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1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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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롭게 제작하여 방영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는 빅뱅 직후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138억 년의 시간을 한 해 달력으로 환산해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달력에 따르면 태양계는 831일쯤 형성되었고,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탄생한 건 921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 <멸종>921일 이후의 이야기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발적인 생명체의 분화가 이루어져 지구상에 나타난 38개의 동물문 중 멸종했거나 그 문에 속한 종류의 동물이 얼마 되지 않는 문을 빼고 거의 모든 동물문”(75)이 나타난 54000만 년 전의 캄브리아기 이후, 그러니까 <코스모스>의 달력으로 치자면 아마 1216일 밤 혹은 17일 새벽부터 약 14일 간의 이야기이다.

 

14일 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다섯 번의 대멸종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자.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멸종으로 전체 생물 과의 27%, 속의 57%, 종 수준의 82~88%가 사라졌다.”(88) 데본기 멸종으로 “(전체 생물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바다 생물 중 과 22%. 57%, 79~87%가 멸종하였다.”(106) 페름기 멸종으로 모든 생물의 95% 이상이연구자에 따라서는 98%사라졌다.”(126)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멸종으로 바다 생물 중 과 22%, 53%, 76~84%가 멸종되었다.”(142) 백악기 멸종으로 곤충과 몇몇 척추동물, 바다 밑의 저서 생물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종이 멸종되었다.

 

그렇다면 멸종이라는 사건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가장 자주 거론되는 원인으로는 외계 행성의 충돌과 같은 천문학적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또는 화산 폭발과 같은 지구 내부의 문제, 온난화와 냉각화 같은 급격한 기온 변화, 그리고 산소 농도의 변화와 같은 요인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을 추측된다. 물론 멸종이라는 사건은 아주 짧은 시간에 급격히 일어났다기보다는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기에, 여러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게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의 99% 이상이 화석 흔적만을 남긴 채, 아니 대다수는 그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보듯, 멸종이 단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멸종으로 인해 생겨난 생태계의 빈자리는 살아남은 종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되기 때문이다. 빈자리가 숭숭 나 있는 이 생태계에서 어떻게든 적응을 한 이들은 일단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급속도록 자신들의 개체수를 늘린다. 이렇게 늘어난 개체수는 당연히 살아남은 이들 사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응하여 생태계의 빈자리를 메우는 적응방산이 급속도로 진행된다.”(50) 더구나 멸종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52) 백악기 대멸종으로 인해 공룡과 같은 거대 포식자가 사라졌기에 인간과 같은 신체적으로 연약한 포유류도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멸종의 수혜자 중 하나인 인간이 새로운 멸종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신뢰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인간에 의해 제6의 멸종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왜 이런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일까. 인간이 끼치는 치명적 해악들 때문이다. 책에서 열거하는 오존층 파괴, 산성비의 문제, 열대 우림의 파괴, 바다의 오염, 사막화, 경작지와 도시화의 확대, 종의 감소, 벌의 소멸, 지구 온난화와 같은 생태계 파괴 행위가 바로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결국 지구의 기온과 산소 농도의 변화를 야기할 것이고, 이는 위에서 보았듯이 과거의 대멸종 사건과 맞물려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적절히 비유하듯, 인류는 어찌 보면 지구 생태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암과 같은 존재일 지도 모른다.”(220) 인간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인간에 의한 대멸종의 시나리오는 점차 현실화될 것이다. 이제 인간은 만류의 영장이라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다른 종과의 공존과 지구 생태계의 회복을 모색해야만 한다.

 

다시 코스모스의 계산법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지금 1231일의 자정쯤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달력의 마지막장을 뜯고 끝내버릴 것인지, 아니면 새로 11일을 맞이할 것인 선택해야 할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인류가 멸종해도 우주의 시간은 계속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주의 나이와 생명의 진화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던 종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이 책은 이 모든 내용을 쉽고 친절한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EBS에서 방송된 교양 다큐멘터리에 기초하고 있기에 중고등학생 수준의 독자라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쓰여 있다. 또한 방송에서 활용했던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과 달리 충분한 그래픽과 사진들이 실려 있어 만족스럽다.

 

다만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참고문헌이나 연구 주제 등을 던져주지는 못하고, 교양 수준의 피상적 서술에만 머물러 있는 점이 아쉽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고생물학과 같은 분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입문서로 초점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지질학적 연대를 다루고 있는 책이면서도 연대표를 싣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재판을 찍게 된다면 아래와 같은 연대표(<대멸종>, 뿌리와이파리)를 추가해 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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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 에세이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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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 에세이 혹은 과학 칼럼이라 이름 붙은 글이 가져야 할 미덕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무엇보다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하게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은 그 어떤 학분 분과보다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읽을 수 있는 인문 사회 분야와 달리 과학 논문과 같은 글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쉬운 언어로 번역해주는 번역가가 절실한 분야가 바로 과학이고, 과학 에세이스트들은 이런 번역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널리 알려진 상식을 재확인해주거나 잘못된 통념을 정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과학은 인간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별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우리가 참이라 믿고 있는 앎의 대부분이 과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을 뒷받침해주거나 정정해주는 일은 과학 에세이가 맡아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셋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소개하고 그것이 우리 혹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론 몇몇 과학자들의 지적 희열에 불과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발견은 공공재처럼 널리 활용되고 변형되어 인간과 인간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최신의 과학적 성과들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성찰하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이 세 기준에 동의한다면,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는 매우 만족스런 선택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50편의 과학 에세이는 이 세 기준을 적절히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 기준에선 매우 훌륭하며, 셋째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저자가 한정된 분량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2.

이 책에 실린 50편의 글은 모두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된 글이다. 과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신문에 칼럼 형식으로 연재된 글이기에, 보통의 대중 언론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의 수준, 즉 중고생 정도의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어져 있다. 물론 양자역학과 관련된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반물질과 반중력>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누구나 별 무리 없이 글을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톰과 제리>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종편의 건강 프로그램과 같이 익숙한 일상의 사례에서부터 천자문의 작자 주흥사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백발이나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비교와 같은 잘 알려진 역사적 이야기, 그리고 모 우유회사에서 비롯된 갑/을 논란과 같은 시사적 문제까지,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적절한 도입으로 글을 시작하여 자연스레 과학 논문의 연구 결과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서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3.

그러나 쉽고 친절하게 씌어졌다고 해서 단순히 가벼운 책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이나 통념에 대한 지지나 반박을 최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꼼꼼히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을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로 설명하고 있는 <새 친구를 사귀면 옛 친구와 멀어지는 이유>,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빨리 센다는 속설을 실험 결과로 보여주고 있는 <스트레스와 백발>, 산책이 머리를 맑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창의력을 높이고 싶다면 걸으세요> 같은 글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남녀의 성별 이분법이 그다지 타당성 없다는 <정말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을까?>새대가리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을 수 있다는 <동물도 미래를 꿈꾸나>, 인간이 직립 보행으로 인해 자유롭게 손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에 문제 제기하는 <도구 쓰는 손의 진화는 직립보행의 결과일까?> 같은 글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 중 어떤 것들은 매우 허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음을 보여준다.

 

덧붙여 <날씬해야 오래 산다는 과학상식 믿어도 되나>, <비타민 영양제 필요성 논란, 여전히 진행 중>과 같이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상식에 대한 균형 있고 신중한 소개도 있다.

 

4.

이 책은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대부분 5년 이내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빠르면 주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과학 저널들을 하나하나 검색하며 칼럼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논문들을 골라내고 꼼꼼히 읽어나가는 저자의 성실한 노력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몇몇 글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논의로 나아가려 시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더 많이 구축해야 한다.”(25)는 점을 강조하거나, “언젠가는 물고기가 산 채로 회를 떠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제정될지도 모를 일이다.”(110)라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재조합DNA기술과 인슐린의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글에서 유전공학이나 DNA조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183)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 재고를 요청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최신 논문의 소개에 급급한 나머지 그러한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즉 독자들에게 어떤 고민거리를 던져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이는 아마도 인터넷 전문 매체의 특성상 스크롤의 압박에 대한 부담감, 즉 일정한 분량 안에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만일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긴 호흡을 글을 썼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과학 에세이가 가져야 할 미덕을 적절히 보유하고 있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의 과학 서적이다. 과학에 흥미 있는 이에게 기꺼이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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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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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구경은 재밌는 법이어서 간혹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논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보면 일일이 블로그들을 찾아다니며 논쟁글을 읽어보게 된다. 그러다 어떤 이의 글이 재미있거나 흥미로우면 즐겨찾기에 등록하여 새로 올린 글들을 챙겨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박가분도 그런 식으로 몇 번 찾아보게 된 블로거 중 한명이었지만 굳이 즐겨찾기에 등록하진 않았다. 그의 글이 별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들을 몇 개 읽어보며 느낀 인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마치 물감을 머금은 스펀지 같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하며 그들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끊임없이 흡수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흡수된 생각들을 잘 뒤섞어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빨아들인 그대로를 다시 툭툭 내뱉어버린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난삽해지고 글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저자 소개에 이번 책에서는 문체를 바꾸느라 머리털이 조금 빠짐.”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곤 반가웠다. 이젠 좀 읽기 쉬운 문장이 되었겠구나, 라는 기대도 약간 가졌다. 물론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져서 예전처럼 어려거나 복잡한 문장은 사라졌고 매우 읽기 쉬워졌다. 그러나 이는 문장뿐이었다. 글을 쓰는 기본적인 태도는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300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책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상가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러나 여러 사상가들의 관점이 일베라는 현상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하기 위해 동원되지만, 말 그대로 동원되기만 할 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분석을 누더기 분석이라 부르는데,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틀을 활용하여 짜깁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분석은 저자가 대단한 통찰을 가지고 결론부에서 다양한 분석틀을 하나로 꿰어내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현학에 그치거나 권위에의 오류가 된다.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을 꿰뚫는 하나의 이론과 그런 이론들의 경합이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코에는 이 이론, 꼬리에는 저 이론, 다리에는 그 이론이라는 식의 설명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상가들의 향연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남는 뼈대는 무엇인가. 저자는 친절하게도 요즘 유행하는 세 줄 요약으로 이를 정리한다.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254)

 

먼저 (1)을 보자. 저자는 쌍생아라는 표현으로 일베와 촛불시위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전혀 상반되어 보이는 두 현상이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 그것은 두 현상 모두 몰이상적 이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적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국가를 향한 강박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108) 이렇듯 두 현상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 국가에 대한 요구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쌍생아이다.

 

그러나 둘 사이엔 유의미한 차이 또한 존재한다. 2002, 2008년의 촛불시위나 최근의 안녕들 하십니까가 온라인의 논의를 오프라인 즉 거리로 끌고 나왔다면, 일베는 철저하게 온라인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인터넷 안에서만 머무는가. 저자는 일베 유저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길거리에 나서서 자신들의 숭고한 대의를 외치는 순간 자기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감추고 그것을 다소 위선적으로 포장해야만 하기 때문”(224~225)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이상을 철저히 몰이상의 형태로 포장하는 이유는 인터넷=광장에서의 이상을 그 바깥의 현실에서 무리하게 실현시키려 할 때 결과적으로 입게 될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236~237)라고 말한다. (2)에서 말하는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에 머무는 이유이다.

 

이처럼 촛불시위와 일베에는 유사성과 차이가 존재한다. 저자는 차이 역시도 유사성의 일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나는 차이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다들 인정하듯이 촛불시위의 요구들은 실현되지 않았고 이명박근혜라고 농담 삼아 부르듯 기존 체제는 굳건히 버티고 연장되고 있다. 이러한 좌절이 어떤 이들에게 환멸을 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반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저자는 (1), (2)에서 보듯이 일베 현상이 이러한 환멸과 반동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촛불의 사상이 일베의 사상으로 굴절된 것 이면에는 촛불시위에서 표출된 대중의 열망이 현실정치에서 좌절된 사정이 있다.”(234)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거리로의 진출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자각하고 그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을 낳기도 하며 함께 거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생생한 연대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각과 연대감이 바로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를 낳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이를 두려워하여 인터넷에서의 자폐적 유희에 머무는 것은 도피에 다름 아니며, 이 도피는 언젠간 끝날 수밖에 없다. 한 때 열광적으로 빠져들었던 게임이 어느 순간 시들해지듯이 인터넷으로의 도피는 언제나 현실로 끌려나오게 되어 있다. 어쨌건 우리 모두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과 같이 환멸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내버려둬, 저러다 말겠지라는 무관심도 나름 그럴듯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의 주장을 거리로 끌고 나올 수 없는 부류라고 한다면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현실화 할 수 있는, 그래서 온 사회에 팽배한 정치적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촛불이든 일베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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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1-0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리뷰네요. 게다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살지 말지도 결정하게 해주시고, 여러 면에서 감사드립니다.

nunc 2014-01-07 01:21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5-06-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으로 일베철부지는 사제폭탄을 만들어 투하했다. 정말!! 새롭다.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빛의 공학

'빛의 물리학, 빛의 생물학, 빛의 색채학'이라는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눠 빛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빛의 과학'이 아니라 '빛의 공학'인가. 아마도 세 분야의 융합을 통한 빛의 실용적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 책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관심있는 부분은 빛의 생물학 부분인데,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물리적 개념인 빛이 생명체와 만날 때 그 둘이 상호 작용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들"이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2. 초파리

이 책이 왜 흥미로운가는 책소개가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유전학의 기초를 세우는 동시에 분자생물학, 발생생물학, 진화생물학의 연구 범위를 넓히며, 과학자들로부터 최적의 실험동물로 인정받아 온 초파리. 이제는 생물학계에서 초파리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하여 초파리는 생물학과 유전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 해답을 제시하는 생물이 되었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3. 쉽게 쓴 후성유전학

지난 신간평가단 도서였던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바로 이 후성유전학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를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후성유전epigenetic이란 DNA 서열을 바꾸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DNA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본성이냐 양육이냐라는 오래된 논쟁에 새로운 쟁점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하여 이 책이 기대된다.

 

 

 

 

 

 

4. 무의미의 제국

자끄 엘륄의 기술사회에 대한 통찰은 개인적으로 한동안 관심가지고 공부한 주제이기도 하다. 신학자이기에 기독교 관련 출판사에서 그의 총서를 내고 있는 듯하지만, 자끄 엘륄은 무엇보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주목받아야 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실 현재의 상태를 정당화하고, 기술의 승리, 인간에게 자신의 상황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고 몇 가지 보상들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반란의 환상, 주도권의 환상, 자유의 환상을 심어준다." 기술사회 속에서의 예술의 기능에 대한 그의 목소리를 또다시 들어보고 싶다.

 

 

 

 

 

5. 현대철학

이미 몇 종의 철학사 책을 가지고 있지만, 철학사 책이 새로 나오면 항상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동일한 철학자에 대한 저자들 사이의 미묘한 설명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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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 크라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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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1 99’ 혹은 ‘0.1 99.9’로 지칭되는 오늘날의 현실을 함정에 빠져 버린 세계라고 부르며,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채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를 음울한 어조로 묘사한 바 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이 책 역시 바우만과 동일한 세계를 다루고 있고, 둘 다 앞으로 다가오게 될, 혹은 다가올지도 모를 우울한 세상에 대해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은 매우 다르다. 바우만의 책이 99퍼센트 혹은 99.9퍼센트들에게 그들이 겪게 될 삶의 파국에 대한 우울한 경고와 대안의 모색을 촉구하고 있다면, 프릴랜드의 책은 1퍼센트 혹은 0.1퍼센트들에게 그들의 자만이 초래할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는 서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저자는 여기서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자본가들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깔로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16)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말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시스템이 지금까지 잘 작동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작동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에서도 현재의 유력 이론이란 결국 잠정적인 지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듯, 자본주의자들은 과학자들의 겸손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저자의 의도는 그녀의 배경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약력은 그녀가 유력 경제지의 기고가이자 편집자로서 성장해왔음을 보여주는데, 당연히 유력 경제지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지는 뻔한 일이다. 더구나 이 두꺼운 책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사례들과 발언들의 출처를 보면 대부분 유력 인사들과의 개인적인 식사 자리나 만찬장에서의 대화, 유력 경제인들이 개최한 회의의 사회자로 참여한 경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결국 그들에게 비판적인 입장이었다면 절대 가질 수 없었던 경험들이 바로 이 책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책의 대부분은 플루토크라트라고 불리는 이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었는지, 누구는 기술 혁명의 물결을 잘 타고 올랐으며, 누구는 사회 변화의 순간에 어떻게 기회를 잡았는지, 그리고 누구는 과감한 판단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는지와 같은 사례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오히려 상위 1퍼센트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혹시 결론에 언급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저자 자신은 아니었을까? 뉴욕의 한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는, 문학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공 비결은 기업인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준다고 한다.”(403)

 

그렇다고 해서 99퍼센트에 속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이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미국식 경제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역시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세계적 금융 위기라는 풍랑에서 캐나다를 지켜줄 수 있었던 강력한 시장 규제 정책이라든지, 갑부들의 시대에서 우리 모두는 엘리트들이 시장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파이 전체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기존의 파이에서 그들의 몫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293)에서와 같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룰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면밀한 감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한다면 그 대답 또한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경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면밀한 감시를 해야 할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이 바로 정치가들일 텐데 저자가 언급한 연구결과처럼 정치가들은 상위 집단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피라미드를 세 단계로 나누었을 때, 상원의원들은 중간 단계 유권자들보다 맨 위 단계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50퍼센트나 더 많이 반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맨 아래 단계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전달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바텔스는 민주당 의원들과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 유효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406~407)

 

저자는 베네치아의 부흥과 몰락의 사례, 그리고 19-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을 언급하며 플루토크라트들의 오만이 초래할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하지만,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했던 그들이 이런 경고에 대해 반응할지 의문스럽다. 사람들은 모두 슈퍼스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승자 독식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는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어 있.”(220)음을 강조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수록 오히려 그 소수에 들어가기 위해 더욱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우만의 지적처럼 파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보다 급진적인 변화, 즉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최고의 시스템이 아닐 수도 있음을, 더 나은 시스템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모색을 위해 가장 시급히 갖춰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윤리 의식의 변화이다. 저자가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듯이, “99퍼센트가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 바라고 있을 것을 1퍼센트들이 바란다고 해서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424)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의 대열에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스스로 내려올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낙오자의 변명이 아닌 용기 있는 외침으로 박수쳐 줄 수 있을 때, 다른 시스템을 고민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김예슬 선언이나 안녕들 하십니까?’와 같은 목소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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