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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ㅣ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평점 :
1.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오프닝 시퀀스는 매우 인상적이다. (혹시 못보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youtu.be/zqYnSuLLIkE) 한 대학의 토론회에 참여한 민주당, 공화당, 그리고 주인공인 뉴스앵커에게 한 여대생이 질문을 던진다. “왜 미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라고 생각하시나요?” 민주당측 인사는 “다양성과 기회”라고 답하고, 공화당측 인사는 “자유 그리고 자유”라고 답한다.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의 인기를 위해 중립인 척 빠져나가려던 주인공은 진솔한 답변을 요구하는 사회자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본심을 털어놓는다. 암울한 통계치들을 나열하며 미국은 결코 위대한 국가가 아님을 실토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잘 하는 건 딱 세 가지밖에 없어. 인구당 감옥에 가는 비율, 천사가 진짜라고 믿는 성인 비율, 그리고 국가방위비.”
가끔 저 장면의 배경을 우리나라로 옮겨 놓으면 주인공의 대사에 무엇이 들어가게 될까 생각해본다. 교통사고율? 자살률? 연간 노동시간? 얼마 전 여기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바로 저임금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최고라는 소식. 기사는 IMF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가 꾸준히 진행됨으로써 임금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비정규직의 증가,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확대, 대기업 일자리의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들도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이다. 언제부턴가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와 같은 신빈곤층에 대한 얘기가 언론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올해 치러질 대선을 의식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러저러한 복지 정책에 대한 얘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그저 올해 4,580원이던 최저임금이 내년에는 4,860원으로 인상되었다는 소식뿐이다. 법정노동시간인 주당 40시간으로 계산하다면 한 달에 80만원도 채 안 되는 금액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 돈으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용을 약 144만원(2011년 추정)으로 산정하는 정부입장에서는 부모 2인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 매달 20만원은 저축할 수 있다고 큰소리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인이라면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잘 알고 있다.
2.
저자인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식을 폭로하기 위해 실험을 실행한다. 과연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11) 실험 결과는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다.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 대형마트 매장 판매원 등으로 지역과 직군을 바꿔가며 실험을 하지만, 시작하기 전 자신이 세웠던 규칙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계획했던 기간(한 달)을 채우지도 못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실패하게 된 과정과 그를 통해 깨달은 내용을 솔직하게 기록해 나간다.
저자가 이 실험과 실패를 통해 깨닫게 된 내용의 핵심은 각 장의 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시간당 7~8달러정도에 불과한 임금으로는 집세를 지불하기 어렵다. 가난한 이들은 목돈이 없으므로 보증금을 내고 입주해야만 하는 집은 구할 수 없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싼 월세를 내고 보증금이 없는 집을 찾을 수밖에 없다.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집세로 내야하고 그러다보니 음식과 의복과 같은 다른 필수품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자연히 일상생활은 피폐해지게 된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1장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직장에서 다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증가할 뿐이다.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왕따의 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했다. 경비원, 청소부, 단순노동자,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사람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163) 한 가정이 그리고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노동들이지만, 정작 그 노동을 하는 당사자들은 최악의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이처럼 적은 월급에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도 왜 그들은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당신은, 우리는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가? 왜 떠나지 않는가?”(242) 대답은 뻔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벗어나봐야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안 좋은 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새 직장을 구하는 동안의 집세와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참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혹시 아는가, 관리자의 눈에 잘 보여 조금이라도 임금이 오르게 될지. 그렇게 점점 길들여지게 된다.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 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그리고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283) 더 나아가 책 말미에 추가된 10년 후의 후기에서 저자는 상황이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3.
이제 이것이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저임금 비정규직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도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 이 책과 비슷한 기획의도로 출간된 <4천원 인생>(안수찬/전종휘/임인택/임지선 지음, 한겨레출판, 2010)이나 <한국의 워킹푸어>(프레시안 특별취재팀 지음, 책보세, 2010)에 실려 있는 생생한 진술들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가 과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기획의도 자체가 현장보고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이 책에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몇 가지 통찰은 이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는 적정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정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물가수준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낮다. 또한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주거의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건설이나 주택 보조금과 같은 빈곤층을 고려한 주택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집을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집이 없는 자들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율권을 보장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이 오히려 작업의 효율성도 높이면서 박탈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노동에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자율적으로 일하게 내버려두면 노동자들은 나름의 협력 체계와 작업 분배 체계를 고안해 위기 상황이 닥칠 때 훌륭하게 대처할 줄 안다. 솔직히 말해서 복종을 요구하는 것 외에 관리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285)
저자가 강조하듯이, “자기의 시간을 1시간당 얼마라고 판다는 것은,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겠지만 사실은 인생을 파는 것이다.”(252)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인생을 구입하는 일이라는 엄중한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글 서두에 언급한 <뉴스룸> 오프닝 장면에서 주인공은 긴 설교를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