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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 무엇이 과학인가
팀 르윈스 지음, 김경숙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7월
평점 :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 얼핏 쉬워 보인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학문이 과학이며, 철학, 역사, 문학 등과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과학에 어떤 학문이 포함되는냐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은 어떤 학문을 과학에 포함시키거나 배제하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다시 말해 과학이란 이러이러한 활동을 말하기에,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는 이 학문은 과학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때 ‘이러이러한’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어떠한 것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흔한 대답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과학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활동이라는 대답이다. 물론 과학은, 그것이 물질이건 우주건 혹은 생물이건, 대상의 구조를 밝히고, 대상들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며, 대상에 가해지는 외부의 작용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한다. 그러나 과학만 그러한가? 역사 역시 인간 행위와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점성술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며, 모든 종교는 세계의 기원과 미래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점성술, 종교를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이전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무엇이 어떤 학문은 과학으로 만들고 어떤 학문은 과학으로 만들지 않는가.”(26)
이 질문은 과학철학의 유서 깊은 논쟁거리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과학철학 서적들의 절반이 이 논쟁을 중심으로 씌어져 있으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객관적인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보편적인 이론과 법칙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귀납주의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과학 활동이란 누군가 가설을 제시하고 이 가설로부터 연역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맞는지 틀린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포퍼의 반증주의, 그리고 과학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혁명과 같이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쿤의 패러다임 이론까지 과학철학의 주요 논쟁을 쉽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현대 과학철학의 새로운 쟁점 중 하나인 과학적 실재론 논쟁 역시 다루고 있다. 이는 과학철학책들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논쟁이기도 하다. 과학적 실재론이란 과학이 이 세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주장인데, 이처럼 상식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미결정성 이론’이나 ‘비판적 귀납 논증’과 같은 문제제기가 있다는 것이 과학철학의 재미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실재론이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지만, 스스로 반실재론자들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여겨서인지 실재론과 반실재론 논쟁을 그저 하나의 장(章)으로만 처리한다. 그러나 실재론-반실재론은 현대 과학철학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논쟁이고, 반실재론자의 주장들도 흥미로운 것들이 많기에 다른 책들처럼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사변적 논쟁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과학철학 다루는 논쟁들 없이도 과학자들은 열심히 과학 활동을 하고 있고, 우리도 그들의 결실을 얼마든지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지적처럼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15) 것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부(部)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앞서 다룬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면, 2부는 부의 제목처럼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다룬다. ‘과학의 윤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2부는 전공자들을 위해 씌어진 많은 과학철학 입문서들이 다루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2부에서는 철학과 과학이 어떻게 서로 상호 협력하고 상호 보완될 수 있는지를 다룸으로써 “과학철학이 우리 인류에게 있어 중요한 주제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18)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가 첫째로 드는 예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문제이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며, 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는 과학적 실재론과도 일치하는 것 같다. 또한 리센코의 사례에서 보듯, 편향된 가치관을 내재한 과학 연구가 얼마나 큰 폐해를 야기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정책이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데도,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여 내버려둘 것인가. 저자는 적절하고 빠른 대처를 요하는 일에 대한 ‘사전 예방 원칙’의 중요성을 사례를 들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과학의 가치편향성이 반드시 안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인간의 이타성,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으며, 무엇을 말해주지 못하는지 꼼꼼하게 검토한다. 이는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흔히 ‘최근 과학 연구에 따르면 ~라고 밝혀졌다.’라고 말하며,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님을 섣불리 선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객관적 사실이겠지만, 객관적 사실이 함축하는 의미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철학이 의미를 가진다.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되새겨 봄직하다.
“자기 이해를 돕는데 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싶다면 과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 페이지를 읽어내려간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 도덕적 자화상, 그리고 인간 본질에 관련되어 이 연구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을 할 때는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이 혼자서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