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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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녀의 바람이 아니라는 것

 

"난 오늘 당신을 만날 줄 알고 일부러 이곳에 왔어요. 내가 온 건 당신에게 이런 일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예요. 난 지금까지 누구 앞에서도 얼굴을 붉힌 적이 없는데, 당신은 나에게 어떤 죄의식을 느끼게 해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새로운 정신적 아름다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그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모스크바에 가서 키티에게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 말한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작은 불꽃이 깜박였다.

 

"당신은 내가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알았다. 그녀가 한 말은 스스로에게 강요한 말이지, 그녀의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의 말대로,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 마음이 평온해지도록 해 주세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 내게는 당신이 삶의 전부라는 걸. 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 사랑……, 그렇습니다. 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윈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내 눈에는 절망과 불행, 아니면 행복, 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그는 입술만 움직여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304∼305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인생과 대면한 것

 

그는 불신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질투란 수치스러운 감정이고 아내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비논리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직면했음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인생과 대면한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에겐 이런 것이 무의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삶의 반영을 다루는 공무 분야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삶 자체와 부딪칠 때마다 매번 그것을 회피했다. 이제 그는 낭떠러지 위에 놓인 다리를 침착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문득 그 다리는 허물어졌고 그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음직한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이 심해는 삶 자체였으며 다리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살아온 인공적인 삶이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러한 의혹 앞에서 전율했다.(311∼312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집으로 돌아왔다가 문이 잠긴 걸 본 남자가 느꼈음직한

 

"안나, 당신에게 경고해 둘 말이 있어." 그가 말했다.

 

"경고요?" 그녀가 말했다. "무슨……?"

 

그녀가 너무나 꾸밈없고 명랑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보았기에, 남편만큼 그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이 지닌 울림이나 의미에서 부자연스러운 점을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잘 아는 그에게는, 그가 5분만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그녀가 이것을 알아채고 왜냐고 묻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에게는, 그녀가 자신이 느낀 기쁨과 즐거움과 슬픔을 그에게 곧바로 털어놓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에게는, 지금처럼 그의 상태를 헤아리려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말 한마디 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이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는 그녀의 영혼의 깊은 곳, 예전에는 늘 그에게 열려 있었던 그 심연이 그의 앞에서 굳게 닫힌 것을 보았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이것을 전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요. 닫혔어요. 그래야 마땅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지금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문이 잠긴 걸 본 남자가 느꼈음직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아냐, 아마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거여.'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생각했다.(317∼318쪽)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_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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