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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밑줄긋기)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
사교계의 눈에 그의 태도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 그에 대한 아내의 증오,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그의 삶을 지배하며 자신의 의지를 수행할 것과 그와 아내의 관계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그 광폭하고 신비로운 힘의 위력이 그의 앞에 지금처럼 명백히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는 사교계 전체와 아내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평온과 헌신적 행위의 모든 공로를 파괴하는 적대감이 마음속에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안나를 위해서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기꺼이 그들의 관계를 다시 허락할 생각이었다. 단 아이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아이들을 잃거나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일이 없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녀를 절망적이고 치욕스러운 처지에 몰아넣고 그 자신에게서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이혼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선하게 보이는 것들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일인데도 그들의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을 강요하리라는 것을.(398쪽)
(나의 생각)
이것이야말로 '오쟁이진 남편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처지'를 몽테뉴만큼 재치있게 묘사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마담 보바리』를 읽을 때 찾아봤던 대목을 다시 또 읽게 된다.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
사실을 밝혀 주는 자가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줄 방법과 도움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알려 주는 일이 큰 해독이며, 사실을 밝힌 공로보다도 더 마땅히 칼을 맞을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자와 마찬가지로 애써 가며 사실에 대비하는 자를 비웃는다. 마누라를 새치기당한 수치는 지워질 수 없다. 한번 걸리면 영원히 걸린 것이다. 그것에 징벌을 주면 잘못한 일 자체보다도 더 사실을 드러내 놓게 되는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의문을 풀어서 우리들의 개인적인 불행을 드러내고 비극의 무대 위에 나발을 불어 대면 보기 좋은 꼴이다. 그것은 알려짐으로써 더 꼬집히는 불행이다. 왜냐하면 착한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 사실을 말함이 아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괴롭고도 쓸모없는 지식은 피하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에는 먼저 집에 사람을 보내서 아내에게 자기의 도착을 알려 주며 엉겁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그러나 세상은 떠든다." 나는 점잖게 그리 꼴 흉할 것 없이 아내에게 속고 있는 사람 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활달한 대장부는 그 때문에 동정을 받아도 경멸은 받지 않는다. 그대의 인격이 불행을 틀어막게 하라. 점잖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정을 저주하게 하라. 그대를 모독한 자는 그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게 하라. 그리고 천한 자, 귀한 자 할 것 없이 이런 의미에서 소문나지 않은 자인가?
수많은 군대를 지휘한 장군까지도 ······
모든 점에서 너보다 나은 자들도 그렇다, 이 못난아. (루크레티우스)
그대 앞에 하고많은 점잖은 인물들이 이런 책망에 걸려 드는 것을 보는가? 다른 데서는 그대 일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아마 부인들까지도 그대 일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여자들은 금실 좋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 말고, 다른 무엇을 조롱하기를 더 즐기는가? 그대들은 각기 어느 누구의 마누라를 건드렸다. 그런데 본성은 모두가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로 변화무상하다. 이런 사건이 잦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고민거리가 덜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도 습관이 되어 버린다. 못난 격정이지만, 그것은 또 남에게 상의할 수 없는 일이니 딱하다.
운명은 우리에게 불평을 들어 줄
귀마저 내주기를 거절한다. (카툴루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여자들이 사람을 그 사람의 악덕 때문에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안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난 그를 그의 미덕 때문에 증오해요. 난 그와 살 수 없어요. 알겠어요? 그의 생김새가 내게 육체적인 영향을 미쳐요. 난 냉정을 잃고 말죠. 난 도저히, 도저히 그와 살 수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난 불행했고,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에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상상도 못했어요. 믿을 수 있겠어요? 그 사람이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의 손톱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그를 증오하죠. 그의 관대함 때문에 그를 증오해요.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그녀는 죽음을 입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못하도록 말을 가로막았다.(401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안나는 이미 이런 만남을 각오하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도 생각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열정이 그녀를 삼켜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그를 진정시키고 자신도 진정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그의 감정이 그녀에게 옮겨 갔다. 그녀는 입술이 너무나 떨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요. 당신이 날 차지했어요. 그러니 난 당신의 것이에요." 마침내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에 대혀 이렇게 말했다.
"진작 이렇게 됐어야 해!"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렇게 돼야만 해. 이제야 그걸 알겠어."
"당신 말이 맞아요." 그녀는 점차 창백해져 가는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뒤이어 이 속에도 뭔가 끔찍한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지나갈 거야. 모든 게 끝나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해질 거야.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속에 무언가 끔찍한 것이 있기 때문이지." 그는 고개를 들고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417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