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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온갖 탈근대 담론들이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근대, 아니 전근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사건 사고나 혹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합리한 일처리를 경험하게 되면,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근대적 사고는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많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군대와 가족에 그 혐의를 두고 있다.

 

먼저 군대란 일상적 폭력을 체험하고 체화함으로써 폭력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자신을 끼워 맞춤으로써 사회적 서열체계와 나이주의(ageism)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구분, 윗사람의 권위와 폭력, 아랫사람의 충성과 복종이 자연스레 체화되는 것이다. 물론 군대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유교적 가부장문화가 뿌리깊이 퍼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굴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가족이란 대개 구성원들이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독립성을 인정해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대적 책임과 의무를 가진 존재로 여기고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합리한 처사들, 즉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 자식에 대한 부모의 폭력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진로 등 개개인의 미래에 대한 간섭과 같은 일들이 가족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다.

 

결국 가족-군대로 이어지는 시스템, 아니 보다 세분화하자면 가족의 연장인 학교, 군대의 연장인 직장까지 포함하여, 가족-학교-군대-직장-다시 가족으로 이어지는 순환체계는 급격히 발전된 물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근대적 시스템이 유지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등장하고 있는 1인 가족이나 무자녀 가족 혹은 비혈연 가족과 같은 탈가족의 풍경들이 단지 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다 완고한 가부장 시스템을 벗어나고자하는 힘겨운 몸부림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 사회에 탄탄하게 뿌리내린 전근대의 흔적을 우리 고전에서 찾아낸다. <가족 기담>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림동화와 같은 서구 전래 동화의 원본, 즉 어린이용으로 순화되기 이전의 잔혹한 내용들을 재발굴해서 보여주려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에 새로운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고전들이 내용 그대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왜 기담인가? <장화홍련전>이나 <여우누이>, <쥐 변신 설화> 등을 제외한다면 다들 평범한 내용들이 담긴 고전들 아닌가. 그러나 저자는 그저 우리가 얼핏 읽고 지나갔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그러면 평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내용 밑으로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현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조리를 건져올릴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을 둘러싼 뒤숭숭하고 불온하고 끔찍한 것들이 우글우글한 우리 옛이야기들”(7)에서 건져 올린 날 것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오싹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라고 묻고 싶은 것이다.

 

물론 오싹하진 않다. 저자는 짐짓 과장된 어투로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었다니까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옛이야기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근대적 요소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족체계 안에서 나고 자라왔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는 것이다. 저자는 평범한 것에서 오는 공포가 그 무엇보다 무섭다고 말한다. 타자화시킬 수 없는 영역에 속한 자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것은 본원적 공포다.”(203) 즉 타자화시킬 수 없는 존재로서의 가족이 주는 공포. 그러나 일상화된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그건 그저 현실일 뿐이다.

 

때문에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러한 체계를 벗어나려는 일탈의 시도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깊이 있게 다루질 않는다. 아마도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일탈의 모습을 보여준 홍길동 역시 저 먼 섬나라 율도국에 가서 비슷한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불합리한 체계 속에 갇혀 있음을 알면서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순응해버리는 모습, 혹은 강자가 되었을 때 오히려 부조리한 시스템을 적극 이용하는 모습. 나는 이것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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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09-28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학교-군대-직장-가족의 순환고리에 대한 관점이 좋네요. 다행이 저는 군대를 대신한 공익근무여서 이 사슬을 조금은 끊은 듯ㅋㅋ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nunc 2012-09-29 15:53   좋아요 0 | URL
어떤 식으로든 순환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고정된 직장이나 새로운 가족을 안 만드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추석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