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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밑줄긋기)
쉰 살과 마흔 살
그도 그녀를 사랑했다. 한 가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나이였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장수하는 가문이었고, 그에게는 흰 머리가 한 올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를 마흔 살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바렌카가 오직 러시아에서만 쉰 살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길 뿐, 프랑스에서는 쉰 살의 사람들이 자신을 dans la force de l'âge('한창때'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마흔 살의 사람들은 자신을 un jeune homme('청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여긴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20년 전과 다름없이 젊다고 느낀다면,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36∼37쪽)
(나의 생각)
'마흔 살'도 어떤 경계를 의미하는 나이지만, '쉰 살'이 지닌 '경계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뚜렷하면서도 무게감이 달라지는 듯하다. 요즘에야 물론 옛날보다 그 무게가 훨씬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문득 몽테뉴가 '오십 고개'를 두고 재미있게 늘어놓았던 특유의 익살이 생각난다.
오십 고개를 넘은 자
아아, 가련하게도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호라티우스)
자연은 이 나이를 꼴사납게 만들 것 없이, 가련하게 만든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주일에 세 번쯤 허약한 힘으로 일어나며, 뱃속에 당연히 해낼 어떤 위대한 힘이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칠게 부스럭거리는 꼴이 보기도 싫다. 솜털에 불이 붙은 꼴이다. 그리고 지금 둔중하게 얼어붙어서 볼이 꺼진 이 나이에 이렇게도 생기 있게 팔딱거리는 자극이 놀랍다. 이런 욕망은 청춘의 꽃다운 시절에나 가질 일이다. 이런 충동을 믿고, 그대에게 있는, 이 피로할 줄 모르게 꾸준하고 충만하고 장엄한 열기를 한번 거들어 보라. 좋은 꼴을 보게 될 것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그는 청혼의 뜻을 밝히기 위해 하려고 했던 말을 자신에게 되풀이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 대신, 난데없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에 이끌려, 그는 불쑥 이렇게 물었다.
"하얀 버섯은 자작나무 버섯과 어떻게 다릅니까?"
바렌카가 대답할 때, 그녀의 입술이 흥분으로 바르르 떨렸다.
"갓 모양에는 차이가 없고 뿌리 모양이 다르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그도 그녀도 그 문제가 종결됐다는 것, 입 밖으로 나왔어야 할 그 말이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바로 그 직전까지 절정에 달했던 그들의 흥분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버섯은 그 뿌리가 이틀째 면도를 하지 않은 다갈색 수염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네. 정말 그래요." 바렌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무심결에 두 사람의 산책 방향이 바뀌었다. 그들은 아이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렌카는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모든 이유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던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마리에 대한 추억을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
오래도록 마음 속으로 연습했던 말 대신 난데없이 ㅡ 미처 자신이 쏟아내는 말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ㅡ 전혀 엉뚱한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도 이렇게 중차대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그녀에게 당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그녀가 편지를 쓰게 만들어 주십시오. 난 이 문제에 대해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좋아요, 내가 말해 볼게요. 하지만 안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그 순간 문득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어쩐 일인지 눈을 가늘게 뜨는 안나의 이상한 새로운 버릇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안나가 눈을 가늘게 든 것이 생활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미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삶에 대해 실눈을 뜨는 것 같았어.' 돌리는 생각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꼭 그녀와 이야기를 해 볼게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이렇게 대답했다.(16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