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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감동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 역시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그의 작품『연금술사』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열심히 읽는 독자도 많겠지만, 오히려『연금술사』를 읽고는 그의 다른 작품을 찾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란 말이다. 나는『연금술사』이후로 한동안 코엘료의 작품을 찾지 않았다. 세계적인 작가의 책을 일부러 피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느끼고 나자, 다시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에 공감하지 못했다면,『오자히르』나『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어보라는 지인의 말에 힘입어 다시 코엘료의 작품을 찾게 되었다.
나와 오 자히르와의 만남이 코엘료와 나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주길 바라며, 얇지 않은 이 책을 한 장씩 넘겨갔다. 이 책을 넘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책이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확인하기 위해 표지를 확인했다.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 소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읽어가는 내내 이 책이 코엘료의 자서전 같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책이 출간되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부를 축적한 작가의 모습이 코엘료를 계속 연상케 한다. 코엘료가 아니라면 어떤 작가가 이런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을까. 그와 닮은 주인공과, 실제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소설 속에 영입시킴으로써 그의 사유와 성찰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와 그의 아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해서 결혼했고, 때론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을 보낸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비교적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아내가 없어진 것. 그러나 그는 아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딘가로 간 것임을 알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아내가 왜 나를 떠났을까. 왜... 왜... 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엉켜버린 실타래를 찾아내 풀어야했다. 어느 순간부터 행복하지 않다는 그의 아내는 어떤 책에서 읽었다는 “프리츠, 넌 모든 게 지금 같았다고 생각해?” 하는 물음을 끌어들이며 그에게 말한다. 그 질문(한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고.
아내가 없어진 후 그는 매순간 떠난 아내에게 집착하게 된다. 어떤 질문도 답변 없이 놓아두지 않고, 모든 공간을 점령해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자히르.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히르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빈 공간을 꽉 채워버린 자히르가 된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그도 한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야 한다.
모든 것은 지금 같지 않았다. 살아가며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 얽매여,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만 머무르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더 넓은 길로는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했고, 우리가 가진 것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하며 오히려 다를 것 없는 일상을 감사히 여기며,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너’야 하고 규정해 준, 이것이 나의 모습이야 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모습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자신이 이룩한 역사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알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 역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삶은 축적된 경험의 역사이기를 멈추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가끔, 때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잊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으며, 같은 일상과 같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일 수도 있다. 평소의 내가 하지 않았던 도발적인 행동을 해도 나를 몰랐던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을 것이기에 사람들이 그게 너야, 너 다운거야, 하며 씌워준 가면도 벗어젖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정해진 나의 모습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와 아내를 찾기 위해 한스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그와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나 개인의 과거사로부터 해방되자, 예전의 열정이 되돌아왔다는 그는 사라져가는 열정을 가만두지 말라고, 자신이 뭘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를 잊었을 때는 이유를 찾아 나서라고 한다. 더욱 자유롭기 위해, 새사람이 되기 위해 쌓는 법만 배우지 말고 비우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내 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 모든 것이 나갈 수 있도록, 밖의 모든 것은 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하라며 내 안의 창문에 노크를 한다. 나는 그리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가진 자히르를 내보내고 더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대답할 수 없지만 내가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 또한『연금술사』를 읽고 코엘료의 작품에 감명을 받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며 권해준 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도 확실하다. 이 작품이 내가 코엘료에게 한걸음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가 보낸 자유의 메시지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내 마음의 창문이 굳게 닫힐 때면 다시 활짝 열 수 있는 스위치로 활용하려 한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곧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