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쉽게 상상이 가지는 않겠지만 머릿속에 한번 그려보자. 높이 2,408m, 674층으로 인구5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한 타워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3빌딩이 높이 249m(해발264m)로 남산보다 1m가 낮은 높이라고 하니 거의 그 10배의 높이를 가진 셈이다. 63빌딩보다 10배가 높은 곳? 에이~ 그런 곳이 어디있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해둔다. 여기 있다. 바로 빈스토크!

독서가 가진 미덕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어떤 세계를 탐험하게 해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책은 그 미덕을 200%이상 달성한 것 같다.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과 통찰력에 연신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신비의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빈스토크에 다녀온 작가가 장편의 기행문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스토크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미지의 곳, 상상의 세계, 그러나 그곳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이 우리 사는 곳이랑 참 많이도 닮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공간은 다르지만 공유하는 시간은 같았던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공간 또한 같았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미 빈스토크의 주민이었으므로. 이렇게 나와 시공간을 함께하는 그곳의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덧 이 책은 마지막 장으로 가있다. 미세연구소의 박사들 이야기, 작가 K이야기, 어떤 이의 첫사랑 이야기(그 첫사랑을 꼭 구했기를 바라며...), 경비대 교통과에 들어간 어떤 이의 이야기, 코끼리 아미타브를 돌보는 사람 이야기, 비밀 요원 세흐리반 이야기, 도란도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 층 집값은 얼마에요? 여기 가장 큰 서점이 어디죠? 여기 제일 맛있는 음식은 뭔가요? 여기 작가 중에 K씨가 유명하다고 하는데,『곰신의 오후』읽어 봤어요? 이런 것들을 마구 물어보고 싶은 충동 말이다. 여기로 이사 오면 몇 층이 좋을까나,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했다. 농구장이 있는 77층이 좋겠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내가 농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밟힌다. 단지, 멋진 농구 선수들을 보고 싶으므로.) 아, 리조트가 있는 410층도 괜찮을 텐데...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었다. 흔히 들어본 고소공포증 말고 저소공포증 말이다. 1층에를 못가 해외도 못나가는 작가 K도 그렇고 50층 아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최신학이 그렇다. 병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빈스토크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의 증거라고 한다. 그들은 빈스토크가 붕괴되는 것보다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더 무서워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빈스토크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맞는 말 같다. 이곳의 토박이 개는 땅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아서 집을 찾아오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를 얻어 타고 집으로 찾아온다.(위에 이곳 주민들의 특성이라고 했는데, 이 개도 엄연히 주민이다. 돈도 아주 많은^^) 매일 좌파니 우파니 무조건 나눠놓으려고 하는 우리시대를 그곳은 직파(수직주의)니 평파(수평주의)니 하며 나누는 것으로 갈음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세태,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제일 먼저 달아나버릴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을 때만 애국자 인척 하는 모습이 어느 곳의 정치인들과 참 비슷하다. 그럼에도 빈스토크가 바벨탑이 아닌 이유는 희망과, 신뢰와, 정의 상징! 파란 우편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 이용자들이 자신이 내릴 위치의 우편을 가지고 내려 자발적으로 집배원이 되는 훈훈한 시스템.(내가 빈스토크에 가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게 파란 우편함을 통해 편지를 보내보는 것이다.)

 어디서나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에너지 얼마쯤은 존재하나보다. 빈스토크의 파란 우편함처럼 말이다. 독자들의 간지러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상처 난 부위에는 약을 발라주는 배명훈 작가 같은 작가들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배명훈 작가의 좋은 에너지에 감사한다.^-^ 유쾌! 상쾌! 통쾌한 빈스토크 타워에 많이들 놀러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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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마녀 2009-07-0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약간 베르나르베르베르 작품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엄청난 상상력^^ㅎㅎㅎ

어느멋진날 2009-07-10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한국의 베르나르베르베르 인가요?^^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