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1818∼1883)

 

투르게네프는 러시아를 빛낸 위대한 소설가에 반드시 포함되는 작가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덜 알려져 있고 또 그만큼 덜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작가가 한창 시절을 보내던 1840년대와 1850년대에는 매력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호소력을 지니지 못한 탓도 있다. 그는 그만큼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0년 전에 태어난 작가에게 우리가 과연 얼마나 친숙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러시아 작가인데 말이다.

 

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자면 우선 그가 살았던 시대부터 조금 더 고찰하는 게 순서이지 싶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완성되던 해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 무렵의 세계를 좀 더 넓게 둘러 보면 이렇다. 구대륙에서는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쓴 끝에 알프스를 넘어 러시아 원정(1812.5∼1812.10)까지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 여파로 이듬해 파리가 함락되고 파리 평화 조약이 체결된다(1814년). 새로운 유럽의 국제 질서는 빈 회의에 맡겨지는데, 빈 회의가 잠시 난항을 겪자 그 틈을 비집고 나폴레옹은 파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지배는 100일 천하로 끝나고, 워털루 전투(1815년)에 패해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다. 빈 회의가 끝난 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제창으로 신성 동맹이 성립되고, 영국 · 러시아 ·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이 4국 동맹(1815년)을 맺는다. 저 멀리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1821년)하고, 그리스는 지난한 독립 전쟁(1821∼1832)을 겨우 시작한다.

 

이제 다시 눈길을 러시아로 돌려 보자.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는 몹시 분주했다. 나폴레옹 전쟁을 치른 뒤에는 파리에 입성하여 빈 회의와 신성동맹 결성을 주도했다. 그런데 1825년에 갑자기 사망한다. 이때 후계자 문제로 어수선한 틈을 타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 반란이 일어난다. 나폴레옹을 추격해 유럽 원정에 나섰던 진보적인 청년 귀족들이 1816년부터 혁명적 결사를 조직해 활동해 오다가, 반동적인 니콜라이가 즉위하는 1825년 12월 26일에 행동을 일으켰지만 군대에 진압되고, 대다수는 잔혹하게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다.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러시아 최초의 무장 봉기이자 러시아 혁명 운동사의 시작인 셈인데, 러시아 전역에 오래도록 커다란 충격파를 남겼다. 데카브리스트와 깊숙히 교유했던 푸시킨이 이 반란을 소재로 여러 작품을 남겼고,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 또한 구상 단계에서는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중심 소재이자 배경이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하던 무렵에는 데카브리스트 혁명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겪는 지식인의 이야기를 쓸 참이었다. 그러자면 데카브리스트 반란보다 앞서 일어났던 나폴레옹 전쟁부터 먼저 고찰해야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러시아 국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도중에 작가의 생각이 바뀌었다. 데카브리스트 지식인 몇 사람보다는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러시아 민중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 이야기로 바뀌었고,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에서 완전히 철수한 이듬해인 1813년까지의 이야기가 웅대한 장편으로 탄생했다. 『전쟁과 평화』에 딸린 에필로그에서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소소한 훗날 이야기들도 1820년 12월 초순에 이르면 한결같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정지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25년 12월에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혁명 이야기는 『전쟁과 평화』에서는 끝내 담기지 못한다.

 

투르게네프가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말고도 작가의 주변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1860년 이후 검열이 가혹한 러시아의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평생 동안 쫓아 다녔던 여가수인 폴린 비아르도를 따라 홀연 프랑스로 건너간 뒤 유럽에서 여생을 보냈고, 거기서 수많은 작가들과 교유하며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가 교유한 인물들은 대표적으로 플로베르, 에밀 졸라, 모파상, 빅토르 위고, 알퐁스 도데, 조르주 상드, 헨리 제임스 등이었다. 물론 그는 러시아에서 활동할 때는 푸시킨(1837년), 레르몬토프(1839년), 도스토옙스키(1845년), 톨스토이(1855년) 등과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을 탈고하던 해인 1861년에는 톨스토이와 결투까지 갈 정도로 심한 언쟁을 벌였던 적도 있었고, 1867년에는 바덴바덴에서 도스토옙스키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략 이만큼 투르게네프의 주변을 둘러보고 나면 그가 우리에게 조금은 덜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투르게네프와 그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얘기하자면 이런 식으로 작가의 주변을 한번쯤 빙 둘러 돌아보는 방식이 약간은 유용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작가가 이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야말로 '세대 간의 갈등'이 핵심 주제인데, 세대 간의 갈등이란 결국 동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이며, 이런 세대 갈등의 요소들을 한겹 두겹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그 속에는 시대 자체가 차츰 변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반되는 '세대들 사이의 다양한 인식 차이'가 깊숙히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굳이 200년 전쯤의 시대적 배경들을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시시콜콜 들추어 낸 이유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그런 역사적 배경 지식들이 적잖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세대 간의 갈등 속에는 뜻밖에도 나폴레옹, 나폴레옹 전쟁, 웰링턴 장군 등은 물론, 1825년에 일어났던 데카브리스트 반란, 알렉산드르 1세, 니콜라이 황제 등이 심심찮게 자주 등장하며, 심지어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주요 인물로 활약했던 실존 인물인 꾸뚜조프 장군(러시아군 총사령관) 같은 인물까지도 등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와 아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푸시킨의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싯구절이 슬며시 인용되는 정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여서 조금도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와 아들』에 담긴 가공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소설 제목의 원뜻은 『아버지들과 아이들』이지만 두 세대의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로 굳어졌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의외로 단촐하다. 아들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자로프와 그의 대학 동창인 아르카디 키르사노프다. 아버지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아르카디의 아버지인 니콜라이와 아르카디의 큰아버지인 파벨이다. 이들 네 사람은 당대 러시아 사회가 떠안고 있던 온갖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 사사건건 견해를 달리하고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 충돌의 중심에는 늘상 바자로프와 파벨이 자리잡고 있다.

 

1859년 5월, 페테르부르크에서 학업을 마친 아르카디가 귀향길에 오른다. 그는 절친이자 스승 격인 바자로프를 자신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영지인 마리노 마을로 함께 데려간다. '아버지 세대'인 니콜라이와 파벨은 귀족 출신들이고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인 데 반해, '아들 세대'인 바자로프는 잡계급 출신의 혁명적이고도 급진적인 민주주의자이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러시아의 농노해방(1861년 1월)을 앞두고 두 세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파벨과 바자로프는 대면한 첫날 저녁부터 '서로가 강력한 적수'임을 직감한다. 당시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던 이슈였던 농노제도,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 유물론과 관념론, 문학과 예술, 러시아의 미래 발전 방향 등등에 대해 어느 하나 서로의 견해가 다르지 않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벨이 보기에 바자로프는 '몹시 오만하고 뻔뻔스러운 냉소주의자이자 천한 놈'일 뿐이었고, 바자로프에게 파벨은 철주한 귀족주의자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현상'일 뿐이었다. 그들의 견해 차이는 너무나 커서, 그 둘 사이에 끼인 온건한 보수주의자인 니콜라이와 온건한 진보주의자인 아르카디가 곤욕을 치른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려 애써 보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파벨은 젊어서 한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제법 잘 나가는 젊은 귀족 신분이었으나 어느새 영락하여 홀몸으로 동생의 영지에 얹혀 사는 신세다. 니콜라이는 아내와 사별하고 나서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의 동네 처녀를 데려와 후처 삼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런 시골 영지에 일부러 '친구 따라' 시골로 찾아와 손님 신세로 체류 중인 바자로프 또한 자신의 거처가 마냥 편할 리는 없다. 이런 기묘한 상황에서 서로 다함께 차를 마실 시간이나 식사 시간만 되면 파벨과 같은 '꼴통 보수'와 매번 마주쳐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파벨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자로프가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해서 무작정 그를 내칠 입장도 아니다. 아무리 그 청년이 못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조카가 가장 믿고 따르는 절친이자 일부러 손님으로 데려온 전도유망한 청년을 어떻게 함부로 내쫓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에는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만 있는 건 아니다. 연인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던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 속에 어김없이 다양한 유형의 커플들을 창조해 냈다. 그 가운데는 동네 처녀인 페네치카에 대한 향반(鄕班) 귀족 니콜라이의 동정 어린 사랑이나 카챠를 향한 청년 아르카디의 순수한 사랑 만으로도 인상적이지만, 아무래도 젊은 과부인 오딘초바를 향한 바자로프의 사랑만큼 특별하진 않다.

 

바자로프는 자칭 니힐리스트로서 '사랑의 감정' 자체를 냉소하고 배척하려 애쓰지만, 아름답고 지적인 젊은 과부인 오딘초바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마저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절감한다. 바자로프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젊은 청년과의 불확실한 사랑 때문에 새로운 번민에 빠지기 보다는 안정과 평온을 선택하는 오딘초바는 냉정하고도 이기적이다. 사랑의 열병에 빠져 허우적대는 바자로프에게 결단코 먼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딘초바의 그런 태도 때문에 바자로프는 더욱 애타게 그녀 주위를 맴돌지만 그 두 사람의 사랑은 끝끝내 오딘초바에 의해 거부되고, 두 사람은 기약없이 결별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스스로 위로하고, 아픈 사랑에 대한 미련과 회한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도리어 안도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오딘초바는 바자로프가 뜻하지 않게 사랑을 고백했던 그 방이 아니라 객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그에게 다정하게 손가락 끝을 내밀었지만 얼굴 표정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어 있었다.

 

"안나 세르게예브나." 바자로프가 서둘러 말했다. "우선 당신을 안심시켜야 하겠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한 평범한 인간은 오래전에 정신을 차렸고, 자기가 행했던 어리석은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잊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에 떠나면 오랫동안 뵙지 못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연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당신이 혐오감으로 저를 회상하리라 생각하며 떠난다면 아주 불유쾌할 겁니다."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높은 산 위에 방금 올라온 사람처럼 심호흡을 했다. 얼굴은 미소로 활기를 띠었다. 그녀는 다시 바자로프에게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악수에 응했다.

 

"지난 일을 떠올려서 뭘 하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게다가 솔직히 제게도 잘못이 있었어요. 애교를 부리진 않았다 해도 뭔가 다른 잘못이 있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전처럼 친구로 지내요. 그건 꿈이었어요. 그렇잖아요? 누가 꿈을 기억하겠어요?"

 

"누가 그런 걸 기억하겠습니까? 게다가 사랑이란 …… 그건 위선적인 감정이니까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뻐요."

 

안나 세르게예브나는 이렇게, 바자로프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둘 다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진실이었을까? 그들 자신도 모르는 일을 작가가 어찌 알겠는가.(271∼272쪽)

 

 

한편, 파벨과 바자로프의 갈등은 엉뚱한 데서 끝내 폭발하고 만다. 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장차 뛰어난 의사가 될 소양이 풍부했던 바자로프는 친구네 집에 머무는 동안 친구 아버지인 니콜라이의 후처 페네치카와 사이가 돈독한 편이었다. 그녀가 낳아 기르는 갓난아기가 아플 때 정성껏 돌봐주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느날 아침 산책길에 정원에서 만나, 서로 함께 장미꽃 향기를 맡으면서 키스하는 장면이 우연히 파벨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파벨은 더이상 바자로프의 행동거지를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고,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뿌리깊은 증오심과 경멸을 담은 상대방의 도발에 바자로프도 곧바로 결투에 응한다. 다음날 아침 곧바로 권총 결투가 벌어졌지만 다행히 파벨이 다리에 총상을 입는 정도로 그치고, 바자로프는 이내 그곳을 떠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귀향한 아들을 맞이하게 된 바자로프의 부모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얼마 전에도 아들이 친구인 아르카디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 곁에 머물렀지만 그 기간이 너무나 짧았기 때문이다. 그때 바자로프는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에서 고작 사흘밤만 묵고 나서 갑작스레 훌쩍 떠나고 말았다. 자바로프의 부모는 어쩌면 아직도 그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잠깐 그 때의 느닷없는 이별 장면으로 되돌아가 보자.

 

다음 날 바자로프와 아르카디가 떠났다. 아침부터 온 집안이 침울한 분위기였다. ……  바실리 이바니치는 전에 없이 부산을 피웠다. 그는 눈에 띄게 허세를 부리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발을 쿵쿵 굴렀지만, 그의 얼굴은 삐쩍 말라버렸고 눈길은 끊임없이 아들 쪽을 스쳐지나갔다. 아리나 블라시예브나는 조용히 울었다. 남편이 아침 일찍 꼬박 두 시간 동안 달래지 않았다면 노파는 망연자실하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안에 꼭 돌아오겠다고 여러 번 약속을 하고 자기를 붙잡고 있던 포옹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바자로프가 여행마차에 올라탔을 때, 말들이 움직이고 방울이 울리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이젠 더 이상 배웅할 필요가 없고 피어올랐던 먼지도 가라앉았을 때, 티모페이치가 완전히 등을 구부리고 비틀거리면서 조그만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을 때, 갑자기 쪼그라들고 낡아버린 것 같은 집에 노부부만이 남았을 때, 조금 전만 해도 현관 계단에 서서 힘차게 손수건을 흔들던 바실리 이바니치는 맥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머리를 가슴에 푹 떨어뜨렸다. "버렸어. 우리를 버렸어!" 그는 중얼거렸다. "우릴 버렸어. 우리와 있는 게 답답했던 거야. 이젠 혼자야. 이 손가락처럼 혼자 남았어!" 그는 몇 번이나 되뇌었고, 그때마다 집게손가락만 편 한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아리나 블라시예브나가 다가와 백발이 성성한 자기 머리를 하얗게 센 남편의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바샤, 어쩔 수 없어요! 아들이란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거예요. 그애는 매처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지만, 우리는 한 구멍 속에 난 버섯처럼 나란히 앉아서 꼼짝하지 않지요. 나만은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도 그럴 테지요."(215∼216쪽)

 

 

어딘가 실의에 잠긴 모습으로 불쑥 집으로 되돌아온 아들이 말했다. 육 주 동안 머무를 생각으로 왔으며, 공부를 하고 싶으니까 제발 아무런 방해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서재를 통째 내어주고, 아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러던 아들에게 우울한 권태와 막연한 불안이 찾아오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갑자기 사라졌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그만두고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일을 찾아냈다. 군의(軍醫)로 복무하다 퇴역한 아버지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상당한 농군을 힘겹게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진료를 직접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자로프가 아버지의 방으로 찾아가 '질산은'이 있느냐고 묻는다. 자신의 상처를 지져야 한다고 했다. 이웃 마을에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망한 환자가 나타났고, 일부러 간청해서 그 환자의 해부 실습에 참여했다가 그만 손가락을 좀 베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티푸스에 감염되었다면 때가 이미 늦었다는 게 문제였다. 손가락을 베었을 때만 하더라도 군의(郡醫)에게 질산은이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째 되던 날, 아들은 이미 식욕도 잃고, 두통과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실리 이바니치는 말없이 아들을 간병했다. 아리나 블라시예브나가 아들 방으로 들어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바자로프는 '훨씬 좋아졌다'고 말하고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바실리 이바니치는 아내를 향해 두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문 채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집 안의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모두 풀죽은 얼굴을 했다. 집 안은 이상한 정적에 휩싸였다. …… 바실리 이바니치는 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아들을 피로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저 다시 안락의자에 죽은 듯이 앉아서 이따금 손가락만 딱딱 꺾었다. 노인은 잠깐씩 정원으로 나와 형용할 수 없는 충격으로 장승이 되어버린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질문을 피하면서 다시 아들에게로 돌아갔다. 결국 참다 못한 아내가 그의 손을 붙들고 거의 위협하듯이 발작적으로 말했다.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그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대답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웬일인지 미소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295∼296쪽)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바자로프에게 단 하나 남은 유일한 소망은 오딘초바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평생을 바자로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꿋꿋이 버티며 살아왔던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나 뜬금없는 '아들의 소원'이었지만 그 요청을 흔쾌히 들어준다. 소식을 들은 오딘초바는 독일인 의사까지 데려왔지만, 이미 환자는 죽은 사람 같은 창백한 얼굴과 흐릿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힘겹게 그녀에게 건네는 말 속엔 '다시 오지 못할 순간들'에 대한 깊은 회한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절박한 메시지가 함께 농축된 느낌을 준다.

 

"아,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만 하는데…… 저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전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은 하나의 존재 형태인데, 나 자신의 형태가 이미 해체되고 있으니까요."

 

바자로프가 죽고 나서도 세월은 무심하게 흐른다. 그러나 마리노 마을의 지주 저택에서 일어난 몇몇 중요한 변화들(두 쌍의 합동 결혼식이 있었다. 아르카디는 오딘초바의 여동생 카챠와 결혼하고, 니콜라이는 후처 페네치카와 정식 결혼식을 올린다. 오딘초바는 정치가를 지망하는 유능한 법률가와 결혼한다. 파벨은 모스크바로 떠난다.)을 모두 합친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노부부의 삶에 끼친 극적인 변화에 비하면 턱없이 사소해 보인다. 바자로프의 무덤가 풍경을 묘사한 작가의 문장은 너무나 애통하고 가슴이 시려 계속 읽기 힘들 정도다.

 

러시아의 한 벽촌에 조그만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공동묘지가 다 그렇듯이, 이 공동묘지도 서글픈 모습을 하고 있다. 공동묘지를 에워싼 도랑은 오래전부터 잡초로 뒤덮였다. 잿빛 나무십자가들은 옆으로 기울어진 채 예전에 한번 페인트칠을 했던 십자가 지붕 밑에서 썩어가고 있다. 돌비석들은 마치 누군가가 밑에서 떠밀어 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씩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다. …… 그러나 그 무덤들 가운데 사람의 손길도 닿지 않고 동물의 발에도 짓밟히지 않은 무덤이 하나 있다. 그저 새들만이 그 위에 앉아서 노래를 부를 뿐이다. 철책이 무덤을 둘러싸고 있고, 어린 전나무 두 그루가 양쪽 끝에 심겨 있다. 이 무덤에 예브게니 바자로프가 묻혀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서 이미 노쇠한 부부가 자주 이 무덤을 찾아오곤 한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온다. 울타리에 가까이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오랫동안 서럽게 울면서 말 못하는 비석을 빤히 바라본다. 그 비석 아래 그들의 아들이 누워 있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서 비석에 앉은 먼지를 털고 전나무 가지를 다듬어주다가 다시 기도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거기에 있으면, 아들에게 더 가까이 있고, 아들과 관련된 추억에 더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기도, 그들의 눈물이 헛된 것일까? 정말로 사랑, 그 성스럽고 헌신적인 사랑이 무력한 것일까? 오, 아니다! 아무리 정열적이고 죄 많은 반역의 심정이 그 무덤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무덤 위에 자란 꽃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나 '무심한' 자연의 위대한 평온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영원한 화해와 무궁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 (315∼316쪽)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그런데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엄청난 소란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논쟁의 핵심은 바자로프에 대한 투르게네프의 태도에 관한 문제였는데, 보수주의자들은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의 장점을 너무 과장하고 미화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작가가 바자로프를 통해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을 악랄하게 희화하고 중상모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들은 당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왜 그토록 엄청난 소란을 일으켰는지를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양쪽 진영이 극단적인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주장했던 내용들이 현대의 독자들에겐 그다지 커다란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을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세대 간의 갈등'을 그린 사회·정치적인 소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대를 살던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겪었던 온갖 삶의 애환들을 그린 세태 풍속 소설이나 연애 소설, 혹은 가족 소설의 요소들도 두루 지니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의 좋았던 한 때를 자주 회상하는 파벨과 니콜라이의 모습에서 차츰 스러져가는 러시아 특유의 귀족 문화에 대한 애가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니콜라이가 자식 또래에 불과한 마을 처녀를 데려다 사는 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토속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더구나 젊은 청년 바자로프가 그녀의 발산하는 젊은 매력에 홀딱 빠져 느닷없이 입맞춤을 시도하는 모습은 도리어 순수하고도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전도 유망한 의사 지망생이었던 바자로프가 늙은 부모에게 다소 쌀쌀맞게 대하고, 그 부모들은 아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헌신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태도 또한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다.

 

투르게네프에게는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느껴지는 혁명적이고 테리리스트적이며 충격적인 기질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 대신에 (정말 뜻밖에도!) 우리나라의 근대 문학 작품들에서 곧잘 느껴지는 특유의 토속적인 향수나 우수, 혹은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모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환자들을 돌보며 돈독하고 즐겁게 지낼 꿈에 잔뜩 부풀어 오른 바자로프의 부모들에게 들이닥친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얼마나 황당하고도 슬픈가. 이 대목에선 현진건의 단편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인력거를 끌던 김첨지가 억세게 운수가 좋은 날이라고 몹시 들떠 하루를 보내지만, 정작 그날 저녁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내의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오딘초바와 바자로프의 지극히 조심스러운 사랑 접근법은 얼핏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 은근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현실의 장벽 때문에 끝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서로 안타까워하면서 이별한다는 점에 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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