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루이자가 지금보다 여섯 살 어렸을 때, 하루는 그녀가 "톰, 나는 궁금해"라는 서두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 말을 엿들은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밝은 곳으로 나서며 말했다. "루이자, 절대 궁금해하지 마라!"

 

감정이나 정서를 계발하는 데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이성만을 교육시키는 기계적인 기술과 불가사의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절대 궁금해하지 말라. 덧셈·뺄셈·곱셈·나눗셈으로 모든 일을 그럭저럭 해결한 다음에는 절대 궁금해하지 말라.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저기 저 아이를 나에게 데려와라, 그러면 그 아이가 절대 궁금해하지 않도록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맥초우컴차일드는 말한다.(85∼86쪽)

 

(중략)

 

코크타운에는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지가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정신을 몹시 괴롭혔다. 그것에 대해서는 도표로 만든 보고서의 작은 강이 도표로 만든 보고서의 엄청난 대양으로 주기적으로 흘러들어갔는데, 그 대양의 밑바닥에 도달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에 오는 이런 독자들마저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는 것은 낙담스러운 사정이면서 우울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정열, 인간의 희망과 공포, 그리고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투쟁과 승리와 패배, 걱정과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들은 때때로 열다섯 시간을 일한 뒤에도 자기네와 비슷한 남녀들, 그리고 자기 자식들과 비슷한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들을 앉아서 읽었다. 그들은 유클리드 대신에 디포우를 사랑했고, 대체로 코커(17세기 영국의 수학자)보다는 골드스미스(18세기 영국의 시인 겸 소설가)에게 더 위안을 받는 듯했다.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이 괴상한 합계를 인쇄된 형태로든 아니든 항상 따져보았으나, 어떻게 이런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87∼88쪽)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제1권, 8장 · 궁금해하지 말라

 

 

(나의 생각_01)

 

찰스 디킨스의 작품 『어려운 시절』은 이른바 문제작 가운데 하나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대로 '19세기 산업사회의 이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계몽의 그늘에 감추어진 억압을 날카롭게 파헤친 문제작'이다.

 

찰스 디킨스의 후기 작품들은 이처럼 사회 개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투영된 작품이 많은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황폐한 집』, 『어려운 시절』, 『리틀 도릿』 등이다. 특히 『리틀 도릿』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번역본조차 나온 게 없지만) 흥미로운 평가도 많은데, 버나드 쇼는 "<자본론>보다도 더 폭동을 유발하는 책"이라고 말했고, 칼 마르크스는 <리틀 도릿>을 최초의 자본주의 공격 소설로 평가했다고 한다. 칼 마르크스는 심지어 "세계의 모든 정치인, 사회운동가들이 한 모든 것보다 디킨스가 세상의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한 일이 더 많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나는 『어려운 시절』을 읽으면서 마치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엄습할 정도로, 어딘가 사방이 꽉꽉 막히고 억눌리는 듯한 느낌을 떨치지 못한 채로 무작정 어디론가 끌려가는 심정까지 맛보곤 했는데,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찰스 디킨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어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저 짧은 절(節)에 달린 소제목인 <궁금해하지 말라>가 던져주는 '놀라운 연상 작용' 때문에 심지어 몹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궁금해하지 말라>는 제목을 보자 말자 내 머리 속에 '유사한 장면 둘'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최근에 아주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린 끝에 종영된 TV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었고(전체가 52부작이라는데 평소에 TV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도 나는 유독 '문제의 장면'만큼은 자세히 봤다.), 다른 하나는 (어느새 약간 진부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아마도 연말쯤엔 틀림없이 '올해의 10대 뉴스'에 당당히 올라 우리의 기억을 다시금 환기시킬 게 분명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충남도지사 정무비서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하나는 디킨스의 소설처럼 여전히 가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다른 하나는 가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에서만 서로 다를 뿐, 두 사건 모두 본질적으로는 몹시 닮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 *

 

노명희 :(사직서를 보며) 이게 뭐야?

민들레 :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거든요.

노명희 : 아,아니 그렇다고 우리 집안이 얼마나 뒤숭숭한지 알면서 그만두면 어떡해. 연봉 올려줄테니까.

민들레 : 필요없어! 나 그 돈 필요없어!

노명희 : 민부장! 지금 뭐하는 거야!

민들레 : 사표냈는데 반말하면 안 되나? 돈 주고 부리는 사람은 사람 취금 안 했잖아. 나 지금은 당신 돈 받는 사람 아니야. 나이도 한 살 더 많고. 돈 안 받는데 왜 존대해야 하니? 명희야.

노명희 : 어머.

민들레 : 그리고 나 돈 많아. 당신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돈만 받고 쓸 시간이 없게 살았잖아. 몇십 년 동안 이 집안 붙박이로.

노명희 : 야 민들레, 너 지금 누구 앞에서. 그만둔다고 뵈는 게 없어?

 

(중략)

 

노명희 : 은석이 데려가는 걸 봤다고? 봤는데 왜 말 안했어?

민들레 : 시키는 일만 하라며?

노명희 : 뭐?

민들레 : 정식으로 혜성어패럴 입사시험 합격했던 사원이었으나 노양호 사장 비서. 열심히 일을 했더니 2년 만에 집안 비서를 하라고 하데. …… 딱 2년만 하자, 열심히 했어. 그랬더니, 당신도 말끝마다 그러데. 시키는 일만 하라고. 노양호처럼. 넌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고. 쓸데없이 알아서 뭘 할려고 하지 말라, 시키는 것만 하는 게 니 일이다.

노명희 : 그거하고 우리 은석이 모른 척 한 거 하고 무슨 상관인데?

민들레 : 노양호가 시킨 건 당신 미행이었거든. 니 딸 납치당할 때 신고하라는 말은 안 하더라.

노명희 : 야! 야, 민들레 너!

 

 - TV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중에서

 

 

 * * *

 

…… 저한테 안희정 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희정 지사님이었습니다. 수행비서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하는 사람이고, 마지막까지 지사를 지켜야 되는 사람이라고, 지사님도 저한테 얘기해 주신 것 중에 하나가, 늘 얘기하신 것 중에, 니 의견을 달지 말라, 니 생각을 얘기하지 말라,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아라, 그렇게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사님이 얘기하시는 거에 반문할 수 없었고, 늘 따라야 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늘 수긍하고, 그의 기분을 맞추고, 항상 지사님의 표정 하나하나 일그러진 것까지 다 맞춰야 되는 게 수행비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

 

 - JTBC <저녁 8뉴스> 중에서 

 

(나의 생각_02)

 

마침 오늘 안희정 전 도지사에 대한 '불구속 기소' 소식이 나왔다. 검찰이 무려 두 번씩이나 거듭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한 끝에 마침내 '재판'에서 범죄 유무가 가려지게 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의 일관되고 상세한 진술, 피해자의 호소를 들었다는 주변 참고인들 진술, 피해자가 마지막 피해 전 10여일 동안 미투 관련 검색만 수십 회 했다는 컴퓨터 사용상 로그 기록, 피해자가 당시 병원 진료받은 내역, 피해자의 심리분석 결과 등을 종합하면 범죄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하는데, 법원의 최종 판단이 과연 어떤 귀결에 이를지 몹시 궁금하다.

 

 

(나의 생각_03)

 

디킨스의 작품『어려운 시절』은 흔히 '공장 파업 노동자를 그린 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그 부분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곁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작품의 근저에 흐르는 '근본 주제'는 사실 그보다는 훨씬 더 묵직하고 범위가 넓은 것처럼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단지 출신 신분이나 계급, 혹은 지식이나 재산 유무에 따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하는 경직되고 낡은 사회 체제와 사고 체계' 자체를 문제 삼는 작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비뚤어지고 낡아빠진 잘못된 가치 체계나 사회 체제야말로 인간의 삶을 메마르고 척박하게 만들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가 (웃음과 재치와 유머로 가득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몹시 답답하고도 우울한 필체로 그려낸 '어려운 시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이런 생각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녀(루이자, 자수성가한 고지식한 졸부 영감인 바운더비와 결혼했다가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친정으로 되돌아온 소설의 여주인공) 자신이 재혼을 해서ㅡ어머니가 되어서ㅡ자식들을 사랑스레 돌보고, 자식들이 아이답게 크는 것이 한층 아름다운 일이고 재산이며, 그런 재산을 조금이라도 갖는 것이 지극히 현명한 자에게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아이답게 크도록 항상 신경쓰는 모습은? 루이자가 이것을 내다보았는가? 이는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행복한 씨씨(순회곡마단의 늙은 광대였던 아버지가 딸을 놔두고 도주하는 바람에 고아처럼 자란 소녀)의 행복한 아이들은?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은? 그녀가 어른이 되어서 아이 같은 지식을 익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순진하고 아름다운 상상을 경멸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상상력의 은총과 기쁨을 통해 기계장치와 현실에 억눌린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그것이 없으면 아이의 마음은 시들 것이고 아무리 강건한 육체를 지닌 어른이라도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것이며 아무리 분명한 국가의 번영 수치라 하더라도 벽 위의 글자(다니엘서 5장에서 벨사살 왕의 잔치 때 하느님이 왕궁 벽에 글자를 써서 파멸을 예언한 것을 말함-역자주)를 보여주는 것이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ㅡ 이것을 환상적인 기원, 약속, 형재애, 자매애, 맹세, 서약, 멋있는 옷, 자선시(慈善市)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는 모습은? 루이자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다보았는가? 이는 장차 일어날 일이었다.(479∼480쪽)

 

 -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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