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사이언스 클래식 15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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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다른 동물의 행동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인간행동학을 대중화한 연구자들, 모리스, 아드리, 타이거, 폭스 등이 흔히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들은 인간행동의 비교분석에 엄격성을 도입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비능률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비난을 받았던 선행 연구자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들의 전철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것이다. 예컨대 윌슨은 생물의 종 또는 속 간에 나타나는 형질 차이는 진화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비교, 추론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975년 이후 크게 발전해온 비교분석 방법이 인간행동에 관한 검증 가능한 추론을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지 않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조리 멸종한 관계로 호모 속의 다른 종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과 유인원이 공유하는 행동형질이 정말로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신중한 비교분석 방법론을 이용하여 인간행동 이해에 도움을 주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낡은 견해를 타파하는 증거를 제시한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은 세라 블래퍼 허디다. 허디는 사회생물학이 등장한 때를 전후하여 하버드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공부했으며, 그녀의 멘토 중에는 윌슨과 트리버스 외에도 영장류학자 어빈 드보어가 있었다. 허디가 수강한 학부 강의에서, 드보어는 인도에서 연구하는 일본인 영장류 학자가 랑구르 원숭이 수컷들이 어미들로부터 어린 새끼를 빼앗아 물어뜯어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언급했다. 드보어는 이 행동이 병적이며, 집단의 밀도가 높은 것이 원인일 거라고 설명했다.

허디는 이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한 후 랑구르 원숭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연구 결과, 수컷의 영아살해는 하나의 번식집단에 새로운 수컷이 들어올 때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암컷들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방금 전 새끼를 죽인 수컷과 곧바로 교미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허디는 트리버스의 관점을 이용하여, 수컷들이 젖먹이 의붓자식을 제거하는 것은, 암컷의 배란을 촉진하기 위해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랑구르 암컷들이 영아살해를 자행한 수컷들과 선선히 교미를 하는 것은, 해당 집단의 수컷들이 빈번하게 교체되는 현상에 대응한 암컷 나름의 적응전략이라는 것이 허디의 견해였다.

1981년 허디는《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인간 여성과 영장류 암컷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녀의 개념은 다윈의《종의 기원》이 출판된 직후 다윈은 암컷의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던 앤트워넷 브라운 블랙웰과 클레망스 루아예 등 다른 여성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20세기 말 까지만 해도 영장류 암컷의 행동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허디는《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에서 여성과 영장류 암컷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장류 암컷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영장류 암컷의 사회적 관계가 집단의 역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이후 나온 저서《어머니의 탄생》에서는 "인간의 경우 외부에서 침입한 남성의 영아살해 사례는 랑구르, 고릴라, 침팬지 등의 영장류만큼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 유아가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인간 사회에도 어느 정도 그러한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허디의 저서들은 동물의 행동에 대한 사고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생물학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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