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의시종 2005-04-25
하하하 아마 1주일쯤 전일 것이어요. 학교에 시험치러 부랴부랴 인문관 구석 계단을 오르는데 앞 잔디밭에 있던 벚나무가 간밤에 비를 맞고 그 고운 꽃잎을 죄다 떨구었더구만요. 공부도 변변히 안하고 시험보러 가는 주제에 그 널따랗고 화려한 분홍 양탄자에 숨이 막혀서 핸드폰으로 막 찍었더랬어요. 그런데 그 꽃잎들이 솜사탕 마냥 뭉쳐서 사과님 댁으로 날아갔나보네요. 그래서 그 꽃잎 뭉치를 들고 계시는 겁니까, 사과님? 정신없는 중간고사와 함께 봄은 떠나고, 아마 이번주말에 영화에서 보게 될 문근영의 눈동자에서나 마지막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올해 이 봄을 기억하고 싶다면, 전 내년 이맘때에 프랑스 혁명사 상권이나,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뒤질지도 몰라요. 어울리진 않아도요. 하지만 봄이란 항상 추억하고 싶긴 해도, 막상 떠올리려면 두려운 것이라서, 전 올해 이 맘때 다시 읽으리라 다짐했던 작년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그냥 억지로 잊고 있어요. 그냥 봄이란 실시간으로 즐기는 것만도 버거운 것 같아요. 아무리 아름답고 따스하고 한가해도, 그 종잡을 수 없는 기운을 다시 제 곁에 재생시키기엔 전 그렇게 원기왕성하지 못하거든요. 그저 한해 한해 다가오는 그 순간에는 엉겁결에 봄을 맞이할 수 있어도, 작정하고 제가 봄을 초대할 순 없어요. 흙.
그냥 언젠가 사과님과 만나게 될 앞으로의 초가을 쯤의 어느날이나 기대해볼래요. 잉어빵하고, 단팥죽하고, 솜사탕을 기본으로하고 옵션은 사과님이 정하세요. 후훗.(되도않는 이 글을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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