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저는 어릴 적부터 유달리 동물들을 좋아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듯이 사람이 동물을 좋아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나봅니다. 그렇게 이유 없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제 동생도 저 못지않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샛노란 병아리를 팔았습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꼭 키우고 싶은데 엄마는 거기서 파는 병아리들은 건강하지 못하다며 반대하셨습니다. 그때 집이 아파트였던 것도 반대 이유였습니다. 엄마가 반대하자 저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오래도록 병아리들을 쳐다보면서도 집으로 데려갈 용기는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일을 냈습니다. 병아리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완강히 반대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병아리들은 오늘 안에 우리 집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병아리를 보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병아리를 내쫒지 못하고 상자로 집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그때는 마냥 좋았는데 엄마의 말씀대로 병아리는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 일로 얼마나 울었던지 목은 쉬고 눈은 떠지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 일주일간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하는 환청이 들려 잠도 못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병아리와의 이별로 대성통곡을 했던 동생과 저는 앞으로는 엄마의 말씀을 잘 듣기로 약속 했습니다. 이제 병아리는 키우지 말자는 데에 합의를 한 것이죠. 

 그런데 주택으로 이사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생이 또 일을 냈습니다. 물론 병아리를 키우지 말자는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미니 토끼를 집으로 데려온 것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눈이 까만 토끼를 보았습니다. 까만 눈에 조그마한 토끼가 어찌나 귀엽던지 동생의 용기에 기립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병아리 사건으로 이번에는 더욱 완강하게 나올 것 같던 엄마는 이번에도 토끼를 가족으로 받아주었습니다. 아마도 동생과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는 토끼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집에 있는 토끼 생각이 자꾸 나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지요.
 
 하루는 토끼한테서 냄새가 나기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향수를 사고, 토끼털을 빗어줄 생각으로 빗까지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토끼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엄마한테 여쭈어보니 엄마가 거실 청소할 때 토끼를 상자에 담은 채로 잠깐 밖에 내다놨는데 그 틈에 토끼가 집을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로 저는 틈만 나면 토끼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토끼를 찾는 것이 남은 일과가 되었지요. 자다 깨면 새벽에도 동네를 몇 바퀴 돌면서 토끼 이름을 불렀습니다. 결국 토끼는 찾지 못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는 토끼가 집을 나간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죽었다고 하면 동생과 제가 너무 슬퍼할까봐 집을 나갔다고 한 것이었죠.

 그렇게 또 한 번 슬픈 이별을 한 후에도 만남은 쉴 새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주택으로 이사 간 덕에 닭, 오리, 토끼, 개 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한적한 시골의 주택에서 살아서 저는 참 많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네요.

 닭은 모두 6마리를 키웠는데 그 중 한마리만 수컷이었어요. 그 수탉에게 부인이 많다는 의미로 왕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순했던 왕건이 동생과 제가 달걀도 가져가고 장난도 치고 하니까 화가 났는지 어느 날부터는 달걀도 못가져가게 하고 장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달걀을 꺼내려고 닭장 안에 손을 넣으면 왕건이 손가락을 쪼을듯이 달려들어서, 동생이 긴 막대기로 왕건을 막아 주어야만 달걀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왕건의 난폭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습니다. 마당의 풀을 뜯어먹으라고 닭장에서 내보내주면 왕건은 부인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나와서 이쪽저쪽을 보다가 갑자기 아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쪼았습니다. 그 때문에 아빠는 무릎에 피를 몇 번이나 보아야 했지요. 그래도 아빠는 왕건이 부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시면서 용감무쌍한 왕건이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저는 왕건이한테 쪼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왕건이는 아빠를 우리들 중 대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대장끼리 한번 싸워보자 뭐 이런 심보였지 싶습니다.  

 오리는 작은 덩치에 비해 먹성이 엄청나답니다. 포도나무가 있는 근처에 오리집을 만들어 주었는데 오리들이 포도가 열기가 무섭게 다 따먹어서 포도나무가 죽고 말았어요. 풀어주면 개들 사료도 뺐어먹을 정도로 못먹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뒤뚱뒤뚱 걷는 그 폼은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만큼 귀엽답니다. 아참, 물장구 치고 털을 부르르 떨 때도 오리의 귀여움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리 중에는 왕건이처럼 사나운 아이는 없었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이었죠.

 집토끼는 동네 할머니가 가져다 주셔서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한 마리는 우리 집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고양이가 채가는 바람에 만나자마자 이별을 하게 되었죠. 아직도 토끼한테 너무 미안해요. 바로 집으로 넣어주지 않을 것이 얼마나 후회되던 지요.  

 개는 지금까지 열손가락으로도 다 못 셀 만큼 키웠어요. 그만큼 슬픈 이별도 많이 했죠. 동물들은 사람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 탓에, 아무리 어릴 때부터 키워도 나이 들어 죽는 모습을 보게 되죠.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눈도 못뜨던 시절부터 봐도 어느새 관절이 퉁퉁 붓고 숨도 고르게 쉬지 못할 정도로 늙어버립니다. 동물들을 키우다 보면 제일 슬픈 일이 그거에요. 동물들이 사람과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는다면 그렇게 많은 이별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많은 동물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가량은 동물들과 같이 보낸 것 같네요. 그런 제가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동물이 있어요. 바로 고양인데요.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키워보지 못한 것 같아요. 고양이는 주인이 불러도 흥!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줄 알았어요. 자기 기분 좋을 때만 가까이 와서 애교 부리고, 평소엔 도도한 모습으로 주인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 줄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골골 소리를 내며 애정표현을 해주는 무리, 도리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골골 이중주가 정말 귓가에 들리는듯 했어요. 다나베 씨가 소냐를 잘못알고 타냐로 부르자 소냐가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다나베 씨를 쳐다볼 때에는 꼭 안아주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에만 반응하다니 이 얼마나 영리한 고양이인가요. 무리, 도리, 타냐, 소냐를 만나면서 그동안 고양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동네 길을 가다가 길고양이를 만나면 저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갑자기 나타난 길고양이가 저를 할퀼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길고양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 뒤돌아 갔는데, 혹시 그것이 자기를 보고 왜 소리를 지르냐고, 그러면 좀 서운하다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나 싶네요. 갑자기 그 일이 왜 가슴이 아플 정도로 미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니나처럼 고양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일까요.

 무리, 도리, 타냐, 소냐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무리가 도리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는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팠습니다. 타냐, 소냐가 새로 가족이 되었을 때는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도리가 가출을 했었는데 도리가 느낀 상실감을 알 수 있었어요. 타냐와 소냐에게 무리와 도리가 엄마, 아빠 노릇을 자처할 때에는 더없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고양이가 된 것처럼 그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양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것은 마리 씨의 통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네요. 그것이 무척 재미있어서 책 읽는 내내 웃으면서 봤습니다. 책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이렇게 아쉬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궁금한 이야기가 많은데 벌써 끝나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겐의 행방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고, 겐을 찾는 과정에서 입양한 노라의 이야기는 어떨 지 궁금하고, 소냐의 새끼들은 또 어떤 말썽을 부릴지 궁금한데 페이지는 이미 끝이라니요. 마지막 페이지의 작가의 말처럼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제 이 땅에 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그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겠죠. 제가 어릴 적 키웠던 병아리와 토끼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듯이 말입니다.

ps. 이 책을 읽고 나면 몇 가지 후유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니나처럼 동물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말을 걸면 동물들이 말을 해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두 번째는 고양이가 무지막지하게 키우고 싶어진다는 거예요.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물은 없으니 꼭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말 인간 수컷은 필요없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동물들만 있으면 인간 수컷은 필요없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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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03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리뷰를 몰라보다니 말이죠~
<인간수컷은 필요없어>,훅 땡기는 걸요.

어느멋진날 2010-08-03 18:43   좋아요 0 | URL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이 책이 인연이 되었는지 고양이 식구가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