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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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적으로 개만큼 인간과 친밀하게 지낸 동물은 없었을 것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온 오수의 개 이야기라든지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만 봐도, 개는 인간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동물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런 말은 개를 한번이라도 길러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처럼 충성심이 강하고 이타적인 동물을 본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개에 비유하는 것이 나쁜 뜻임을 알았을 때, 그게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개만큼만 해도 그게 욕먹을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언제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어찌 보면 가장 이기적인 동물일 인간과 가장 이타적인 동물인 개를 비교하는 것은 개에 대한 모독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개와 함께 지낸 시간은 나의 나이와 맞먹을 정도로 길다.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내말은 다 들어주는 개한테 고마움을 느낀 것은 사람에 상처받은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내가 기르는 개가 말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아,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할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개가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대신 내 나름대로 개의 행동을 보고 개가 하고 싶은 말을 유추해 내기도 했다. 그러자 개와 대화 아닌 대화가 가능해졌다. 개와 오래 지내다보면 개도 저마다 성격이 따로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또 다름을 알게 된다. 대화 아닌 대화가 가능해지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훈의 장편소설『개』도 개와 대화 아닌 대화를 하려는 김훈 작가의 시도인 것 같다. 사람보다 청각과 후각이 100배 이상 발달한 개는, 그렇다면 인간보다 수백 배 더 많은 삶의 체험과 느낌과 감각을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해 놓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저놈이 말을 못해서 멍멍 짖고 다닐 뿐이라고, 그렇게 김훈 작가는 자신보다 200배는 풍요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는 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개가 된다.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한 것이다. 풀이 돋아나듯이,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이 세상에 태어난 개는, 원해서 된 일이 아니지만 태어나보니 개였고, 태어나 보니 수놈이었다. 김훈 작가는 황구 수놈이 되기로 한다. 컹컹컹...컹컹... 사람들은 무슨 개소리야~할지 모르는 소리를 사람의 귀가 아닌 개의 귀로 듣고, 이 땅의 모든 사물들을 개의 눈으로 보기로 한다.「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이렇게 철저히 한 마리의 개로 태어나 개의 이야기를 전한다.

 보리라는 개는 보통의 진돗개가 그러하듯이 매우 지조 있는 놈이다. 말을 할 수가 없기에, 종종 오해가 생기는 일이 발생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세상엔 기쁘고 재미난 일이 많아서, 슬퍼할 시간도 없다. 모든게 신기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특히 사람들의 세상이 아름답다. 아, 할 일이 무지 많다. 어부인 주인님을 새벽 선착장에서 기다려 주인님이 던지는 밧줄을 받아야 하고, 주인님의 딸 영희 학교 가는 것도 따라가야 한다. 학교 가는 논둑길에 뱀이 나오면 쫓던가 싸우던가 해서 길을 터줘야 하고, 주인할머니 감자 농사가 망치지 않도록 들쥐를 물어 죽이기도 해야 한다. 사람 동네에서 개 노릇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것이 운명이다. 사람처럼 신발을 신고 다니지 못해, 다니는 길마다 온전히 자신의 발바닥을 디뎌야 하고, 그렇게 발바닥에 흔적과 기억을 남긴다. 한 벌 뿐인 자신의 굳은살을 자랑스러워하는 보리는 그로인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갈 용기를 갖는다.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 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하는 개의 삶을 보리는 살아간다. 가진 거라곤 자신의 발바닥에 새긴 삶의 흔적과 기억들뿐이지만, 그 흔적과 기억이 남긴 굳은살은 가난하지 않다.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자신의 신발은 살아있는 동안 온전히 보리 자신 것이기에, 보리가 새겨낸 발자국은 가난하지 않다. 오히려 보리의 눈엔 한 없이 아름다운 인간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인간들의 발자국이 가난한 것이다. 그래서 보리는 인간들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짖고 또 짖는다. 컹,컹컹컹.....우우우우......  


 세상이 온통 신기한 거 투성이고, 늘 재미나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집 강아지 뿌꾸. 이 녀석도 자신의 발바닥으로 세상의 많은 걸 배우러 다닐 테지. 너의 발바닥을 응원한다. 네가 다닌 길은 온전히 너의 발바닥에 닿을 것이기에, 모두다 네 것이다. 뿌꾸 너는 가난하지 않다.
너의 발바닥엔 곧 굳은살이 생길 것이기에...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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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7-1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름다운 글입니다. 추천 10개를 드리고 싶은데 하나밖에 안 되네요.
제 마음이라도 받아주세요.^^
어릴적에 할머니께서 이웃집에서 개를 얻어 오셨는데요. 이름을 똥개라고 불렀어요. ㅎㅎ
똥개와 함께 한지 2~3년이 되었을 때 어느날 갑자기 도둑을 맞았어요. 그 때 정말 많이 울었지요. 찾아도 찾아도 없어서 울고 또 울고 했답니다. 저와 장난도 치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저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지요. 똥개와 놀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전에 뉴스에서 보았는데요. 개가 주인 곁을 맴돌면서 냄새를 맡고는 옆에 앉아 짓는다고 합니다. 처음에 주인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매일 반복이 되자 하도 이상해서 병원에 갔었는데 알고보니 암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생겼는데, 개가 주인의 생명을 구해 준 셈이지요. 개가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일 많이 합니다. 집을 지켜주고, 주인을 보살펴 주고, 도둑을 잡아주고, 아이들을 지켜주고... 이렇게 훌륭한 개인데, 요즘은 개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ㅠㅠ
요 위에 있는 사진속 주인공이 뿌꾸인가요?
아유.. 너무 귀여워요~ (댓글이 너무 길어져서 죄송해요~)


어느멋진날 2009-07-15 11:35   좋아요 0 | URL
와~후애님의 마음과 제 마음이 통한 것 같네요. 이름이 똥개였어요? 촌스럽기도 하지만 무척 정감가는 이름이네요. 가족처럼 지내던 개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면 그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저는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엄청 많이 울었답니다. 항상 말없이 내 곁에 있어준 개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저도 후애님이 뉴스에서 보신 그 내용을 들은 적이 있어요. 주인을 구한 개. 개가 아니라면 불가능 한 일인 것 같아요. 개처럼 주인을 위한 마음이 간절한 동물은 없으니까요. 항상 감동을 주는 개들이 있어서 인간의 삶이 조금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ㅎㅎ 사진속 주인공이 지금 저희 집을 지키고 있는 뿌꾸에요. 어찌나 말썽쟁이인지 보고있으면 정신이 없을 정도에요.ㅋㅋ 그래도 이 녀석 때문에 웃을 일이 많아요.^^ 긴 댓글이 죄송하다니요! 항상 후애님께 감사드린답니다.^^

유쾌한마녀 2009-07-1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부터 항상 개를 키워왔는데 집 사정상 작년부터 안키우고 있어요 근데 완전 허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멋진날님네 놀러가서 개 봐야겠음 비록 날 보고 짖더라도 ㅋㅋㅋ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15 18:14   좋아요 0 | URL
ㅎㅎ 우리 뿌꾸가 마녀님 보고 으르렁댔죠?ㅋㅋ 애가 지조가 있어서 그래요^^ 마녀님 집에서 봤던 황구가 기억나는데,, 지금은 없군요,, 키우다 안 키우면 정말 허전하겠어요,,ㅠ

유쾌한마녀 2009-07-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뿌꾸에게 맞대응하잖아요 ㅋㅋㅋ 전에 키우던 진돗개가 생각나네요 ㅠㅠㅠㅠ

어느멋진날 2009-07-16 10:22   좋아요 0 | URL
ㅋㅋ녀석이 주인밖에 몰라 그래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이쁜 강아지 키우세요,,정말 허전하실듯,,

프레이야 2009-07-16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꾸, 넘 귀여워요.^^
몇해전 읽은 책인데 님의 리뷰 보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어느멋진날 2009-07-16 10:23   좋아요 0 | URL
ㅎㅎ 귀엽죠? 아주 말괄량이에요,,ㅋㅋ 프레이야님은 이미 이 책을 읽으셨구나^^ 프레이야님 종종 여기도 놀러오셔요^^

2009-07-1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6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6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7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7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7-1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는 글이네요^^.
사실 전 김훈이라는 작가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부터 친구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책들이 있었는데도, 오히려 정이 안가더군요. 이상하죠? ㅋㅋ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냥 손이 안간다고 해야할까...
근데 이 글을 읽어봤더니, 이 책만큼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릴적부터 오랫동안 집에서 개를 키워왔거든요. 오래전에 떠나보내긴 했지만, 저보다 1살 어린 동생과도 같은 개도 있었죠. 그리고 저희 집에서 3대째 살고있는 개가 있답니다. 할머니에 어머니에, 딸이 모두 저희집에서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있죠.
오랜 시간동안 먼곳에 떠나있다가 집에 다시 돌아올때에도, 한결같이 반겨주는 개들이 참 좋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은 제가 타지에 나와있지만 고향집에 있을 개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김훈씨의 이 소설을 읽으면 그 감동이 더 커질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저는 향기가 나는 책들이 좋습니다. 사람과 삶의 향기가 나는 책이요.
이 책은 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향기가 날것 같네요.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좋은책 소개해주셔서요.^^

어느멋진날 2009-07-17 15:51   좋아요 0 | URL
별을낚는어부님~ 반가워요^^ 제 리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할 때가 많죠. 이 책은 김훈 작가가 한 마리의 개가 되어 그 심리를 묘사한 책이에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개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은 더 생긴 것 같아요. 별을낚는어부님도 이 책을 읽고 저와 같은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비로그인 2009-07-17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강아지 이름 보고 생각이 났는데...
예~전에 KBS에서 방영하던 국산 만화영화 이름이 "두치와 뿌꾸"였는데 거기에서 따오신건가요? ㅋㅋ

뿌꾸라는 어감이 참 좋네요 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7 15:54   좋아요 0 | URL
헤헤,, 두치와 뿌꾸 맞아요^^ 원래 두치도 있었는데 옆집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셔서 보냈답니다. 사람도 이름에 영향을 받듯이 개도 그런가봐요,, 두치와 뿌꾸라고 지어놨더니 둘이 같이 다니면서 어찌나 말썽을 피우던지,,ㅋㅋ 그래도 참 귀여워요. 지금은 뿌꾸밖에 남지 않았지만 에너지가 넘쳐서 보는 사람을 즐겹게 해준답니다.^^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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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감동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의 작품『연금술사』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열심히 읽는 독자도 많겠지만, 오히려『연금술사』를 읽고는 그의 다른 작품을 찾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나는『연금술사』이후로 한동안 코엘료의 작품을 찾지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의 책을 일부러 피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고 나자, 다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에 공감하지 못했다면,『오자히르』나『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어보라는 지인의 말에 힘입어 다시 코엘료의 작품을 찾게 되었다.

 나와 오 자히르와의 만남이 코엘료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주길 바라며, 얇지 않은 이 책을 한 장씩 넘겨갔다. 이 책을 넘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책이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확인하기 위해 표지를 확인했다.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코엘료의 자서전 같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책이 출간되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부를 축적한 작가의 모습이 코엘료를 계속 연상케 한다. 코엘료가 아니라면 어떤 작가가 이런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와 닮은 주인공과, 실제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소설 속에 영입시킴으로써 그의 사유와 성찰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와 그의 아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해서 결혼했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을 보낸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비교적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내가 없어진 것. 그러나 그는 아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딘가로 간 것임을 알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아내가 왜 나를 떠났을까. 왜... 왜... 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엉켜버린 실타래를 찾아내 풀어야했다.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다는 그의 아내는 어떤 책에서 읽었다는 “프리츠, 넌 모든 게 지금 같았다고 생각해?” 하는 물음을 끌어들이며 그에게 말한다. 그 질문(한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고.

 아내가 없어진 후 그는 매순간 떠난 아내에게 집착하게 된다. 어떤 질문도 답변 없이 놓아두지 않고, 모든 공간을 점령해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자히르.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히르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빈 공간을 꽉 채워버린 자히르가 된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그도 한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모든 것은 지금 같지 않았다. 살아가며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 얽매여,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만 머무르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더 넓은 길로는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했고, 우리가 가진 것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하며 오히려 다를 것 없는 일상을 감사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너’야 하고 규정해 준, 이것이 나의 모습이야 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모습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알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 역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삶은 축적된 경험의 역사이기를 멈추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가끔, 때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으며, 같은 일상과 같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일 수도 있다. 평소의 내가 하지 않았던 도발적인 행동을 해도 나를 몰랐던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을 것이기에 사람들이 그게 너야, 너 다운거야, 하며 씌워준 가면도 벗어젖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정해진 나의 모습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와 아내를 찾기 위해 한스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그와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나 개인의 과거사로부터 해방되자, 예전의 열정이 되돌아왔다는 그는 사라져가는 열정을 가만두지 말라고, 자신이 뭘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를 잊었을 때는 이유를 찾아 나서라고 한다. 더욱 자유롭기 위해, 새사람이 되기 위해 쌓는 법만 배우지 말고 비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내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 모든 것이 나갈 수 있도록, 밖의 모든 것은 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라며 내 안의 창문에 노크를 한다. 나는 그리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가진 자히르를 내보내고 더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대답할 수 없지만 내가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 또한『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의 작품에 감명을 받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며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도 확실하다. 이 작품이 내가 코엘료에게 한걸음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내 마음의 창문이 굳게 닫힐 때면 다시 활짝 열 수 있는 스위치로 활용하려 한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곧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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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7-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요. 너무 이뻐요^^
마음껏 책을 못 읽는 대신에 이렇게 좋은 리뷰 덕분에 제 눈이 즐기고 있어요. ㅎㅎㅎ
리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어느멋진날 2009-07-11 11:07   좋아요 0 | URL
와~후애님이 오셨네요^^ 표지 정말 이쁘죠? 저도 그 생각했었어요ㅎㅎ 한국에 계신 것이 아니라 책을 맘껏 못 읽으시는군요. 멀리 계시지만 마음만큼은 멀리 계신 것 같지가 않네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히르'가 단어였군요!! 전 제목만 봐서는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저도 멋진날님처럼 코엘료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리뷰 보고 살~짝 관심이 가는데요?? 나중에 함 읽어봐야겠어요 ^^

어느멋진날 2009-07-13 20:41   좋아요 0 | URL
오늘 코엘료 신간을 예약 받는다는 문자를 받았어요.ㅎ 전 신간에도 관심이 간다는,, '자히르'는 아랍어래요.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집착,탐닉,열정 이런 것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유쾌한마녀 2009-07-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끌리는 단어!!! 멋진날님에게 있어서 자히르는 뭔가요?

어느멋진날 2009-07-13 21:20   좋아요 0 | URL
저에게 자히르는.... 공무원 시험?? ㅠㅠ 흑흑,,

유쾌한마녀 2009-07-1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날님의 자히르가 즐거운 낭만이 되는 날이 빨리 왔음 좋겠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3 21:27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마녀님두요. 우리 청춘이잖아요ㅠ 빨리 끝내 놓고 놉시다!

유쾌한마녀 2009-07-1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은 60세 부터래요....ㄷㄷㄷ......;;;;;

어느멋진날 2009-07-13 21:31   좋아요 0 | URL
맙소사!! 그럼 우린 청춘되려면 멀었네요ㅠㅠ 앙앙ㅠㅠ

유쾌한마녀 2009-07-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까지는 36년이나 남았어요; 그때까지 뭐할까요??ㅋㅋㅋㅋㅋㅋ

어느멋진날 2009-07-13 21:35   좋아요 0 | URL
뭐 그냥 청춘인 양 즐깁시다.ㅋㅋ 놀러두 가구^^ 책도 읽고,, 강태공처럼 때를 기다립시다. 청춘의 때를? ㅋㅋ

유쾌한마녀 2009-07-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태공이요?? 낚시만 하자구요?? 누굴 낚을까요?? 란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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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겠지만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자. 높이 2,408m, 674층으로 인구5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타워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3빌딩이 높이 249m(해발264m)로 남산보다 1m가 낮은 높이라고 하니 거의 그 10배의 높이를 가진 셈이다. 63빌딩보다 10배가 높은 곳? 에이~ 그런 곳이 어디있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둔다. 여기 있다. 바로 빈스토크!

독서가 가진 미덕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어떤 세계를 탐험하게 해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그 미덕을 200%이상 달성한 것 같다.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과 통찰력에 연신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신비의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빈스토크에 다녀온 작가가 장편의 기행문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스토크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미지의 곳, 상상의 세계, 그러나 그곳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이 우리 사는 곳이랑 참 많이도 닮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공간은 다르지만 공유하는 시간은 같았던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공간 또한 같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미 빈스토크의 주민이었으므로. 이렇게 나와 시공간을 함께하는 그곳의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덧 이 책은 마지막 장으로 가있다. 미세연구소의 박사들 이야기, 작가 K이야기, 어떤 이의 첫사랑 이야기(그 첫사랑을 꼭 구했기를 바라며...), 경비대 교통과에 들어간 어떤 이의 이야기, 코끼리 아미타브를 돌보는 사람 이야기, 비밀 요원 세흐리반 이야기, 도란도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 층 집값은 얼마에요? 여기 가장 큰 서점이 어디죠? 여기 제일 맛있는 음식은 뭔가요? 여기 작가 중에 K씨가 유명하다고 하는데,『곰신의 오후』읽어 봤어요? 이런 것들을 마구 물어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여기로 이사 오면 몇 층이 좋을까나,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 농구장이 있는 77층이 좋겠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내가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밟힌다. 단지, 멋진 농구 선수들을 보고 싶으므로.) 아, 리조트가 있는 410층도 괜찮을 텐데...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었다. 흔히 들어본 고소공포증 말고 저소공포증 말이다. 1층에를 못가 해외도 못나가는 작가 K도 그렇고 50층 아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최신학이 그렇다. 병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빈스토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증거라고 한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붕괴되는 것보다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더 무서워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빈스토크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맞는 말 같다. 이곳의 토박이 개는 땅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아서 집을 찾아오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를 얻어 타고 집으로 찾아온다.(위에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라고 했는데, 이 개도 엄연히 주민이다. 돈도 아주 많은^^) 매일 좌파니 우파니 무조건 나눠놓으려고 하는 우리시대를 그곳은 직파(수직주의)니 평파(수평주의)니 하며 나누는 것으로 갈음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세태,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아나버릴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을 때만 애국자 인척 하는 모습이 어느 곳의 정치인들과 참 비슷하다. 그럼에도 빈스토크가 바벨탑이 아닌 이유는 희망과, 신뢰와, 정의 상징! 파란 우편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이용자들이 자신이 내릴 위치의 우편을 가지고 내려 자발적으로 집배원이 되는 훈훈한 시스템.(내가 빈스토크에 가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게 파란 우편함을 통해 편지를 보내보는 것이다.)

 어디서나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에너지 얼마쯤은 존재하나보다. 빈스토크의 파란 우편함처럼 말이다. 독자들의 간지러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상처 난 부위에는 약을 발라주는 배명훈 작가 같은 작가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배명훈 작가의 좋은 에너지에 감사한다.^-^ 유쾌! 상쾌! 통쾌한 빈스토크 타워에 많이들 놀러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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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마녀 2009-07-0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약간 베르나르베르베르 작품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엄청난 상상력^^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0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한국의 베르나르베르베르 인가요?^^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네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김훈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 언제일까. 아마도 그를 세상에 높게 내보내준 작품 「칼의 노래」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그 작품에 나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빠졌었고, 그것이 그의 에세이집을 만나게 해준 중매쟁이가 되었다.「칼의 노래」라는 중매쟁이를 통해 만난 「바다의 기별」. 설렘 가득한 그와의 첫 대면에 나는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바다의 기별」표지 첫 마디가 “자전거레이서” 김훈이었기 때문이다. 아차, 싶었다. 내가 아는 김훈이 아니라 동명이인인 김훈인 것인가. 지은 책으로...「칼의노래」... 이 대목에 가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작가 소개란 첫 번째가 자전거레이서라니. 문단의 늦깎이라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 근사하고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자전거레이서로 자신을 표현한 이 작가의 발칙함과 기발함에 첫 장부터 한방 먹었다. 그의 다음 작품엔, 어떤 말로 그를 표현할지 은근한 기대를 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예상은 했지만,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와는 달리 가볍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하루 종일 끼고 있었던 이유는, 그의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의 내면, 그의 생각들을 훔쳐보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김훈이라는 나무가 새긴 나이테를 맘껏 볼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였던 것이다. 그가 언젠가 끼적여 놓았던 메모장을 소개해주기도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말해주기도하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외로운 길을 걸었던 아버지를 회상하여 그 기억을 나눠 주기도하고, 딸아이가 첫 월급으로 핸드폰을 사준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작지만 벅찬 행복에 관한 단상을 깨워 주기도하고, 생명의 개별성(이 대목에서 특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에 관해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리고 늘 편식을 하는 나에게 이것도 한번 먹어보고, 저것도 한번 먹어보라며 홍명희의「임꺽정」을 설명해 주기도하고, 시인 최하림의 시도 읽어주고, 화가 오치균의 그림도 보여준다. 책의 페이지수로 치자면 다른 책의 절반 정도로 얇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헤아릴 수 없는 만큼 거대하다. 두껍진 않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이 책을 음식으로 치자면 고단백 저지방 식품인 닭 가슴살쯤 될까. 그가 내준 음식이 모두 맛있었지만 한 번 더 먹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가 했던 강연을 기초로 쓴 회상, 말과 사물(이 책 part3)이라고 할 것이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는 우리 언어의 현실과, 인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 있는 말에 대한 그의 깊은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동안의 제일 큰 즐거움이었다.

 책의 마지막엔 그동안 그가 썼던 책의 서문들과 수상소감들을 수록해 놓았는데,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양념이라 생각한다. 그가 남긴 나이테와 발자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음식을 대접받고 가는 기분으로 이 책을 덮는다. 씹어도 씹어도 단물이 빠지지 않는 풍선껌 같은 그의 문장들을 나는 오래도록 곱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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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혈혈단신으로 달랑 자전거 하나만 가지고 유럽을 횡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얼마나 될까? 여기 두 달 동안 유럽 대륙을 자전거로 약 2500킬로미터를 달린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청춘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되겠다. 어느 날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읽으면 가슴이 뻥~뚫릴 만한 책 없니? 하고 물었더니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 추천 받아 읽긴 했지만, 제목을 듣곤 자전거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저자가 “빨간비닐”이라는 자신의 애마(자전거 말이다^^)를 가지고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그 대목이 나오자 ‘아, 장난이 아니 구나, 미쳤어~미쳤어!’ 라는 말이 내 맘속에서 아우성치고 말았다. 그가 이토록 무모한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스무 살의 열정을 찾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가 자전거 하나를 가지고 파리에 입성했을 때 나는 그의 친구들이 그랬듯이 걱정부터 앞섰다. 저자를 말리고 싶었다. 자전거로 어떻게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밟고 또 밟자”라고 외치며 자전거로 유럽횡단을 시작한다. 스물아홉 청춘이 그를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오르막길을, 쳐다만 봐도 엄두가 나지 않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었겠는가. 넘어지고 깨지고 다쳐도 그는 말한다. “갈 길이 멀다 하되, 페달 아래 길일 뿐!” 이제 나도 더는 어찌할 재간이 없다. 이 무모한 청춘을 응원하는 수밖에... 그가 달리는 길을 조용히 따라 가보며, 그가 자전거 여행에서 발견하는 인생의 묘미를 함께 즐기는 것 밖에... 그가 길을 가다 생맥주로 목을 축일 때면, 나도 함께 건배를 외치는 수밖에 이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스물아홉. 끝없는 취업난의 길에 허덕일 때로 허덕이다,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인지, 직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그가 나의 모습과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가 찾고 있는 스무 살의 열정이 나 또한 끊임없이 찾고 갈구해야 할 그 어떤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좀 전부터 그의 자전거 여행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던 나는 그가 발견해 내는 자전거와 인생의 공통점들을 같이 나눌 수 있었다. 두 달간의 자전거여행에서도 계획표를 짜고, 수정도 하고 해야 하는데, 하물며 인생의 긴 여정을, 계획표도 짜지 않고 갈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는 “오늘 이만큼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하여 놓고 가지 못하면 다음날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도 발견한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이 더 힘들어지는구나. 간단하지만 뼈저리게 느낄 기회는 별로 없는 그 일은 그는 온 몸으로 체험한다. 달리다 보면 수없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이번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일 것 같다.

 처음엔 그토록 무모해 보이던 그가 어느새 한 뼘 두 뼘 커져있다. 처음에 막막하게 보이는 길이라도 막상 그곳에 가면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쉽지 않은 여행도 일단 저지르고 보면 만만해진다고 한다. 이토록 용기에 가득 찬 그에게 이제 이 세상도 만만해지지 않았을까. 자전거가 고장 나 넘어진 자리에서 자전거에게 응급처치 해주고 점심도 먹는 그의 여유에,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삼키는 파도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그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자신이 갈 길을 자신의 손으로 방향을 정하며, 온전히 그의 마음과 생각대로 목적지를 향해 달린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주인공을 따라 그의 자전거(빨간비닐)에 무임승차한 나는 어느 덧 그가 밟는 페달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설사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도 할지라도.'어? 이 길이 아니네~'하고 유턴할 수 있는 청춘이니까! 스무 살의 열정을 가슴에 품은 ‘그’니까 말이다.

p49 당신이 아직 젊다면, 일단은 제멋대로 상상해도 좋다. 일단 저질러라.
p121 열정으로 페달을 밟는 한 실패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저질러 볼까나. 자전거를 한번 타 볼까나? 아차, 우리 집 자전거는 바퀴가 바람 빠져서 한쪽에 쳐 박아 놨었지ㅠ 바람 빠진 바퀴 자전거가 내 모습이나 다름없다. 이제 젊음이라는.. 열정이라는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 신나게 달려 볼까나? 그런데 난 저자처럼 유럽대륙을 자전거로 달릴 용기는 없다. 다행히 저자도 반드시 자신처럼 자전거를 타고 유럽으로 달려가라는 건 아니라고 한다. 모두의 가슴 속에는 열정의 자전거가 한 대씩은 있다고, 마음 속 자전거를 꺼내라고 한다. 뭐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내 가슴의 열정의 자전거를 꺼내 씽씽 달리는 것! 그것쯤이야~ 신나게 달려야 겠다.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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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마녀 2009-06-2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어느멋진날님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 같아서 보람찬데요???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6-23 10:16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 추천해 주셔서 고마워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느멋진날 2009-06-2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4주 이주의 다음 블로거뉴스 특종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

유쾌한마녀 2009-06-27 13:11   좋아요 0 | URL
우와~~ 선정됐구낭 *^^* 축하행 ^^ 내가 더 기분이 좋당ㅎㅎ//

순오기 2009-07-02 10:04   좋아요 0 | URL
블로거뉴스 특종 축하해요.
이젠 베스트 특종으로 오르는 날까지 아자아자!!^^

어느멋진날 2009-07-02 10:18   좋아요 0 | URL
와~ 순오기님이시다^^ 몰래 들어가서 사진이랑 다 봤어요~ㅋㅋ 저도 언제 초청해주셔요^^ ㅋㅋ 베스트 특종까지? 굉장한 알라디너 분들이 많아서,, 바라지도 않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