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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평점 :
세계문학상이 올해로 제6회를 맞았다. 내가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생일 날 책을 선물 받아서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2회 수상작 <아내가 결혼했다>이었다. 그때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에 많이 놀라기도 하고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이 난다. 그 후로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게 되었다. 1억 원 고료의 상이라는 매력 외에도 궁금한 게 있었다. 어떤 이유로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든 건 어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가 결혼했다>를 시작으로 <스타일>,<내 심장을 쏴라>에 이어 이 책 <컨설턴트>를 만나게 되었다.
컨설턴트.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땐 무엇을 컨설팅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넘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아무리 오늘날 컨설턴트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지만 사람을 죽이는 영역까지 확대될 것이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아, 여기 있다. 이 책의 저자. 한마디로 이 책의 주인공은 킬러다. 킬러라고 하니까 주인공이 총을 들고 의뢰인이 지목한 사람을 찾아가 빵! 하고 쏘는 장면을 상상했다면, 혹은 주인공이 죽여야 하는 목표물과 사랑에 빠져 결국 죽이지 못하는 그런 스토리를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렇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뻔한 플롯으로 글을 썼다면 세계문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주인공은 킬러다. 의뢰를 받아 목표물을 제거하는 킬러. 본인도 자신을 킬러로 불러도 좋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동창들을 만나거나 맞선을 본다거나 할 때 자신의 직업을 킬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의 명함에도 그렇게 되어 있듯이 그는 회사에서 컨설턴트의 일을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컨설팅 하느냐고 물어 온다면, 죽음을 컨설팅 한다고 말할 수 없는 마찬가지 이유로 이렇게 말한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회사에 다니며 구조조정을 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조금은 평범해 보이지 않은가. 물론 그는 평범하지 않다. 킬러라는 직업 때문에? 아니다. 킬러라면 영화나 드라마, 소설 이런 것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는 보통 킬러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킬러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킬러와 그가 다른 점은 첫째로, 목표물을 총으로 쏴죽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타살의 흔적 없이 자연사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직접 실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목표물의 죽음을 자연사처럼 보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마치 소설을 쓰듯 그렇게. 그럼 다른 사람이 그 시나리오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되면 구조조정이 완성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만든 시나리오는 완벽했고, 목표물들은 모두 그 시나리오대로 자연스럽게 죽었다. 아무도 타살이라 의심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도 목표물의 죽음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았다. 수많은 죽음들이 예컨대, 자살을 했거나 병으로 죽었거나 하는 것들, 그런 죽음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작성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죽음이 아니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누군가가 작성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사실은 그 회사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심지어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도 그 회사에서 보낸 것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무서운가? 그런 생각하니 조금은 무섭긴 하다. 그래도 너무 겁먹지는 마시라. 나같이 이 일에 겁을 내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우리가 안도할 수 있는 말을 해준다.
p267. 모두 공모자며 모두 종범이었고 모두 교사범이었다.
공모자며, 종범이며, 교사범인 우리를 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배를 탔다는 의미가 이런 것 아닐까. 여기에는 슬픈 비밀이 있다. 이것은 다이몬드형의 도형 양 귀퉁이에 두 개의 삼각형이 그려져 전체적으로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
p201. 이 세상이 존재하는 질서의 원리죠. 큰 삼각형은 권력을 상징해요.
생태계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강력한 지배권력, 삼각형의 안정감.
가장 안정된 형태의 도형이니까요.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사다리꼴은 우리 사회를 상징합니다.
당신도 학교에서 배운 적 있죠. 현대 사회의 계층 구조, 바로 이 형태죠.
소수의 상류층과 소수의 하층이 있고, 넓은 중산층이 존재하는.
나는 내가 다이아몬드가 서 있기 위해 필요하다는 작은 삼각형인지, 아니면 다이아몬드의 중간층 쯤 될지, 아니면 밑의 부분을 이루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나리오에 죽게 된 사람과 그로 인해 득을 본 사람을 생각해 본다. 아마도 죽은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온전히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작은 삼각형 두개의 역할을 하였겠지. 나는 아직 죽기 않았기에 아마도 그 작은 삼각형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의 계층 구조 중 하나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 결론짓는다. 다행인 것일까? 나를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내가 평범하게 잘 살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다행한 일인지. 높은 곳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밟고 서야 한다. 나는 지금 몇 명을 짓밟고 서 있는 것일까. 나는 몇 명을 죽이고 지금 살아있는 것일까.
주인공은 킬러다. 사람을 죽이는. 그것도 더 지능적이고 악랄하게 사람을 죽이는, 자연사로 위장해 죽음을 서비스하는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쓰는 킬러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킬러인 것인가. 나는 어떤 시나리오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가. 앞서 말했던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정정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하게 사람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소재를 사용해서 글을 썼음에도, 일단 한마디로 재미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고민을 했을지 눈에 보인다. 작가의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두드러진 이 작품은 역시 세계문학상 수상작의 타이틀을 걸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임성순 작가는 회사를 주제로 한 <문근영은 위험해>와 <전락>을 집필 중이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기대 된다. 그리고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어떤 것일지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