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심과 인간적 자아(自我)의 본질은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 대상이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는 위대하기를 원하지만 못난 자신을 본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한 자신을 본다. 그는 완전하기를 원하지만 불완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본다. 그는 뭇 사람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결함이 그들의 혐오와 경멸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안다.

 - 파스칼, 『팡세』중에서

 

 * * *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올리고 나면 잠시 동안은 맥이 풀린다. 하나의 동영상을 만드느라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짬이 나는 시간들을 몽땅 뭉뚱그려 맹렬하게 동영상 제작과 편집에 매달린 끝에 잠깐씩 찾아오는 '휴식 시간'이니, 어찌 잠깐이나마 맥이 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영상을 올리고 나서도 이상하리만큼(?) 혹은 예상 밖으로(?) 지지부진한 '조회수'와 '좋아요'와 '구독자 숫자 변동'을 바라볼 때면 더욱 그렇다. 유튜브는 본질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가 강하게 지배하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세상이 새삼 원망스러울 때조차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대목에서야말로 파스칼이 『팡세』에서 했던 말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 그는 위대하기를 원하지만 못난 자신을 본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한 자신을 본다. 그는 완전하기를 원하지만 불완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본다. …

 

나는야 기껏해야 구독자 수 백여 명 남짓한 햇병아리 유튜버일 뿐이다. 그러니 잔소리 말고 부지런히 내 할 일이나 할 뿐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계제조차 되지 않는 신세가 아닌가.

 

구독자가 이미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씩 되는 유튜버들이 난들 왜 안 부럽겠는가. 그러나 그 사람들의 채널에 직접 들어가서 '정보'를 확인해 보면 재빨리 현실을 수긍하게 된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동영상들을 만들어 올렸으며, 누적 조회수가 10만, 20만이 아니라 100만 혹은 1,000만을 훌쩍 넘긴 경우도 많다.

 

유튜브에서 대체로 가장 쉽게 추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법칙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구독자 수 / 누적 조회수> 비율이 대략 1%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비율이 가끔씩 2%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고, 0.5%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살펴 보면 1% 전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에 해당하는 '조회수'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법칙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듯이, 조회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구독자는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채널의 이 시각 현재 구독자 수와 누적 조회수는 다음과 같다.

 

137명 / 9,318회 = 1.47%

 

영상 조회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구독자 수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수치를 보면서 문득 '알라딘 서재 조회 숫자'가 생각났다. 알라딘에서 지금까지 내 서재를 방문한 누적 방문자수를 유튜브 채널의 누적 조회수처럼 바꿀 수만 있다면, 내 채널의 가상 구독자 수는 지금쯤 743,874 × 1.47% = 10,935명에 육박했을 게 아닌가!

 

 

더군다나 매월 방문자수를 바탕으로 삼아 그걸 유튜브 영상 조회수로 환산할 수 있다면, 매월 구독자가 적게는 33명(2,262 × 1.47%)에서 많게는 143명(9,757 × 1.47%)까지 저절로(?) 늘어날 게 아닌가.

 

이런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 데는 물론 햇병아리 유튜버로서 '구독자'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생 유튜버에게 '구독자 수' 모으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만 느껴진다.

 

나만 하더라도 가장 최근에 올린 두 개의 영상에서 구독자 수 증가는 '-1'이다. 그 두 개의 동영상을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아무튼 현재 스코어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책 읽는 순서에 대하여...>라는 영상의 경우, 그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나서 불과 몇십 분도 지나지 않아 구독자가 한 명 보란듯이 '이탈'했다. 그 영상이 도대체 왜 그렇게 그 사람 맘에 안 들었는지는 나는 당연히(!) 잘 모른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그 익명의 구독자 한 분을 빼고는 추가적인 구독자의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다. 추가 이탈도 없었고, 구독자 수 증가도 없었다.

 

그 영상에 뒤이어 올린 건 사마천의 <사기>를 소개하는 동영상인데, 그 영상을 올린 지 무려 24시간이 지나도록 '구독자 숫자의 변동'은 없다. 사마천의 <사기>는 우선 책을 읽기에도 벅차고, 그걸 또다시 동영상으로 만들어 소개하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기>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알맞은 이미지'가 필요한데, 그걸 구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애써 책을 읽고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건만, 조회수는 아직까지도 100회를 넘기지 못하고 있고, 구독자 숫자 또한 불변이다.

 

이럴 때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정녕 파스칼의 '팡세' 뿐인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아직 결함과 비참으로 가득 찬 신생 유튜버일 따름인 것을. 그는 빵빵한 유튜버를 원하지만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본다. 그는 유튜브로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불행을 느끼는 자신을 본다.

 

내가 사마천의 <사기>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얻은 예상 밖의 소득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 느꼈던 심정인 '발분저서' 정신이다. '발분저서'란 억울하다 싶을 때 더욱 발분하여 작품을 지어낸다는 뜻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 때도 정녕 '발분저서'가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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