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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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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을 전공한 이들에게는 그리스라는 이름이 주는 어떤 아우라가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나라이자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지적 샘물과도 같은 곳이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문학을 전공하거나 문학에 관심 가진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리스는 또한 온갖 상상력의 원천인 신화의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문학의 발원지, 즉 현대 인문학의 기원으로써 그리스라는 이름이 주는 고유한 무게감 같은 것이 있다. 그리스를 문명의 배꼽이라 지칭한 이 책의 제목 역시 이러한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테다. 물론 이런 식의 설명이 대단히 서구중심적인 시각이라는 지적도 있고, 기꺼이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서구중심의 교육 체제에서 공부를 해온 이들에게 이러한 느낌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터,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서구중심성에서 벗어난 동양적인 혹은 우리만의 고유한 어떤 것을 제시해주길 바랄 뿐이다.

 

어쨌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로 들어서게 되는 출입구는 대개 철학이거나 신화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박경철은 특이하게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창을 통해 그리스와 조우한다. 20대의 어느 날 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고 불도장에 찍힌 듯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우듯,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가슴에는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 일었습니다. 마침내 그 뜨거운 불길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5~6)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한 권의 책의 경험. 그 후 카잔차키스의 모든 책을 반복적으로 읽고 또 읽으며 그의 나라, 그리스에 대한 꿈을 키워오다 마침내 20여 년이 지난 지금 카잔차키스를 길동무 삼아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여행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의 문명과 역사를 다루면서 시간 중심의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공간 중심의 서술을 시도하겠다고 언급한다. 왜 공간 중심의 서술이 필요한가?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인식하건 못하건 공간은 중요하다. 구체적인 삶의 자취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 사정이 이러한데도 연대기의 틀을 고수한다면 왕조나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한 주류의 이야기에 머물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명멸했던 그 모든 문명이 그들 주류들의 몫이라 잘못 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이란 지배 계급만이 아니라 허리 휘도록 무거운 돌덩이를 등짐지어 나르며 그 위대한 문명의 탑을 쌓아 올린 이름 모를 민초를 빼놓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법. 문명의 정통성이 바로 민초들에게 있기 때문이다.”(17~18)

 

아마 저자의 의도는 이런 것이리라. 시간에 따른 연대기적 서술이란, 결국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다음 해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났고 라는 식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역사를 관통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나열이 될 테고, 그런 사건들의 주인공은 대개 왕조나 지배 계급의 인물들이기에 주류의 이야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공간 중심의 서술은 각 지역의 고유한 환경과 지정학적 위치를 중심에 놓고 역사와 문명을 바라보는 것이기에 실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 민초들의 삶과 밀착해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 대답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역사란 글로 남겨진 과거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는 것이고, 역사 구성을 위해 활용되는 자료들이란 대부분 스스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지배 계급의 시각이 반영된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고대사는 이 한계가 더욱 분명하다. 이미 지나가버린 200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그 지역의 삶의 양태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을 것이기에, 지금 그 지역을 직접 눈으로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지배 계급의 서술 사이사이에 감추어진 당시 민초들의 삶을 복원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경험은 관련 역사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린토스나 스파르타와 같은 지역이 가진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써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이나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그러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다 자세하게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의 역사적 정보에 공간에 대한 정보를 추가하는 일로도 충분할 테고, 이러한 시도 자체로 당시 민초들의 삶과 밀착된 역사를 새로이 발굴할 수 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그저 연대기적 서술은 이미 여러 종류의 책으로 출간되어 있기에 그들과 중복을 피하고, 기행문이라는 형식을 살리기 위해 공간 중심의 서술이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굳이 민초들의 삶의 복원이라는 거창한 의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책을 읽는 내내 유지된다. 저자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를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아, 코린토스, 네메아, 아르고스, 스파르타 등을 방문한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우물 하나에도 이렇게 신화와 전설이 있고, 역사가 깃든 곳이 그리스”(62)이기에, 저자는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 하나하나의 역사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그러나 저자는 책의 2/3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며 이미 호메로스나 여러 비극 작가들의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역사와 신화들을 재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다른 책에서는 시간과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이 해당 지역에 맞게 발췌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미 그리스 신화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직접 방문의 경험이 뭔가 새로운 해석과 통찰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저자는 여행 중 만난 여러 그리스인들과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그리스인들의 특질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는 신화 등을 통해 이미 알 수 있던 것을 재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기에 이로부터 파생된 우정이나 용기를 인간의 탁월함의 징표로 여긴다는 것은 당시의 사정을 안다면 굳이 그리스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자원도 없는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는 사정이라면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무엇을 공동체의 미덕으로 삼아야 할지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이처럼 거창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잠시 제쳐놓고 글을 읽는다면 매우 훌륭한 교양도서로써 이 책의 역할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대한 생생한 설명과 신화에 대한 친절한 해설은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그리스 고전들을 직접 접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제공하는 풍부한 정보와 해설은 원전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런 점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 지도를 추가해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펠레폰네소스 반도 전체 지도와 코린토스 지역을 제외하곤 상세 지도가 제공되고 있지 않아 저자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총 열 권으로 출간이 기획되었다고 하니 다음 책에서는 이를 추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놓치지 않고 있는 문제의식 중 하나는 문명의 발전 조건에 대한 것이다. 어떤 사회가 자신들의 문화를 꽃피우고 융성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코린토스와 스파르타라는 양 극단의 사회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그 중간 어디쯤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과도한 부를 바탕으로 사치와 향락을 누리던 코린토스. 그러나 코린토스의 영화가 순간의 불꽃으로 끝난 데는 깊이 있는 문화가 없었던 점도 크게 작용하였을 터, 사치와 향락의 도시에 인간과 삶의 본질을 고민하는 철학자나 문인, 예술가가 등장할 리 만무했다.”(133) 이와 반대로 엄격한 통제와 절제를 강조한 스파르타. 그러나 획일성은 창조적 긴장이라는 씨앗을 말라죽이고 마는 척박한 토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문명의 발전이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360) 결국 저자가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여러 도시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나치지 않음, 적절함, 바로 중용의 미덕이 아니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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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추천도서도 정리해서 올립니다.

3월 6일까지 17분께서 총 49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고, 그 중 복수 추천을 받은 책은 12권입니다.

이번 달의 특징은 철학 서적의 강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상위 추천 도서 중 세 권이 철학이란 제목을 달고 있거나 철학 고전입니다.

 

1.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각 6표씩을 얻은 <국가>와 <건축을 위한 철학>입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새 번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듯해서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2.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책은 각 4표씩을 얻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철학을 다시 쓴다>,

그리고 3분의 추천을 받은 <아주 사적인 독서>입니다.

예상대로 유시민씨와 로쟈님의 새 책이 상위권이네요.

 

         

   

3.

마지막으로 각 2표씩 얻은 7권의 책입니다.

 

              

 

         

 

이번 달에도 좋은 책들이 많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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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

2월 신간 도서를 검색하다보니 플라톤, 후설, 칸트 등 철학 고전의 출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플라톤의 <국가>는 단연 첫 순위로 꼽을만한 책이다. 물론 <국가>는 박종현 선생의 훌륭한 번역으로 이미 출간되어 레퍼런스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리스 고전을 꾸준히 번역하고 계신 천병희 선생의 새 버전에도 눈길이 간다. 두 대가의 번역을 동시에 펼쳐놓고 한구절 한구절 비교하며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2.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관심 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의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여기저기서 소개로만 접했던 아렌트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한 책이다. "분명 이 책은 누구에게나 지독하게 어렵고 난해한 읽을거리다."라는 번역자의 경고문에 움찔하긴 하지만, 어렵고 난해한 사고과정을 힘겹게 뚫고 나갔을 때 한줄기 빛과 같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철학책 읽기의 즐거움이기에 기꺼이 경고를 무시하고픈 욕심이 든다.

 

 

 

 

 

 

3. <건축을 위한 철학>

신간평가단 과제로 신간 검색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건축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다룬 책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관심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건축가, 건축 실무자,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 설계 작업에서 맞닥뜨리는 광범위한 철학적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에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건축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건축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들을 담고 있으리라 기대된다.

 

 

 

 

 

4. <실패한 우파는 어떻게 승자가 되었다>
좋든 싫든 앞으로 5년 간은 정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 양당 체제의 정착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치체제에 대한 성찰은 우리의 앞날을 예견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 자체도 우리 현실을 말하고 있는 듯하며, 이번 달 서평도서이기도 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연장선에서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이기에 관심도서에 꼽아본다.

 

 

 

 

 

 

5. <나무시대>

아쉽게도 2월 신간 도서 중 과학 도서의 비중이 대단히 저조하다. 알라딘의 '새로나온 책' 과학 부분을 보면 2월 신간 도서가 단 13권만 검색된다. 그 중 관심 가는 한 권이 바로 이 책 <나무시대>이다.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라는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나온 책인데, "이 책은 나무와 그 이용자인 인간 간의 관계에서 폭넓고도 놀라운 통찰을 보여 주며, 우리가 나무와 숲, 그리고 인간의 연관성을 큰 틀에서 바라보게 하고, 나무와 숲을 지혜롭게 활용할 방안을 제시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환경에 대한 성찰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좋은 생각 거리를 던져줄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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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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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문화다>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대담집의 기획자인 애덤 블라이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과학이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엔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이 세상을 개선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 세상만사는 과학에서 시작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의 배후에도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4) , 그에게 문화란 인간의 삶과 사회의 근본적 토대를 지칭하는 것이고, 이 토대를 과학이 다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혹은 인간 사회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면, 그건 바로 과학으로부터 비롯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반대편에서, 과학이 인간 사회에 가져온 다양한 진보를 인정하지만 그와 더불어 온갖 폐해 또한 양산해 냈음을 지적하는 입장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20세기를 과학의 세기로 부르며 앞으로의 세기는 과학에 쏠린 무게중심을 다른 방향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단적 생태주의나 뉴에이지 운동과 같은 극단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혹은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도 많다. 스노우가 말한 두 문화’, 즉 과학 문화와 인문 문화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책의 첫 대담은 에드워드 윌슨과 대니얼 데넷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윌슨은 <사회생물학>이나 <통섭> 등의 저서를 통해 생물학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을 제안한 생물학자이고, 데넷은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는 철학자이다. 다시 말해 둘 모두 진화론이라는 공통된 토대 위에서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진화론이 두 문화를 단단하게 엮어줄 밧줄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가진 분야의 융합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서로 삐걱거리며 부딪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고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일 겁니다.”(데넷, 25) 그렇지만 결국 인간과 인간사회의 많은 의문들이 과학을 통해 해명될 수 있으리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과학은 만능해결사가 될 것인가? 이 부분에서 윌슨과 데넷의 생각이 구분된다. 윌슨은 통섭의 주창자답게 윤리적 규범에 대한 많은 문제들도 진화론적 접근이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데넷은 철학자답게 과학적 사실과 규범적 의문은 논리적으로 상호 독립적인 것이라 지적한다. 인간이 오늘날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데 대해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데넷, 34)

 

이런 종류의 논쟁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과학철학 수업 때 들었던 얘기이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많은 윤리적 논쟁이 과학적 발전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거칠게 예를 들어, 어느 시점부터 인간이라 볼 수 있는지 등과 같은 과학적 판단이 끝난다면 낙태와 같은 윤리적 논쟁은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종석의 어느 글에서 본 내용으로, 문명이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억제하면서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던 말이다. 인간이 어떤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 특성을 활용하며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특성을 밝혀내려는 수많은 과학적 시도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걸 아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 주는가?

 

두 생각 모두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까지 무엇이 더 바람직한 입장인지 나름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자가 특정 행위를 유발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행위를 통제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을 우리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러한 조작이 범죄나 심각한 장애와 관련되었을 경우와 멋진 외모나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일과 관련되었을 경우를 동일하게 보아야 할 것인가? 물론 현실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특정 행위와 관련된 유전자의 수나 조합은 대단히 다양하며, 하나의 유전자라고 하더라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우저, 320) 그러나 만약 저런 일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떤 심리적 거부감과 더불어 도대체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어?’라는 생각이 마구 뒤섞여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첫 대담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첫 대담이 나머지 대담들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윌슨과 데넷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다양한 분야의 석학들이 대담자로 참여하고 있다. 기획자인 애덤 블라이의 잡지 <시드(SEED)>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기획이기에 대담에 참여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과학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과학이 이뤄낼 성과에 대해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과학의 성과들이 다른 분야에 끼치게 될 영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첨예한 논쟁이 아니라 서로 덕담을 주고받거나 큰 틀의 동의와 약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식의 대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 분야 대가들의 대화답게, 하나의 대담이 특정 주제에 대해 무수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자신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라고 한다면 이 책의 관련 대화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접한다면 다소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아마도) 긴 대담 중 특정 논점과 관련된 일부만을 편집해 실어놓았기에 뭔가 더 깊이 있는 내용이 나오겠지 기대하다가 대담이 끝나버려 입맛만 다시게 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을 언급하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과학자들 역시도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과학 연구에는 애매함이 있을 수 없는데, 이는 과학이 재현 가능한 사실을 다루기 때문입니다.”(레빈, 180)실제로 우리가 하는 작업은 존재하는 대상을 추측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시험할 방법을 찾아 진실을 재현하는 것입니다.”(랜들, 214),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아는 것을 설명할 이론을 찾아낼 것이며, 이 이론이 아직 측정해보지 않은 새로운 대상을 예측도 해주리라는 희망도 갖게 해주는 거죠.”(스타인하트, 400)와 같이 과학적 연구의 진실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 과학자들이 한편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결국 과학은 일종의 어설픈 추론 과정일지도 모릅니다.”(스틱골드, 168)라거나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사실은, 과학은 어떤 것이 진실임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저 어떤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것이 과학이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크라우스, 257)라고 말하며 과학이 진실을 밝혀준다와 같은 거대한 위상에 유보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양쪽 편 모두 과학이 여타의 학문보다는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지 에롤 모리스의 말이 눈에 확 띤다.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려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뭔가 빛을 던져 주리라고 생각되는 단순한 게임이나 모델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은 그저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악몽의 한가운데 던져져 있을 뿐이죠.”(모리스, 312)

 

과학이 이런 혼란과 불확실을 거두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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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추천도서도 정리해서 올립니다.

2월 7일까지 18분께서 총 51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고, 그 중 복수 추천을 받은 책은 15권입니다.

이번 달의 특징은 유명 저자의 저서가 없어서인지 지난 달과는 달리 골고루 분산된 느낌이네요.

 

1.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각 4표씩을 얻은 <문명의 배꼽, 그리스>와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입니다.

생각해보니 <문명의 배꼽, 그리스>의 박경철씨도 나름 유명 저자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역시 대선 이후의 정치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2.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책은 각 3표씩을 얻은 다섯 권의 책입니다.

 

      

     

 

3.

마지막으로 각 2표씩 얻은 8권의 책입니다.

 

        

        

 

이번 달에는 책들의 난이도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좀 안심이 되구요,

개인적으로 건축과 관련된 책이 복수추천을 받아 리스트에 올라온 것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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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나무 2013-02-0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정도 분산된 느낌이지만 수준있는 책들이 있어서 좋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nunc 2013-02-09 06:02   좋아요 0 | URL
네 매번 정리할 때마다 이번엔 어떤 책이 선정될까 기대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트리플 2013-02-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빡하고 2월 신간을 추천하지 못했어요;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다음 달부터는 다시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 선정될지 궁금해요 :)

nunc 2013-02-12 09:38   좋아요 0 | URL
예, 다음 달부터는 꼭 추천도서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릴께요.
개인적으로도 평가단분들께서 추천해주신 도서 목록을 살펴보는 것이 꽤 재미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