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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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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물리학 관련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관심이 있기에 이런저런 과학책들물론 주로 비전공자들을 위한 교양서들을 자주 읽는 편인데, 훌륭한 저자들의 쉬운 설명이 많은 덕에 대부분의 경우 그 세부적 내용은 알 수 없더라도 대략의 그림들, 그러니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이를 탐구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연구가 진행되는지, 현재 어디까지 밝혀져 있고 앞으로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 등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과 관련된 책에서는 이 기대가 무너진다. 마치 너 같은 평범한 인간은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라며 접근을 거부하는 견고한 성과 같다.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물리학 책을 읽는 것은 어디 두고 보자라는 일종의 오기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얽힘의 시대>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약간의 위안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두꺼운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수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이해불가능과 나의 이해불가능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들의 이해불가능이란 실험에 의한 관찰과 이론의 불일치, 복잡하고 엄밀한 수학적 계산에 따른 결과가 실험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실험 결과를 해석해서 내놓은 이론이 이전의 다른 이론과 모순된다거나 하는 높은 수준의 사고 후에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예를 들어 사건에 대한 수학적 기술과 그 사건 자체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285)와 같은이지만, 나야 그저 도대체 뭐라는 거야의 수준일 테니. 왜 이렇게 어려울까?

 

무엇보다 양자역학의 어려움은 이 책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하나는 이전의 고전물리학과는 달리 시각적 모델링이 어렵다는 점이다. 스핀입자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실제로 존재하긴 하지만 시각화는 불가능했다.”(86)는 진술이나,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대한 부분에서 나오는 이번에도 그것은 모형, 설명 또는 이미지가 아니라 금지, 엄격한 규칙, 그리고 불가해성과 함께 등장했다.”(126)는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양자역학을 구성하는 이론들에는 초보적인 수준의 물리학 교과서에 보여주는 공의 궤적이나 태양을 도는 지구처럼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라는 단순한 그래프와 모형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양자역학이 등장하던 시기에 벌어졌던 논란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영감을 준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라네.”(152)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적 관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략적으로 귀납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가설연역적 방법이나 패러다임 이론과 같이 이론 의존적 과학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과학이란 관찰된 개별적 사실들을 통합하는 일반적 이론, 관찰된 개개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론의 탐구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즉 관찰과 이론은 별개의 것이고 이론은 관찰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란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라는 학문이 가지고 있는 명쾌함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모습이 나타는 건, 결국 이렇기 때문이야.’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이런 식의 명쾌함이 무너져버린다.물리학은 초기의 모습에서 많이 바뀌었다. 그때는 현상의 설명을 통해 이 세상의 물리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수학적인 것이 본질로 간주된다. 진리는 공식 속에 있다는 분위기다.”(313) 관찰 자체가 현상에 대한 개입이라면 우리가 탐구해야 할 현상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사고방식, 혹은 인식체계를 극단적으로 수정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결국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물리학은 극도로 추상화된 영역을 다루고 있고 상식적이지 않은 인식체계를 요구하고 있기에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가진 과학자들은 직관적으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는 있어도 다른 이들에게 이를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얽힘의 시대>는 한 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벌어진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을 재구성함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자로서 우리는 이 책에서 재구성된 대화의 참관인이 되어 양자역학이 걸어온 어려움을 바로 옆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깊은 과학적 배경을 가진 뛰어난 과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일반인이야!’ 라는 위안도 준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생생한 대화의 재구성을 통해 독자들이 과학자들의 대화에 직접 참여 혹은 참관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어려움을 우리의 어려움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책의 후반부를 이론물리학자들이 아닌 실험물리학자들에 할애함으로써 실질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또한 그 점이 바로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대화 형식의 구성이 논란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하나의 이론이나 실험 등을 차근차근 따져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저자는 대화의 사이에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긴 하지만, 설명이 대화의 진행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즉 대화를 쫓아가기엔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충분한 배경지식을 갖춘 후 다시 읽는다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저자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이력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물리학과를 졸업아마도 학부인 듯싶다한 후 8년 반 동안 염소 농장에서 젖 짜기와 치즈 만드는 일을 하며 자료를 수집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전문 학자로 살아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구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낮에는 안경알을 깎고 밤에는 철학을 공부했던 스피노자처럼 일상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저자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새삼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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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12-0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네요. 다음기수도 잘 부탁드립니다.

nunc 2012-12-02 13: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12기에도 일개미님의 좋은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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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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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말하기 위해,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선입관, 즉 일종의 양가적 감정을 밝혀야겠다. 나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정신분석학이 엄밀한 과학 혹은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현재로선)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있고 이들에게 정신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이란 것이 대개 자의적이듯, 그 기준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아직 회의적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과연 누구를 치료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인 대리언 리더도 이러한 생각에 약간은 동의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가 책의 서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현대정신의학의 어떤 경향은 일반화된 과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을 위해 병의 증상을 세세하게 분류하고 각각에 따른 통상적인 치료법을 권장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증상에 따른 적절한 병의 진단과 처방은 정신의학이 보편의학으로 진입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과연 그러한 요소를 완비할 수 있을까? 저자가 언급하기도 한 데이비드 로젠한의 쿵 신드롬실험(44~45)이나 늑대인간판계예프 사례(“가장 위대하고 똑똑한 정신의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이 세르게이 판케예프를 관찰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판케예프를 조금씩 다르게 진단했다.”(320))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일한 증상에 대해서도 다른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기에 섣불리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것이 훌륭한 분석가와 그렇지 못한 분석가의 차이 때문일까? 만일 이 때문이라고 한다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다른 의학 분야와 비교해보자. 수술과 같은 특정 기술에서 뛰어난 의사가 있을 수도 있고 장비의 보유 정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리는 대략 어느 병원을 가도 유사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병원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완치율이 몇 퍼센트인가를 따지기보다는 친절하고 환자를 잘 돌봐주는가는 더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면 동일한 현상에 대해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새로운 발견이 보편적으로 확산될 수 있고 이에 대한 검증과 반증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이해하고 있기에 우리는 과학적 성과들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은 이러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란 단지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니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것인가? 몇몇 과격한 이들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신의학에도 나름의 현실적 유용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신의학이란 일종의 문학과 같은 것이어서 현실에 대한 정밀화는 아니지만 인간 삶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고,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그의 나머지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이는 우리가 어린아이를 대할 때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혹은 이전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내적 논리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인간의 무의식이란 것에 대해 의식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태도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정신의학이 현대사회에 기여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주저리주저리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의 세세한 설명을 따라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읽을 때면 늘 경험하는 어떤 비약이 있다. 즉 처음에는 아 그럴듯한데하며 쫄래쫄래 제 길을 따라 쫓아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난 누구? 여긴 어디?’하며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미천한 배경 지식과 집중력의 부족 때문이다. 튼튼한 길잡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더듬어 이 책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대리언 리더는 점차 기계화되고 있는 현대정신의학의 경향을 비판하며 정신분석의 제자리를 되찾고자 시도하는 것 같다. 즉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보고 이를 세분화해서 각각에 대응하는 치료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태도가 광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처방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요즘의 정신의학은 망상처럼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 약물치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망상이나 환각과 같은 “2차 증상은 광기를 구성하는 것이라기보다 광기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29)

 

그렇다면 정신병이란 무엇인가? 정신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해해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 질서를 도입하려고 만들어내는 허구이다.”(86) (자세한 과정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의미, 욕망, 관계가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어떤 이유들(외상이라 불리는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험들?)로 인해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즉 질서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세계에 어떤 어긋남이 생기는 것이다. 이 어긋남을 메우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망상과 같은 증상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구멍이 생길 때, 망상은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메우려고 한다. 망상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치료하려는 시도이다.”(95)

 

이 망상 역시 합리적 체계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 정신병이 일상생활과 충돌하지도 않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적 구조를 가지지만 정신병이 생기지 않은 채 살아간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219) 또한 정신병은 스스로 안정화되기도 한다. 평범한 삶이란 우리가 실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실재를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290) “정신병이 안정화되면, 정신병자는 사회생활을 잘 하면서 직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385) 그러나 이 시한폭탄은 특정한 계기를 만나면 촉발된다. 우리는 의미의 세계에 거주하며, 개인사에서 일어난 사건과 변화는 상징적으로 매개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우리가 점유하는 새 역할을, 우리가 차지하는 새 지위를, 때때로 타자와 가까워지는 순간을 상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상징적 틀에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을 때, 정신병이 촉발될 수 있”(248).

 

그러므로 정신병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치료사는 환자가 똑바로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세계를 인지하는 올바른 방식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393) 오히려 세계의 어긋남과 촉발의 계기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기에 분석가들은 사례마다 환자의 유아기와 가족관계를 꼼꼼하게 탐구해야”(195)하며, 나아가 라캉이 말한 소외된 주체의 비서로서 환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해야 한다.정신병이 촉발되는 환경을 알아내고 과거에 평형상태를 만들어낸 과정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이미 치료작업이다. 작료를 모으려고 설문지를 작성하지 말고 환자와 진지하게 대화를 할 때, 개인사에 대한 감각을 되찾도록 환자를 도울 수 있다.”(399)

 

즉 저자는 현대정신의학의 경향이 약물 등에 의존한 기계적 치료에 지나치게 경도되고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향이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치우침으로써 자칫 우생학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비판하며 환자와의 진지한 대화와 같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고전적 정신분석 방법론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실 이렇게 대강의 정리를 해보았지만, 이런 대충의 그림이 저자의 의도를 얼마나 포착했을지 자신이 없다. 하물며 세부적인 논증까지 따져보기란 만무하다. 물론 군데군데 궁금증이 든 부분도 있지만 내 질문이 제대로 된 질문인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미천한 배경 지식과 집중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일이기에 그저 다른 책들을 더 읽은 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보자고 다짐만 할 뿐이다. 매번 어기기만 하는 이 약속이 이번엔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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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클래식 - 물리학의 원전을 순례하다
이종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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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클래식이라는 제목만 보고 단순히 요 몇 년 새 쏟아져 나온 ‘~ 콘서트‘~ 카페혹은 ‘~ 시트콤등의 중고생 수준의 교양도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또한 고전이라고 해서 갈릴레이나 뉴턴과 같은 까마득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지난 세기, 20세기에 이루어진 현대 물리학의 성과들 중 가히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10개의 원전 논문을 다루고 있는 해설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논문 10편만 잘 챙기면 현대 물리학은 모두 복원할 수 있다.”는 저술 의도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부터 양자 역학, 빅뱅 이론과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초전도 현상, 그리고 초끈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굵직한 기둥 열 개가 소개되어 있다.

 

물론 나와 같은 비전공자는 현대 물리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심리적 두려움이 있다. 이는 아마도 현대 물리학이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학 교과서에서 보았던 가시적 모델이나 실험을 넘어서는 극도로 추상화된 이론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저자가 저술한 탓인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여타의 번역서들에 비해 술술 읽히는 편이고,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해당 논문이 나오게 된 이론적 배경이나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그것이 학계에 끼친 영향들을 읽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지는 그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교양서 수준의 쉬운 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이는 독자의 수준을 과대평가 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다. 물론 저자는 설명 중 어려운 용어나 개념이 나오면 잠시 멈추고 설명한 후 다시 진도를 나가는 식으로 독자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보통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 중 하나의 주제만 소개하는 데에도 두툼한 책 한 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적은 분량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에 교양서나 교과서처럼 비전공자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설명을 제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특정 이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보다는 현대 물리학이 어떤 성취를 이뤄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떤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커다란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세부적 이론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 명의 저자가 일관성을 가지고 서술해나가고 있기에 각 이론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물리학에 대한 약간의 흥미와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으며, 저자가 의도했던 것처럼 일반인과 전문적 지식 사이의 디딤돌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어렵고 잘 이해도 되지 않는 과학 서적들을 왜 굳이 일반인들이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20세기의 물리학은 위대한 발견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서 새로운 과학 혁명을 이끌었으며 이 혁명 과정을 통해 인간 인식의 지평을 놀라우리만큼 넓혀 놓았다.” 현대 과학이 넓혀놓은 인식의 지평에 한걸음 다가서서 나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어려움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과학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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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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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고, 타인 또한 그러하리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마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자신감은 쉽게 무너진다. 마음에 대한 질문은 심장과 콩팥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 궁색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옛사람들이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이고 초월적 개념을 끌어들였던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과학이 대단히 발전했다고 자부하는 현대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뇌가 없다면 마음도 없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뇌의 어느 부분이 언어를 다루고 어느 부분이 기억을 다루는 것처럼 뇌의 특정 부분이 마음을 다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라는 마음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뇌가 가진 특정 기능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즉 언어, 기억, 감정 등 마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고 각 요소들이 뇌의 한 부분과 대응될 수 있겠지만, 그 중 한두 요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 자체가 없다고 부정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그저 마음이란 것이 뇌와 연동된다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 작용의 부산물이라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까? 이조차도 불분명하다. 뇌 작용의 부산물이라고 한다면 뇌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여 마음을 산출하는지 그 메커니즘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뇌를 가진 모든 생명체는 다 마음을 가진 것일까? 개나 고양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초파리나 모기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아니면 마음이란 뇌가 특정한 구조와 기능을 가져야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런 구조와 기능은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야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가고 결국에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자명하다고 여겨졌던 마음이 의문투성이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마음에 대한 여러 과학적 탐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에는 총 열여덟 편의 논문과 인터뷰가 실려 있다. 저자들 모두 마음을 연구하고 있지만 각각의 영역을 보면 매우 다양한 분야에 넓게 펼쳐져있다. 책의 편집자이자 엣지를 설립한 존 브록만의 소개처럼 이 책에서는 첨단을 달리는 이론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신경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언어학자, 행동유전학자, 도덕심리학자가 마음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한다.”(10)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가설과 실험을 토대로 마음에 대한 최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연구들이 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어느 정도 일치된 전망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제각각으로 뻗어나가고 때론 상반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6장에서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의 성선택 이론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이러한 시도를 꺼려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나 스티븐 로즈를 비판한다. 밀러에 의하면 그들은 대중들의 반감으로 연구비가 줄어들까 걱정하여 진화 일반과 동물 일반에 관한 글을 쓰는 한편으로 인간의 마음 주위에 선을 긋고 그 너머는 분석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과학의 영역 바깥에 놔두는 것”(136)을 마음 편해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스티븐 로즈는 자연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으며, 그런 설명들에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160)고 대답하며, 자연에 대한 설명을 단순히 유전자로 환원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인간의 자기 성찰 능력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석이 있다. 13장에서 V. S. 라마찬드란은 인간의 자기 인식 능력이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거울뉴런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나는 자기 인식이 단순히 거울뉴런을 이용하여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나 자신을 보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진화한 거울뉴런 메커니즘은 내면으로 향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268)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니컬러스 험프리는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성찰의 생물학적 기능은, 다시 말해 성찰의 능력이 진화한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도록 도우려는 것이 아니었을까?”(282)

 

이처럼 지식의 최전선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최신의 연구 성과들과 그에 따른 전망에 기초하여 마음에 대한 각자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서로 일치된 의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그것이 서로에 대한 치열한 논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그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결국 독자들이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그림을 그려볼만한 적절한 토대를 제공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은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 책을 활용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양한 이론들을 차근차근 이해해 감으로써 마음에 대안 나름의 만족스런 대답을 제시하는 정식 코스 요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하게 널려있는 여러 메뉴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 게 좋을지 알려주는 시식 코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책을 통해 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찾기보다는 마음이라는 주제에 궁금한 이들이 어떤 분야를 공부하면 좋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흥미를 던져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연구가 흥미를 끌었는데, 그 중 하나는 스타니슬라스 드옌의 궁극적인 검사’(254~257)에 관한 것이다. 드옌은 앞으로 뇌파 검사 실험을 통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지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준다. 만일 이러한 판별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Yes/No와 같은 간단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사람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이나 장기기증과 관련된 논란에서 자기결정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조지프 르두의 정서 연구(16)이다. 르두는 편도체의 암묵 기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이란 애매한 개념, 나아가 인간의 정서가 뇌 신경과학의 차원에서 해명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르두 자신이 인터뷰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구가 정신분석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몇 분야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흥미로웠다.

 

<마음의 과학>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궁금했던 이들에게 훌륭한 보석들이 널려져 있는 장소들을 보여준다. 물론 어떤 보석을 캐낼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의 관심과 흥미에 달려있다. 앞서 열거한 이론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신경생물학, 언어학, 행동유전학, 도덕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의 학자들이 내미는 맛보기 음식들을 하나씩 맛본 후 맘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다만 한 가지, 보석을 캐기 위한 좋은 도구들, 즉 각 글 말미에 참고도서 목록을 추가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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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맨 - 양자역학의 영웅, 파인만
로렌스 크라우스 지음, 김성훈 옮김 / 승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리처드 파인만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기초 과학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매우 척박한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파인만과 관련된 책은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많이 출판되고 있다. 당장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파인만으로 검색해 본다면 절판된 책을 제외해도 스무 권 이상이 검색된다. 왜 그럴까? 물론 무엇보다도 책날개에서 소개하듯 그가 “20세기 물리학계 최고의 지성인 까닭일 테지만, 또한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가 승자독식이 판치는 사회 분위기와 잘 어울려 상품가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파인만만큼 현대의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에 어울리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영민함,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원자폭탄의 개발에 기여한 일, 노벨 물리학상으로 증명된 물리학계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 뿐만 아니라 자물쇠 따기의 장인이자 열정적인 봉고 연주자, 그리고 카사노바 같았던 사생활까지 온갖 이야기꺼리가 넘쳐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전기도 이미 서너 권이 나와 있고 파인만 스스로가 재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도 이미 여러 권 출판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권의 전기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그 의문은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 책은 파인만의 다사다난한 일상적 에피소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물리학이라는 학문 내에서 파인만과 그의 이론이 차지하고 위치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저자 자신이 물리학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파인만을 둘러싸고 있던 과학적 배경과 더불어 파인만이 가졌던 의문과 사고 과정 그리고 해법의 도출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능력이 저자에게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비전공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적절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 이론들이 종횡무진 쏟아져 나와 도대체 뭐가 문제고 뭐가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기, 혹은 어쩌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 친절하게 배경 지식과 이론적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나와 같은 비전공자도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으로 대강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아니 오히려 이 어렴풋함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물리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게 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에 대한 흥미 말고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저 파인만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허접한 머리에 자책만 해야 하는가? 물론 도달할 수 없는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 와중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파인만이 일생토록 견지했던 삶과 과학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저자도 약간의 불만을 담아 여러 번 지적하고 있지만, 파인만은 자신이 스스로 모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이들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마도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고, 이 역시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가졌기에 가능한 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온갖 다양한 정보들이 인터넷이라는 통로를 통해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대에 이러한 태도가 새삼 필요하다고 느낀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기에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신뢰하는 모습도 많거니와, 차근차근 검토해보거나 다른 의견과 대조해보지도 않고 다른 곳에 퍼트리기에 바쁜 세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또한 그는 한 번 갔던 길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가려 하지 않았다.”는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잘 드러나듯, 파인만은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롭고 다양한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어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아니라 지금 자신이 궁금한 것이 해결될 수 있는가였기에 다양한 분야에 거리낌 없이 뛰어들 수 있었다. 오늘날처럼 인정과 성과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그래서 자신의 꿈과 적성보다는 성공가능성과 사회적 지위에 모든 것을 맡기는 풍조 속에서 파인만의 태도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앞서 파인만에 대한 열광이 천재 혹은 영웅의 신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심을 말한 바 있다. 모두에게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이 되길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한 명으로 표본으로 파인만이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인만이 보여주는 삶과 학문의 태도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역시 매력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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