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의 희곡 『들오리』는 제목만 들어서는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특이한 작품이다.

 

들오리? 집오리도 아니고?

 

그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들오리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해서 이미지를 검색해도 마땅한 게 도통 나오질 않는다. 그렇다! 들오리는 잠수의 명수다! 그러니 들오리를 구경하기가 그만큼 힘이 드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입센의 『들오리』는 생각할 거리를 아주 많이 던지는 '비극적 희극'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대략이나마 요약하면 이렇다.(5막극인 이 작품은 3막극인 『인형의 집』이나 『유령』보다 훨씬 길다. 심지어 같은 5막극인 『민중의 적』보다도 두 배쯤 길다. 그러니 짧은 요약이 쉽지는 않다.)

 

주인공은 얄마르 엑달이라는 남자다. 그는 아내 지나와 열네 살 된 딸 헤드비와 늙은 아버지 엑달 노인, 넷이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사진사다. 가난한 탓에 아내까지도 사진 작업을 열심히 도와 준다. 아버지인 엑달 노인도 옛 친구네 집에서 따내 오는 필사 작업으로 용돈벌이는 하고 지낸다.

 

얄마르는 어느 날 제재소 등을 경영하는 거상(巨商) 베를레 씨네 집으로 만찬 초대를 받는다. 베를레 씨와는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그의 아들 그레거스와는 학교 동창이자 친구다. 그가 간청하는 바람에 가게 된 참이다.

 

얄마르와 베를레 씨와는 오래 전부터 상당한 인연이 있던 사이였다. 우선, 자신의 아버지인 엑달 노인이 베를레 씨와 젊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고, 사업상으로 동업자 관계였었다. 그런데 베를레 씨의 간교한 속임수에 걸려드는 바람에 엑달 노인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전과자로 전락했고, 그 후론 영영 회복불능이 되어 늙어서도 자식 한테 얹혀 사는 인생의 낙오자 신세다. 그런데도 엑달 노인과 얄마르는 베를레 씨가 꾸몄던 음모를 전혀 모른다.

 

베를레 씨의 아들인 그레거스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지만 내심 불만이 많다. 어려서부터 온갖 권모술수에 능란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온갖 나쁜 짓을 서슴치 않는 아버지를 오래도록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엑달 노인을 어떻게 나락으로 빠트렸는지 그 내막을 빤히 꿰고 있다. 더군다나 남편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다시피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로부터도 '아버지의 나쁜 행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였다. 그는 스스로 '진실의 사도'임을 내세우면서 아버지에게 대항한다.

 

연극의 시작은 이렇다.

 

거상 베를레의 집. …… 식당에서 떠들썩한 말소리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나이프로 유리잔을 두드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건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박수가 일고 다시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들린다.

 

페테르센(하인) (난로 위 등불을 켜고, 갓을 씌운다) 옌센, 지금 나리가 셀비 부인을 위해 저렇게 길게 건배하는 거지?

 

옌센(임시고용 급사) 그 소문, 진짜야? 두 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연극의 첫 대사만 봐도 거상 베를레는 이미 불미스런 소문에 휩싸인 부도덕한 인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일군 덕분에 떵떵거리고 살지만, 아내에게는 골치만 썩이는 못난 난봉꾼일 뿐이었고, 아들에게도 불한당처럼 비춰질 뿐 존경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차츰 시력도 나빠져 곧 실명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 부랴부랴 집안의 가정부로 일하던 셀비 부인과 '재혼'을 도모하는 중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갈등 구조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외관상으로 가장 도드라지는 갈등은 거상 베를레와 아들 그레거스 사이에 존재한다. 아들은 늙은 아버지의 재혼 자체도 반가울 리 없지만 아버지의 과거 행적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에 도무지 아버지를 존중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저녁 만찬을 끝낸 뒤 그레거스와 얄마르는 오랜만에 만난 만큼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눈다. 그들 사이엔 '지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커다란 인식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얄마르 가족은 '알고 보면' 그레거스의 아버지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을 겪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얄마르네 식구들은 그게 그저 '그 끔찍한 사건' 때문에 우연히 격게 된 불행인 줄로만 알고 지내왔다. 그게 다 베를레의 교묘한 흉계 때문인 줄도 모른 채.

 

그레거스 그건 그렇고 얄마르, 어때, 지금은 다 잘 되지?

 

얄마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응, 그럭저럭, 불평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처음에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그 뿐만이 아니지, 그 밖에도 모든 것이 변했으니까, 아버지에게 닥친 그 끔찍한 시련…… 수치와 오명, 그레거스…….

 

그레거스 (동정하며) 응, 알지, 알아.

 

얄마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꿈도 못 꿨어. 손안에는 한 푼은커녕, 있는 거라곤 빚더미뿐이었지. 그것도 대부분은 자네 아버지에게서 빌린 돈이었고.

 

 

더우기 얄마르는 자신이 사진술을 배워 사진사가 된 것도 베를레의 보살핌 덕분인 줄로만 안다. 산 속의 공장에서만 일하다가 16∼17년 만에 마을로 내려와 옛 친구 얄마르를 만난 그레거스는 이런 사정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겐 일부러 이런 사실들을 비밀로 숨겨왔기 때문이다. 얄마르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도 그레거스의 아버지 덕분이란다. 세상에! 자기 아버지가 그런 착한 일까지?

 

그런데 결혼한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과정에서 그녀가 지나임을 알게 된다. 그레거스의 집에서 한때 잠깐이나마 가정부로 일하던 바로 그 지나 한센이 얄마르의 아내였던 것이다! 세상에! 얄마르가 지나를 사귀게 된 것도 아버지의 주선 덕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부가 되었고, 결혼 이후 사진 기술을 배운 것도 베를레 씨 덕분이었단다.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차린 그레거스는 나중에 얄마르네 집으로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한 후 그와 작별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누자면서. 그를 돌려보내자 말자 그는 대뜸 아버지에게 따지듯 대든다.

 

그레거스 엑달 일가는 어떡하고요?

 

베를레 그래,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해줘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엑달은 교도소에서 나올 때 이미 폐인이 되어 있었어. 구제할 길이 없다고, 세상에는 총알 한두 방에 맥없이 밑바닥까지 잠겨서 두 번 다시 떠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야. 거짓말이 아니다, 그레거스, 나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의혹이나 가십거리를 뿌리고 다니지도 않았고……

 

그레거스 의혹이요? 아, 그렇군요.

 

베를레 엑달에게는 사무소에서 필사하는 일만 시키고 실제보다 훨씬, 훨씬 높은 임금을 주고 있어…….

 

그레거스 (고개를 돌리며) 흥! 어련하시겠어요.

 

 

이렇게 해서 베를레의 '과거의 행적'은 서서히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 그레거스는 그날 저녁에 곧장 친구 얄마르네 집으로 찾아간다.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불편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런데 그 와중에 돌연 들오리가 등장한다. 오밤중에 웬 들오리가? 그레거스는 친구네 집에서 엑달 노인과 오랫만에 반갑게 재회한다. 그 두 사람은 이내 까마득한 옛날 엑달 노인이 아버지와 함께 산 속 공장에서 일할 때 자주 함께 사냥을 즐겼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던 와중에 엑달 노인은 자꾸만 그레거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엑달 노인은 '야생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옛 시절을 잊지 못해 집안 한 켠에 있는 창고 속에 온갖 새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엔 비둘기와 토끼도 있었고, 들오리도 있었다.

 

그레거스 상자 안에 새가 한 마리 있는 것 같은데요.

 

엑달 흠…… "새"라고……?

 

그레거스 오리 아닙니까?

 

엑달 (발끈하며) 오리인 줄 아는군.

 

얄마르 어떤 오리인 것 같나?

 

헤드비 그냥 오리가 아니에요……,

 

엑달 쉿!

 

그레거스 터키오리는 아닌 것 같고.

 

엑달 이봐, 베를레 군, 이건 그냥 오리가 아니라 들오리야.

 

그레거스 네, 정말입니까? 들오리요?

 

엑달 그렇다네, 자넨 새라고 하겠지만, 들오리지, 우리 집 들오리라고,

 

헤드비 내 들오리예요. 저건 내 거니까요.

 

 

저걸 어떻게 잡았냐는 물음에 노인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려준다. 베를레 씨가 사냥을 하던 중에 저 오리를 노렸는데, 시력이 나빠진 탓에 날개만 맞혔고, 들오리는 곧장 잠수했단다. "들오리란 그게 버릇이니까. 곧장 바닥으로 잠겼지.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끝까지. 그러고는 온갖 물풀에 닥치는 대로 매달려 두 번 다시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지."

 

그래서 엄청 영리한 개를 시켜 오리를 물 속에서 끄집어 냈고, 베를레 씨가 하인한테 처리를 맡겼고, 그 소식을 들은 엑달 노인이 마침내 그 들오리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고, 이제는 손녀딸 헤드비에게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친구가 된 거라고 했다. 창고에서 자란 그 들오리는 어느새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진짜 야생 생활이 어떤 건지 잊어버릴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고. 이쯤에서 2막이 끝난다.

 

3막에서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차츰 고조된다. 그레거스는 화가 치민 나머지 아버지의 집에서 가출한 끝에 당분간 얄마르네 셋방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 소문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온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뿌리 깊은 불화의 원인들'을 샅샅이 들춰내며 격렬한 말싸움을 주고받는다.

 

베를레 어젯밤 네가 이상한 말들을 했었다……. 그래 놓고 이렇게 엑달의 집으로 이사를 와 있으니, 네가 나한테 반항할 마음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구나.

 

그레거스 제가 생각하는 건 얄마르 엑달의 눈을 뜨게 해주는 일입니다. 자기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알아야 하니까요. 그것뿐입니다.

 

베를레 그게 어제 네가 말한 네 사명이냐?

 

그레거스 네, 아버지가 제게 주신 건 그것뿐이니까요.

 

베를레 네 머리가 돌아버린 것도 내 탓이란 거냐, 그레거스?

 

그레거스 아버지가 제 인생을 망친 겁니다. 어머니에 관한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도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건 아버지 때문입니다.

 

베를레 내 참! 이상한 양심도 다 있구나!

 

그레거스 전 아버지에게 반항했어야 했습니다. 엑달 중위 앞에 함정을 놓았을 그때 말입니다. 그분에게 경고할 걸 그랬어요. 결과가 어떨지는 제게도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요.

 

 

제4막은 지나와 딸이 아빠의 귀가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식사시간도 지나서 겨우 모습을 나타낸 얄마르는 완전히 돌변한 태도로 가족들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레거스를 통해 얄마르가 기어코 '아내의 추악한 과거'를 알아내고 말았기 때문이다.(그녀가 베를레 씨네 집에서 가정부로 일할 때 그레거스의 아버지가 그녀를 범했고, 열네 살 난 딸 헤드비는 알고 보니 베를레의 자식이었다. 헤드비는 베를레를 닮아 시력이 몹시 나쁘다. 더군다나 베를레는 임신한 가정부가 집을 나가자 엑달 노인의 아들과 결혼하도록 일을 꾸미기까지 했다.) 얄마르는 아내와 딸에게 온갖 이상한 태도를 내보인 끝에, 마침내 자신의 딸(?)과 창고에서 생일파티를 열기로 약속한 일에서조차 짜증을 부린다.

 

헤드비 하지만 아빠, 약속했잖아요. 거기서 내일 축하하기로…….

 

얄마르 흠, 그렇군……. 그럼 모레부터. 재수 없는 들오리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싶다고.

 

헤드비 (비명을 지르며) 들오리를 왜요!

 

지나 그런 심한 말을!

 

헤드비 (아버지를 흔들며) 아빠, 저건 제 들오리잫아요!

 

얄마르 그래서 안 하잖아. 할 마음도 없어……. 네가 불쌍하니까, 헤드비,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꼭 그러고 싶다. 그런 자식한테 받은 건 이 집에서 한 마리도 기를 수 없으니까.

 

 

지나와 얄마르는 '아내의 과거'를 두고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두고 격렬한 말싸움을 벌인다. 헤드비는 지산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갑자기 차갑게 돌변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더군다나 아빠와 엄마의 말싸움으로부터 자신이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마저 눈치채고 만다. 이 와중에 그레거스는 친구의 딸을 도와준답시고 헤드비에게 이상한 권유를 한다. 들오리만 보면 아빠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형편이니, 아빠를 위해,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스스로 희생하면 어떻겠니?' 하고.

 

아빠를 위해, 아빠와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다시 평화롭고 따스하던 옛 가정의 회복을 위해, 아빠가 보관해 놓은 권총을 들고 몰래 창고로 들어간 헤드비는 끝내 들오리 대신 자기 자신을 죽이고 만다. 연극은 이처럼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독자나 관객들에게 형언하기 어려운 여운만 남긴 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비극이?

 

《들오리》에는 아주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입센의 입지는 확고부동했다. 《인형의 집》과 《유령》과 《민중의 적》을 마치 3부작처럼 연이어 발표하면서 문제적 작가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들오리』는 출간되자 말자 초판 8천 부가 순식간에 동이 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재판을 찍었다. 그러나 그 재판이 다 팔리는 데까지는 무려 30년이 걸렸다.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심지어 전문 비평가들도 처음엔 이 작품의 진가를 잘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걸작으로 인정받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독일의 시인이었던 릴케는 1891년에 파리에서 이 연극을 감상한 뒤 시(詩)처럼 느껴진다고 술회했다.

 

이 작품 직전에 발표했던 《민중의 적》을 통해 '허위에 기초한 사회악'을 고발했던 작가는 후속작인 《들오리》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평범한 인간이 과연 '과거의 진실'을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지를 그려보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추악한 과거'를 숨긴 핵심 인물은 베를레였다. 지나 역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며 살아왔지만, 진실을 덮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베를레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베를레의 아들인 그레거스는 두 사람의 추악한 과거를 드러내기 위해 몹시 안달하는 인물이었다. 그레거스의 눈에 비친 알마르의 결혼은 마치 베를레의 총에 맞아 창고에 갇힌 채 더이상 날지도 못하는 불쌍한 들오리 신세나 다름없었다.

 

그는 조급한 정의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이제는 날지도 못하는 들오리를 구제하기 위해 억지를 쓰는 인물처럼 보인다. 얄마르는 사진사 일은 부인에게 미뤄놓을 정도로, 늙은 아버지인 엑달 노인과 함께 '새로운 사진술 발명'에 몰두한다. 그는 아버지의 잃어버린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할 영광스런 그날만 기다린다. 또한 시력이 몹시 나빠 장래가 걱정되는 딸과 가난한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줄 꿈을 소중히 간직한 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느닷없이 자신들의 삶에 불쑥 끼어든 옛 친구 때문에 결국 맥없이 주저앉는다. 그는 폭로된 진실 앞에 당황하면서 '들오리를 죽이고 싶다'는 뜬금없는 분풀이 욕망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아빠의 사랑을 잃어버린 헤드비의 해결책 또한 아빠 대신 들오리를 쏘아 죽이는 일로 왜곡되어 표출된다. 도대체 들오리한테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들오리를 쏘려다가 도리어 자신의 가슴으로 총구를 돌린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갑작스레 아빠의 사랑을 잃은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같은 존재였던 들오리마저 죽이고 나서 도대체 무슨 힘으로 삶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을 읽으면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조현아 동영상에 등장하는 '두 귀를 틀어막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상처입은 들오리가 겹쳐 떠오르는 건 이상할 게 조금도 없다. 과거의 상처 혹은 출생의 비밀 때문에 평화롭기만 하던 가정에 거센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가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가 하루 아침에 얼마나 쉽게 풍비박산이 나고 마는지는 최신의 드라마가 즐겨 다루는 핵심 주제들이다.( ☞ 궁금해하지 말라)

 

이 작품이 출간된 해인 1884년은 청나라가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고, 네덜란드인이 보르네오 섬을 정복하던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극작가 입센이 벌써 그 무렵에 이토록 현대적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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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참 이상하다. 나는 그저 '들오리의 모습'이 너무나 궁금해서 인터넷을 조금 뒤졌을 뿐인데, 그런 궁금증이 결국 이런 엉뚱한 글로 이어졌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원래부터 쓰기로 마음 먹었던 글은 '들오리의 습성'과 관련된 다음 문장을 인용하고 내 생각을 아주 조금 덧붙이는 정도였다.(들오리의 모습을 찾게 되면 왠지 조금은 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지나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보니 엉뚱하게도 내가 진짜로 인용하고 싶었던 글은 아예 수면 아래로 깊숙히 잠기고 말았다. 그 대목을 이런 식으로라도 되살리고 싶다...

 

 

그레거스 그러면서 저 창고에는 저런 것들을 기르나? 일에 방해가 되거나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아?

 

얄마르 당치 않은 소리.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네. 나라고 일 년 내내 한 가지 문제만 생각하며 사는 줄 아나? 기분전환거리가 있어야지. 영감이나 계시 같은 건 다 때가 되야 오는 거야. 애간장 태운다고 오는 게 아니라니까.

 

그레거스 얄마르, 자네한테는 들오리 같은 구석이 있군.

 

얄마르 들오리? 무슨 의미지?

 

그레거스 자네는 물속에 들어가서, 바닥에 난 물풀에 매달려 있는 거야.

 

얄마르 그걸 말하는 거군. 그 일격. 하마터면 아버지도 쏴 죽여서 내 신세까지 망치려고 했던?

 

그레거스 그런 뜻이 아니야. 자네 신세가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라고. 하지만 자네가 독이 든 진창 속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네, 얄마르. 자넨 잠행성 질병에 걸려 있어. 그래서 자꾸만 물속으로 파고드는 거네. 어둠 속에서 죽으려고.

 

얄마르 내가? 어둠 속에서 죽는다고? 이봐, 그레거스,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게.

 

그레거스 그렇게 당황할 것 없어. 조만간 내가 재기시켜 줄 테니까. 나도 내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그 정도는 똑똑히 안다고. 어제 그걸 깨달았지.

 

얄마르 그건 잘된 일이지만, 나는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군. 분명히 말해 두지만, 우울한 천성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불만이 없으니까.

 

그레거스 불만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독에 감염됐다는 증거야.

 

얄마르 그만하세, 그레거스. 질병이니 독이니 하는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그런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아. 식구들은 그런 듣기 싫은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니까.

 

 - 《들오리》, <제3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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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mmm 2021-07-26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