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 파스칼
파스칼(1623∼1662)
파스칼은 인류 역사상 아주 기이한 천재였다. 수학과 과학의 천재였으면서도 산문의 대가였고, 비범한 심리학자이면서도 신에 목말라 했던 고통받는 영혼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일종의 실패한 성인에 가까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수학보다 신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훨씬 더 위대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삶을 망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기독교를 옹호할 목적으로 쓴 방대한 노트들은 오늘날 인간의 존재 조건을 갈파한 철학책으로만 유용할 뿐 기독교도들의 바이블로는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열두 살 때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32번 명제를 풀어냈다. 혼자 원과 선을 그리며 놀다가 찾아낸 것이었고, 수학을 배운 적도 없을 때였다. 열일곱 살에는 아르키메데스 이래의 대업적이라고 격찬받은 『원추곡선론』을 발표했고, 열여덟 살에는 계산기를 발명하여 오늘날 컴퓨터로 이어지는 원천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또 노름꾼들의 주사위 던지기를 보면서 거기서 자극을 받아 확률 이론을 만들어냈다.
순수 기하학에서부터 실용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탐구심을 보였던 파스칼에게는 두 개의 큰 장애가 있었다. 건강 문제와 회심(回心)이 그것이다.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파스칼은 열여덟 살에 이름 모를 중병을 앓은 이후로 평생 동안 평안한 날이 없었다. 건강 문제가 외적 장애였다면 그의 회심은 내적 장애에 가까웠다. 신의 부름에 더 충실한 삶을 위해 억누를 길 없었던 학문과 연구를 포기하고 종교에 맹렬하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 대한 혐오와 신의 침묵에 고뇌하던 파스칼은 1654년 11월의 어느 밤에 뜨거운 감격과 환희 속에서 신의 은총을 느낀다. 이날 밤 그가 양피지에 적어 넣은 기록은 이랬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복종……>. 파스칼은 이듬해 수도원인 포르루아얄을 찾아가 2주 동안 기도와 명상에 잠기지만 <고독한 은사(隱士)>로 숨어들지는 않았다.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포르루아얄에 머물 때 그곳에서 숨어 지내던 아르노를 만나면서 그는 장세니스트들의 변호를 위해 논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파스칼은 교회에 소속된 성직자나 신학자도 아니면서 당대의 첨예한 신학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 계기는 1656년에 『한 공작에게 부친 아르노의 두 번째 편지』가 불신앙, 이단, 교황과 사제들에 대한 모욕 등으로 이단 선고를 받은 때문이었다. 이때 파스칼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아르노와 장세니스트들을 옹호하기 위한 일련의 글을 발표한다. 이 편지들이 『팡세』에 담겨 있는 『프로뱅시알』(한 지방인에게 부치는 편지)이다. 당시 장세니즘(얀센주의)은 로마 교황청에 밀착한 예수회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얀센주의는 카톨릭 내에서도 일종의 청교도적인 입장에서 신의 은총과 예정설과 금욕주의를 강조한 데 비해 예수회는 지나치게 이완된 교리를 주장한 때문이었다.
예수회와 장세니스트와의 대립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좁은 의미의 교리적인 대립이라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있어온 상이한 두 경향 사이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예수회가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좀 더 근대화된 유연한 입장을 표방한 데 반해 장세니스트들은 초기 신앙의 순수성과 엄격성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이들의 갈등은 1640년에 출판된 얀센의 유작 『아우구스티누스』 때문에 폭발했다. 이 책에 담겼다는 <다섯 명제>가 교황에 의해서 이단선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얀센의 친구였던 생 시랑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포르루아얄 수도원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반발했고, 그 중심 인물은 소르본의 신학 교수 아르노였다. 파스칼은 바로 이들 장세니스트들과 아르노를 옹호하기 위해 방대한 편지를 썼던 것이다.
『팡세』에 합본된 『프로뱅시알』은 60쪽 분량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파스칼이 1년여에 걸쳐 무려 18편의 서한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에 등장하는 황제파 수도사들과 교황파 수도사들의 불꽃 튀는 이단 논쟁을 연상시킬 정도의 격렬함과 치밀한 논리들이 담겨 있으며,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을 당할지도 모를 위험 속에서도 끝끝내 낡은 우주 체계를 무너뜨리고 지동설을 외칠 때의 옹골차면서도 결연한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파스칼이 남긴 최고의 명문장들은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한 방대한 저작의 준비 노트들의 묶음인) 『팡세』보다는 『프로뱅시알』을 더 우위로 꼽는다.
문제 제기의 교묘한 방식, 적의 허위와 기만을 파헤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 치밀한 논리, 일격에 위장된 권위와 허세를 무너뜨리는 신랄한 풍자와 야유, 그런가 하면 진지하고 심도 있는 신학적 논의 등, 『프로뱅시알』은 가히 사상과 문학과 설득술의 보고이다.(539쪽)
- 블레즈 파스칼, 이환 번역, 『팡세』, <인간 실존의 위대한 증언> 중에서
예수회와의 격렬한 신학 논쟁 싸움의 선두에 섰던 파스칼은 보다 큰 싸움을 준비한다.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을 깨닫게 하고 신의 은총과 함께 하는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거대한 저작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파스칼이 장세니스트들의 총본산이 된 포르루아얄에 은거하지 않은 진정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건강이 악화될수록 파스칼은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에 집중하면서 <기독교 호교론>을 위한 준비에 몰두한다. 그러나 파스칼이 구상했던 대작은 미완에 그치고 만다. 그는 불과 39세에 일찍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가 필생의 대작으로 구상했던 작품은 결국 파스칼이 죽은 후 발견된 유고들을 모은 단장(短章)들의 묶음집 형태로 출간되었다. 1669년의 포르루아얄 판(版) 이래 『팡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 작품은 수많은 단장(短章)들을 파편처럼 모아 편찬한 탓에 뚜렷한 체계가 없는 데다가 미완성인 채로 쓰다 만 짧은 메모 형태의 문장들이 너무 많다는 결정적인 하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동안 연구자들의 끈질긴 연구 덕분에 이런 저런 방식의 체계와 분류에 따라 무질서한 단장들은 차츰 뚜렷한 체계를 얻게 되었다. 그 체계는 크게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이다. 제2부는 <신 있는 인간의 복됨>이다. 그 중간에 이질적인 양자를 접합하기 위한 연결 부분은 <인간학에서 신학으로의 이행>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은 『팡세』의 제1부를 가장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된다. <인간학>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공통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인간 존재의 온갖 본질적인 문제들이 총망라된다. 인간의 삶에 근원적으로 내재된 <헛됨>, <비참>, <권태>, <허영> 등등이 여지없이 해부되고 비판받는다. 파스칼은 특유의 금욕주의적 경향과 아주 우울하면서도 심각한 태도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전능함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실로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며 끔찍할 정도로 비참하다.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의 인물이라도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위락을 찾기 바쁘다. 한시라도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조건을 잊지 않으면 그 자신을 어떻게 스스로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고안해 낸 온갖 재미난 오락거리들, 가령 사냥, 공놀이, 춤, 도박 등등도 결국은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잠시나마 잊고 다른 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마련된 장치일 뿐이라고 본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갈지 모른 채 감옥에 갇힌 죄수에 불과하므로.
파스칼이 펼치는 <인간학>은 놀라울 만큼 예리하다. 그가 비판하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은 당대 특유의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교양인들' 때문에 더더욱 강조된 듯하다. 기나긴 중세의 영적 억압으로부터 이제 막 풀려난 유럽인들이 바야흐로 도래한 '인간의 시대'를 만끽하면서 자유분방한 인간적 삶을 즐기려는 풍조가 얼마나 만연했겠는가. 파스칼의 <인간학>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감각 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그 무렵의 까닭없이 명랑한(?) 시대 풍조에 대한 파스칼의 저항심이 한몫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스칼이 살던 무렵의 시대 풍조가 그토록 과거와 달랐던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는 바로 몽테뉴(1533~1592)였다. 그 사람만큼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난 인간다운 삶'을 강조한 인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스칼 또한 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미 몽테뉴로부터 '인간학'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흡수한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온갖 다양한 심리들까지도 자유자재로 풀어헤치는데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팡세』에 담긴 많은 문장들이 『몽테뉴 수상록』으로부터 직접 인용된 건 그 때문이다. 『팡세』에서 인용된 <몽테뉴 수상록> 속의 고전 작가들은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 테렌티우스, 세네카, 타키투스 정도로 그치지는 않는다. 몽테뉴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던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페르세우스 대왕과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장식했던 피루스에 얽힌 이야기, 스파르타의 가장 훌륭한 인물이었던 에파메이논다스 등등이 그들이다.
인간의 비참을 삶의 모든 층위에서 예리하게 추적한 파스칼은 '인간의 비참'으로부터 놀라운 반전을 이끌어낸다. 인간이 비참하다는 걸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짐승들은 비참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비참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을 자연적인 상태로 알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짐승들과 달리 '참을 수 없는 비참'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위대는 바로 이 비참의 의식 때문이다. 인간의 비참을 가장 크게 인식할 수 있는 인물의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폐위된 왕>이다.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결코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을 불행을 왕위에서 추락한 왕은 얼마나 자주 자신의 비참을 떠올릴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2년 전에 탄핵된 전임 대통령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을 지배했던 통치자의 딸이었고, 오랫동안 집권 여당의 대표였으며, 한때 광신에 가까운 열렬한 지지자들로 둘러싸였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감방에서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는 일만큼 비참한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그녀를 역성들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파스칼이 <폐위된 왕>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든 인물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마케도니아 최후의 왕 페르세우스였는데, 그 왕의 사례를 읽으면서 탄핵 재판을 받는 순간까지도 끝끝내 거짓과 위선과 뻔뻔함으로 일관했던 전직 여성 대통령을 떠올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http://blog.aladin.co.kr/oren/8992966)
이처럼 인간은 비참과 위대가 한꺼번에 뒤섞인 존재이면서, 경멸과 존경의 대상이고, 모순과 역설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존재이다. 이런 인간을 그 누가 구제할 것인가? 파스칼은 온 인류의 지혜가 갈구하며 찾으려 했던 '최고선'들을 찾아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뒤쫓아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피론의 회의주의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인간의 비참에, 그와 반대인 독단론과 금욕주의는 인간의 위대에 의지함으로써 도리어 모순만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위대를 밝히기 위해 진술한 모든 것은, 다른 편에서는 비참을 결론짓기 위한 논리로서 이용될>(단장 237) 뿐이다. <인간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비참하고,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이 되는>(단장 237)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파스칼은 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자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인간은 애초에 창조되었을 때 원래 위대한 상태에 있었고 신의 위엄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타락한 끝에 낙원에서 추방되면서 추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원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인간학>이 <신학>으로 넘어갈 때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내기' 이론을 다룬 대목이다. 사람들이 경험과 이성적 사고로써 확인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기꺼이 동행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내디뎌 '신앙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 인간적 사고에서 초월적인 사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 증명>이 필수적인데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파스칼은 먼저 불신자의 입장을 수긍한다. 종교는 완전히 명료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이성은 신의 본질은 물론 존재 여부도 결코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가름할 수 없는 선택이 문제가 될 때 선택 자체를 보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배에 올라타 있다.>고. 우리는 이미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베에 올라타 있기 때문에 <신이 있다>와 <신이 없다>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이 우리의 판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이해득실의 기준에 따라 선택하자고 제안한다. 무신론과 유신론 중에 어느 편이 우리에게 더 <수지맞는> 장사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파스칼은 마침내 자신이 수학의 세계에 도입한 확률론까지 동원하여 결론짓는다. <신이 있다>는 주장을 선택하는 게 압도적으로 이롭다고.
이토록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간학>을 마무리짓고 <신학>으로 넘어가면 급작스레 뒤바뀌는 글의 분위기가 독자들을 당혹시킨다. 파스칼은 어느새 '전지전능한 신 앞에 무릎꿇은 가엾은 어린 양'으로 변모한다. 인간 이성의 한계와 신의 전지전능함과 신의 은총의 기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크리스찬의 '신앙 고백'에 가까운 글로 변한다는 얘기다. 종교가 따로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독자들이 읽기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내용들이 아닐 수 없다. <구약>에 등장하는 온갖 예언자들과 율법학자들은 물론 <신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들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메시아의 출현은 오래 전부터 예언되어 왔으며,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죄를 짓게 되었고, 예수의 수많은 기적들이 유일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증명하고, 다른 종교들의 허위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스칼은 신을 증거하고 신과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중보자(仲保者) 예수 그리스도에 주목한다.
이어지는 <신학 또는 인류 구속의 역사> 또한 기독교를 믿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독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랍비의 교리>, <모세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언> 등등이 '숨은 신'의 원리와 '표징'으로 설명되는데 무신론자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또한 성경에서 인용한 수많은 문장들과 뒤섞인 단장(短章)들은 불완전하고 함축된 문장들이 너무 많아 기본적인 수준의 독해마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대목들을 읽으면 자꾸만 엉뚱한 상상이 파고든다. 파스칼이 구상했던 방대한 저작이 실제로 완성되엇더라면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분량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상상 말이다.
파스칼의 『팡세』는 방대한 노트들의 무질서한 묶음에 가깝기 때문에 유려한 문장들로 빛나는 논리정연하고도 심오한 철학 사상을 오롯이 느끼기엔 여러모로 한계를 지닌 작품이 분명하다. 그러나 『팡세』에는 몽테뉴처럼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솔직담백한 인간 유형 대신 끊임없이 확실함과 영원불변을 찾으려 애쓰는 나약한 인간 유형의 몸부림이 최대한으로 담겨 있다. 그는 몽테뉴를 몹시 좋아했지만 그의 회의주의 철학과 무신론적 종교관에 대해서는 몹시 싫어했다. 몽테뉴에게 철철 넘쳐흐르는 익살과 유머와 재치는 파스칼에게는 전율과 공포와 절망으로 뒤바뀐다.
몽테뉴. 몽테뉴의 좋은 점은 단지 어렵게 터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나쁜 점은 ㅡ 그의 품행은 제외하고 ㅡ 순식간에 고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너무 수다를 떨고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그에게 경고해 주었더라면.
몽테뉴. 몽테뉴의 결점은 크다. 음란한 말들. 구르네 양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쉽게 믿는 고지식한 사람, 곧 눈 없는 사람. 무지한 사람, 곡선형구적법(曲線形求積法), 더 큰 세계. 고의적 살인과 죽음에 관한 그의 의견. 그는 구원에 대한 무관심을 불어넣는다. 두려움도 뉘우침도 없이. 그의 책은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반드시 이에 구애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항상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게 할 의무는 누구에게나 있다. 생애의 어떤 국면에서 그가 다소 자유롭고 향락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전적으로 이교도적인 생각은 묵과할 수 없다.(508쪽)
비록 단장(短章)들의 무질서한 나열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파스칼의 문장들 속엔 니체도 부러워할 정도로 기지에 번뜩이는 날카로운 통찰들이 가득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문장 하나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파스칼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서도 『팡세』에서 상세히 다룰 정도로 기독교의 교리와 성서학에 두루 정통했는데, 먼 훗날 <안티 크리스트>라는 작품을 남길 정도로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철학자였던 니체가 파스칼의 문장에 매료되었던 사실은 생각할수록 '기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니체는 파스칼의 문장에 매료된 것일 뿐 그의 호교론마저 좋아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파스칼의 신앙
원시 그리스도교가 요구했고 드물지 않게 이르렀던 그 신앙, 여러 철학 학파들의 수세기에 걸친 긴 논쟁을 과거에도 당시에도 경험하고, 더욱이 로마제국이 베푼 관용의 교육을 받았던, 회의적이고 남국의 자유정신의 세계의 한가운데 나타났던 신앙 ㅡ 이 신앙은 루터나 크롬웰 같은 인물이나 그 밖에 북부의 정신적 야만인들이 그들의 신과 그리스도교에 매달려왔던 저 순진하고 거친 신민(臣民)의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성의 지속적인 자살과 끔찍할 정도로 유사해 보이는 저 파스칼의 신앙이며, ㅡ 이것은 단 한 번에, 일격에 죽일 수 없는 끈질기게 장수하는 벌레 같은 이성이었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 모든 자유와 긍지, 모든 정신의 자기 확실성에 바치는 희생이다. 동시에 이는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기 조소이자 자기 훼손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46절
<기독교 호교론>을 쓰기 위한 방대한 노트들이 하나의 완결된 작품 속에 녹아들지 못한 탓에 끝내 900여개가 넘는 짧은 문장들을 단속적으로 끊어 읽어야 하는 일은 조금 괴롭다. 또한 몽테뉴와 니체에서 발견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유쾌하고 긍정적인 문장들 대신 몹시도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파스칼의 문장들을 읽는 일은 조금 우울하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근원에 도사린 부조리와 비참과 불합리와 비극들에 대한 통찰들 만큼은 세 철학자들 사이에 뚜렷한 견해 차이가 없다. 비록 파스칼이 몽테뉴와 니체와는 완전히 정반대편의 입장에서 인간을 관찰하고 바라봤더라도 말이다.
파스칼의 『팡세』 속에서 발견되는 숱한 명언들은 첨단 과학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구약성서에 담긴 창조론이 더이상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받기 어려워진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 동안에 자주 경험하는 놀라운 일 하나는 오늘날의 TV 뉴스를 장식하는 여러 핵심 인물들이 책 속에 자주 어른거린다는 점이다. 그 이름도 해괴한 버닝썬이라는 술집에서 빚어진 사소한 폭행 사건 하나 때문에 이제는 온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된, 하루 아침에 저 높은 그들만의 별세계에서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만, 괴물처럼 추악한 몰골의 한류 스타 연예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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