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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은 왜 군대 가서 돌아오지 못했나 - 살해당한 인권과 죽음의 배후를 추적하는 휴먼 스릴러
김종대.임태훈 지음 / 나무와숲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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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있었던 28사단 폭행치사 사건은 군대의 실상을 재조명한 사건이었습니다. 4개월에 걸친 집단폭력 끝에 맞아죽은 28사단 윤 일병이 당한 가혹행위 사례가 공개되면서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조한진씨가 말한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 보내겠습니까?" 라는 말은 군대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윤 일병에겐 안타깝게도, 국방부 관계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 후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집단폭행에 가세한 개인에게 썩은 사과라는 판결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부 그라이브 사례처럼,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곳이 군대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군대는 철저한 계급, 직책을 바탕으로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가 다수를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아무리 철저한 상하관계를 지닌 군대라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따르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군대는 더 효율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를 도입함으로서 전체 질서를 더 합리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생자가 꼭 약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윤 일병의 경우 입대 전엔 대학교 과 대표를 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부대의 질서에 의해서 약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자신의 결함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약자가 되고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개인이 집단을 처벌하던, 집단이 개인을 처벌하던 간에 폭력을 통한 질서 유지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원래 폭력이 용인되는 곳이라는 사회적 학습, 그리고 구타 가해자를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영창에 가게 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폭력은 인정받습니다. 폭력이 인정받는 순간 폭력은 소통의 수단이 되며 악행을 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방식이 됩니다. 군대에서의 폭력은 "국방의 의무 축하해. 드디어 멋진남자 되는거야. 정신좀 차리겠구나." 라는 광고 멘트처럼, 신성한 임무와 진짜 사나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며 폭력의 합리화를 이끌어냅니다. 윤 일병의 사례는 멋진 남자, 정신을 차리기 위한 집단적 과정 속에서 일어났던 사고에 지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이지메는 그때그때 모두의 기분이 동해서 생겨난 옳은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는 한, 그런 행위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해도 자신들 나름의 질서에 따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지메의 구조》p.40
가해자는 자기 변명에 불과한 도덕적 불가피성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건이 처음 알려질 당시만 하더라도 당당했습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사건의 원인을 밀양 경찰과 주민들이 집단강간을 자행한 가해자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 것도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연약했고, 여자였고, 경쟁에서 밀린 존재였으며, 부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약자였고, 약자는 탄압받아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우리 안에 히틀러가 있습니다.
군대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기반은, 군대 밖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 인간을 불량품으로 규정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외면하고 배제하고 분리하는 구조 논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학습될 수 있으며 윤 일병의 가해자들은 군대에서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인간을 통제와 복종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인간관은 학교에서 학습되었고,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 직장에서도 재현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인권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나, 대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단체기합 등을 통해 군대식으로 군기를 잡는 행동은 본질적으로 군대의 환경과 동일합니다. 군대 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곳이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라면 폭력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인권이 무시되는 사회, 소수 약자와 피해자에게 가혹한 사회는 폭력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긍정하며, 이런 사상은 군대는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군대의 본질이라는 굴절되고 왜곡된 군대관의 기반이 됩니다.
많은 사학재단을 가지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나 고용인으로서의 기업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같은 보수적인 정치적 성향의 군 수뇌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의식을 가진 군대시스템 속에서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관점에 적응되고 동화된 뒤 사회로 돌려보내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다양성을 부정하고 소수자 차별적인 언행을 이어가기 쉽습니다. 교회와 기업 그리고 군대는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적 공범자들입니다. - pp.125~126
군대에서의 폭력을 긍정하거나, 필요악으로 보는 사람들은 군대의 특수성을 지적합니다. 군대는 상황에 따라서 적과 싸우는 집단이기 때문에 전투력 유지를 위해 폭력을 통해서라도 군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인권적인 생활환경이 전쟁시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전투나 훈련 상황에서는 엄정한 군기가 작동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자율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합니다. 닫힌 환경 속에서도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방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대는 전투에서나 필요한 명령과 복종 관계를 사적인 생활까지 유지시킵니다. 24시간 내내 강압된 환경은 동료를 전우가 아닌 적으로 만듭니다. 군대에서 원하는 것은 적군을 죽이기 위함이지, 전우를 죽이기 위함은 아닙니다. 병사들이 말하는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났을 때 병사들에게 실탄이 주어진다면, 그 실탄을 적에게 쏠 것인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을 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전투력은 서로 신뢰하는 믿음 속에서 단합된 힘을 통해 나오는 것이지, 폭력으로 세워진 상하관계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저자들은 선진국의 군대처럼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을 분리해 열린 병영을 만들고 군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와 재향군인회가 병영문화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비역 장성들은 군대에서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약한 군대'를 만들 것이며 군대를 와해할 것이라 주장하며 개혁을 반대합니다. 그 주장대로 이명박 정권때 '강한 군대'를 주창하며 군인 예절과 훈육을 중시하고 병영문화 개선에 소홀히 한 결과 군대의 사건사고는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끼리 폭행하며 야만스러움을 표출하는 것이 진짜 사나이로 보이고 강한 군인으로 보일 지는 몰라도, 적에게 강한 군대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대에 인권을 도입하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일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자는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하는 것만도 많은 반발이 있었고, 조례가 시행중인 곳보다 아닌곳이 아직 더 많습니다. 학생들의 두발 자유, 종교의 자유, 체벌금지 등 지극히 당연한 요구들은 어른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어른들 역시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토머스 페인은《상식》에서 인권은 인간의 당연한 '상식'이라고 주장하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했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인권은 아직 '상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