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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 에세이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
과학
에세이 혹은 과학 칼럼이라 이름 붙은 글이 가져야 할 미덕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무엇보다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하게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은
그 어떤 학분 분과보다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읽을 수 있는 인문 사회 분야와 달리 과학 논문과 같은 글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쉬운 언어로 번역해주는 번역가가 절실한 분야가 바로 과학이고,
과학
에세이스트들은 이런 번역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널리 알려진 상식을 재확인해주거나 잘못된 통념을 정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과학은 인간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별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우리가
참이라 믿고 있는 앎의 대부분이 과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을 뒷받침해주거나 정정해주는 일은 과학 에세이가 맡아야 할 중요한
임무이다.
셋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소개하고 그것이 우리 혹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론
몇몇 과학자들의 지적 희열에 불과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발견은 공공재처럼 널리 활용되고 변형되어 인간과 인간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최신의 과학적 성과들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성찰하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이
세 기준에 동의한다면,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는
매우 만족스런 선택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50편의
과학 에세이는 이 세 기준을 적절히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첫째와
둘째 기준에선 매우 훌륭하며,
셋째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저자가 한정된 분량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2.
이
책에 실린 50편의
글은 모두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된 글이다.
과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신문에 칼럼 형식으로 연재된 글이기에,
보통의
대중 언론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의 수준,
즉
중고생 정도의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씌어져 있다.
물론
양자역학과 관련된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반물질과
반중력>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누구나 별 무리 없이 글을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톰과
제리>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종편의 건강 프로그램과 같이 익숙한 일상의 사례에서부터 천자문의 작자 주흥사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백발이나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비교와 같은 잘 알려진 역사적 이야기,
그리고
모 우유회사에서 비롯된 갑/을
논란과 같은 시사적 문제까지,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적절한 도입으로 글을 시작하여 자연스레 과학 논문의 연구 결과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서도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3.
그러나
쉽고 친절하게 씌어졌다고 해서 단순히 가벼운 책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이나 통념에 대한 지지나 반박을 최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꼼꼼히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을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로 설명하고 있는 <새
친구를 사귀면 옛 친구와 멀어지는 이유>,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빨리 센다는 ‘속설’을
실험 결과로 보여주고 있는 <스트레스와
백발>,
산책이
머리를 맑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창의력을
높이고 싶다면 걸으세요>
같은
글은 우리는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남녀의
성별 이분법이 그다지 타당성 없다는 <정말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을까?>나
‘새대가리’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을 수 있다는 <동물도
미래를 꿈꾸나>,
인간이
직립 보행으로 인해 자유롭게 손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에 문제 제기하는 <도구
쓰는 손의 진화는 직립보행의 결과일까?>
같은
글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 중 어떤 것들은 매우 허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음을 보여준다.
덧붙여
<날씬해야
오래 산다는 과학상식 믿어도 되나>,
<비타민
영양제 필요성 논란,
여전히
진행 중>과
같이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상식에 대한 균형 있고 신중한 소개도 있다.
4.
이
책은 가장 큰 미덕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대부분 5년
이내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빠르면
주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과학 저널들을 하나하나 검색하며 칼럼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논문들을 골라내고 꼼꼼히 읽어나가는 저자의 성실한 노력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몇몇
글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논의로 나아가려 시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더 많이 구축해야 한다.”(25)는
점을 강조하거나,
“언젠가는
‘물고기가
산 채로 회를 떠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제정될지도 모를 일이다.”(110)라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재조합DNA기술과
인슐린의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글에서 “유전공학이나
DNA조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183)라며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 재고를 요청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최신 논문의 소개에 급급한 나머지 그러한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즉
독자들에게 어떤 고민거리를 던져주지 못하고 성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이는
아마도 인터넷 전문 매체의 특성상 스크롤의 압박에 대한 부담감,
즉
일정한 분량 안에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만일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긴 호흡을 글을 썼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과학 에세이가 가져야 할 미덕을 적절히 보유하고 있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의 과학 서적이다.
과학에
흥미 있는 이에게 기꺼이 추천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