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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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친구로부터 열라 원칙주의자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융통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뜻으로 한 말일 텐데, 스스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였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원칙과 융통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융통성이란 원칙이나 규칙을 약간 벗어나지만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일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좀 생각이 달랐다. 적용할 원칙이 있다면 무조건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안의 경우 적용해야할 원칙이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 관련 있는 여러 원칙 중 어떤 것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유연한 판단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융통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역시 큰 틀에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예전처럼 쉽게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원칙을 적용해야할 사안인지 융통성을 발휘해야할 사안인지 명쾌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또한 지켜야할 원칙이란 것도 대개 추상적이거나 혹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꼭 옳은 일이라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차도 사람도 없는 한적한 새벽 도로에서 굳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와 같은 문제에서부터 불법으로 규정된 파업이라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내리기가 어렵다고 해서 실행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행위가 심사숙고를 거친 완전한 결론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못한 채 굶어죽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대개 실행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검토가 뒤따르는 식이 된다. 이를 우리는 반성 혹은 성찰이라고 부른다. 반성 혹은 성찰을 통해 자신이 행한 행위의 득과 실, 옳고 그름을 판단한 후, 다음 번 행위의 지침으로 삼기 위해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두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원칙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득과 실, 혹은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판단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자의적 기준은 대체로 반복될수록 완화되기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자의적 기준의 완화와 일상화를 구체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인 댄 애리얼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실험은 단순하다. 주어진 문제를 풀고 스스로 채점한 후 자신이 획득한 점수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보상을 받기 전 자신의 답안지를 스스로 파기하는 조건을 덧붙인다. 즉 자신이 획득한 점수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의 점수를 제시할 것인가.

 

실험결과는 예상했던 대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점수를 부풀려 말한다. 부정행위가 불가능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경우 20문제 중 평균 7문제를 맞추었지만, 부정행위가 가능한 상황이 되자 12문제로 상승한 것이다. 게다가 남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고 나면 이 수치는 15문제로 치솟는다. 저자는 다양한 조건과 상황을 덧붙인 변형된 실험들을 통해 이 같은 부정행위가 대단히 일반적으로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밌는 사실은 이러한 부정행위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대부분 자신이 맞춘 개수에 몇 개를 덧붙일 뿐, 최대치의 보상을 노리고 극단적으로 정답의 개수를 부풀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 혹은 착한 사람들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사소한거짓말을 하고 산다. (물론 책의 원제는 <부정직함에 대한 (정직한) 진실>로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소한 거짓말. 여기서 사소함이란 원칙이나 규칙이 한정하고 있는 테두리를 약간 벗어나는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잘못된 행위이지만 누군가에게 불쾌할 정도로 큰 해를 끼치지 않기에 들통난다면 서로 겸연쩍게 웃고 넘어갈 정도의 벗어남.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약간의 벗어남을 융통성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경우 이 정도의 융통성은 그 개인의 대범함이나 삶의 여유를 보여주는 표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소한 일이기에 그저 웃어넘기고 말아야 할까. 저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사소한 부정의 누적은 사회적으로 더 큰 손실을 불러온다.

 

  “우리는 수많은 실험을 하면서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테스트했다. 때로 기회가 닿는 대로 최대한 많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봤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 실험에서 전체 스무 문제 중 열다섯 문제 이상 정답을 맞혔다고 주장한 사람을 거의 못 봤다. 그러나 스무 문제를 모두 맞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따금씩 나타났다. 이들은 비용편익분석을 한 다음 자신들이 챙길 수 있는 돈을 최대한 챙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예외적인 사람들이 우리가 이들에게 빼앗긴 돈은 몇백 달러에 불과했다(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한편 우리는 겨우몇 문제만을 부풀리는 사람은 수만 명이나 봤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나머지 우리가 이들에게 빼앗긴 돈을 모두 합하면 수천 달러 규모에 이르렀다. 우리가 이들에게 빼앗긴 돈은 적극정인 부정행위자들에게 빼앗긴 돈보다 훨씬 더 많았다.”(299~300)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부정행위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저자가 밝히는 사소한 부정행위의 메커니즘을 다음 세 가지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남들도 다 하는데 뭐.’ 먼저 약간의 자의적 기준 완화가 이루어지고(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러한 행위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행해지며(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남들도 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면 자기합리화가 완성되는 것이다(남들도 다 하는데 뭐). 어찌 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에 뜨끔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암시하는 대안도 대단히 사소하다. 부정행위가 저지러질 가능성이 높은 곳에 윤리적 각성을 불러일으킬만한 사소한 장치만 추가해도 부정행위의 정도가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인자판기 앞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로 사람 눈을 그려 넣음으로써, 설문 내용이 진실이라는 서약을 설문 후에 하는 게 아니라 설문 전에 하게 함으로써, 테스트 전에 십계명과 같이 윤리적 기준이 되는 내용을 암송하게 함으로써 부정행위를 줄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부정행위의 사회적 전염을 막기 위해 정치인, 공무원, 사회 저명인사, 기업 경영자 등과 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필요하다.

 

여기까지 저자의 논의를 따라오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로 눈을 돌리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유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관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 점점 당연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소한 부정행위에 대해 엄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허탈한 일로 여겨질 것인가. 오히려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갖지 못해서 당하는 억울한 감정만을 증폭시키게 될 뿐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역시도 이런 억울함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폭발한 결과가 아닐는지.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우리가 지켜야할 윤리적 기준을 다시 한 번 확립하고 계속해서 재확인하는 것이다. 윤리적 기준의 모호함 속에서 융통성이라는 이름의 자의적 일탈이 횡행하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우리들이 세운 원칙과 규칙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원칙주의자란 말이 비아냥보다는 존경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부정직함에 대한 정직한 진실>을 마주한 이들이 만들어 갈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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