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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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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접해본 역사책의 서술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알려진 사건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 흥미롭게 당시의 사건들을 목격한다. 행위자나 등장인물의 판단에 공감하거나 반성하면서 어떤 교훈을 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책들이 바로 이런 방식을 띠고 있다.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다. 해당 시기와 관련된 온갖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독자 스스로 당시를 총체적으로 구성해보길 요구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생활양식이나 법체계 등에 간혹 흥미를 느낄 수는 있지만 역사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독자는 대체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두 가지 방식이 하나의 역사책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이야기 중심의 서술이라 할지라도 문화적 배경들이 덧붙여질 때만 사실감과 흥미가 더해질 것이고, 역사적 사실의 나열에도 중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이 빠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두 방식이 상호 조합됨으로써만 특정 시기에 대한 총체적 시대상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 역사책마다 무게 중심을 어느 쪽에 두는가는 구분될 수 있는 것 같다.

 

테오도르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 1>은 후자 쪽에 보다 무게 중심이 놓인 책이다. 어쩌면 이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1권은 이탈리아 반도 지역에 거주하던 최초의 종족으로부터 로마 초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당연히 충분한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최초로 이탈리아로 이주한 인류에 관해 우리는 어떤 정보도, 심지어 전설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9) 이런 상황에서 간헐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로 당시의 시대를 복원해 내기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당대의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역사는 고고학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꼼꼼하게 기록한 후 정보들을 교차 대조하여 빈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몸젠이 보여주는 고고학의 주된 자료는 언어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신뢰할 만한 유일한 전승의 원천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에서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민족의 언어들이다. 민족의 성장과 함께 만들어진 언어에 각인된 민족 성장의 흔적은 후대 문화에 의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11) 그는 고대의 비문들에 남겨져 있는 언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서로 간의 영향들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초기 종족의 기원과 구성을 재구성해 낸다.

 

이러한 분석방식은 그 자체로는 매우 흥미롭다. 주변국과의 언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이동 경로나 영향력을 추적하거나 특정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고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당시의 사상이나 생활양식을 복원해 내는 방법은 마치 추리소설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라틴어를 교양으로 배우는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거나 유럽의 나라들처럼 라틴어에서 기원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면 더욱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끝없이 이어지는 낯선 어휘들의 나열은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이런 부분이 많았던 책의 전반부에서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로마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보다 재밌다. 몸젠이 전하는 초기 로마는 자유분방함보다는 완고하고 경직된 체제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시민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되었다.로마 공동체는 이렇게 통치되었다. 로마 시민은 자유를 누리는 한편 법에 복종할 줄 알았으며, 일체의 미신을 단호히 거부했다. 법 앞에서, 그리고 그들 상호 간에 무조건적 평등이 보장되었으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외국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개방적이었다.”(116) 그러나 궁극적 법률 토대는 언제나 국가다. 자유는 다만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시민권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모든 사유재산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공동체가 각 개인에게 양도한 것이다. 계약은 오로지 공동체가 그 대리자를 통해 계약에 증인으로 참석할 때만 유효하다. 유언은 오로지 공동체가 이를 승일할 때만 유효하다. 공법의 영역과 사법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나뉘어 있었다. 국가에 대한 범죄는 직접 국가의 법정으로 끌려와 언제나 사형으로 처리되었다.”(226)

 

이러한 경직된 체제는 종교와 예술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희랍에서 종교가 예술적, 사변적 이념을 촉진하고 우주론과 인간관의 확장을 가져온 데 반해, 라티움에서 신의 개념은 매우 구체적이었으며, 굳이 예술과 시인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분명했다. 라티움 종교는 상상 예술과 거리가 멀었으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로마 종교는 두 개의 머리를 한 야누스 인의 경우를 제외하면 신의 특정 모습을 그리지 않았는데, 바로(Varro)도 대중이 인형과 조각 따위를 원한다며 조롱했다. 이렇게 로마 종교에 창조적 사유가 결여되었던 것은 다시 로마의 문학과 사색이 완성을 보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249)

 

추측컨대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완고하고 경직된 체제, 혹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유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후의 과정들을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인상으로 로마는 국가 혹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회 체제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태도가 아직 발전되지 않은 공동체들 사이에선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출간될 이후의 책들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전반부를 다소 지루하게 읽어나가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역사서라는 홍보 문구에 대해 다소 의아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앞부분을 뒤적이자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보석 같은 문구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전이라 불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사가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는 민중의 삶을 모두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그저 전체의 발전을 기술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개인의 창조와 행위, 사유와 문학은, 물론 이런 것들도 역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역사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음미해보려는 시도는, 특히 역사적으로는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시대를 다루는 경우에는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우리와 다른 고대 문명인들의 생각과 감정, 마치 깊은 심연처럼 놓인 차이점을 우리가 이런 영역에서나마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민족 이름들과 흐릿한 전설은 한때는 푸르렀으나 이제는 우리가 간신히 손에 넣은 마른 잎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20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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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추천도서도 정리해서 올립니다.

 

5월 6일까지 12분께서 총 36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고, 그 중 복수 추천을 받은 책은 7권입니다.

5월이라 다들 바쁘신지 추천이 저조하네요.

 

1.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6표를 얻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새책입니다.

 

 

 

2. 다음으로 3표씩 추천을 받은 두 권입니다.

 

   

 

3. 마지막으로 2표씩 추천을 받은 네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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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7: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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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20세기의 대가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저자들, 즉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봤을 사람들의 책이 많이 나왔다. 그 중 다섯 권을 골라본다.

 

 

 

 

1. 객관적 지식

과학철학을 다룰 때 빠지지 않는 철학자 칼 포퍼의 책이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가 없어 아쉽지만, 로쟈님의 설명에 의하면 <추측과 논박>, <과학적 발견의 논리>와 더불어 '과학철학자 포퍼'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 <과학적 발견의 논리>와 <추측과 논박>의 일부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무척 명쾌하게 글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기회에 그의 글들을 다시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2. 해석에 대하여

현상학자이자 해석학자인 폴 리쾨르의 책이다. 폴 리쾨르 역시 오래전 <텍스트에서 행동으로>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매우 어려웠지만 중간중간 번쩍이는 통찰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에 의하면 "그는 반성철학의 전통에 서서 인간의 자기 이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현상학을 거쳐 해석학으로 이행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본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궁금하다.

 

 

 

 

 

 

 

 

3. 시골과 도시

90년대 유행하기도 했던 문화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책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오래전 절판되어 검색조차 되지 않는 <문화와 사회, 1780-1950>와 여기저기에 실려 있는 소논문 몇 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책소개에 의하면 이 책은 시골과 도시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와 비교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인듯싶다.

 

 

 

 

 

 

 

 

4.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개정되어 출판된 자크 랑시에르의 책이다. 출판사에 의하면 “초역 당시에 미흡했던 부분을 다시 꼼꼼하게 손질해 한층 정확한 번역본이 완성됐다.”고 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을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이 책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새롭게 개정판을 낸다고 해서 잠시 미뤄두었었다. 이번 기회에 손에 잡아봐야겠다.

 

 

 

 

 

 

 

 

5. 리퀴드 러브

지그문트 바우만의 새 책이다. 바우만은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한 사람이 유행하면 관련 도서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우리 출판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신간평가단 도서이기도 했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재미있게 읽었었기에 이 책 또한 관심도서로 꼽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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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월 주목할 만한 신간 에세이 4편
    from 낙화유수님의 서재 2013-09-06 23:44 
    1. 왜 사느나면, 제주도에허수경이 싱글맘으로 첫 출발을 했다는 인터뷰를 본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녀가 제주도에 관한 책을 냈단다. 사실 나는 지난 2년간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남편 직장을 따라 갑자기 제주도에 내려가 살다 왔다. 처음엔 낯선 섬이 떠나온 지금,제주도는 나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시원시원한 눈매의 방송인 그녀가 싱글맘이 되어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 온 그 시간들, 마치 2년간 제주에 살았던 나의 이야기 일부를 볼 수 있
 
 
 
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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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자그마치 15년 동안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다시 장인의 이야기가 된다. 리처드 세넷이 지적하듯이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장인들의 모습에서 어떤 감동, 숭고함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역시 세넷이 말하듯 굽은 발로 절룩거릴지라도 그 자신이 아니라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헤파이스토스,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도해>라는 사전의 편찬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가장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이들의 몰입에 깊은 감동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현대 사회의 노동이 장인적 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포디즘적 생산체제 이후로 대부분의 노동에 부여된 특징인 구상과 실행의 분리, 즉 일에 대한 고민과 실제 작업의 불일치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없애버렸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사고만 안 나면 된다. 그렇게 우린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어가고, 퇴근 시간은 해방의 시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겐부쇼보 출판사 사전편집부 사람들, 즉 마쓰모토 선생과 아라키 씨, 마지메와 니시오카, 기시베의 열정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일종의 이상일 뿐이다. 요리에 전념하고자 하는 가구야 씨나 미끈거리는 손맛까지 재현한 궁극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미야모토를 비롯한 제지 회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모두 불가능한 현실일 뿐이다. 그러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사전 만들기라는 일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전 만들기란 불가능에의 도전이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수많은 단어들과 그 단어들의 적확한 의미를 찾아 짝지우는 일,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의미들을 순간에 포착해 고정된 틀에 담아내는 일. 마지메의 생각처럼 아무리 훌륭한 사전이어도 시대에 뒤처지는 숙명을 피할 수 없다. 말은 생물이기 때문이다.”(114)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 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92) 뿐이다. 그러니까 물고기처럼 손 안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의미를 붙들어 두려는 사람들.

 

그뿐 아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조합에 사용된 각각의 단어들은 또 다른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체계. 무한히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며 서로가 서로에 연결되는, 그리하여 끝없는 페이지의 넘김 속에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오는 미로와 같은 세계. 이 끝도 없고 출구도 없는 미로와 같은 세계를 헤매다 보면 주저앉기 십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을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라키씨는 말한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36) 말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튼튼한 배가 될, 진리를 향한 끝없는 도전의 튼튼한 도구가 될 사전.

 

그런 점에서 장인들은 모두 플라톤주의자다. 도달하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완성태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완성을 향한 여정에 시간이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음을 예감하는 병상에서도 용례채집카드 작성을 멈추지 않는 마쓰모토 선생이나 4교까지 완성된 원고에서 누락된 표제어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겐부쇼보 지옥의 진보초 합숙을 감행하는 사전편집부 사람들의 모습에서, 마침내 15년의 수고가 결실을 맺은 날 다시 개정 작업을 시작하자는 아라키의 말에서, 시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념과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완성을 향한 열정은 사전편집 일에 무관심하던 니시오카마저 변화시킨다. 한정된 시간밖에 갖지 못한 인간이 힘을 다해 넓고 깊은 말의 바다로 저어 나간다. 무섭지만 즐겁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언제까지고 이 배를 계속 타고 싶다.”(186)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이 점은 아무 생각 없이 사전편집부에 합류했다가 이들과 하나가 되어버린 기시베의 생각이 잘 드러내 줄 것이다. 많은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모으는 것은 일그러짐이 적은 거울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일그러짐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마음을 비추어 상대에게 내밀 때, 기분이나 생각이 깊고 또렷하게 전해진다.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고 화를 낼 수 있다.”(236) 말이란 우리가 가진 감정이나 생각의 미묘한 분위기를 적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타인과 함께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싶다는 욕망의 실현인 것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바로 이 부분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속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떤 욕망, 불가능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느끼게 되는 뭉클함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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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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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플라톤의 <국가>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읽기 쉬운 <국가>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는 이전에 레퍼런스로 자리잡고 있는 박종현 선생의 <국가정체>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박종현 선생의 번역은 꼼꼼하고 치밀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쉽게 나아가기 힘들다. 같은 문장을 두세 번 읽고 곱씹어야 뜻이 파악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서양 사상의 최고 고전이라는 추천에 휩쓸려 <국가>를 읽으려 시도하다, 난해한 문장이 방대한 분량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곤 포기해버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랬던 사람들에게 이제 훌륭한 대안이 주어졌다. 이전에 국가를 읽고 포기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전과 달리 술술 읽히는, 난해하게 들렸던 플라톤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종현 선생의 번역본을 두세 번 정도 읽었지만 매번 힘든 경험이었다. (물론 내가 가진 책은 1997년 초판이기에 2005년 개정판은 사정이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은 막힘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비교해 보자. 479c에 있는 의견(doxa)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박종현: ‘존재하지 않음에 있어서 그 이상일 수 없는 것으로 말하면, ‘비존재보다도 더 어두운 것이 없을 것이요, ‘존재함’(있음, : einai)에 있어서 그 이상일 수 없는 것으로 말하면, 실재보다도 더 밝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일세.

 

천병희: 그것들은 실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둡고 비현실적일 수 없으며, 실재하는 것보다 더 밝고 현실적일 수 없으니 말일세.

 

박종현 선생 쪽이 원문에 더 충실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의미 파악이나 가독성에 있어서 천병희 선생 쪽이 훨씬 낫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책 전체가 이런 식의 차이를 보인다.

 

2.

그러나 당연히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법. 이 책에서는 가독성을 얻기 위해서 철학적 엄밀함을 다소 포기한다. 예를 들어 335d의 한 구절을 비교해 보자.

 

천병희: 올바른 사람들이 정의에 의해 사람들을 불의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해서, 착한 사람들이 미덕에 의해 사람들을 나쁘게 만들 수 있을까?

 

박종현: 올바른 사람이 올바름에 의해 사람들을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로 만들 수 있겠소? 요컨대, 훌륭한 사람이 [사람의] ‘훌륭함’(:aretē)에 의해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정의/올바름, 착한/훌륭한, 미덕/훌륭함 등의 차이가 보이고,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훨씬 쉽고 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각 개념들이 가진 풍부한 의미가 많은 부분 소실될 수밖에 없다. ‘aretē’를 단지 미덕이라고 하지 않고 훌륭함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박종현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retē는 이 책에서도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는 말인데, 오래도록 흔히 ’(virtue, vertu, Tugend)으로 번역되어 왔다. 모든 사물에는 그 종류 나름으로 훌륭한 상태’, 좋은(agathos=good) 상태가 있게 마련이다. 이는 대개 그 종류 나름의 기능’(ergon) 또는 구실’, 특유의 기능’(oikeion ergon)과 관련되어 있는 말이다. 그것이 어떤 것의 생존 기능 또는 그것의 존립 이유나 존립 조건과 관련된 것이든 간에 상관 없이, 그것들의 휼륭한 상태는 있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좋은 눈이라 말할 때, 이는 눈의 기능과 관련해서 하는 말이요, 개나 말의 경우에서처럼 그것들의 생존 조건이나 인간에 대한 그것들의 유용성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그 훌륭한 상태를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위적인 산물은 그것들의 유용성 및 기능과 관련된 훌륭한 상태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좋은 칼이라든가 좋은 낫이라 말함은 그 때문이다. 이런 훌륭한 상태’(훌륭함: goodness, excellence)aretē라 한다. 다만 사람의 덕목과 관련된 경우에는 이른 이라 해도 무난하나, 논의의 보편성을 고려하여 훌륭함이라는 번역어를 택했고, 사람과 관련해서는 많은 경우에 ‘[사람의] 훌륭함이라 번역하기도 했다. (1, 36)

 

비슷하게 정의올바름으로 번역한 이유에 대해서도 1권 주22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박종현 선생의 번역은 특정 개념이 가진 의미를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 어쩔 수 없지만 다소 딱딱하게 들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이데아를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507b의 한 구절을 비교해 보자.

 

천병희: 우리는 다수의 선한 것과 다수의 아름다운 것이 존재하는 데 그 점에서는 그 밖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며, 우리의 논의에서도 그렇게 구분하고 있네.

 

박종현: 우리는 많은 것(polla)을 아름답’(아름다운 것들 이다’)고 하며, 많은 것을 좋’(좋은 것들 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각각의 것(x)()’(einai)라고 말하고 또한 표현상 구별하네.

 

박종현 선생이 다소 복잡하지만 저렇게 번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리스어 ‘einai’가 가지는 두 용법, 즉 존재적 용법과 서술적 용법을 엄밀히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두 용법의 구분에 대해서는 5권 주57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두 책은 가독성을 위해 엄밀함을 다소 포기한 책과 엄밀함을 위해 가독성을 다소 포기한 책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3.

이러한 차이는 결국 두 사람이 플라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의 저술들이 2천 년 넘는 오랜 세월을 겪고도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심오하고 체계적인 사상 덕분이겠지만, 이런 사상을 극적인 상황 설정, 등장인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 소크라테스의 인간미 넘치는 아이러니 등으로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생동감 있게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이 그리스의 최고 산문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7)

 

천병희 선생은 플라톤을 무엇보다 뛰어난 산문작가로 대한다. 그러므로 천병희 선생의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진행에 독자가 얼마나 빠져들 수 있는가일 테고, 이 점에 있어서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는 별다른 주저함 없이 플라톤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정체와 훌륭한 인간상에 대한 논변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글라우콘이나 아데이만토스가 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반면 박종현 선생은 플라톤을 철학자로 대한다. 그가 제시하는 논변 하나하나와 개념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져볼 것을 요구한다. 이 말이 결국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건 과연 말이 되는지, 왜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이지 등등. 그러니까 스스로 소크라테스의 입장이 되어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새겨보길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책 중 어느 책을 고를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국가>를 읽으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쉽게 말해 교양 수준에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을, 전공 수준에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박종현 선생의 번역본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물론 박종현 선생의 번역본을 손에 쥐었다가 막힌 사람이라면, 먼저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을 읽은 후 다시 시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두 책은 함께 소장하기에 좋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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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3-04-2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해놓으니까 좋은데요...
가끔은 미로 같은 말놀이 속에서 헤매다 빠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천병희 선생의 역은 보다 명료하게 뜻을 전달되어서 좋았어요.

암튼!
파트장님,,,[건축을 위한 철학]은 읽고 있는중이에요..30일까지 리뷰 올릴게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nunc 2013-04-26 03:23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읽기 쉬웠다는 점에서 이번 번역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리뷰 연장은 담당자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