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 - 살해당한 인권과 죽음의 배후를 추적하는 휴먼 스릴러
김종대.임태훈 지음 / 나무와숲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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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있었던 28사단 폭행치사 사건은 군대의 실상을 재조명한 사건이었습니다. 4개월에 걸친 집단폭력 끝에 맞아죽은 28사단 윤 일병이 당한 가혹행위 사례가 공개되면서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조한진씨가 말한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 보내겠습니까?" 라는 말은 군대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윤 일병에겐 안타깝게도, 국방부 관계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 후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집단폭행에 가세한 개인에게 썩은 사과라는 판결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부 그라이브 사례처럼,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곳이 군대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군대는 철저한 계급, 직책을 바탕으로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아무리 철저한 상하관계를 지닌 군대라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따르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군대는 더 효율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를 도입함으로서 전체 질서를 더 합리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생자가 꼭 약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윤 일병의 경우 입대 전엔 대학교 과 대표를 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부대의 질서에 의해서 약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자신의 결함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약자가 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던,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던 간에 폭력을 통한 질서 유지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원래 폭력이 용인되는 곳이라는 사회적 학습, 그리고 구타 가해자를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영창에 가게 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폭력은 인정받습니다. 폭력이 인정받는 순간 폭력은 소통의 수단이 되며 악행을 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방식이 됩니다. 군대에서의 폭력은 "국방의 의무 축하해. 드디어 멋진남자 되는거야. 정신좀 차리겠구나." 라는 광고 멘트처럼, 신성한 임무와 진짜 사나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며 폭력의 합리화를 이끌어냅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멋진 남자, 정신을 차리기 위한 집단적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사고에 지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이지메는 그때그때 모두의 기분이 동해서 생겨난 옳은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는 한, 그런 행위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해도 자신들 나름의 질서에 따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지메의 구조》p.40

가해자는 자기 변명에 불과한 도덕적 불가피성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건이 처음 알려질 당시만 하더라도 당당했습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사건의 원인을 밀양 경찰과 주민들이 집단강간을 자행한 가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 것도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연약했고, 여자였고, 경쟁에서 밀린 존재였으며,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약자였고, 약자는 탄압받아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우리 안에 히틀러가 있습니다.

군대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기반은, 군대 밖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 인간을 불량품으로 규정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외면하고 배제하고 분리하는 구조 논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학습될 수 있으며 윤 일병의 가해자들은 군대에서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인간을 통제와 복종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인간관은 학교에서 학습되었고,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 직장에서도 재현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인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나, 대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단체기합 등을 통해 군대식으로 군기를 잡는 행동은 본질적으로 군대의 환경과 동일합니다.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이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라면 폭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인권이 무시되는 사회, 소수 약자와 피해자에게 가혹한 사회는 폭력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긍정하며, 이런 사상은 군대는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군대의 본질이라는 굴절되고 왜곡된 군대관의 기반이 됩니다.

많은 사학재단을 가지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나 고용인으로서의 기업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같은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의 군 수뇌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의식을 가진 군대시스템 속에서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관점에 적응되고 동화된 뒤 사회로 돌려보내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다양성을 부정하고 소수자 차별적인 언행을 이어가기 쉽습니다. 교회와 기업 그리고 군대는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적 공범자들입니다. - pp.125~126

군대에서의 폭력을 긍정하거나, 필요악으로 보는 사람들은 군대의 특수성을 지적합니다. 군대는 상황에 따라서 적과 싸우는 집단이기 때문에 전투력 유지를 위해 폭력을 통해서라도 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인권적인 생활환경이 전쟁시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전투나 훈련 상황에서는 엄정한 군기가 작동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율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합니다. 닫힌 환경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방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대는 전투에서나 필요한 명령과 복종 관계를 사적인 생활까지 유지시킵니다. 24시간 내내 강압된 환경은 동료를 전우가 아닌 적으로 만듭니다. 군대에서 원하는 것은 적군을 죽이기 위함이지, 전우를 죽이기 위함은 아닙니다. 병사들이 말하는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났을 때 병사들에게 실탄이 주어진다면, 그 실탄을 적에게 쏠 것인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을 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전투력은 서로 신뢰하는 믿음 속에서 단합된 힘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 폭력으로 세워진 상하관계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저자들은 선진국의 군대처럼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을 분리해 열린 병영을 만들고 군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와 재향군인회가 병영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비역 장성들은 군대에서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약한 군대'를 만들 것이며 군대를 와해할 것이라 주장하며 개혁을 반대합니다. 그 주장대로 이명박 정권때 '강한 군대'를 주창하며 군인 예절과 훈육을 중시하고 병영문화 개선에 소홀히 한 결과 군대의 사건사고는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끼리 폭행하며 야만스러움을 표출하는 것이 진짜 사나이로 보이고 강한 군인으로 보일 지는 몰라도, 적에게 강한 군대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대에 인권을 도입하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일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는 것만도 많은 반발이 있었고, 조례가 시행중인 곳보다 아닌곳이 아직 더 많습니다. 학생들의 두발 자유, 종교의 자유, 체벌금지 등 지극히 당연한 요구들은 어른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 역시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토머스 페인은《상식》에서 인권은 인간의 당연한 '상식'이라고 주장하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인권은 아직 '상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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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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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제학자 제이슨 디베커와 브래들리 하임 연구진은 1987년부터 2009년에 걸친 세금 환급 자료를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이 연구한 가구는 시간이 흐르면서 가계 소득의 차이가 커졌음에도, 가장 부유한 가구에서 가장 가난한 가구의 순위는 해가 지나도 거의 재편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밑바닥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생애 내내 같은 지위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가정 역시 세대가 바뀌어도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경제나 사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일이다.

격차가 풍요를 줄인다면, 더욱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불평등과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우리는 새 기계시대의 온갖 잠재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불평등이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권력, 번영, 가난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수백 년에 걸친 역사를 흝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지리도, 천연자원도, 문화도 그것들의 진정한 기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재산권, 법의 지배 같은 제도야말로 진정한 기원이라는 것이다. 번영을 낳는 포괄적인 제도, 가난을 낳는 착취 제도, 즉 확고부동한 엘리트층에게 충성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과 경제를 왜곡시키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번영은 혁신에 의존하며 모두를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혁신 잠재력을 낭비하게 된다. 즉 우리는 또 다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이 어디서 나올지 알지 못하며, 그것을 창조할 인물이 어쩌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미국은 대체로 혁신과 투자에 보상해왔기에,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혁신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진공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엘리트나 다른 편협한 집단이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그것을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막는 특정한 정치 제도의 집합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우려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더한 정치적 불평등을 낳을 것이고, 정치권력을 더 많이 틀어쥐는 이들은 그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치를 취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악순환이며, 지금 우리는 그 악순환의 한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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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사이언스 클래식 15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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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다른 동물의 행동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인간행동학을 대중화한 연구자들, 모리스, 아드리, 타이거, 폭스 등이 흔히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들은 인간행동의 비교분석에 엄격성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비능률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비난을 받았던 선행 연구자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들의 전철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것이다. 예컨대 윌슨은 생물의 종 또는 속 간에 나타나는 형질 차이는 진화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비교, 추론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975년 이후 크게 발전해온 비교분석 방법이 인간행동에 관한 검증 가능한 추론을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지 않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조리 멸종한 관계로 호모 속의 다른 종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과 유인원이 공유하는 행동형질이 정말로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신중한 비교분석 방법론을 이용하여 인간행동 이해에 도움을 주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낡은 견해를 타파하는 증거를 제시한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은 세라 블래퍼 허디다. 허디는 사회생물학이 등장한 때를 전후하여 하버드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공부했으며, 그녀의 멘토 중에는 윌슨과 트리버스 외에도 영장류학자 어빈 드보어가 있었다. 허디가 수강한 학부 강의에서, 드보어는 인도에서 연구하는 일본인 영장류 학자가 랑구르 원숭이 수컷들이 어미들로부터 어린 새끼를 빼앗아 물어뜯어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언급했다. 드보어는 이 행동이 병적이며, 집단의 밀도가 높은 것이 원인일 거라고 설명했다.

허디는 이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한 후 랑구르 원숭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연구 결과, 수컷의 영아살해는 하나의 번식집단에 새로운 수컷이 들어올 때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암컷들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방금 전 새끼를 죽인 수컷과 곧바로 교미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허디는 트리버스의 관점을 이용하여, 수컷들이 젖먹이 의붓자식을 제거하는 것은, 암컷의 배란을 촉진하기 위해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랑구르 암컷들이 영아살해를 자행한 수컷들과 선선히 교미를 하는 것은, 해당 집단의 수컷들이 빈번하게 교체되는 현상에 대응한 암컷 나름의 적응전략이라는 것이 허디의 견해였다.

1981년 허디는《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인간 여성과 영장류 암컷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녀의 개념은 다윈의《종의 기원》이 출판된 직후 다윈은 암컷의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던 앤트워넷 브라운 블랙웰과 클레망스 루아예 등 다른 여성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20세기 말 까지만 해도 영장류 암컷의 행동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허디는《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에서 여성과 영장류 암컷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장류 암컷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영장류 암컷의 사회적 관계가 집단의 역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이후 나온 저서《어머니의 탄생》에서는 "인간의 경우 외부에서 침입한 남성의 영아살해 사례는 랑구르, 고릴라, 침팬지 등의 영장류만큼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 유아가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인간 사회에도 어느 정도 그러한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허디의 저서들은 동물의 행동에 대한 사고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생물학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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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 -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오파비니아 7
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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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엽에 대부분의 과학자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기원을 다소 따분하게 설명했다. 즉, 세포가 일부 DNA를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한 게 미토콘드리아 DNA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린 마굴리스는 20년 동안 미토콘드리아 DNA가 그저 호기심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신에 미토콘드리아 DNA는 훨씬 거대한 사실의 증거, 즉 생명이 섞이고 진화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생물학자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았다.

마굴리스가 주장한 세포 내 공생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오래 전에 지구 상에 나타난 최초의 미생물에서 진화했고, 오늘날 살아 있는 생물은 모두 그 유산의 일부로 특정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 수는 100여 개에 이른다. 마굴리스는 큰 미생물이 작은 벌레 같은 미생물을 삼켰는데, 그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주 이상한 일이란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양측은 싸움을 계속했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수많은 세대가 지난 뒤에 적대적인 만남으로 시작했던 이 결합은 합작 벤처 사업으로 변해갔다. 작은 미생물은 갈수록 산소로 고옥탄가 연료를 합성하는 능력을 발전시켰고, 큰 미생물은 점차 에너지를 생산하는 능력을 잃고 대신에 작은 미생물에게 영양분과 거처를 제공하면서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생물 노동의 분화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은 죽지 않는 한 상대방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합체된 미생물이 바로 우리의 미토콘드리아다.

불행하게도 마굴리스가 이 이론을 발표했을 때 과학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세포 내 공생설을 다룬 마굴리스의 첫 번째 논문을 거절한 학술지는 열다섯 군데나 되었고, 많은 과학자는 그 이론에 포함된 추측들을 단호하게 공격했다. 생물학자들은 세포 내 공생설을 싫어했고, 1980년대에 새로운 스캐닝 기술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DNA가 동물과 식물처럼 선 모양의 기다란 염색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세균처럼 고리 모양의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고리에 촘촘하게 늘어선 37개의 유전자는 세균과 비슷한 단백질도 만들었고, A-C-G-T 염기 서열 자체도 놀랍도록 세균과 비슷했다. 이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심지어 장티푸스균처럼 살아 있는 미토콘드리아 친척도 확인했다. 비슷한 연구를 통해 엽록체도 고리 모양의 DNA를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마굴리스는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엽록체도 큰 조상 미생물이 광합성을 하는 조류를 집어삼키면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세포 내 공생설을 뒷받침하는 이 두 가지 사례는 아주 강력한 증거여서 반대자들도 쉽게 일축할 수 없었다. 결국 마굴리스가 옳음이 입증되었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굴리스의 이론은 미토콘드리아를 설명한 것 외에도 지구상에 탄생한 생명과 관련해 골치 아픈 한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 수수께끼는 진화가 처음에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출발을 한 뒤에 왜 갑자기 오랫동안 정지 상태에 머물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진화에 다시 시동을 건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더라면, 원시 생명체는 우리보다 지능이 훨씬 떨어지는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고등 생물로도 결코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시 미생물은 DNA를 복제하고 유지하는 데 전체 에너지 중 2%를 썼지만, DNA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 데에는 75%를 썼다. 따라서 설사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유리한 형질을 나타나게 하는 DNA가 진화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발전한 특징을 만들려고 하면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화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 교착 상태에서 미토콘드리아가 값싸게 만들어낸 에너지가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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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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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번역출판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연도에 따라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출판시장에서 번역서의 비중은 전체 도서의 25~30%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학습지처럼 번역서가 전무한 경우도 있지만, 만화, 자연과학, 철학의 경우 다른 장르보다 번역서의 비중이 높습니다. 전체 도서의 50%가 번역서인 장르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환경에서 번역자는 작가만큼 중요하며, 번역의 질은 출판문화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규칙을 가지고 있는 언어를 전환시켜야 하기 때문에, 번역은 그 특징상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매우 어려운 분야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어머니'로 번역하다가 '엄마'로 번역하는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피네간의 경야》처럼 번역됬지만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천황이냐 일왕이냐 덴노냐 하는 문제처럼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정치적 입장을 보일 수도 있고, 귀여니의 소설을 중국 번역자가 번역한 것이 귀여니 소설의 작품성을 잘 살린 것이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존댓말과 반말이 있는 언어와 없는 언어를 번역할 때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있으며, 최근에 있었던《이방인》번역 논란처럼 번역이 작품 전체의 뉘앙스를 바꿔버렸다는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좀 딱딱하지만 원어의 구조와 표현을 살려줄 것이냐, 아니면 독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사용할 것이냐는 두 가지 번역에 대한 태도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번역서의 비중이 낮고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영미권 출판사의 경우 의역을 선호하는데, 체코 작가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거리, 다리, 사람 이름을 전부 영어식으로 바꿀 정도로 자국화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일본의 경우 문학작품은 의역을 선호하며, 자연과학서와 인문, 사회과학서는 직역을 선호합니다.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로 자국의 언어표현을 선택하는 것은 역자의 자율성 문제이기 때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역주의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책 앞에 실린 작가의 감사의 글까지 빼놓지 않고 번역을 하는데, 이 부분은 사실상 책의 내용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정도까지 원작을 중요시할 필요는 없다고 보입니다.

복주(覆奏), 부서(簿書), 함사(緘辭)처럼 두꺼운 국어대사전에도 안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놔둔 번역은 엄격하게 말하면 번역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영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영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이고 한문 고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한문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라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을 만큼 원문을 존중하는 직역주의가 한국에는 아직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 p.30

저자는 우리나라 번역의 지나칠 정도의 원문 지향적인 태도를 지식층의 숭배에 가까운 외국어 선호경향에서 찾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한문이 지식의 중심일 때는 한문을 읽으면 됬고,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어가 지식의 중심일 때는 일본어를 읽으면 됬기 때문에 한글로의 번역 필요성이 적었고, 번역하더라도 원어 중심의 번역을 선호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어의 영향력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해방 이후 서양의 서적들을 번역할 때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을 통해 중역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영한사전을 만들때도 영일사전을 중역할 정도였습니다. 영어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존중은 번역에 있어서 영어의 느낌 그대로를 살리는데만 집중하게 했습니다. 저자는 논문이나 과학서 뿐만 아니라 아동용 도서에서마저도 '현실 정치'란 번역을 굳이 '현실 정치(real politics)'라고 불필요하게 번역해줄 정도로 외국어를 대접하는 관행이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실력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직역 번역문을 많이 접하면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점점 직역 번역문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에도 직역 번역문의 자취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장에서《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는 책을 펼쳤더니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현대차) 노사관계는 한국 노사관계의 유형설정지(pattern setter)라고 말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번역문의 구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어로 말하고 있지만 언어의 구조와 규칙은 점점 외국어, 특히 일본어와 영어 구조로 사고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영어 5형식을 기반으로 수많은 영어 문장을 학습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겐 영어 구조로 언어를 사고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번역을 할 때 결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직접 갈 수 없다. 사전을 이용한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항상 현실 세계를 거쳐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가야 한다. 각 언어는 현실 세계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언어도 다른 언어와 직접적으로 비슷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어의 종말》p.482

저자는 과도한 직역주의와 수많은 번역문을 접하게 되는 것이 한국어의 개성 상실에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직역 번역문에 익숙해져간다면 추상 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것을 꺼리고, 능동태가 더 자연스러우며, 대명사를 잘 활용하지 않는 규칙 등 듣기에 자연스러운 한국어의 개성이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번역서가 아닌데도 외국어 규칙을 기반으로 한 한국어를 쓰는 한국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독자들도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것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수많은 직역 번역문을 읽고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직역의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직역 위주의 현실에서 균형을 잡아줄 한국어의 개성이 살린 의역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독자들이 번역서를 통해 원하는 것은 '뿅가죽는'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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