성원들은 다른 집단으로 이탈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 특히 부모들은 그들을 붙잡아 두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포틀래치와 축제는 물론이고 사업상 점심과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어디서나 함께 음식을 먹음으로써 동맹을 형성한다. 함께 음식을 못 먹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금기 규율은 종종 이웃 부족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금지하는데, 예를 들어 유대인 음식 금기의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다면 음식 금기는 잠재적 이탈자들을 붙들어 놓는 무기인 셈이다. 우선, 음식 금기는 외부인들과의 연합으로 들어가는 서곡인 빵 나누기를 명백한 도전 행위로 만든다. 더 나아가 음식 금기는 역겨움의 심리를 이용한다. 음식 선호를 배우는 민감한 시기에는 금기 음식들을 접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자연히 그런 음식들을 접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자연히 그런 음식들을 역겹게 생각한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적과 친해지기가 어려워진다.("그는 나를 초대했지만, 그들이 음식을 대접하면 어떻게 하지. ··· 우웩!!")


인간의 비극 599

여러 시대에 걸쳐 인간의 조건을 관찰했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비극을 지적해 왔다. 사람들은 이웃들보다 낫다고 느낄 때 행복하고, 그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불행하다.

그런데, 아! 다른 사람의 눈으로 행복을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나 씁쓸한 일이냐!
- 윌리엄 셰익스피어(《뜻대로 하세요》5막 2장)

행복 [명사] 타인의 불행을 생각할 때 생겨나는 흡족한 기분.
- 앰브로즈 비어스

성공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해야 한다.
- 고어 비달

곱사등이가 즐거워할 때는 언제인가? 다른 사람의 등에서 더 큰 혹을 보았을 때다.
-이디시 속담


불평등 600

오늘날 사람들은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하고, 더 잘 먹고, 더 오래 산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즐겁게 살지 못하는 반면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들처럼 만성적으로 음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서양 국가들의 빈곤 계층은 과거라면 귀족들조차 꿈꾸지 못했을 환경에서 산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다양한 계층과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더 풍요로운 집단과 비교하기 전까지는 종종 만족감을 느낀다. 한 사회에서 폭력의 수위는 그 사회의 가난보다는 불평등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세기 후반에 대두된 제3세계의 불만족과 그 이후에 대두된 제2세계의 불만족은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제1세계의 풍요로움을 엿본 탓으로 추정된다.


행복의 쳇바퀴 602

산업 국가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약간에 불과하다. 부와 만족의 상관성은 실재하지만 낮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행복의 파도가 가라앉으면 다시 예전의 감정 상태로 돌아간다. 더 낙관적인 측면에서, 이를테면 하반신 마비 환자들이나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처럼 엄청난 손실을 경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략) 마이어스와 디너는 부는 건강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부유하지 않으면 비참해지지만, 부유함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점에서다.


행복의 비극 603

행복의 비극은 3막까지 있다. 부정적인 감정(두려움, 슬픔, 불안 등)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두 배나 많으며, 손실이 같은 양의 이득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테니스 스타 지미 코너스는 인간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는 이기기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지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비대칭은 실험실에서도 발견되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는, 사람들은 확실한 이익을 확보할 때보다 확실한 손해를 피하려 할 때 더 큰 도박을 벌인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기분은 이득을 상상할 때 상승하는 폭보다 손실을 상상할 때(예를 들어, 학교 성적이나 이성과의 관계에서) 하락하는 폭이 더 크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략)

상황이 점점 좋아지는 경우 적응도의 증가는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음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그것도 어느 한도까지다. 그러나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 적응도의 감소는 게임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 음식이 부족하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 무한히 열악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전염병, 굶주림, 잡아먹힘, 추락 등등), 크게 좋아지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 때문에 미래의 이득보다는 손실에 주목할 가치가 더 큰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쾌락의 쳇바퀴'에 갖힌 존재 604

초기의 진화심리학자로서 즐거움의 심리를 연구했던 도널드 캠벨은 인간을 가리켜 행복을 획득해도 결국에는 더 행복해지지 않는 '쾌락의 쳇바퀴'에 갇힌 존재라고 묘사했다. 사실 행복에 대한 연구는 종종 전통적인 가치관을 옹호하는 설교처럼 들린다. 그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부유하고 특권이 있고 힘이 세고 잘생긴 사람이 아니라 배우자와 친구와 종교, 그리고 도전적이고 뜻있는 일을 가진 사람이다. 이 발견이 과장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개인이 아니라 평균에 들어맞기 때문이고, 원인과 결과를 쉽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은 행복을 주지만 또 한편으로 행복은 결혼과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캠벨이 내린 다음의 결론에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현명한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 있다. "직접적인 행복 추구는 불행한 삶을 만들어 내는 조리법이다."


늑대와 레밍 611

동물들은 집단, 종, 생태계에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늑대가 늙고 약한 사슴을 사냥하는 것은 그런 사슴이 가장 쉬운 사냥감이기 때문이다. 배고픈 레밍들은 더 좋은 들판을 찾아다니다 사고로 추락하거나 익사하는 것이지 자살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 612

동물들이 대개 다른 동물들의 관찰 가능한 행복을 그들 자신의 즐거움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심리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동물들이 때때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즐거움으로 느낀다는 것은 훨씬 더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 616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란 "동물들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 이론을 정확히 이해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동물들은 유전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다. 그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자식을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전하게 키우려고 노력한다. 이기적인 것은 개인의 실제 동기가 아니라 그 개인을 구성한 유전자의 비유적 동기다. 유전자는 동물의 뇌를 배선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퍼뜨리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그 동물들은 자신의 친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전하게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혼동은 사람들의 유전자를 그들의 진정한 자아로 간주하고, 유전자의 동기를 사람들의 가장 깊고 진실하고 무의식적인 동기로 간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오해하게 되면 모든 사랑은 위선이라는 냉소적이고 잘못된 도덕에 이르기 쉽다. 그것은 개인의 실제적 동기와 유전자의 비유적 동기를 혼동한 결과다. 유전자는 꼭두각시를 부리는 주인이 아니다. 유전자는 뇌와 몸을 만들기 위한 조리법으로 작용한 다음 조용히 물러난다. 유전자는 평행우주에 존재하고, 몸 전체에 흩어져 있으며, 그들만의 의제를 갖고 있다.


흩어진 사본들 617

신체는 감정이입의 결정적 장벽이다. 당신의 치통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울 뿐 나에겐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그러나 유전자는 신체에 감금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유전자는 여러 가족 구성원들의 몸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한 유전자의 흩어진 사본들은 신체에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서로를 부른다. 사랑, 동정, 감정이입은 서로 다른 몸속의 유전자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그런 감정들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치통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가 병든 자식을 대신해 수술을 받고 싶다고 말할 때, 그 이타적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은 종이나 집단이나 부모의 신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이기적 유전자다.


도덕적 감정들 : 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621

트리버스는 도덕적 감정들을 호혜주의 게임의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계했다.

'좋아함liking'은 이타적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감정이다. 대략적으로 그것은 타인에게 호의를 제공하는 자발성이고, 그 방향은 자발적으로 호의를 돌려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맞춰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감사gratitude'는 최초의 행동에서 비롯된 비용과 이익에 따라 보답하려는 욕구를 조절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큰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동정sympathy'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욕구이고, 감사를 벌기 위한 감정일 수 있다. 사람들은 호의가 가장 절실할 때 가장 많이 감사하므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은 이타적 행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죄의식guilt'은 발각될 위험에 처한 사기꾼을 괴롭힐 수 있다. H.L. 멩켄은 양심을 "우리에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정의했다. 만일 피해자가 미래의 모든 도움을 끊는다면 사기꾼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악행을 배상하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관계 단절을 막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들이 사적인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 행위가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죄가 발각되기 전에 자백하는 행위는 진실함을 입증하고 피해자에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수치shame'는 범죄가 발각된 후의 반응으로 공개적인 뉘우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도 분명 같은 이유에서다.


낭만적 사랑 643

혼인 법률도 임대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법이 생겨나기 오래 전에 계약을 맺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신은 장래의 파트너가 떠나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도-예를 들어, 열이면 열 모두 옆집으로 이사할 때에도-당신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해결책은, 애초에 합리적인 이유로 당신을 원하는 파트너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 곁에 머물겠다고 약속하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다. 무엇을 걸고 약속을 해야 할까?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본인이 갖고 싶다고 해서 갖게 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갖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도 없다. 감정은 객관적인 가치 평가에 의해 촉발되지 않으므로, 더 큰 가치를 지닌 누군가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감정을 꾸며 낼 수 있다면 빈맥, 불면증, 식욕부진 같은 생리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감정은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이 바로 낭만적 사랑이다.


제3의 자아 653

마음에는 여러 부분이 있는데, 어떤 부분들은 미덕을 위해 설계되었고, 어떤 부분들은 이성을 위해 설계되었고, 또 어떤 부분들은 고결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부분들을 압도할 정도로 충분히 영리하게 설계되었다. 한 자아가 다른 자아를 속일 수는 있지만 그때마다 제3의 자아가 진실을 본다.




가족의 소중함 655


우리의 삶 658

전 세계의 소설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줄거리는 소수에 불과한데, 조르주 폴티 교수는 모든 줄거리의 목록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80% 이상의 줄거리가 적에 의해(종종 살인이 일어난다), 친족이나 사랑의 비극, 또는 둘 모두의 비극으로 전개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삶은 대부분 갈등 이야기, 즉 부모, 형제자매, 자식, 배우자, 연인, 친구, 경쟁자 때문에 생기는 상처, 죄의식, 경쟁의 이야기다.


살인 통계 670

미국의 한 도시에서 집계한 표본자료를 보면, 살인의 4분의 1은 낯선 사람의 소행이고, 절반은 아는 사람, 나머지 4분의 1은 '친족'의 소행이다. 그러나 그 친족의 대부분은 혈연이 아니라 배우자, 인척, 계부모와 의붓자식이다. 혈연에 의한 살인은 2∼6%에 불과하다.


자식의 가출 674

자식이 가출을 하면 부모는 재앙을 맞이한다. 평생에 걸친 사업상의 거래나 전략적 기회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만일 부모가 자식을 주겠다고 수년 전에 서약이라도 했다면 그 부모는 채무불이행에 빠져 고리대금업자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또는 자식이 일찍 사망한다면 부모는 자신의 몸을 저당이라도 잡혀서 죽은 자식을 대신할 배우자를 사야 할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약혼의 파기는 반목과 전쟁에 불을 지피는 주된 원인이다. 위험성이 그렇게 높기 때문에 부모 세대가 기회만 있으면 낭만적 사랑은 경솔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치학의 근본 모순 675

부모애는 정치학의 근본 모순-어떤 사회도 동시에 공정하고, 자유롭고, 평등할 수 없다-을 낳는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재산을 모은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준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평등할 수가 없다. 스스로 벌지 않은 부를 상속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말살하려고 노력한 이유 676

저널리스트인 퍼디낸드 마운트는 역사상 모든 정치적·종교적 운동들이 어떤 이유로 가족을 말살하려고 노력해 왔는지를 기록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가족은 개인의 충성심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적대적인 연합체일 뿐 아니라, 불공평한 이점-친족들 간의 타고난 애정이 동지들 간의 애정보다 크다는 사실-을 누리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친족들은 족벌주의의 혜택을 주고받고, 다른 조직에서는 쉽게 가라앉기 힘든 일상적 갈등들을 용서하고, 구성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레닌주의와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은 항상 가족의 유대와 상반되는 동시에 그보다 '더 높은' 새로운 충성심을 요구했다.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통일교("우린 이제 당신의 가족입니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들도 마찬가지다. 마태목음 10장 34-37절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예수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아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근친상간 결혼 677

인류학자 낸시 손힐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근친상간 법률은 남매간의 결혼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님을 밝혀냈다. 그 법의 진정한 표적은 입법자의 이익을 위협하는 결혼이다. 근친상간 법률은 그보다 먼 친척들, 예를 들어 사촌들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부와 권력이 미래에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가족들에게 축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계층사회의 통치자들에 의해 공포된다. 인류학자 로라 베치히는 성과 결혼에 대한 중세 교회의 법률도 왕가들을 겨냥한 무기였음을 보여 주었다.


부모와 자식 678

자연선택이 설계한 유기체에게 존재의 이유와 그 모든 노고 및 투쟁의 목표는 자손을 보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클 수밖에 없고, 실제로 크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이라도 무한할 수는 없다. 로버트 트리버스는 가족의 심리학에 미묘하지만 심원한 유전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부모-자식 갈등, 형제 경쟁 679

어린 새끼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큰 새끼에게 드는 비용을 초과할 때 부모는 큰 새끼에게서 작은 새끼에게로 투자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 계산의 기초에는 두 자식이 부모와 동일한 촌수라는 사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의 관점에서 본 계산이다. 첫 새끼는 다르게 본다. 첫 새끼는 어린 새끼와 5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자기 자신과는 10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따라서 첫 새끼의 입장에서 볼 때, 어린 동생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그에게 들어가는 비용의 '두 배'를 초과할 때까지 부모는 계속해서 그에게 투자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부모와 자식의 유전적 이해가 갈라진다. 각 자식은 부모가 주려고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살핌을 원한다. 부모는 각각의 자식에게 (각자의 필요에 따라 상대적으로) 똑같이 투자하기를 원하는 반면, 각 자식은 자신에게 더 많은 투자가 돌아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긴장을 부모-자식 갈등이라고 한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형제 경쟁이다.



자궁에서 시작된다 681

부모-자식 갈등은 자궁에서 시작된다. 아기를 밴 여자는 조화와 양육의 여신처럼 보이지만 눈부신 미소 뒤에서는 강력한 전투가 벌어진다. 태아는 미래의 자식들을 낳을 수 있는 어머니의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어미니의 몸에서 영양분을 채굴한다. 어머니는 자연보호주의자라서 후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예비 상태로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인간의 태반은 어머니의 몸에 침입해 혈류 속으로 들어간 태아의 세포조직이다. 이 태반을 통해 태아는 어머니의 인슐린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혈당 수치를 높이고 혈당을 양껏 흡수한다. 그 결과 당뇨병이 어머니의 건강을 저해하기 때문에, 진화의 기간에 걸쳐 어머니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해 왔고, 이에 맞서 태아는 인슐린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여, 결국 두 호르몬은 평상시 농도보다 1000배나 더 높은 수치에 도달했다. 부모-자식 갈등에 최초로 주목한 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는, 호르몬 수치의 증가는 목청 돋우기, 즉 갈등의 신호라고 말한다. 이 줄다리기에서 태아는 어머니의 혈압을 높이고 더 많은 영양분을 짜내기 위해 어머니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싸움은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어머니가 내릴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은 '갓난아기를 살릴 것인가, 죽게 놔둘 것인가'다. 유아살해는 세계 모든 문화에서 발생한다.


유아 살해에 깔린 계산 682∼683

모든 종의 부모는 갓난아기에게 투자를 계속할지 중단할지의 선택에 직면한다. 부모 투자는 소중한 자원이므로, 만일 갓난아기가 죽을 가능성이 있다면 계속 기르거나 젖을 먹이는 것은 잃은 돈을 건지려다 점점 더 손해를 보는 셈이 된다. 그 시간과 칼로리는 같은 배의 새끼들에게 돌아가거나, 새 출발을 해서 새로운 새끼를 낳는 데 쓰이거나,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비축해 놓은 것이 더 유익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발육이 불량하거나 병약한 새끼를 죽게 놔둔다. 인간의 유아 살해에도 이와 비슷한 계산이 깔려 있다. 식량수집 사회에서 여자들은 10대 후반에 첫아이를 낳고 4년의 유아기 동안 필요할 때마다 젖을 먹이지만 많은 아기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것을 본다. 운이 좋은 여자는 2∼3명의 아이를 성공적으로 길러 낸다. 아주 적은 수의 아이라도 성공적으로 길러 내기 위해서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세계의 모든 문화에서 여자들은 생존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 오면 아기를 죽게 놔둔다. 예를 들어 아기가 기형이거나, 쌍둥이이거나, 아버지가 없거나, 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이 아닐 때, 어머니가 젊거나(그래서 다시 아기를 가질 기회가 있을 때), 사회적 지원이 없거나, 아기를 낳은 후 곧바로 다른 아기를 낳았거나, 먼저 태어난 자식을 키우기가 힘겨울 때, 혹은 가뭄 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통계 수치에 의하면, 유아를 죽게 놔두는 어머니들은 어리고, 가난하고, 미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의 다른 문화들과 똑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비극 683

유아를 살해하는 어머니들이 냉혹한 것은 아니며, 유아 사망이 흔히 발생할 때에도 사람들은 결코 어린 생명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다. 어머니들은 유아 살해를 피할 수 없는 비극으로 느낀다. 그들은 죽은 아기에 대해 몹시 슬퍼하고,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많은 문화에서 사람들은 아기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는 아기로부터 감정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아기가 위험한 시기를 넘길 때까지 사람들은 아기를 만지거나 이름을 지어 주거나 법률상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세례나 할례 관습과 유사하다.



재고 조사를 해야 할 이유 683


아기를 낳은 어머니의 감정은 아기를 살릴 것인가 죽게 놔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동력으로, 위와 같은 보험학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산후우울증을 대개 호르몬 이상으로 설명하고 넘어가지만, 복잡한 감정에 대한 다른 모든 설명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왜 뇌가 호르몬의 영향을 허락하도록 배선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류 진화사의 대부분에 산모는 잠시 짬을 내 재고 조사를 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현재의 분명한 비극과 몇 년 후의 더 큰 비극의 가능성을 두고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그것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산모의 전형적인 우울증-이 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산후우울증은 예를 들어 가난, 부부 갈등, 홀어머니 양육 같은 상황에서 가장 심각하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그런 상황이 종종 유아 살해로 이어진다.


귀여움이라는 무기 684

아기는 이해 당사자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가지고 자신의 이익을 쟁취한다. 그 무기는 바로 귀여움이다. 갓난아기들은 일찍부터 어머니에게 반응한다. 아기들은 미소를 짓고, 눈을 맞추고, 어머니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심지어 어머니의 표정을 흉내 내기도 한다. 아기가 신경계의 기능을 그렇게 광고하면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져서 아기를 키워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힐 수 있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지적에 따르면, 아기들의 기하학적 배열-큰 머리, 둥근 두개골, 얼굴 아래쪽에 자리 잡은 큰 눈, 통통한 볼, 짧은 팔다리-은 상냥함과 애정을 이끌어 낸다고 한다. 그런 배열은 아기 조립 과정의 산물이다. 자궁 안에서는 머리 끝 쪽이 빨리 자라고, 반대쪽 끝은 태어난 후에 부진을 만회한다. 뇌와 눈은 나중에 들어찬다. 로렌츠는 오리와 토끼처럼 그런 배열을 가진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귀엽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중략)


아기의 전술, 개구쟁이의 진화 685

일단 아기에게 생존이 허락되면 세대 간 전투는 계속된다.
자식은 이 전투에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지켜 낼까? 트리버스의 말에 따르면, 아기들은 어머니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원하는 대로 젖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전술을 이용한다고 한다. 아기는 부모가 그에게 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도록 유도하기 위해 아기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의 진심 어린 마음을 조작해야 한다. 부모는 "늑대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무시할 줄 알기 때문에 아기의 전술은 더 교활해야 한다. 아기의 뇌는 몸 전체의 감지 장치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기는 자신의 상태를 부모보다 더 잘 안다. 부모와 아기는 모두 아기의 필요에 대한 부모의 반응-예를 들어 아기가 배고플 때 젖을 먹이고, 추울 때 껴안아 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기 입장에서 이것은 부모가 주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살핌을 이끌어 낼 기회가 된다. 아기는 아주 춥거나 배고프지 않아도 울 줄 알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까지 미소를 참을 줄도 안다. 아기는 말 그대로 속임수를 쓸 필요가 없다. 부모는 거짓 울음을 식별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아기의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생물학적 필요가 전혀 없을 때에도 정말로 비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기기만은 일찍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아기는 또한 한밤중에 울부짖거나 사람들 앞에서 짜증을 내는 등의 강제적인 방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소음이 계속되는 것을 싫어해 조건부로 항복을 하는 경향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식의 행복에 대한 부모의 관심 덕분에 아이들은 난폭하게 짜증을 내며 뒹굴거나, 아이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양쪽이 뻔히 아는 어떤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 토머스 셸링의 지적에 따르면, 아이들은 모순적 전술을 이용하기에 딱 좋은 입장이라고 한다. 아기들은 귀를 막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부모의 시선을 피하거나, 뒷걸음질을 치곤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부모의 으름장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행위다.


젖떼기 갈등의 직접적인 연장 686


부모-자식 갈등 이론은 두 유명한 이론의 대안이다. 하나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즉 남자아이들은 어머니와 잠자리를 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거세당할 것을 두려워한다는 가설이다.(또한 엘렉트라콤플렉스에서는 어린 딸이 아버지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모든 문화에서 어린아이들은(여자아이를 포함해) 때때로 어머니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어머니의 배우자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부모-자식 갈등 이론은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한다. 엄마에 대한 아빠의 관심은 엄마의 주의를 빼앗아 가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을 만들겠다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런 비극적인 날을 어떻게든 미루기 위해 섹스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을 줄이고 아버지를 어머니로부터 멀리 떼어 놓을 수 있는 전술들을 진화시킬 만하다. 그것은 젖떼기 갈등의 직접적인 연장이다. 부모-자식 갈등 이론은 이른바 오이디푸스적 감정이 왜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여자아이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어린 남자아이들이 어머니와 성교하기를 원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피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자식 살해와 존속살해의 이유 687

작은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접근할 기회를 놓고 아버지와 충돌하지만 이것은 성적 경쟁이 아니다. 그리고 큰 아이들은 성적인 문제로 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와 충돌하지만, 그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다. 많은 사회에서 아버지는 암묵적으로나 공개적으로나 성적 파트너를 놓고 아들과 경쟁을 벌인다.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일부다처 사회에서는 부자가 말 그대로 한 여자를 놓고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부다처제나 일부일처제인 대부분의 사회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아내 찾기를 지원해야 하는데, 이것은 다른 자식들이나 아버지 자신의 열망에 손해가 될 수 있다. 아내를 구하려는 아들은 조급한 심정으로 아버지가 그에게 재산을 떼어 주기만을 기다릴 수 있고, 여전히 정력적인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식 살해와 존속살해는 그런 경쟁 때문에 촉발된다.



심리학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실 688∼689

트리버스는 부모-자식 갈등 이론에서 보면, 부모는 자식을 사회화시킬 때 진심으로 자식의 이익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부모는 종종 자식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만, 자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킬 수도 있다. 부모는 각각의 아이가 자기 자신보다 형제에게 더 이타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아이가 치르는 비용보다 형제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더 클 때 부모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형제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자신의 비용보다 두 배 더 클 때에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다. 의붓형제나 사촌처럼 더 먼 친족인 경우, 부모의 이익과 자식의 이익의 차이는 훨씬 더 크다. 아이보다는 부모가 그 의붓형제나 사촌과 혈연적으로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모는 집에 남아서 일을 돕는 것이나, 다른 집에 팔려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부모에게 유익한(그러므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형제들에게 유익한) 그 밖의 일들이 사실은 아이 본인에게 좋은 것이라고 아이를 설득할 수도 있다. 갈등이 존재하는 모든 무대에서처럼 부모는 기만이나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므로) 자기기만에 의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작고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당장에는 부모의 보상, 벌, 훈계, 권유를 받아들이지만, 갈등이론에 따르면 이런 전술들이 아이의 성격까지 좌우하지는 않는다.

트리버스는 갈등 이론 때문에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부모가 자식을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나 뿌리 깊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자명한 진리가 아니라 시험 가능한 가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 그 가설은 시험을 거쳤으며, 그 결과 심리학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성격은 최소 다섯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교적인가 비사교적인가(외향성-내향성), 끊임없이 고민하는가 침착하고 자족하는가(신경증적 경향성-안정성), 예의 바르고 남을 신뢰하는가 무례하고 의심이 많은가(친화성-적대성), 신중한가 경솔한가(성실성-목표 불명), 대담한가 순응적인가(개방성-비개방성)가 그것이다. 이런 특성들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만일 그것들이 유전적이라면, 일란성 쌍둥이는 떨어져 자랐어도 그것들을 공유할 것이고, 생물학적 형제들은 입양 형제들보다 더 많이 공유할 것이다. 만일 그것들이 부모의 사회화로부터 생긴 결과물이라면 입양 형제들은 그것들을 공유할 것이고, 쌍둥이들과 생물학적 형제들은 다른 가정에서 자랐을 때보다 한 가정에서 자랐을 때 더 많이 공유할 것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여러 나라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이런 예측을 시험했다. 연구자들은 위의 성격특성들뿐만 아니라 이혼과 알콜중독 같은 인생의 실제 사건들도 조사했다. 분명하고도 반복 가능한 결과가 나왔으며, 그 속에는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담겨 있다.


임신의 순간 690

첫 번째 결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성격 차이의 상당 부분-약50퍼센트-이 유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출생 직후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비슷하고, 함께 자란 생물학적 형제들은 입양 형제들보다 서로 더 비슷하다. 이것은 나머지 50퍼센트는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다! 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랐는지는 기껏해야 성격 차이의 5퍼센트를 설명해 준다. 출생 직후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는 그냥 비슷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자란 쌍둥이들만큼 서로 비슷하다. 한 가정에서 자란 입양 형제들은 그냥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전체 인구에서 무작위로 뽑아낸 두 사람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임신의 순간인 셈이다.

(서둘러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고자 한다. 여기서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때는 단지 부모들 간의 '차이'도 중요하지 않고, 성장한 아이들 간의 차이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연구들은 모든 정상적인 부모가 모든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측면을 측정하진 않는다. 어린아이들에겐 분명 정상적인 부모의 사랑, 보호, 지도가 필요하다.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가 표현했듯이, 그 연구들은 단지 만일 아이들을 각자의 가정과 사회적 환경에 고정시키고 모든 부모를 돌아가면서 바꿔 주면 아이들은 똑같은 종류의 성인으로 자랄 것임을 의미한다.)


나머지 45퍼센트의 차이 691

어느 누구도 나머지 45퍼센트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성격은 성장하는 뇌에 영향을 미치는 고유한 사건들, 예를 들어 태아가 자궁에 어떻게 누워 있었는가, 태아가 어마니의 혈액을 얼마나 많이 끌어 썼는가, 태아가 어떻게 자궁 밖으로 나왔는가, 머리로 떨어졌는가, 또는 초기에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어쩌면 성격은 고유한 경험들, 즉 개에게 쫓기거나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해 준 것 등에 의해 형성될 수도 있다. 어쩌면 부모의 특성과 아이의 특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그래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두 아이라해도 실제 환경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소란스런 아이에게 보상을 주고 조용한 아이에게 벌을 주는 반면, 또 어떤 부모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이런 각본들은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는 다른 두 각본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데, 둘 다 성격을 부모와 자식 간의 이해 차이에서 비롯되는 적응특성으로 본다. 첫 번째는 형제들과 경쟁하기 위한 아이의 전투 계획으로,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다루고자 한다. 두 번째는 또래집단에서 경쟁하기 위한 아이의 전투 계획이다.



자식을 키우기에 가장 좋은 동네를 알아보느라 692

주디스 해리스는 세계의 모든 곳에서 아이들이 부모가 아니라 또래집단에 의해 사회화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를 수집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집단, 무리, 패거리, 일당, 도당에 참가하고, 그 안에서 지위를 얻기 위해 책략을 쓴다. 각 집단은 외부 관습을 약간 흡수하고 자체적인 관습을 많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문화다. 아이들의 문화적 유산-링고레비오의 규칙, 니아니의 노래의 선율과 가사, 사람을 죽이면 법률상 죽은 사람의 비석값을 내야 한다는 믿음-은 아이들 간에 전파되고, 어떤 것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어른 집단에 합류한다. 한 차원에서 쌓은 위신은 다음 단계의 디딤돌이 된다. 무엇보다, 어린 청소년 집단의 리더는 데이트 상대 1순위가 된다. 모든 나이에서 아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내야 하고, 부모가 부과하는 어떤 것보다 그 전략에 우선권을 둬야 한다. 지쳐 버린 부모들은 아이의 친구들을 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자식을 키우기에 가장 좋은 동네를 알아보느라 진땀을 흘린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지만, 언어나 관습을 전혀 모르는 문화적으로 무능한 부모들 때문에 어떤 불리함도 겪지 않았다. 언어 발달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나는 아이들이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또래들의 언어(특히 억양)를 대단히 빠르게 습득한다는 사실에 항상 놀란다.


형제자매들 695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래로 형제들은 항상 실타래 같은 감정들로 뒤얽혀 왔다. 서로를 잘 아는 같은 세대의 사람으로서 형제들은 서로를 개인으로 대한다. 즉, 형제들은 서로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으며, 성이 같으면 경쟁을 하기도 하고, 성이 다르면 성적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가까운 친족으로서 형제들은 각별한 애정과 유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형제들은 5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애나 자매애에는 한계가 있다. 한 부모의 자손으로서 형제들은 젖떼기에서 유언장에 이르기까지 부모 투자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유전자의 겹침으로 인해 남매는 선천적인 동맹자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연스런 부모가 될 수 있고, 이런 유전적 연금술 때문에 웬만해서는 서로 성적인 느낌을 갖지 못한다.


영리한 포트폴리오 관리자처럼 696

만일 사람들이 n명의 아이를 낳는다면 각자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므로 부모-자식 갈등은 노골적인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태어난다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르다. 부모는 자신의 에너지를 n분의 1로 나눠 n명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눠 주기보다는, 영리한 포트폴리오 관리자처럼 우량주와 부실주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투자하기를 원할 수 있다. 이 투자 결정은 각각의 아이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손자 손녀의 수에 대한 의식적인 예측이 아니라, 인간이 진화했던 환경에서 그 수를 극대화시켰던 결과를 얻기 위해 자연선택이 조율해 놓은 감정 반응이다. 식견이 있는 부모들은 편애를 하지 않으려고 극구 노력하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한 연구에서, 영국과 미국의 어머니들 중 3분의 2가 특정한 자식을 더 많이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의 예상 수명이 기준 696

부모들은 어떻게 절박한 상황에서 한 아이를 희생시키는 소피의 선택을 할까?
진화론의 예측에 따르면 주된 기준은 나이일 것이다. 유년기는 지뢰밭이어서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아이를 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이는 곧바로 성년기에 도달하여 손자 손녀를 낳을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예를 들어 보험 요율표에 따르면, 식량수집사회의 4세 아동은 평균적으로 부모에게 1.4배의 손자 손녀를 안겨 주고, 8세 아동은 1.5배, 12세 아동은 1.7배의 손자 손녀를 안겨 준다. 그래서 만일 새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미 아이가 있어서 둘 다 먹여 살리기가 불가능하면 부모는 유아를 희생시킨다. 어떤 인간 사회에서도 어린 자식이 태어났을 때 부모는 큰 자식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을 죽일 확률은 아이의 나이에 정비례하여 꾸준히 낮아지는데, 이 현상은 특히 아이가 취약한 첫해 동안에 두드러진다. 아이를 잃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10대까지에 한하여 부모들은 큰 아이의 죽음이 더 많이 슬플 것이라고 말한다. 예상되는 슬픔의 등락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도 아이들의 예상 수명과 거의 완벽한 상관성을 보인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막내가 될 가능성이 높을 때 697

반면에 작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기 때문에 부모의 일상적인 봉사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부모들은 큰 아이를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작은 아이에게 더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고 보고한다. 이 계산은 부모가 나이가 들어 새로 태어난 아이가 막내가 될 가능성이 높을 때 변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껴도 줄 대상이 없으므로 막내는 버릇없이 클 수가 있다. 부모들은 또한 냉혹한 표현이지만 성공적인 투자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 즉 더 활발하고, 더 잘 생기고, 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총애한다.



한 가족의 아이들이 그렇게 다른 이유 697

부모가 편애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 자식은 부모의 투자 결정을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선택되었을 것이다. 자식들은 성년기에 접어들고 부모가 죽은 후에도 편애에 대단히 민감하다. 자식들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재주와, 출생과 함께 발을 들이게 된 포커게임의 동역학을 최대한 이용하는 법을 계산해야 한다. 역사학자 프랭크 설로웨이의 주장에 따르면, 성격에는 포착하기 어려운 비유전적 요소가 있는데 부모 투자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을 벌이기 위한 일단의 전략이 그것이며, 한 가족의 아이들이 그렇게 다른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한다.



첫아이와 둘째 아이 697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에겐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첫 번째 아이는 단지 현재까지 생존한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더 소중하고, 유년기가 끝날 때까지는 항상 동생보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똑똑할 것이다. 첫아이는 1년이나 그 이상 동안 '닭장'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동생을 강탈자로 본다. 부모가 그들의 이해를 첫아이의 이해와 일치시켜 왔기 때문에 첫아이는 부모와 자기를 동일시할 것이고, 항상 유익했던 현재 상태에 찾아온 변화를 거부할 것이다. 요컨대 첫아이는 보수주의자이며 골목대장일 것이다. 두 번째로 태어난 아이는 이 까다로운 아첨꾼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둘째 아이는 강도짓과 아첨으로는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정반대의 전략을 연마해야 한다. 그들은 유화와 협조에 의존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 이익이 적게 걸려 있기 때문에 변화를 잘 수용한다.



각각의 생태 적소는 오직 한 점유자만을 지지하기 때문 698

늦게 태어난 아이들은 또 다른 이유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세상에 나가 성공할 가능성을 많이 보여 주는 아이에게 투자한다. 첫째아이는 이미 자기가 가장 잘하는 개인적·기술적 재능을 자기 것으로 선언했다. 늦게 태어나 그 영역에 뛰어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공을 하려면 나이와 경험이 더 많은 형제의 희생이 따라야 하고,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우량주를 골라야 할 때 큰 형제를 이길 가망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생은 뛰어남을 보일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부모는 투자를 분산할 기회를 갖게 된다. 바깥세상의 경쟁에서 작은아이가 큰아이의 기술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생태계에서 생물종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한 가족의 형제들도 자신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각각의 생태 적소는 오직 한 점유자만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출생 순서와 성격 698

가정 문제 치료사들이 수십 년 동안 이 역학 관계에 대해 논의해 왔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설로웨이는 출생 순서와 성격에 대해 적절하게 통제된 196건의 연구로부터 12만 명의 사람들에 관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는 첫째 아이들이 덜 개방적이고(더 순응적이고 더 전통적이며, 부모와 자기를 더 가깝게 동일시한다), 더 성실하고(더 책임감이 있고, 성취 지향적이고, 진지하고, 체계적이다), 더 적대적이고(덜 친화적이고, 사귀기가 어렵고, 인기가 낮고, 덜 태평하다), 더 신경증적이라고(적응력이 낮고, 더 불안해한다) 예측했다. 또한 첫째 아이들은 더 외향적이다. 이것은 첫째 아이들이 더 진지하고, 그래서 더 내성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로 여겨진다.



가족정치학 699

가족정치학은 사람들이 실험설문지에 기록하는 내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큰 이해가 걸려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설로웨이는 급진적인 과학혁명들(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다윈주의)에 대해 견해를 표명한 3894명의 과학자, 1793∼1794년 공포시대의 프랑스 국회의원 893명,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700여 명의 인물, 노예제 폐지 같은 미국 개혁 운동들을 이끌었던 지도자 62명의 전기 자료를 분석했다. 각각의 사건에서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혁명을 더 많이 지지했고, 맏이로 태어난 사람들은 반동적인 성향이 더 강했다. 이 결과는 가족의 규모, 가족의 태도, 사회 계급과 같은 애매한 요소들과는 무관하다. 진화론이 처음 발표되어 선동적인 이론으로 간주될 당시에 진화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 첫째로 태어난 사람들보다 10배나 많았다. 민족성이나 사회 계급처럼 급진주의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그 밖의 요소들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평생동안 경쟁을 한다는 것 700

성격이 적응특성이라면, 왜 사람들은 오락실에서 유용했던 전략들을 성년기까지 그대로 갖고 가는가? 한 가지 가능한 이유는, 형제들은 결코 부모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동안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식량수집 사회를 포함하여 전통 사회에서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다른 가능한 이유는, 단호함과 보수성 같은 전술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기술에 투자한 사람은, 대인관계를 위한 새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 학습 곡선을 다시 밟는 것을 그만큼 싫어하게 된다.



'형제들과 또래들 사이에서' 700

아이들이 한 가족 내에서 성장하더라도 각기 다른 행성에서 성장한 것보다 더 비슷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성격 발달을 얼마나 형편없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현재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부모의 영향에 관해 소중했던 이론들이 틀렸다는 것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희망적인 가설들이 나오려면, 유년기는 정글이라는 사실과 아이들이 인생에서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형제들과 또래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지킬 것인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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