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톤아, 너는 큰 것을, 네 그 힘과 그토록 어린 나이에
맞지 않은 선물을 요구하는구나.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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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 한 명을 두고 이번처럼 추악한 뉴스들로 도배된 걸 일찌기 본 적이 있었던가.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온갖 위선과 오만과 결함 투성이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뻔뻔스런 인물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재배치하려는 통치자의 오만이 빚어낸 요란한 소동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온갖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후보자는 자신의 욕심을 꺾을 줄 모른다. 통치자와 집권세력들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으로 더욱 절박하게 후보자 옹위에 나선다. 거역할 수 없는 민심의 흐름을 그런 보잘 것 없는 니약한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심산인지 모르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소용없는 일에 헛심을 쓰면서 온갖 궤변들을 늘어놓는 군상들의 안쓰러운 몸부림이 그저 딱할 뿐이다.
여기서 잠시 흘러간 옛 정권들의 화려하거나 소박했던 온갖 '캐치프레이즈'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자. 어느 정권이든 그들이 새로 출범할 때마다 잠시나마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거창한 구호 하나씩은 내걸었으니 말이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할 때는 '정의 사회 구현'을 내걸었었다. 서슬 퍼런 군부가 내세운 '정의'라는 구호가 한낱 군부 정권의 '통치의 도구'로 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0년대의 엄혹한 시절에는 정권 안보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그 무슨 일이든 정권에 도움이 되면 그게 '정의'였고, 정권에 해가 되면 그게 '불의'였다. 정권에 항의하는 숱한 대학생들과 민주 투사들이 이 때 가장 많이 희생되었음은 새삼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다는 정부가 '정의'를 부르짖는 국민들을 '불의'로 탄압하는 일에 그토록 몰두한 시대도 없었다.
6.29 선언 덕분에 직선제로 뽑힌 대톨령은 노태우 씨였다. 그는 전임자의 군부 통치를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보통 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걸었다. 대통령 스스로 "이 사람 보통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주문 외우듯 읊었다. 정권이 심각하게 흔들릴 때마다 늘상 입밖에 내놓는 말인 즉슨 "이 사람, 믿어 주세요~" 였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국민들을 속여 가며 엄청난 액수의 돈을 빼돌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못 믿을 사람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었다.
YS 정부는 문민 정부로서는 뜻밖에도 '지방화와 세계화'를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나라를 절단내고 말았다. 대한민국이 하루 아침에 국제 거지로 전락한 끝에 IMF에 손을 내미는 처지로 뒤바뀌고 말았으니 말이다.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DJ 정권에서는 남북 화해와 포용을 위해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DJ 정부때 북한을 위해 쏟아부은 거액의 대북 지원금이 도리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표방한 건 뜻밖에도 '참여 정부'였다. 그러나 지도자의 순수하고도 열의에 찬 의지와는 관계없이 국민들의 참여도는 역대 최악을 기록했고, 국민들로부터 한참이나 동떨어져 내내 겉돌던 '참여 정부'는 끝내 아군들한테까지 버림을 받은 끝에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수모까지 겪었다.
MB 정부는 어땠는가, '경제 살리기'와 '세계 일류 국가'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정작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호주머니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스가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여러분, 이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라고 호언장담했던 그 뻔뻔스런 얼굴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쳐다봤던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놀랍게도 '문화 융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자신의 치세 동안에 국운이 욱일승천할 줄로만 알았던 탓이다. 십상시가 온통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말이 떠도는가 싶더니 마침내 미르 재단과 K 스포츠 재단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정유라와 최순실이 온 국민들의 눈을 사로잡기 시작하더니, 통치자 자신은 구중궁궐에 유폐되는 처지로 내몰렸다가 끝내 탄핵되고 말았다. "저는 사리사욕을 위해 '한 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어요."라며 눈물로 국민 앞에 거듭 호소해 봤지만 통치자의 과오를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국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국정 농단이 너무나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전임 대톨령의 갑작스런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의 슬로건은 무엇이었던가. '국민의 정부'가 아니었던가. 지난 정권의 모든 적폐가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을 철저히 무시한 때문이라고 판단한 건 지극히 당연하고도 옳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국민'들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가 어느새 철벽의 '내로남불 정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거의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적폐' 아니면 '청산 대상'으로 변했고, 현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정의' 또는 '선함'으로 포장되었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삼아 숱한 과거사가 들춰지고 심판대에 다시 올려졌다. 5.18 민주화 운동과 세월호의 아픈 역사도 다시 불려나왔다. 가슴 아픈 과거사들 말고도 흥미 만점의 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온갖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폭넓게 재조명되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명분 하나면 충분했다. 별장 성접대 사건과 여배우의 자살 사건들이 재조명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충남 지사의 미투 사건과 경남 지사의 드루킹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차츰 '내로남불'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급작스럽게 확산된 '내로남불' 사상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인물은 단연 조국 수석이다. 청와대에 걸려 있다는 '春風秋霜'의 이념을 그처럼 정반대로 극대화시킨 인물도 없을 듯하니 말이다. 무릇 어느 정권에서나 정권의 존립을 위태롭게 흔드는 위기는 닥치게 마련이고, 그런 위기는 대체로 정권 실세들이나 측근들의 비리로부터 시작되는게 통례였다. 전두환 정권 때의 친동생 전경환 비리, 노태우 정권 때의 황태자 박철언 비리가 그랬고, YS 정권의 김현철, DJ 정권 시절의 삼형제(홍일, 홍업, 홍걸)가 그랬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는 친형인 노건평 씨가 전면에 나섰고, MB 정권 때까지도 나쁜 전통을 이어 받아 '만사형통'이라는 신조어를 창조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삶의 오랜 동반자였던 최순실이 막후의 실권자로 등장한 끝에 비선 실세의 위력을 유감없이 뽐내다 딸과 함께 몰락했다.
문재인 정권도 어느새 절반쯤 흘렀다. 현 정권의 실권자는 누가 뭐래도 조국 수석이다. 그에게는 문재인 정권의 가장 추악한 상징으로 굳어버린 '내로남불'의 화신이라는 측면에서도 정권의 최측근으로서의 면모에 한 점 손색이 없다. 오래도록 청와대를 지키며 정권의 최전선을 도맡아온 그는 지금도 청와대의 벽면을 보란 듯이 장식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