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재발견
에리카 아리엘 폭스 지음, 임현경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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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그때 이렇게 말했으면 더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조별과제를 하면서 경험했을 수도 있고, 연애를 했을 때 경험했을 수도 있으며, 면접장에서 면접을 볼 때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후회는 "이렇게 말했으면 더 주변을 웃겼을 텐데"의 수준일 수도 있고, "이렇게 말했으면 더 말이 깔끔했을텐데" 정도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말했으면 다투지 않았을 텐데"처럼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의견충돌이 생긴다는 것은 때에 따라선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대형 계약의 체결 과정일 수도 있고, 평생을 함께했을지도 모르는 연인과의 대화가 잘 성사되느냐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무척 중요합니다. 얻을 수 있는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대한 주도적인 담론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성을 일깨워라, 스토리가 필요하다, 데이터를 제시해라,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라 등 다양한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다른 사람을 움직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메시지들이었습니다. 그 성공의 메시지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수없이 합니다. 고객을 설득하고, 친구를 설득하고, 직장 동료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단순한 설득기술만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상대를 움직여야 할 때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혹은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합니다. 회식자리를 얼어붙게 만드는건 부장님의 유머고, 반민주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은 회장님의 독단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투덜댑니다. 그들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성과는 자신의 덕으로 돌립니다. 저자는 만약 다른 사람보다도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다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힘든 문제에 대해 털어놓았다. "50년 동안 매일 아침 아내가 넥타이를 골라줍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싫습니다. 제 아내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대법관은 영리하고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 pp.26~27


저자는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자신의 잊혀진 모습들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들, 자신이 꿈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순간들,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절들, 전사처럼 일에 몰입하던 모습들을 통해 자신을 설득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자신과 현재 자신의 괴리를 줄여줄 수 있으며,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마음과 의지가 자신의 세계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아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모습대로 자아를 실현하라, 상상한 그대로 삶을 창조하라는 메시지는 다소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는 것보단, 가끔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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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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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판사나 검사 한명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분류 기준으로 알려진 '직업별 회원등급'을 보면 남성 회원 1등급은 판사, 2등급은 검사 라고 합니다. 이 등급표에서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입사자는 9등급에 불과합니다. 판사나 검사와 친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서글픈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피의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어 재판에 회부하는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 형을 결정하는 판사와 알고 지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죄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며, 오직 사법기관입니다.

저자 맷 타이비는, 가난이 왜 죄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는 부의 격차가 심해진 이 시대에 미국의 불의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무전유죄는 우리사회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엔자이 사건들처럼, 미국에서도 억울한 판결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대상은 십중팔구 가난한 사람들, 소수인종들, 이민자들입니다. 경제적 궁핍은 원죄입니다. 맷 타이비는 빈곤이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폭력 범죄가 줄어드는 독특한 현상을 말합니다. 더 독특한 것은, 폭력 범죄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감옥은 강력 범죄자들로 채워지기보단, 갈수록 경범죄자, 사회적 약자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정하는 결정은 사법기관이 합니다.

당연히 감옥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 중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엔론 분식회계 스캔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수많은 범죄들이 발생했지만, 돈 많은 회장님들, 책임자들은 사법적 특혜를 받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책임은 다국적 금융그룹에서 지방의 소규모 은행에게 떠넘겨지고, 많은 화이트칼라 범죄들이 증거불충분으로 처리되며, 이런 범죄의 뒷처리는 세금을 통해 해결됩니다. 대기업이 벌이는 범죄를 건드리는데 있어서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부수적 결과의 개념이,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 죄 없는 직원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형사 기소를 모면하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S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공갈협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린스펀의 지적처럼, 강자들이 탐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 1128억 원 조세 포탈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현대 정몽구 회장 700억 원 횡령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SK 최태원 회장 1조 5000억 원 분식회계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두산 박용성 회장 289억 원 횡령에 분식회계 2000여억 원인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1000여억 원 횡령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그동안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국민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혹시 생각해본적 있는가. 다들 금액이 장난이 아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보자. 금액이 크면 형량도 커진다. 그래서 50억 이상 횡령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위의 예와 비교해보라. 그런데도 요지부동 집행유예 5년이다. 집행유예 기간은 1년에서 5년 사이다. 최대가 5년이다. 그래서 마치 집행유예로는 최고형을 선고한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엄벌에 처한 것 같다. 이게 기분 나쁘다. 법을 모른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집행유예가 뭔가? 어차피 풀어주는거다. 결국 수천억 원 해먹어도 풀어주는 것, 이게 선고의 본질이다. -《서초동 0.917》p.133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 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경미한 위법행위 때문에 감옥에 갑니다. 인도에서 걷지 않고 서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를 당한 청년도 있습니다. 정부기관은 260억 달러의 금융 사기를 중범죄로 다루지 않으면서, 복지 급여 몇백 달러를 부정 수급한 자를 잡기 위해 해마다 2만 6천 가구를 수색하는데 노동력을 사용합니다. 막강한 변호인단, 오랜 시간동안 법정투쟁을 할 자금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 권력층의 범죄를 잡는 것은 수사기관 입장에서 피곤한 일입니다. 때문에 수사기관은 공원에서 자고있는 청년들, 야한 만화책을 보는 성인들, 불법복제물을 다운로드하는 네티즌들 같은 쉬운 먹이감들을 잡아 실적을 올리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1989년에 열린 레오나 헴슬리의 탈세 혐의 재판에서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방 28개짜리 저택을 관리하는 헴슬리의 수석 가정부는 법정에서 자신이 부유한 호텔 경영주와 나눈 대화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세금을 많이 내시겠네요?" 가정부가 이렇게 묻자, 헴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세금 같은거 안내. 하찮은 사람들이나 세금을 내지." -《치팅 컬처》p.197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미덕인 성공에 대한 야망은, 중요한 악덕인 일탈행위를 조장합니다. 성공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는, 가능하면 공정한 수단을 사용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합니다. 성공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올바르다고 여겨지게 합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주변엔 성공한 자들에 의한 지배가 올바르다고 피지배층이 여겨지도록 여러 가지 장치들이 존재합니다. 오늘날 지배층에 의한 피지배층의 지배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피지배층의 동의와 합의를 기반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기업 회장님들이 저지른 범죄를 알고 있고, 그 범죄에 대한 형벌이 불공평하며 올바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에 동의하며 인정합니다.

미국에서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이 완전히 다르고 징벌의 수위도 완전히 다르다. 부자들은 늘 특혜를 받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격렬한 증오와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비굴한 숭배가 넘쳐난다. 너무나 무능하여 존경받을 자격조차 없는 부자라도 예외는 아니다. - p.427


저자가 지적하는 바처럼, 우리는 너무나 게으른 탓에 자주적인 통치를 포기하고, 이 사회를 관료제라는 자동 조종 장치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관료제가 제공하는 사법 서비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철두철미한 강철의 덫을 제공하며, 부자들에겐 각종 특혜가 담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큰 죄는 가난입니다. 사마천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10배 부유하면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000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하인 노릇을 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10,000배가 아니라 50,000배, 100,000배 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노예 이하의 비굴함을 보입니다. 가난을 죄로 만드는 것은, 부가 옳다는,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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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수난사 -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유명한 위인들
베스 러브조이 지음, 장호연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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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랑이처럼 죽어서 가죽을 남길 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의 시체는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고급 재료들이기에, 호랑이처럼 죽어서 가죽밖에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체도 욕망의 대상이 됩니다. 보통 사람의 팔뚝이나 무릎은 부위별로 잘려 의대생들의 실습재료로 사용될 수 있고, 장기는 다른 사람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뼈는 곱게 간뒤 반죽해 치근수술에 사용되고, 피부는 성형수술을 통해 다른 미녀의 얼굴에 들어갑니다. 보통 사람들의 몸도 유용하지만, 유명한 사람들의 몸은 더 유용합니다. 그들의 몸은 때론 세계적 관심을 받는 과학연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6년 전에 연예인 故 최진실씨의 유골함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이 뭐라 말했건 간에, 확실한 것은 故 최진실씨는 죽어서도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욕망의 역사는 길고도 많습니다. 성 니콜라우스, 아인슈타인, 베토벤, 링컨, 체 게바라, 오사마 빈라덴, 토머스 페인.. 수많은 유명인들의 시체는 살아있는 자들의 욕구에 의해 갈리고 파괴되고 장식되었습니다. 저자 베스 러브조이는《무덤의 수난사》에서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유명인들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성유물 문화, 사이비 과학이었던 골상학의 영향인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서양인들이지만, 동양에도 그런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처의 사리를 모셔둔 불교의 절이 존재하고, 많은 신도들이 그곳을 찾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신체를 소유하고싶다는 욕망은, 때로는 개인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이며, 때로는 경제적입니다. 로젠바움은 절친한 친구였던 음악가 하이든의 두개골을 원했고, 항구도시 미라와 바리는 도시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성 니콜라우스의 유물을 원합니다. 레닌과 김일성의 몸은 정치체제를 위해 반영구적 시체가 되었습니다. 시체를 욕망하는 부위도 유명인에 따라서 다릅니다. 세계적인 천재 아인슈타인의 신체에서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은 뇌였고, 베토벤의 신체에서 욕망의 대상은 귓속뼈였습니다. 죽은 자의 신체에 대한 모든 행동에서 공통점은, 죽은 자는 조용하지만 그것을 두고 살아있는 자들끼리 다툰다는 점입니다. 그 신체가 누구의 것인지부터, 어디에 안치되야 하는지의 문제는 논쟁적입니다.

1878년, 존 스콧 해리슨 의원이 오하이오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는 아주 부자였고 미국 전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외과의들은 앞 다투어 그의 뇌를 연구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그의 심장과 심실은 물론이고 뼈와 혈관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시멘트 관을 주문했고 일주일 동안 한시간도 빼놓지 않고 경비를 세워 시신을 지키게 했다. 일주일 뒤 해리슨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오하이오 강가에 있는 그의 무덤에 모였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 옆에 있는 어린아이의 무덤에서 도굴의 흔적을 발견했다. 어린아이의 시체까지 훔쳐가는 만행에 사람들은 분노했고 해리슨의 아들과 일행은 경찰의 수색영장과 함께 오하이오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어린아이의 시체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집이 큰 시체를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리슨이었다.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pp.138~139


현대가 시작되면서 무덤의 수난사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여러 특징들을 설명한다는 사이비 과학인 골상학이 사라지고, 개인이 집에 두개골과 같은 사람의 뼈를 장식하는 문화가 대접받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유물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故 최진실씨나 엘비스 프레슬리 등 현대의 스타들에 대한 욕망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역할은 박물관과 기념관이 대신했습니다. 시체 수요에 대한 매물도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체되었습니다. 시신 연구를 위해 무덤을 파헤치던 과거와 달리, 장례식 비용만 대주면 몸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빈곤층은 세계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오기 페르나의 말처럼, 심장부터 피, 온갖 장기와 사람가죽을 구하는 일은 더 쉬워졌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새로운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소나 닭이 아닌, 사람을 경작하는 농장이라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의 책상 위에 가장 친했던 친구의 두개골을 장식하고 싶다는 욕망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묘지에 대한 욕망은 여전합니다.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에서 시체의 새로운 욕망, 국립묘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바 있습니다. 죽은 자는 정치적 기호가 되어 살아있는 자들의 양식이 됩니다. 국립묘지는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가? 국민들에게 애국심과 조국을 위한 충성과 희생의 당위를 웅변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국립묘지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 독재자와 소방수 중에 누구의 묘지가 더 커야 하는가? 시체가 무언가를 상징하는 한, 다양한 범위에서 시체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시체를 향한 욕망은, 그 시체가 영원히 떠돌며 우리 곁에 있는, 어찌보면 불멸과 같은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우리들, 산 자들의 욕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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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 아이들이 더 공부를 잘할까? - 알파걸 베타보이 이야기
유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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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여학생들은 모든 주요 과목에서 남학생보다 평균 성적이 높았습니다. 국어, 영어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은 아마 못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조금 남아있는 수학마저도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만큼, 심지어 더 잘하는 모습을 보이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은 아닙니다. 교육 수준이 사회 지도층과 오피니언 리더등을 형성하는데 강한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래의 사회를 이끌 주역은 남자들보다 더 많은 여자들일 수 있습니다. 여자들의 학업능력의 변화가 여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가져오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되지만,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가치는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으며, 사회구조 또한 과거보다 여성적 가치라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이제 여자가 할수 없는 일은 없다며 여군 등의 모습을 비춰주고, 여성 CEO, 여성 국회의원 등 남자와 다를 바 없는 권력을 가진 여성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더이상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심리적인 유리천장은 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은 과거의 지배층이었던 남자들보단, 과거의 피지배층이었던 여자들입니다. 남자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지만,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학생들의 성적 약진 현상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약해진 성역할 고정관념의 제거에 있습니다.

여자의 능력이 남자들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을 발휘하는 시점은 유치원에서도 발견됩니다. 야구배트는 누구에게 어울리는가, 인형은 누구에게 어울리는가 등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야구배트는 당연히 남자의 것, 인형은 당연히 여자의 것 등의 높은 고정관념을 보인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였습니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에 비해 고정관념이 낮았습니다. 고정관념이 낮은 아이들은 리더십이 강하고 남을 잘 설득해 인기가 높았던 반면, 고정관념이 높은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고 남을 잘 설득하려 하지 않아 인기가 낮았습니다. 유치원생부터 조직을 리드하는 것은 여자 아이들이었습니다.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서 흥미로운 점은, 고정관념이 높은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유치원에 한 번도 안 온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고정관념이 낮은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아내와 함께 유치원에 오며 육아에 많이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가정적인 남편, 직장을 가진 아내의 조합은 좀 더 나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요즘 보면 여자들이 주당 80시간 넘게 일합니다. 그런데도 집안일과 양육에 남자가 참여하는 시간은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양성성이란 성역할의 감옥에서 해방되자는 것인데 여자만 남자다워지는 것은 양성성 이론의 개념이 아닙니다. 남자도 변해야 합니다. - p.58


젠더의 변화에서 여학생들은 남자의 장점을 배우고 있는 반면, 남학생들은 여자의 장점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단 사회의 문제가 더 강합니다. 여자가 축구를 하고, 군대를 가고, 담배를 피우고, 데이트를 주도하는 등의 '남성적' 행위는 시대적 변화라고 인정하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남자들이 인형을 가지고, 타인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데이트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 남자 맞냐?" 와 같은 존재성의 부정으로까지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양성성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남자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여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어떤 가치가 남자다움, 여자다움으로 지칭되고 있지만, 이런 변화가 계속 지속될 경우 어떤 가치가 특정 성과 연결되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신체적인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그런 부분에서의 평등은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공간지각력, 손과 눈의 협응력은 남자가 더 뛰어나며, 감각기능, 언어능력은 여자가 더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의 차이는 분명히 인정하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적에서의 여풍이 말해주는 것은, 성역할 분업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는 사회, "나는 여자니까 이런 건 못한다"는 체념, "나는 여자니까 이 정도면 된다"는 제약, "나는 여자니까 더 대우 받아야 된다"는 특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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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 이펙트 - “사랑 따윈 필요 없어!”를 외치던 한 과학자의 놀라운 발견
브루스 H. 립튼 지음, 정민영 외 옮김 / 미래시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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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 한다면, 역시 결혼이 아닐까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인간의 평가기준으로 낙인찍히는 수능 결과, 자신의 이름을 대신하게 되는 직업 이름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사적 순간을 공표하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들어 화제가 되고 있는 삼포세대,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은 점점 더 많아지는 비정규직 자리와 늘지 않는 소득, 출산을 선택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비인간적 근무환경, 점점 더 부담되는 생활비 및 교육비 등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지 연애, 결혼 그 자체가 싫어서 포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은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결혼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한 커플이 가장 강렬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허니문 과정도 중요합니다. 허니문을 갔더니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나, 크게 싸워서 허니문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혼하는 등의 이야기도 있지만, 다수의 커플은 허니문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 이 허니문과 같은 기분을 결혼생활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생물학자인 저자는 의식적 노력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며, 과학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허니문 이펙트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경험은 매우 강렬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평소의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사랑의 행동을 연구해 왔습니다. 사람이 누군가에 심취하면 에페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증가하며, 이 호르몬들은 신진대사를 더디게 하고, 식욕을 떨어뜨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에 뇌 안의 세로토닌은 감소하게 되는데, 그러면 연인에 대한 생각 외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한 행동을 합니다. 이런 상태는 긍정적으로는 한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지속시키지만, 동시에 사랑과 관련된 각종 범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헬렌 피셔는 "인간은 원래 사랑에 실패했을 때 끔찍하게 고통을 받도록 만들어졌다. 사랑에 거부당한 사람의 뇌를 살펴보면 무수히 많은 감정의 파편들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출산을 그다지 장려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결혼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왜냐하면 2세에 대한 욕구보다 짝을 이루려는 욕구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자녀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자녀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생물의 짝짓기 행위가 꼭 2세를 갖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연결감' 그 자체를 위한 것임을 안다면, 예컨대 동성애 등에 대한 편견이 좀 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 pp.35~36


저자는 오랜 세월동안 사랑은 필요없다고 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이제는 열렬한 사랑 신봉자가 된 듯 합니다. 저자는 믿음과 의식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누구나 허니문 이펙트를 창조할 수 있으며, 평생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누구나 그런 유토피아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는 찬성하기 힘들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렬하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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