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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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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구경은 재밌는 법이어서 간혹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논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보면 일일이 블로그들을 찾아다니며 논쟁글을 읽어보게 된다. 그러다 어떤 이의 글이 재미있거나 흥미로우면 즐겨찾기에 등록하여 새로 올린 글들을 챙겨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박가분도 그런 식으로 몇 번 찾아보게 된 블로거 중 한명이었지만 굳이 즐겨찾기에 등록하진 않았다. 그의 글이 별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들을 몇 개 읽어보며 느낀 인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마치 물감을 머금은 스펀지 같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하며 그들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끊임없이 흡수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흡수된 생각들을 잘 뒤섞어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빨아들인 그대로를 다시 툭툭 내뱉어버린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난삽해지고 글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저자 소개에 이번 책에서는 문체를 바꾸느라 머리털이 조금 빠짐.”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곤 반가웠다. 이젠 좀 읽기 쉬운 문장이 되었겠구나, 라는 기대도 약간 가졌다. 물론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져서 예전처럼 어려거나 복잡한 문장은 사라졌고 매우 읽기 쉬워졌다. 그러나 이는 문장뿐이었다. 글을 쓰는 기본적인 태도는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300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책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상가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러나 여러 사상가들의 관점이 일베라는 현상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하기 위해 동원되지만, 말 그대로 동원되기만 할 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분석을 누더기 분석이라 부르는데,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틀을 활용하여 짜깁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분석은 저자가 대단한 통찰을 가지고 결론부에서 다양한 분석틀을 하나로 꿰어내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현학에 그치거나 권위에의 오류가 된다.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을 꿰뚫는 하나의 이론과 그런 이론들의 경합이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코에는 이 이론, 꼬리에는 저 이론, 다리에는 그 이론이라는 식의 설명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상가들의 향연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남는 뼈대는 무엇인가. 저자는 친절하게도 요즘 유행하는 세 줄 요약으로 이를 정리한다.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254)

 

먼저 (1)을 보자. 저자는 쌍생아라는 표현으로 일베와 촛불시위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전혀 상반되어 보이는 두 현상이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 그것은 두 현상 모두 몰이상적 이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적 이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국가를 향한 강박으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그것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108) 이렇듯 두 현상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 국가에 대한 요구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쌍생아이다.

 

그러나 둘 사이엔 유의미한 차이 또한 존재한다. 2002, 2008년의 촛불시위나 최근의 안녕들 하십니까가 온라인의 논의를 오프라인 즉 거리로 끌고 나왔다면, 일베는 철저하게 온라인 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인터넷 안에서만 머무는가. 저자는 일베 유저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길거리에 나서서 자신들의 숭고한 대의를 외치는 순간 자기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감추고 그것을 다소 위선적으로 포장해야만 하기 때문”(224~225)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이상을 철저히 몰이상의 형태로 포장하는 이유는 인터넷=광장에서의 이상을 그 바깥의 현실에서 무리하게 실현시키려 할 때 결과적으로 입게 될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236~237)라고 말한다. (2)에서 말하는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에 머무는 이유이다.

 

이처럼 촛불시위와 일베에는 유사성과 차이가 존재한다. 저자는 차이 역시도 유사성의 일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나는 차이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다들 인정하듯이 촛불시위의 요구들은 실현되지 않았고 이명박근혜라고 농담 삼아 부르듯 기존 체제는 굳건히 버티고 연장되고 있다. 이러한 좌절이 어떤 이들에게 환멸을 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반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저자는 (1), (2)에서 보듯이 일베 현상이 이러한 환멸과 반동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촛불의 사상이 일베의 사상으로 굴절된 것 이면에는 촛불시위에서 표출된 대중의 열망이 현실정치에서 좌절된 사정이 있다.”(234)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거리로의 진출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자각하고 그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을 낳기도 하며 함께 거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생생한 연대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각과 연대감이 바로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를 낳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이를 두려워하여 인터넷에서의 자폐적 유희에 머무는 것은 도피에 다름 아니며, 이 도피는 언젠간 끝날 수밖에 없다. 한 때 열광적으로 빠져들었던 게임이 어느 순간 시들해지듯이 인터넷으로의 도피는 언제나 현실로 끌려나오게 되어 있다. 어쨌건 우리 모두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과 같이 환멸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내버려둬, 저러다 말겠지라는 무관심도 나름 그럴듯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의 주장을 거리로 끌고 나올 수 없는 부류라고 한다면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요구를 하나하나 현실화 할 수 있는, 그래서 온 사회에 팽배한 정치적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촛불이든 일베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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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1-0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리뷰네요. 게다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살지 말지도 결정하게 해주시고, 여러 면에서 감사드립니다.

nunc 2014-01-07 01:21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나무에기대어 2015-06-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으로 일베철부지는 사제폭탄을 만들어 투하했다. 정말!!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