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데키우스는 격렬한 전란 속에서 분투하는 동시에,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침착하고 신중하게 안토니누스 시대 이래로 위대한 로마의 쇠퇴를 그처럼 급속도로 재촉한 보다 총체적인 원인들을 고찰하고 있었다. 그는 곧 공공의 미덕, 예로부터 전해 온 원칙 및 풍속 그리고 짓밟힌 법의 위엄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로마의 위대성을 항구적인 기반 위에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처럼 숭고하지만 달성하기는 어려운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유명무실했던 감찰관직을 부활시키기로 결심했다. 이 직책은 원래 형태 그대로 유지되는 동안에는 국가의 존속에 크게 기여했었으나, 역대 황제들이 그 권리를 침해하면서 점차로 등한시되어 왔다. 군주의 호의로 권한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오직 국민의 존경만이 권위를 수여한다는 것을 깨달은 데키우스는 감찰관의 인선을 원로원의 공정한 투표에 맡겼다. 만장일치의 투표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환호로 발레리아누스가 이 영예로운 직위의 최적임자로 선포되었다. 그는 나중에는 황제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데키우스 군대의 요직에 복무하고 있었다. 원로원의 결정이 황제에게 전달되자 곧 그는 진중에서 대회의를 소집하고 감찰관 내정자를 임명하기에 앞서, 그에게 이 고귀한 직책의 어려움과 중요성에 관해 알려 주었다. 황제는 이 뛰어난 신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축하하오, 발레리아누스. 원로원과 로마 공화국의 전적인 찬성을 얻었음을 축하하오! 인류의 검열관이자 우리 풍습의 심판관인 이 직위를 수락하기 바라오. 원로원 의원직을 계속 수행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고, 기사 계급에게 옛날의 영광을 되돌려 주며, 국고 세입을 개선하되 국민의 부담을 경감해 주기 바라오. 가지각색의 수많은 시민들을 질서정연하게 계층별로 분류하고 로마의 군사력, 재정, 덕목, 자원을 정확하게 살피도록 하시오. 그대의 결정 사항은 법률과 같은 효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군대, 궁정, 재판관들, 그리고 제국의 고관들 모두가 그대의 직권에 복속될 것이오. 집정관, 수도의 장관, 대제사장, 그리고 베스타 성전의 수석 성처녀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이오. 엄격한 처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소수의 사람들조차도 로마 감찰관의 존중을 받기를 간절히 열망할 것이오.
(…)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한 명예와 미덕에 대한 예리한 감각, 여론에 대한 깊은 존중심, 그리고 국가의 풍속을 위하여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일련의 유용한 선입견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러한 공직자가 자신의 권위를 유익하게, 심지어 효과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소멸된 시대에, 감찰관의 재판권은 한낱 공허한 겉치레로 전락하거나 성가신 압제의 불공정한 도구로 전환될 것이 틀림없었다.(295∼297쪽)
(나의 생각)
특별감찰관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도입된 바 있다. 에드워드 기번의 지적대로, '한낱 공허한 겉치레로 전락한 셈'이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적폐 투성이였던 전임 정권에서조차 형식적으로나마 임명되고 운영되었던 '특별감찰관' 제도가 새로운 정권에서는 유명무실해진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된지 무려 2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어찌 된 셈인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따지는 사람조차도 구경하기 힘들다. 에드워드 기번의 언급은 이번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킨 새로운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도 새삼 상기시킨다. 기번의 말대로,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한 명예와 미덕에 대한 예리한 감각, 여론에 대한 깊은 존중심' 등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을 억지로 그 자리에 끌어앉히려는 모습이 너무 역력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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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총체적인 재난 가운데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철학자가 있다면, 그 냉담한 철학자에게는 오두막에서 옥좌로 다시 옥좌에서 무덤으로 이어지는 이 급속하고 끊임없는 변천 과정이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타의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황제들이 옹립되어 권력을 누리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그들의 신하와 지지자들 모두에게 똑같이 파멸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다. 군대에게는 즉각적으로 이 치명적인 옹립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피폐한 국민들로부터 쥐어 짜낸 막대한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품이 아무리 고결하고 의도가 아무리 순수하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탈취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빈번하게 약탈과 잔혹 행위를 자행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필연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몰락할 때면, 휘하 부대와 속주들도 여기에 휘말리게 되었다. 일리리쿰에서 황제를 사칭하고 나섰던 인게누우스를 진압한 후 갈리에누스가 대신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보낸 매우 잔인한 내용의 명령서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온순한 듯하지만 사실은 냉혹한 이 군주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기를 들고 나섰던 자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네. 전투를 통해서만이라도 그 정도 효과는 거둘 수 있었을 것이네. 모든 연령대의 남성은 절멸시켜야만 하며, 다만 어린아이와 노인을 처형할 때는 짐의 평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게. 짐에 대항하여, 발레리아누스의 아들이며 수많은 군주들의 아버지이자 형제인 짐에 대항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입 밖에 냈거나 그러한 생각을 품었던 자들은 모두 죽여 버리게. 인게누우스가 황제인 양 행동했던 사람임을 잊지 말고 그를 찢어 죽여 잘게 조각내도록 하게. 짐이 그대에게 짐의 손으로 친히 글을 써 보내는 것은 그대에게 짐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네.
국가의 공식적인 군사력이 사적인 싸움에 소모되고 있는 동안 무방비 상태의 속주들은 온갖 침략자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332∼333쪽)
(나의 생각)
전임 대통령이 탄핵된 끝에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권 교체 이후로 나날이 심화되는 정파간의 싸움 때문에 국민들은 너무나 피곤하다. 싸움이 가열될수록 국가의 공식적인 권력을 '사적인 싸움'에 동원하는 듯한 느낌도 떨치기 어렵다. 극심한 정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임을 뻔히 알 텐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휘두르는 데만 골몰할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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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아누스의 통치 기간은 불과 4년 9개월가량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순간이 기억할 만한 업적들로 충만했다. 그는 고트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고 이탈리아로 쳐들어온 게르만족을 응징했으며 갈리아와 에스파냐, 브리나티아를 테트리쿠스의 손아귀에서 탈환했다. 나아가 유린당한 제국의 폐허 위에 제노비아가 건설한 동방의 저 오만한 군주국까지 멸망시켰다.
그의 군대가 이처럼 연이어 성과를 올렸던 것은 규율에 관해서라면 아주 사소한 조항까지도 신경을 썼던 아우렐리아누스의 엄격한 태도 덕분이었다.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군대 규정이 휘하 하급 장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보낸 매우 간결한 한 통의 편지에 열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 장교에게 군단 참모장교가 되고 또한 목숨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이 규정들을 실행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도박과 음주, 점술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휘하 병사들이 절도 있고, 검소하며, 근면하기를 원했다. 갑옷은 항상 빛이 날 정도로 손질해 두어야 하고 무기는 예리하게 갈아 두며 군복과 군마는 즉시 사욯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했다. 병영 내에서는 금욕과 금주를 실행해야 하며 곡물 경작지에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고 양이나 닭 한 마리 혹은 포도 한 송이조차 훔쳐서는 안 되었다. 또 지주들에게 소금이나 기름, 목재를 무리하게 요구해서도 안 되었다. 황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급여만으로도 그대들이 생활하기엔 충분하다. 재물은 적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으로 모으는 것이지 지역 주민들의 눈물로부터 모으는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실례만으로도 아우렐리아누스가 엄격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무자비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병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묵고 있던 집주인의 아내를 유혹하여 농락한 일이 있었다. 유죄를 선고받은 이 비열한 병사는 좌우에서 억지로 끌어당겨 휘어진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묶였고, 묶인 두 나무 사이가 갑자기 절단되면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이런 몇 가지 본보기는 병사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다. 아우렐리아누스의 처벌은 끔찍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인지 똑같은 위반 행위에 대해 한 번 이상 처벌을 가할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의 품행이야말로 이러한 군율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따라서 불온했던 군대도 군율 준수가 몸에 배고 통솔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이 지배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352∼354쪽)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_1권』 중에서
(나의 생각)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규율을 까마득한 옛날 '로마 군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조직이든지 '기강 해이 문제'야말로 그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가 병들어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기강이 바로 잡히지 않고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 국민들의 생활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경우에 '기강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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