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나 카레니나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밑줄긋기)
그는 그들처럼 무심한 타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서 훌륭한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경에서 빌라도의 성난 얼굴과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얼굴을, 배경에서 빌라도의 종들의 모습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시하는 요한의 얼굴을 보았다. 그토록 무수한 탐구, 그토록 무수한 실패와 수정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간직한 채로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인물들, 그에게 그토록 많은 고통과 기쁨을 준 각각의 인물들,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재배치한 그 인물들, 그가 그토록 힘들게 성취한 색채와 명암의 음영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수천 번이나 되풀이된 진부한 것으로 보였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이, 그 그림의 중심이자 그가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토록 환희를 불러일으켰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들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눈에는 티치아노, 라파엘, 루벤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병사들과 빌라도의 휼륭한 모사가 보였다. 모든 것이 진부하고 허술하고 구태의연하게, 그들이 화가 앞에서 거짓으로 정중한 말들을 늘어놓다가 자기들끼리 남았을 때 그를 불쌍히 여기고 조롱한다 해도, 그는 그들을 탓할 수 없을 것 같았다.(496∼49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레빈이 결혼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그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걸음걸음마다 예전의 공상에 대한 환멸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레빈은 행복했다. 그러나 일단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행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걸음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보트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직한 것을 경험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시도 잊지 말고, 발 아래에 물이 있다는 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하면 아프다는 점, 보고만 있을 때는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을 직접 해 보면 무척 즐겁기는 해도 굉장히 힘들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51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독신일 땐 남들의 결혼 생활, 그들의 자질구레한 걱정과 다툼과 질투를 보며 그저 속으로 그들을 업신여기듯 비웃기만 했다. 그의 확신에 따르면, 장차 그의 결혼 생활에는 그와 비슷한 문제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적인 형식까지도 모든 면에서 남들의 생활과 완전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와 아내의 생활은 별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예전에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하지만 이제는 그의 의지에 반하여 대단히 확고한 중요성을 띠게 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소한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레빈도 그 사소한 것들을 정돈하는 일이 결코 예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빈은 자신이 가정생활에 대해 가장 정확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모르게 가정생활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고 사소한 걱정거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될 사랑의 쾌락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일을 해야 했고 사랑의 행복 속에서 휴식을 얻어야 했다. 그녀는 사랑받아야만 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그 시적이고 아름다운 키티가 어떻게 가정생활의 첫 주가 아니라 첫날부터 테이블보에 대해, 가구에 대해, 손님용 매트리스에 대해, 요리사와 식사 등등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살필 수 있는지 놀라웠다. …… (513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결혼식 후 그녀를 교회에서 데리고 나올 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던 것을 그제야 비로소 분명히 이해했다. 그는 그녀가 그에게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뿐 아니라 이제는 어디까지가 그녀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인지 모르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 순간 경험한 둘로 나뉘는 괴로움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화를 냈지만,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곧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그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후 화가 나서 앙갚음을 하려고 때린 사람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자신이 무심코 자신을 친 것일 뿐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고 그저 아픔을 참으며 가라앉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516∼5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