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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
자크 엘루 지음, 박광덕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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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컴퓨터,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 기술들을 보면서 기술이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이나 스마트폰 중독과 같은 현상들에서 보여지 듯,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또한 분명하기에 기술에 대한 성찰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적, 인간적 또는 정신적 사실도 현대사회에 있어 ‘기술’이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처럼 이해되지 않은 것도 없다.”는 자크 엘륄(출판사에서는 ‘자크 엘루’라고 했지만 엘륄이 더 적절하다)의 지적처럼 기술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기술이란 것이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역사>는 이러한 친숙함과 당연함을 재고해보길 요구한다.
엘륄은 <기술의 역사>의 영역판 앞에 실린 ‘독자들을 위한 노트’에서 현대 기술을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어서) 인간 활동의 전 분야에서 합리적으로 도달되고 절대적 효율성을 갖는 방법들의 총체”로 정의한다. 즉 그는 기술이 창조하는 세계가 인위적인 세계이며, 그 과정은 체계화, 노동 분업, 표준형의 설정, 생산 규범 등과 같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종래의 기술관을 그대로 이어받긴 하지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합리적 과정의 기준이란 수치적 계산에 기초하여 ‘유일한 최고의 수단’을 선택하는 절대적 효율성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엘륄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총체성으로서의 기술’이다. 그는 “내가 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은 하나의 결과를 얻기 위한 기계나 기술 또는 이러저러한 절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각각의 기술들이 독립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점은 그가 이야기하는 기술의 형태 또는 기술의 분야를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엘륄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기계적 기술과 지능적 기술(카드색인표, 도서관 등)의 형태 외에도 현대 기술에는 세 가지 주요한 분야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경제 기술’로, 이는 전적으로 생산에 종속되며 노동의 조직에서부터 경제 계획에 까지 걸쳐 있다. 둘째는 ‘조직 기술’인데, 이는 다수의 대중과 관련이 있으며 상업적 또는 산업적 분야, 법적 분야, 국가와 행정부, 경찰력에도 응용된다. 마지막으로 ‘인간 기술’이 있는데, 이것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의학과 유전학에서부터 교육 기술, 작업 지도, 노동 기술, 오락 기술, 스포츠, 프로파간다 분야에까지 이른다. 즉 그는 모든 기술적 수단들이 하나의 ‘단일한 현상으로서의 기술’ 아래 놓인다고 보고 있으며, 이 ‘단일한 현상으로서의 기술’은 인간의 삶과 활동을 지배하는 “하나의 새롭고 특수한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총체성으로서의 기술, 즉 현대 기술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인가? 엘륄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현대 기술의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① 기술 선택의 자동성(Automatism of Technical Choice) : 기술은 ‘자기 지시적(self-directing)’이어서 효율성이라는 유일한 기준에 의해 인도될 뿐이며, 인간의 선택은 기술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② 자기증식성(Self-augmentation) : 기술은 ‘자기증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기술의 성장은 자동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 접근은 하나의 기술적 해결을 낳지만, 이 해결은 다시 더 많은 기술적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을 낳게 된다.
③ 단일성(Monism) : 모든 개별적 기술을 포함하는 기술 현상은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며, 이 기술 현상은 최우선적으로 효율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어디에서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나타낸다. 게다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을 보완, 강화하기 때문에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식으로 분리될 수 없다.
④ 기술의 결합 필요성(The Necessary Linking Together of Techniques) : 기술들은 ‘서로 결합되어’ 발전해 간다. 예를 들어 경제 기술은 정치 기술을 요구하고, 이것은 다시 프로파간다 기술을 요구하는 식이다.
⑤ 기술의 보편성(Technical Universalism) : 기술은 ‘지리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보편인 것이 되었다. 기술이 지리적으로 보편적이라 함은 기술이 이제 전지구적인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며, 질적으로 보편적이 되었다는 것은 기술 체계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기술의 마지막 특징인 ‘기술의 자율성’(The Autonomy of Technique)으로 귀결된다. 즉 위에 서술한 다섯 가지의 특징들로 인해 기술은 경제, 정치 같은 외적 요인들과 관련하여 자율적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경제나 정치, 사회 중 어느 것도 기술발전을 결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 반대로 기술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야기하고 결정하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외부적인 필요성이 더 이상 기술을 결정짓지 못한다. 기술 자신의 내부적인 필요성이 결정인자인 것이다. 기술은 그 자신의 특별한 법칙 및 결정력을 지닌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가 되었다.” 더 나아가 “기술의 힘과 자율성은 너무나 잘 확보되어 있어 기술 그 자체가 무엇이 도덕적인 것인지의 판단기준이 되었고 새로운 도덕을 만드는 창조자가 되었다. 따라서 기술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 역할을 하게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기술의 자율성은 결국 비관적 결정론이 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기술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기술의 목적과 특성, 자율성 및 기술적 규칙의 총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소망과 열망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에 씌어진 다른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기술의 과정을 변화시키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는 인간 역사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게임은 끝났다. 컴퓨터에 힘입어 기술 체계는 인간 의지의 통제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나 버렸다. … 우리 인간은 더 이상 기술 체계의 속도와 방향을 주재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매개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엘륄의 <기술의 역사>는 짐짓 과장되고 단정적인 어조로 비관적인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더욱 비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엘륄이 그려내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스마트폰을 구입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이 최신의 기술이기 때문에 사야한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이와 같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광과 효율성에 대한 종속이 그 어느 곳보다 뜨거운 우리 사회에서 엘륄의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물론 그가 기술 사회의 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는 ‘기술’ 혹은 ‘기술 현상’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며, 또한 실증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논증하기보다는 직관적 이해에 기대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고 있는 직관은 첨단 기술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술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며, 기술 사회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