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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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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이제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놓아도 쌀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꽃이 피지 않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다<침묵의 봄>이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온 터라 꽃과 새들의 변화보다는 그저 따사로운 햇볕이나 가벼워진 옷차림 정도로만 봄을 인지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이처럼 도시에서의 일상에 익숙해져 있기에 더더욱 봄의 침묵에 무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들의 무감각에 경종을 울리는 레이첼 카슨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봄을 침묵하게 하는가? 카슨은 화학 살충제의 무분별한 남용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화학 살충제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땅 속 지하수에서부터 대지와 강물, 그리고 하늘에 이르기까지 온 과정을 차근차근 추적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멸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들로 인한 환경오염”(32)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화학 살충제가 왜 문제인가? 먼저 화학 살충제는 태생부터 비윤리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화학 살충제 산업이 탄생하고 번성하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기간 중 화학전에 사용할 약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몇 종류의 물질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약제를 시험하는 데 곤충류가 자주 사용된 때문이었다.”(40)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화학 약품이 전쟁 후 살충제 산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물론 군사적 목적의 기술이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화학 살충제는 자연 상태에 계속 잔류하고 축적되어 인간 및 여러 생물들에게 다양하고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오늘날 잔류 농약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찾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기나긴 먹이사슬의 연쇄를 따라 북극곰과 에스키모에까지 DDT와 같은 살충제의 잔류물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단지 살충제 살포의 위험성이 한 시기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이 책의 대부분은 화학 살충제가 야기한 부정적 현실을 열거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즉 농작물과 숲이 말라버리고, 새들과 물고기가 죽어 땅 위에 뒹굴고 물 위에 떠오르고,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이 인간에게 발생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화학 살충제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 보이나 실질적 방제 효과는 매우 떨어진다. 왜냐하면 해충뿐만 아니라 익충이나 다른 생물에게까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여 예상치 못했던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고, 그뿐 아니라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개체들이 금세 새로 생겨나기 때문에 점점 더 강력하고 점점 더 많은 양의 살충제를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귀결된다. 이러한 내성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내성이란 수많은 세대를 거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100년 동안 세대가 평균 세 번 바뀐다. 하지만 곤충의 경우에는 며칠 또는 몇 주 단위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303) 그러므로 인간은 곤충의 적응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원하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들에게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균형이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불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균형이란 유동적이고 계속 변화하며 조절과 조정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인간 역시 자연이 이루는 균형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씩 인간이 이런 상태를 자의적으로 바꾸곤 한다. 그 결과 인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문제가 생긴다.”(275)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충제의 무분별한 남용은 자연의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한다.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는 그 주변의 역사와 풍토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연 식생은 그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88) 그러나 살충제를 통한 방제 사업은 자연 식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특정 해충의 박멸이라는 목적에 눈이 먼 나머지 다른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해결책에만 급급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살충제와 같은 화학적 방제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해충의 위험으로 벗어나 지금과 같은 생산성을 유지할 대안은 있는가?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는 자연이 이미 대면한 것이고 또 자연은 그런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결했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열심히 따라할 정도로 영리하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107)

 

저자는 현재의 방식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안전하고 지속적인 방법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방제가 바로 그것이다. 생물학적 방제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천적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려 해충의 수를 자연스레 감소시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해충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두 경우 모두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해충을 줄일 수 있고, 화학 살충제가 야기하는 여러 심각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왜 생물학적 방제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먼저 이러한 방법은 살충제와 달리 가시적으로 분명하게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그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 방제법은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식이기에 장기간 천천히 그 효과를 발휘한다. 눈에 띄는 효과를 선호하는 인간의 조급함이 화학 방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해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우수한 과학자들이 화학적 방제 연구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생물학적 방제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롭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 그 생명체의 밀고 밀리는 관계, 전진과 후퇴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갈 때, 곤충과 인간이 이해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325)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오늘날과 같이 살충제 사용이 필수불가결하게 된 데에는 현대적 방식의 대규모 농업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지적하고 있듯이 곤충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농업이 본격화하고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 재배를 선호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 특정 곤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34) 대규모 단일 작물의 재배가 지배적인 방식이 되다보니 특정한 해충의 피해가 대규모로 집중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규모, 다품종 농업 생산과 같은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형학자인 데이비드 몽고메리도 <>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토양 파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산업화된 기술 집약적 영농 방식을 버리고 소규모 노동 집약적인 영농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랙터와 쟁기로 땅을 파헤치는 방식을 버리고 무경운 농법을 시행해야 하며, 화학비료에 기댄 단일 경작 방식에서 벗어나 돌려짓기와 똥거름 주기 등을 통해 흙의 비옥함이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인류에게 필요한 적절한 양의 식량을 제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듯이 현재 생산되는 농산물의 상당수가 소와 돼지, 닭과 같은 육류 식품 생산을 위한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육류 섭취를 줄인다면 대규모 사료용 농작물에 대한 수요도 감소할 것이고, 이로 인해 산업화된 기술 집약적 농업의 필요성도 점차 감소하지 않을까. 더 나은 환경을 위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생태학의 고전이라 칭해지는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데에도 이 책이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반세기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이 나아졌을까 자문해 본다면 그리 밝은 대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살충제의 사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유전자변형식품과 같이 아직 그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도 있는 농작물도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끊이지 않는 개발의 논리가 강과 산과 바다와 공기를 계속 오염시키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한순간의 편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꽃과 새가 우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란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후세에 물려주길 원한다면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전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는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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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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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을 자랑하곤 하지만우리나라는 여전히 인권 후진국이다당장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자임신 또는 출산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를 청소년 임신과 동성애를 적극 장려한다고 해석하여 극렬히 반대하거나체벌을 비롯한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구절을 보곤 체벌을 금지하면 교육이 엉망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학생의 인권을 적극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교육부가 이를 재의하라고 요구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존엄하며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마치 별세계의 얘기처럼 들린다.

 

이처럼 인권인식 혹은 인권감수성이 허약한 우리 현실에서 인권과 관련된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나아가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는 강렬한 제목을 달고 나왔다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해 그냥 지나치고 있는 부당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안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인권인식 혹은 인권감수성을 갖기 위해선 상당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왜냐하면 인권이란 항상 소수자의 인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다수자의 입장에선 일상적 상황에서 소수자가 느끼는 부당함을 인식하기 어렵다얼마 전 인터넷과 SNS를 뜨겁게 달궜던 코피 사건도 일상적으로 나누는 남성들의 성적 농담이 여성에게 어떤 불쾌감을 주는지 인식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여기서 소수자란 단순히 수적으로 적음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즉 사회적 약자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부당한 현실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고쳐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그러나 아쉽게도 책은 제목과 달리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2048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선전책자(팸플릿). ‘2048 프로젝트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100년째 되는 해인2048년까지 세계인권조약을 체결하여 세계 모든 지역에 적용 가능한 세계권리장전을 수립하려는 운동이다이 운동이 왜 필요한가저자는 세계인권선언 이후 각종 국제 규약이 비준되고 많은 국가들이 규약에 서명했지만, “규약들은 예외 사항이 가득했고거의 모든 국가의 법정에서 아무런 강제력을 갖지 못했기에그 결과 인권 침해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혹은 경제적 영향력이 부족하다.”(38)고 지적한다그러므로 현실적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선 선언의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강제력을 가진 조약의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올라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언론의 자유종교의 자유결핍으로부터의 자유환경에 대한 자유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다섯 가지 핵심 의제를 설정하고전세계가 동의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을 작성하기 위해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좋은 얘기다그러나 매우 공허하다왜 그런가앞서 지적했듯이 인권의식의 향상은 소수자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영화 관람과 같은 일상적 오락 활동을 생각해보자당신이 만일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면 어떨까울퉁불퉁하고 턱진 보도와 불편한 교통수단그리고 장애인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건물 등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상당하다혹은 당신이 청각장애인이라면 어떨까한국 영화에 자막을 제공하는 극장이 거의 없기에 우리 영화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소수자들이 느끼는 부당함을 인식하는 것그래서 그 부당한 처사에 분노하는 것이것이 바로 인권 의식의 각성을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문제들을 마치 당연한 상식인양 자세히 지적하지 않고 지나간다물론 저자의 나라(미국)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상식일 수 있다하지만 저자의 목표처럼 전세계의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인권 취약 국가들의 인권 의식 향상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이를 위해 인권이란 무엇이고 왜 보장되어야 하는지인권에 대한 무지가 왜 위험한지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권 침해의 사례는 무엇인지 등등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그래야만 책 제목처럼 부당한 현실을 자각하고 분노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현실 인식도 매우 단순하다저자는 현재의 기술 발전즉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이 2048년 세계인권조약의 체결을 이끌 탄탄한 밑거름이라고 강조한다저자의 이행 방법인 함께 모여함께 생각하고함께 작성하여함께 결정하자를 실현할 물적 토대가 갖춰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단 소셜 네트워크란 전세계적 현상이 아니다세계 인구의 20%가 절대빈곤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전세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모두가 함께 모여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토론하자고 하지만 정작 결핍의 처지에 놓인 이들은 정작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다섯 가지 의제의 동시 실현보다는 더 시급하고 절박한 것을 중심으로 우선순위의 설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우선순위의 설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세계권리조약의 체결 자체가 현실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핵확산금지조약이나 여러 세계무역협정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조항의 구체적 내용이 강대국이나 거대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또 갈등이 발생할 경우에도 그들의 발언권이 더 큰 힘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다시 말해 이미 경제적정치적 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불균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공평한 조약의 수립과 이행은 어려운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특히 인권과 같이 소수자 중심의 사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세계권리조약이란 현실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라기보다는 현실 변화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자 그러한 권리를 갖지 못한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그러한 권리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 것임을 보여준다세계인권선언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미국의 권리장전은 모두 지배질서에 대항한 혁명의 산물이었다결국 현실 변혁에 대한 적극적 의지 없이 보편적 인권의 획득은 신기루일 뿐이다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계획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가 강화된 자본주의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자본주의와 공공성이 얼마나 어울리기 힘든 단어인지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잘 보여주고 있으며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수정 없이 공공 서비스가 강화될 리 없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상식이다.

 

이처럼 현실적 불평등에 대한 분명한 변혁 의지나 계획 없이 단지 100주년이라는 상징적 시기에 맞춰 이상적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just-so story),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세계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자는 저자의 목표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목표이다단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위해 함께 모여 토론하자와 같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이를 토대로 구체적 이행 계획이 필요하며그것이 현존하는 질서를 파괴해야 가능한 것이라면 이를 위한 적극적 실천 의지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헌법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변호사와 학생의 사례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실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의 사람들이 세계권리장전에 대해 배우고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그것은 문화의 기본 구조가 되고 존중받을 것이다.”(31) 나는 이 구절을 보고 한 가지 상상을 한다학교나 선생님의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당했을 때 가방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꺼내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학생의 모습을그러나 이는 대학서열화나 입시지옥과 같은 학벌 차별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학생인권조례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학생인권조례가 학생 문화의 기본의 구조가 되기 위해선 학벌 차별 철폐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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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너무 춥다. 빨리 날씨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1. <집단 기억의 파괴>,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알마

 

  전쟁과 개발. 아마도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주범은 바로 이 두 가지일 것이다. 전쟁의 상흔과 위험이 여전히 잔존하고, 개발이라는 가치가 거의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에서 집단 기억의 저장고이자 보고인 문화유적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관심 도서로 이 책을 고른다. 물론 이 책은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의도적 파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도적 파괴보다는 무의식적 파괴가 더 큰 문제인 듯 싶지만, 두 경우 모두 과거, 역사, 집단 기억에 대한 성찰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이 책이 제공하는 논거가 성찰을 위한 좋은 실마리가 되리라 기대한다.

 

 

 

 

 

  2. <루이비통이 된 푸코?>, 프랑수와 퀴세 지음, 문강형준/박소영/유충현 옮김, 난장

 

  한 때 유행처럼 번졌다, 사그라들다, 다시 부활하곤 하는 프랑스 철학 및 이론에 대한 탐구서이다. 무엇보다 책소개에 담긴 "퀴세는 프랑스 이론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됐느냐를 묻는다."라는 문제의식에 눈길이 간다. 프랑스 철학 및 이론에 대한 열광과 혐오가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외국의 이론이 내용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적용을 이끌어내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 '내용'이 아니라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이 책에 관심이 간다.

 

 

 

 

 

 

  3. <현대 사상의 스펙트럼>, 페리 앤더슨 지음, 안효상/이승우 옮김, 길

 

  서구 맑스주의에 대한 그의 꼼꼼한 정리를 기억하고 있기에, 페리 앤더슨이라는 저자에 대한 신뢰가 있다. 더구나 정치, 철학, 역사학과 더불어 '부채'라는 낯익은 주제까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과 함께 크로스체크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4.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에두아르도 푼셋/린 마굴리스 엮음, 김선희 옮김, 이루

 

  책의 부제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 37인이 생각하는 마음, 생명 그리고 우주." 목차만 잠깐 훑어봐도 저명한 저자들과 현대 과학의 중심 주제들이 총망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이란 항상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무한히 신뢰할만한 것이란 이중적 인식이 있다. 이 모순된 인식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과학책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 안내서 역할을 할만한 책.

 

 

 

 

 

 

  5. <벌거벗은 유전자>, 미샤 앵그리스트 지음, 이형진 옮김, 동아사이언스

 

  일단 책 제목에 '유전자'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눈여겨 보는 편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가 흥미를 더한다. " 누구나 늦기 전에 한 번쯤 제대로 보고 고민해야 할 개인 게놈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과 오해를 걷어내며 그 쟁점들을 보기 좋게 정리해 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 건 유전자에 대한 연구와 그 결과물은 인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지만, 그 영향이 긍정적일지 아니면 부정적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손이 얼어 마감날짜를 놓쳤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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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GPE 총서 1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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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전세계가 주목했던 사건 중 하나는 바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였다.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지배에 대한 불만이 월스트리트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이 시위는 작년 9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전세계로 번져나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여의도를 점령하라라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5개월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위는 최근 강경한 진압과 추워진 날씨로 인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가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불거져 나오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이 시위가 겨냥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이는 시위대가 내놓은 대표적 구호인 우리는 99%(We are 99%)”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99%,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 즉 사회적 양극화는 계속 극대화되고 있는데 이를 적절히 교정할만한 변변한 장치가 하나도 없는 현실일 것이다.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실질임금은 점차 하락하여 평범한 시민들의 삶은 계속 괴로워져가고 있는데,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 쓰러져가는 기업을 살려주었더니 그들은 그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하고 있고,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하나도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묵묵히 쳐다보고 있기란 힘든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한미 FTA의 비준으로 인해 앞으로 점차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사회에 확산된다면 우리 역시 동일한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작년 말 한 경제신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가계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제고통지수2011년에 역대 3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작년보다 높았던 두 번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좀체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초 한 해 전망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역시 중산층 붕괴로 인해 신빈곤층이 확산되리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진심이건 아니건 혹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떠하건 간에 복지를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복지 정책을 잘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논쟁에서 경험한 바 있듯이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그 과정에서 우리 정치사의 단골 메뉴인 이념 논쟁도 뜨겁게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 결과 과거 여러 많은 개혁 법안과 민생 법안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 누더기가 되거나 책상 서랍에 고이 잠들어 있다 폐기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과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이 복합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그포르스의 정치경제학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이 빛을 발한다.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사람은 대공황 이후의 경제 위기와 좌파/우파 간의 갈등이라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스웨덴의 복지 체제를 안착시킨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다. 이 책은 비그포르스의 사상을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인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이념 지향과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실천 방식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과 그러한 사회에 이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왜 잠정적유토피아인가? 비그포르스가 보기에 많은 사상가들이 현실의 모순과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이상향들을 제시해 왔지만, 그러한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 시도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은 적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는 결코 윤리적 열망과 희망 사항만으로 무책임하게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마음속에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른다고 해도, 정말로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 그리고 우리가 애초에 열망한 바를 정말로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는지는 직접 시도해봐야 알 수 있다.”(335) 그는 과학에서 작업가설을 설정하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가설을 폐기, 수정, 보완, 재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개혁도 시시각각 변화되는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는 항상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점진주의적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비그포르스는 사회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선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밑그림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부분을 보수하는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는 것이다.비그포르스가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핵심 가치로 꼽은 것들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 경제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통한 더 효율적이고 증대된 생산 등이었다.”(328) 이처럼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확고한 방향 설정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의 실험과 검증, 이 두 가지의 결합이 바로 잠정적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 살림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 성원들 전체에게 인간적 존엄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삶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산업 생산이 가장 합리적 · 효율적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안배하는 모든 장치와 제도와 정책을 총칭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상업 기술과 사회적 상태를 감안해 시장 경제에서 국유 기업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제 형태와 제도 정책을 배합”(363)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앞서 소개한 잠정적 유토피아를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경제적 실험들의 조합이 바로 나라 살림의 계획인 것이다. 저자는 비그포르스가 이와 같은 두 축을 바탕으로 1930년대 스웨덴이 처한 상황, 즉 대공황 직후의 경제적 어려움과 좌우간의 갈등의 심화라는 난국을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책은 비그포르스가 살았던 당시 스웨덴의 구체적 상황과 그 상황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그의 방식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1930년대의 스웨덴과 2012년의 한국은 겉보기엔 대략 유사해 보이지만 세세한 구체적 상황과 조건은 매우 다를 것이기에 당시 스웨덴에 유효했던 방식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고 있고 그러한 사회가 스웨덴이 이룩해놓은 모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 나아가 평등,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불안에서의 해방과 같은 비그포르스의 전망에 동의한다면 이를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순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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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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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한국의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해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근대의 탄생이 아니고 인민의 탄생인가? 그 이유는 바로 근대가 인민 개념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통치 대상으로서의 인민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인민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가 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인민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사회에서 근대의 형성과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체로서의 인민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는 기존의 인민, 통치 대상으로서의 인민이 처해 있던 조건과 그 조건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건국 이래로 조선은 유교국가로서 매우 강고한 통치 구조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이 통치 구조의 세 축은 성리학적 우주관과 조상 숭배를 통치 이념과 결부시킨 종교적 의례’, 신분 직역과 부세 의무를 강제하는 향촌 지배’, 지배 이념의 도덕과 윤리를 재생산하는 교육’”(35)이다. 이 종교, 정치, 지식이라는 세 축이 유교라는 통치 이념을 중심으로 매우 강력하게 결합되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세계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왕조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인민을 지배하고 있던 각각의 축에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먼저 종교의 영역에서는 천주교의 내세 사상과 평등 사상의 유입으로 인해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하게 된다. 지식의 영역에서는 언문 문학의 확산으로 평민들 사이에서도 해학과 풍자, 내적 성찰 등과 같은 주체적 의식이 싹트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치의 영역에서는 경제적 수취의 심화로 인해 이에 대항하는 민란과 같은 저항 의식이 표출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조선을 강력하게 지탱해 온 통치구조의 세 축이 점차 와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균열을 추동한 동인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영역이고 각각 균열이 발생하고 심화된 시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세 축이 와해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한글로 수렴될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표음 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인민은 감정, 정서, 비판 의식 등 내면의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표현된 소리즉 언문 문서가 다시 인민에게 새로운 의식 세계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135) 저자가 보기에 이는 하나의 역설인데, 왜냐하면 한글 창제의 목적이 바로 유교 이념을 백성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통치구조의 강화를 위해 창제된 한글이 평민들의 담론장 형성에 기여하여 기존의 통치구조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글의 사용과 확산은 한자에 기반을 둔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 사상과 이로부터 비롯된 통치구조인 종교, 지식, 정치 체제와는 사뭇 다른 인식적 공간을 열어젖혔고, 이 공간을 통해 주체적 인민이 탄생하면서 근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논증을 입증하기 위한 각종 사료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책 말미에 자그마치 아홉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참고문헌의 목록은, 저자가 서론에서 밝힌 바 있듯 미시사적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종합하여 거시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로선 이 책의 세부 논증의 타당성을 검토할 능력은 없기에, 평범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자.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의문은 왜 근대인가?’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20세기 한국의 기원을 알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선행하는 근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사회에 두드러지는 어떤 현상이 근대로부터 기원하고 있고 그래서 근대를 알아야만 그 현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만 가지고선 여기에 담긴 탐구가 어떻게 현재와 연관을 가질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 책 자체가 근대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는 원대한 여정의 출발점이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이 단순히 특정 시대의 시대상을 서술하는 역사서로 계획된 것이 아니며, 또한 서양 이론에 기댄 연구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자적 사회과학의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기에 담겨 있는 연구들이 한국 사회의 현재를 해명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 접점들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집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그땐 그랬군’, ‘그런 일이 있었군.’ 식의 감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책의 구성에서도 다소 급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눈에 띄게 자주 보이는 오탈자는 차치하고서라도, 동일한 이론적 내용이 여러 번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심지어 똑같은 문장이 다른 부분에서 중복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이론적 내용의 진척 없이 사례들만 반복적으로 나열하는 인상을 준다. 물론 자신이 연구한 풍부한 사료들을 저술에 충분히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했던 얘기 또 하네라는 느낌을 주어 논의 전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게 된다. 논문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저술이라면 보다 압축적으로 정리정돈 하여 독자의 집중력을 최대화 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이처럼 책을 읽고 나서 몇 가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저자의 문제의식과 지적 성실성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연구의 누적이 우리의 지적 토양을 탄탄하게 다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탄생을 통해 근대의 전개 양상을 고찰할 것이라는 후속 연구도 기꺼이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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