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 무엇이 과학인가
팀 르윈스 지음, 김경숙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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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 얼핏 쉬워 보인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학문이 과학이며, 철학, 역사, 문학 등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과학에 어떤 학문이 포함되는냐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은 어떤 학문을 과학에 포함시키거나 배제하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다시 말해 과학이란 이러이러한 활동을 말하기에,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는 이 학문은 과학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때 이러이러한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어떠한 것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흔한 대답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과학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활동이라는 대답이다. 물론 과학은, 그것이 물질이건 우주건 혹은 생물이건, 대상의 구조를 밝히고, 대상들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며, 대상에 가해지는 외부의 작용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한다. 그러나 과학만 그러한가? 역사 역시 인간 행위와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점성술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며, 모든 종교는 세계의 기원과 미래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점성술, 종교를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이전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무엇이 어떤 학문은 과학으로 만들고 어떤 학문은 과학으로 만들지 않는가.”(26)

 

이 질문은 과학철학의 유서 깊은 논쟁거리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과학철학 서적들의 절반이 이 논쟁을 중심으로 씌어져 있으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객관적인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보편적인 이론과 법칙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귀납주의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과학 활동이란 누군가 가설을 제시하고 이 가설로부터 연역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맞는지 틀린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포퍼의 반증주의, 그리고 과학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혁명과 같이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쿤의 패러다임 이론까지 과학철학의 주요 논쟁을 쉽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현대 과학철학의 새로운 쟁점 중 하나인 과학적 실재론 논쟁 역시 다루고 있다. 이는 과학철학책들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논쟁이기도 하다. 과학적 실재론이란 과학이 이 세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주장인데, 이처럼 상식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미결정성 이론이나 비판적 귀납 논증과 같은 문제제기가 있다는 것이 과학철학의 재미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실재론이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지만, 스스로 반실재론자들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여겨서인지 실재론과 반실재론 논쟁을 그저 하나의 장()으로만 처리한다. 그러나 실재론-반실재론은 현대 과학철학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논쟁이고, 반실재론자의 주장들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기에 다른 책들처럼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사변적 논쟁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과학철학 다루는 논쟁들 없이도 과학자들은 열심히 과학 활동을 하고 있고, 우리도 그들의 결실을 얼마든지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지적처럼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15) 것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앞서 다룬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면, 2부는 부의 제목처럼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다룬다. ‘과학의 윤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2부는 전공자들을 위해 씌어진 많은 과학철학 입문서들이 다루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2부에서는 철학과 과학이 어떻게 서로 상호 협력하고 상호 보완될 수 있는지를 다룸으로써 과학철학이 우리 인류에게 있어 중요한 주제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18)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가 첫째로 드는 예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문제이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며, 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는 과학적 실재론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또한 리센코의 사례에서 보듯, 편향된 가치관을 내재한 과학 연구가 얼마나 큰 폐해를 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정책이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데도,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여 내버려둘 것인가. 저자는 적절하고 빠른 대처를 요하는 일에 대한 사전 예방 원칙의 중요성을 사례를 들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과학의 가치편향성이 반드시 안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인간의 이타성,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으며, 무엇을 말해주지 못하는지 꼼꼼하게 검토한다. 이는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흔히 최근 과학 연구에 따르면 ~라고 밝혀졌다.’라고 말하며,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님을 섣불리 선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객관적 사실이겠지만, 객관적 사실이 함축하는 의미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철학이 의미를 가진다.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되새겨 봄직하다.

 

자기 이해를 돕는데 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싶다면 과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 페이지를 읽어내려간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 도덕적 자화상, 그리고 인간 본질에 관련되어 이 연구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을 할 때는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이 혼자서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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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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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부터 시작하자. <사소한 것들의 과학> 이 책의 원제는 <Stuff Matter>, 재료 물질정도로 단순하지만, 출판사는 이를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고 변형시켰다. 왜 사소한 것들인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게 널려 있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너무 흔하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라 관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을”(24)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물건들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미치지 않아도 말이다. 그들은 이건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이걸 다른 방식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 재료는 어떻게 발견되었을까등등 온갖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하여,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책을 찾아보면서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려 든다. 그것이 자신의 전공 혹은 직업과 상관없어도 말이다. 나 역시 그런 호기심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기에 (물론 미치지도 않았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가 건설할 재료의 세계를 해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재료들이 어디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기능하며,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료 자체에 대한 지식은 때로 놀랄 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 저자 자신이 옥상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는 아주 평범한 (구도마저 별 볼일 없는) 사진이다. 아마 우리의 핸드폰에 들어 있는 사진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그런 사진. 그러나 저자는 사진 속에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물질들, 즉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재료들을 찾아낸다. 그가 찾아낸 사진 속의 서로 다른 재료들은 서른세 개나 된다. 재료과학자의 시선이란.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은 그 중 열 개로,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가 바로 그것이다. 생체 재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바로 지금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재료들이 어떻게 처음 발견되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개선되었으며, 지금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파고들어 왔는지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이러한 설명들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내가 관심 있게 보았던 몇 구절을 옮겨보자.

 

산화크롬으로 된 투명한 보호막 덕분에 우리는 스푼에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 혀는 금속에 닿지 못하고 타액도 반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식기의 맛을 보지 못한 역사상 첫 세대 중 하나이다.” (48)

 

종이가방 자체는 전적으로 공업의 생산물이고 환경 측면에서도 비싼 물건이다. 하나의 종이가방을 사용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은 비닐봉투보다 많다.” (77)

 

콘크리트가 물과 반응해 충분한 강도를 갖는 데에는 24시간이 걸리지만, 내부구조를 완성하고 최대한의 강도를 얻는 데에는 수년이 걸린다.” (111)

 

에어로겔은 거품이기 때문에, 한쪽 면에서 다른 쪽 면까지 사이에 천문학적인 수의 유리층과 공기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이 물질은 최고의 단열재로 만든다.” (156)

 

그래핀은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장 강하며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물질보다 열을 빨리 전달하고, 전기를 더 많이, 빨리 나르며 저항은 더 적게 받는다.” (256)

 

무엇보다 이 책의 재미는 곳곳에서 재료과학자로서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절절하게 드러난다는 점에 있다. 특히 콘크리트와 흑연은 저자의 전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설명처럼 듣기 좋은 이야기는 없다. 아마도 이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놓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과를 선택했거나 선택하려는 중고생에게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으로 다시 마무리를 짓자. 내 생각에 아마 저자에게 이 책이 한국에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고 들으면 매우 서운해 할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결국 이 재료들은 사소한 것이 아니에요. 매우 소중한 것들이랍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p.s. 아쉽게도 두 가지 흠을 지적하자면, 오탈자가 여러 개 눈에 띄고, 자료 사진들이 선명하지 않아 보기 다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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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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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이렇다 할 꿈은 없었지만, 막연히 빈둥대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밴, 새벽에 잠드는 생활 습성 탓에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일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바라던 대로 살아왔다. 일 년 중 대략 반 정도 일하고 반은 노는,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한두 달 해외여행도 다녀오는 그런 식의 삶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어떤 사람은 부러워하고 어떤 사람은 한심해하는 그런 삶.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 어려서부터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듯싶다. 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을까.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가정 형편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경험 때문일지, 아니면 능력 부족을 절감하고 쉽게 포기해버린 습관 때문일지. 어쨌든 달라질 게 없다’, 혹은 달라질 수 없다는 자각은 바라는 것도 없고 노력하지도 않는 습관을 선물해 주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편리한 변명으로 살아가는 삶.

 

그러나 이런 식의 삶, 그러니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게 없는,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이 어떤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고 답한다. 사실 그렇다. 어차피 채워야 할 욕망이 없으니, 결핍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간혹 무언가를 열망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만, 잘 안 되면 쉽사리 포기해버리면 된다. 그러니 고민이 없다! 고민이 없으니 행복하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재미있다. 나 자신의 행복감을 해명해주는 듯 보이니 말이다.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134)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사회를 보여주는 모든 지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왜 젊은이들이 저항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답,왜냐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26)를 해명하고자 한다. , 불행의 요소가 도처에 널려 있고 이를 명백히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점점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요즘 젊은 것들은~’ 이라는 상투적 호통인 세대론의 허구를 파헤치고(1), 실제 젊은이들의 의식 성향을 분석한 뒤(2), 이러한 의식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3, 4, 5),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결론(6)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각 장은 긴밀하게 꽉 짜여 있기보단 엉성한 연관을 가지고 진행된다. 각각의 장들도 깊이 있는 분석이나 이론적 내용보다는 피상적인 스케치에 가깝다.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도처에서 볼 수 있는 통계 자료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320)가 근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문체 또한 사회학자의 글답지 않게 대단히 발랄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벼운 사회학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현실 문제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대안 모색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현실에 대한 명료한 이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이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여기서 묘사된 일본은 한국의 거울상 혹은 미래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묘미는 일본 사회를 분석하는 글에서 오히려 한국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있다. 해제를 단 오찬호는 이 책의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이라는 단어로 치환해 읽을 것을 권한다. 과연 대부분의 문장에서 어떠한 어색함도 느낄 수 없다. 월드컵 거리 응원의 모습, 일베와 같은 넷우익의 활동, 점점 축제화되는 사회 운동, 그리고 저자가 우와, 아무래도 이것은 좀 그렇다.”(184)라고까지 말한 인터넷상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까지. 특히 일상의 패배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망각의 정치는 세월호 이후채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우리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지진의 여파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재난 피해자피난민이라고 정의되는 십여만 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지진 발생 후 한 달여 만에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260~261)

 

그러나 이것이 문제인가?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태도를 꾸짖으려 하겠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는 젊은이들이 오늘날과 같은 불안의 시기를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일본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젊은이 1인당 부양해야 하는 고령자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거품경제 붕괴 후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고 정규직은 희귀해졌다. 이러한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가족이라는 안전망과 상대적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아직 경제적 빈곤선에 이르지 않았고, 인터넷을 통해 그럭저럭 손쉽게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실리실익을 따지지 않는 공동체가 증가하면서, 승인 욕구를 채워 주는 것들이 분산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보장해 주게 되었다. 이런 공동체에서 제공받는 포근한 상호 승인 덕분에, 젊은이들은 굳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300)

 

이러한 조건이 바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근거가 된다. 물론 이는 지연된 문제일 수도 있다. 아직 닥치지 않았기에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기묘하고 뒤틀린행복”(316)이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젊은이들을 향해 호통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그래서 뭐?”라고 반문한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그동안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껏 살아봐, 라는 응원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응원은 고맙다. 나 같은 삶에게도, 그래도 괜찮아, 라고 다독여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위안만 받고 있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다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본이라는 거울상에서 어긋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는 저임금 노동이 만연하고 있어 일본의 프리터처럼 아르바이트만 해도 일상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취업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입시 경쟁에 일찌감치 뛰어들어야 하며, 입시 경쟁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도 다시 스펙 쌓기라는 이상한 경쟁에 내몰려야 한다. 학자금 대출로 대학에 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시급 오천 원으로 월세 50만원을 때워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빈곤은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다. 우리에겐 일본처럼 사회적 자포자기를 개인적 욕구 충족으로 전환할 조건조차 없으며, 우리의 젊은이에게 행복의 기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의 우울한 현실을 재확인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희망이 의심스러우면서도 그저 저자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것은 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을 우리의 사회학자 누군가 써주길 기대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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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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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글 혹은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기준은 이렇다. 글의 모든 구성 요소가 충족이유율을 만족하는 글. ,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 각각이 자신의 자리에 위치해야할 필연성을 지닌 글. 그 단어, 문장, 문단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글. 모든 구절이 결론이라는 목적지로 차근차근 향하도록 디딤돌이 되는 글. 그러므로 어떤 단어나 문장을 빼고 문단의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없는 글, 도대체 이 개념과 저 문장이 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는 글, 이런 글들은 아마 좋은 글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책은 세상에 없을 테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널리 인정받는 대가라 할지라도 종종 자신의 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이 이해가 된다. 아마도 완전성이란 인간의 것이 아닐 터이므로. 그러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자신의 글을 출판해 다른 이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완전성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이 가고자 하는 욕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 명의 저자로서 완성되는 일일 테니 말이다.

 

리뷰의 서두에 이렇게 길게 좋은 책의 기준을 늘어놓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 책이 대단히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는 분명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일정 부분 저자의 탓도 있다고 항변하고 싶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자리는 사회과학으로 때우려 하고 사회과학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인문학으로 얼버무리려는 어설픈 짓을 한 것 같아 느끼는 두려움”(6)에 대해 말한다. 나는 그보다 근본적으로 글을 구성하는 논리에 대해 묻고 싶다.

 

먼저 간단하게 제목이 준 실망을 얘기해 보자. 제목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아마도 이 제목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라는 단어에서 방식이나 원인을 떠올릴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은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는가, 서울이 이렇게 작동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등 서울이 현재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데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책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책은 대부분 소비 공간이자 계층 분화 공간으로써의 서울, 그러므로 물신과 배제의 공간으로써의 서울의 풍경을 피상적으로 스케치하는 데 머물고 있다. 물론 갖가지 이론을 언급하며 풍경에 대한 설명을 해보려는 부분도 있지만, 이 역시 분석이라기보다는 얼핏 스쳐지나가는 단상에 가깝다.

 

저자로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떻게라는 단어에는 어떤 방법이나 방식으로어떤 이유로. 또는 무슨 까닭으로뿐만 아니라 어떤 모양이나 형편으로라는 뜻도 있으니 말이다. 그저 서울의 모양이나 형편을 스케치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며, 그렇게 만들어지는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므로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17)고 말한다. , 이처럼 사람과 공간의 변증법을 인식하는 사회과학자라면, 인간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인간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더 나은 공간을 위한 실천을 제안해주길 바라는 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독자의 기대가 아닐까. 이런 기대는 본문에서 더욱 무참히 무너진다.

 

책은 서울의 특정 공간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그 공간의 현재 모습을 탐색하고, 그러한 모습에 내포하는 의미를 분석하여 오늘날 서울, 곧 도시에서의 삶이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설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조합은 불협화음을 내며 삐걱대고, 맥락에 맞지 않는 삽입들이 집중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한 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인 사교육, 그 죄수의 딜레마라는 부분을 보자. 저자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교육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아무도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나는(실은 내 아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교육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모두 사교육을 받는다면 나도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모두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받게 된다. 물론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사교육을 받으면 성적이 오른다라는 것이다. 입시 경쟁, 정확하게는 학벌 취득을 위한 경쟁은 유전자와 훈육의 결합체다. 그러므로 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결국 학부모가 가진 문화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 욕망과 규율이 작동하는 공간이다.”(82~83)

 

죄수의 딜레마와 사교육 경쟁의 유비는 그럴 듯하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전체적인 파국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시 경쟁이후의 두 문장은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입시 경쟁이 유전자와 훈육의 결합체라는 문장이 죄수의 딜레마와 사교육의 유사성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한 결론을 의미하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 다음에 나오는 문장, 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욕망과 규율이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죄수의 딜레마와 사교육의 유사성에서 사교육의 장이 욕망과 규율이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결론 내려질 수 있는가? 나는 이 논리구조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하여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려 노력해보자. 사교육은 죄수의 딜레마와도 같다. 사교육 게임에 던져진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입시 경쟁에서는 타고난 지능뿐만 아니라 후천적 교육의 역할도 크므로, 자녀들이 입시 경쟁에 승리하기를 욕망하는 부모들은 사교육에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왜냐하면으로 바꾸면 약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바로 앞의 부분과 똑같은 말일 뿐이다. 게다가 여전히 훈육이니 규율이니 하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부모가 억지로 사교육을 시키기 때문일까? 그저 죄수의 딜레마의 죄수가 푸코의 <감시와 처벌>로 비약하여 훈육, 규율, 욕망과 같은 단어들이 나열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초록물고기>라는 영화를 언급한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한 후, 영화가 1997년에 만들어졌음을 상기하고 이를 곧 IMF와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주인공 막둥이의 몰락이 저자로 하여금 적어도 이 순간 내게는 맨주먹 하나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려다가 결국 좌절하고 마는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275)고 고백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십여 년 전의 영화지만 오늘날의 징후를 보여주는 작품일 수도 있고, 십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이어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할리우드 영화 <파 앤드 어웨이>를 소개하며, 한국 자본주의 성장을 이끌어 온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가 무너질 때, 서구 선진자본주의가 바라는 사회, 즉 사람들이 자신의 조건에선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깨닫고, 계층에 따라 격리되어 관리, 통제되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막둥이의 몰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가 이제 맨주먹 하나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선진사회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가? 그렇다면 굳이 <파 앤드 어웨이>라는 작품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초록물고기>만 가지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니. 아니면 아메리칸 드림은 과거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지만 막둥이의 몰락에서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초록물고기>보다 <파 앤드 어웨이>를 먼저 소개하는 게 자연스럽다. 더구나 <초록물고기><파 앤드 어웨이>에 대한 설명 어디서도 저자가 이후 강조하는 공간적 격리나 통제의 공간에 대한 은유를 읽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맥락에서 두 영화가 등장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학자로서의 설명력이 힘을 발휘하는 렌트경제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책의 대부분이 이런 식의 인과관계가 약한 나열로 점철되고 있다. 스피노자에서 알랭 드 보통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정이현까지, <유브 갓 메일>에서 <파 앤드 어웨이>까지, 온갖 사상가들과 소설과 영화들이 인용되지만 중요한 맥락을 가지고 언급되기 보다는 그저 지적 편력을 자랑하기 위한 소품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얼핏 떠오른 단상들을 이리저리 꿰어 가까스로 이어붙이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짜깁기가 점묘파의 그림이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멋진 작품이 되지 못하고 그저 마구잡이로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물론 누군가는 여기서 심오한 통찰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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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1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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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롭게 제작하여 방영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는 빅뱅 직후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138억 년의 시간을 한 해 달력으로 환산해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달력에 따르면 태양계는 831일쯤 형성되었고,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탄생한 건 921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 <멸종>921일 이후의 이야기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발적인 생명체의 분화가 이루어져 지구상에 나타난 38개의 동물문 중 멸종했거나 그 문에 속한 종류의 동물이 얼마 되지 않는 문을 빼고 거의 모든 동물문”(75)이 나타난 54000만 년 전의 캄브리아기 이후, 그러니까 <코스모스>의 달력으로 치자면 아마 1216일 밤 혹은 17일 새벽부터 약 14일 간의 이야기이다.

 

14일 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다섯 번의 대멸종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자.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멸종으로 전체 생물 과의 27%, 속의 57%, 종 수준의 82~88%가 사라졌다.”(88) 데본기 멸종으로 “(전체 생물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바다 생물 중 과 22%. 57%, 79~87%가 멸종하였다.”(106) 페름기 멸종으로 모든 생물의 95% 이상이연구자에 따라서는 98%사라졌다.”(126)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멸종으로 바다 생물 중 과 22%, 53%, 76~84%가 멸종되었다.”(142) 백악기 멸종으로 곤충과 몇몇 척추동물, 바다 밑의 저서 생물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종이 멸종되었다.

 

그렇다면 멸종이라는 사건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가장 자주 거론되는 원인으로는 외계 행성의 충돌과 같은 천문학적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또는 화산 폭발과 같은 지구 내부의 문제, 온난화와 냉각화 같은 급격한 기온 변화, 그리고 산소 농도의 변화와 같은 요인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을 추측된다. 물론 멸종이라는 사건은 아주 짧은 시간에 급격히 일어났다기보다는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기에, 여러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게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의 99% 이상이 화석 흔적만을 남긴 채, 아니 대다수는 그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보듯, 멸종이 단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멸종으로 인해 생겨난 생태계의 빈자리는 살아남은 종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되기 때문이다. 빈자리가 숭숭 나 있는 이 생태계에서 어떻게든 적응을 한 이들은 일단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급속도록 자신들의 개체수를 늘린다. 이렇게 늘어난 개체수는 당연히 살아남은 이들 사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응하여 생태계의 빈자리를 메우는 적응방산이 급속도로 진행된다.”(50) 더구나 멸종이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52) 백악기 대멸종으로 인해 공룡과 같은 거대 포식자가 사라졌기에 인간과 같은 신체적으로 연약한 포유류도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멸종의 수혜자 중 하나인 인간이 새로운 멸종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신뢰성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인간에 의해 제6의 멸종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왜 이런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일까. 인간이 끼치는 치명적 해악들 때문이다. 책에서 열거하는 오존층 파괴, 산성비의 문제, 열대 우림의 파괴, 바다의 오염, 사막화, 경작지와 도시화의 확대, 종의 감소, 벌의 소멸, 지구 온난화와 같은 생태계 파괴 행위가 바로 인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결국 지구의 기온과 산소 농도의 변화를 야기할 것이고, 이는 위에서 보았듯이 과거의 대멸종 사건과 맞물려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적절히 비유하듯, 인류는 어찌 보면 지구 생태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암과 같은 존재일 지도 모른다.”(220) 인간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아간다면 인간에 의한 대멸종의 시나리오는 점차 현실화될 것이다. 이제 인간은 만류의 영장이라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다른 종과의 공존과 지구 생태계의 회복을 모색해야만 한다.

 

다시 코스모스의 계산법으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지금 1231일의 자정쯤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달력의 마지막장을 뜯고 끝내버릴 것인지, 아니면 새로 11일을 맞이할 것인 선택해야 할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인류가 멸종해도 우주의 시간은 계속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라는 별에서 우주의 나이와 생명의 진화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던 종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이 책은 이 모든 내용을 쉽고 친절한 언어로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EBS에서 방송된 교양 다큐멘터리에 기초하고 있기에 중고등학생 수준의 독자라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쓰여 있다. 또한 방송에서 활용했던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과 달리 충분한 그래픽과 사진들이 실려 있어 만족스럽다.

 

다만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참고문헌이나 연구 주제 등을 던져주지는 못하고, 교양 수준의 피상적 서술에만 머물러 있는 점이 아쉽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흥미를 가졌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고생물학과 같은 분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입문서로 초점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지질학적 연대를 다루고 있는 책이면서도 연대표를 싣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재판을 찍게 된다면 아래와 같은 연대표(<대멸종>, 뿌리와이파리)를 추가해 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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