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게임 -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콘유 3부작
박해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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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는 '완챔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는, 부동산은 불패라는 신화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분당 땅 이야기도 그렇지만,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아파트 변천사는 그야말로 성공신화나 다름없었습니다. 74년 서대문구의 단층주택에서 시작해 77년 신반포 2차 33평, 80년 신반포 2차 42평, 88년 신반포 3차, 93년 압구정현대, 도곡동 타워팰리스, 도곡동 대림아크로빌로 이어지는 업그레이드는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영웅 서사시라고 불러도 될 수준입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바로 지금도 존재하며,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광장에서 투쟁하던 청년들은 격변의 근현대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부모가 되어야 했고, 부모가 되기 위해선 중산층이 되어야 했습니다. 중산층이 되기 위해선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가 돈이 많거나,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하고 아끼며 살거나, 도박에 성공하면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주 매력적인 도박을 제안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아파트 게임'입니다. 이 도박판은 매일 열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다섯 번의 큰 도박판이 열렸습니다. 2차 경제개발계획 이후, 2차 유류파동이 온 7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80년대 중반,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의 90년대 중반, IMF외환위기 이후 바이 코리아 열풍, 카드 대란, 아파트 버블로 이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의 도박판은 많은 사람들을 중산층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1971년 유신헌법에 이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가가 주도한 본격적인 아파트단지 건설은 권위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급증은 권위주의 국가 주도의 성장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은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되는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큰 수익원이다. 당첨된 가구는 중간계급으로 편입되면서 체제의 수혜자이자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p.102

사람들은 고도성장의 열매가 성과급의 형태로 예비 중산층의 계좌로 흘러들었다가 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용도를 변경한 뒤,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와 보조를 맞춰 다시 아파트 소유자의 호주머니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게임에 참가했습니다. 버블의 한가운데엔 언제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유동성은 언제나 부동산으로 흘러들었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계속 이득을 보았습니다. 토지를 통한 자본 이득의 확대재생산 게임에서 가장 큰 승리자는 역시 재벌이었습니다. 재벌들은 개발잠재력을 갖춘 땅들을 열광적으로 매입했으며, 국내 30대 재벌이 보유한 부동산은 1억 4000만 평으로, 서울시의 70퍼센트가 넘는 규모에 달합니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못하는 재산이 아니었습니다.

1989년부터 1990년 초까지 일본의 부동산 투자액은 1,800조 엔에 이른다. 국고예산이 60조 엔이니 약 30배의 규모다. 이것은 미국을 4개나 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 이면에는 '주식이나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고 시장은 그것을 강하게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굿바이 부동산》p.140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 되면서, 아파트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의 혜택은 복지 제도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줄 방패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임의 위험성을 염려해 뛰어들지 못한 사람, 시작할 자본이 없었던 사람들은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본이득의 압도적인 행진을 지켜봐야 했고, 서울이라는 게임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김수현, 이현주, 손병돈은《한국의 가난》에서 서울과 비서울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한번 서울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들어오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 라고 했을 정도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p.142

부동산, 특히 아파트는 빈곤층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자, 중산층에게 있어서는 건드려서는 안될 성역이 되었습니다. 종합부동산세가 논의되자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저항은, 정권을 뒤집을 정도였습니다. 게임의 승리자는 먼저 시작했던 투기꾼들, 불법적으로 정보를 얻을수 있었던 정치인들, 재벌들이었습니다. 아파트 게임은 고도성장과 경제 규모의 팽창을 동력원으로 삼은 상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동력원을 잃어버린 지금 아파트 게임의 결과는 엄청난 규모의 가계 부채, 대출을 받아 게임의 막바지에 참가한 하우스푸어, 엄청나게 오른 집값 때문에 내집은 커녕 방 한칸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청춘 세대를 남겼습니다.

이제 사다리는 치워졌습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고 저임금 고분양가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분양권이란 복권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던 내집마련의 꿈, 중산층 진입의 희망은 깨졌습니다. 사회의 부가 부동산의 시세차익이라는 형태로 분배되는 상황에서 집은 미래 그 자체와 다름없으며, 내집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집마련에 실패한 세대는 모든것을 포기해버립니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관심없습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최적화된 주거 형태는 집이 아니라 방입니다. 3평짜리 고시원,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13평 원룸까지는 가능합니다. 금융권은 계속 내집마련을 위해 대출을 하라고 권유하지만, 비정규직의 시대, 유연성의 시대에서 장기 대출은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아직은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같은 산업예비군들이 매트릭스의 배터리처럼 방에 거주하면서 서울의 노화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임금은 변함없고 정부는 집값폭락을 막기위해 부양책을 계속 내놓는 동안, 양극화는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진짜 위기는 노동 과정에 편입되지 못한 산업 예비군이 영원한 잉여 대중으로 낙인찍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경제와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질 때, 사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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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믹스의 허구 - 굴뚝 없는 황금산업은 없다
고마츠 키미오 외 지음, 홍상현 옮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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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건물, 호화로운 쇼, 바니걸, 풍족한 음식, 부자들, 딸랑거리는 돈 소리.. 자본이 가져다주는 사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지노의 이미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라스베가스, 싱가포르, 마카오, 모나코같은 세계적인 카지노 도시의 성공은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는 듯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영종도 카지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제주도엔 새로운 카지노가 건설되고 있으며, 해양수산부는 선상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허용해 새로운 강원랜드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카지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웃나라에도 있는 듯 합니다. 저자 고마츠 키미오와 다케코시 마사히로는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카지노 합법화 법안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카지노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전례없는 도박 대국입니다. 6개의 공영도박, 경마, 경정, 경륜, 오토레이스, 복권, 토토의 매출액은 5조 엔에 달하며, 파친코의 매출액은 20조 엔에 달합니다. 전 세계 도박기계의 60퍼센트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얼마나 도박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에 추가로 카지노를 합법화하겠다는 카지노 추진파가 있습니다. 카지노야말로 굴뚝 없는 황금산업이며,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하는 카지노 추진파는 일본공산당과 사민당을 제외한 정당에서 총 224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거대 세력입니다. 이들은 일본 정계의 우익 강경파 집단, 일본회의의 핵심들이며 정권의 실세들입니다. 이들은 도쿄 한복판에 카지노를 짓겠다는 오다이바 카지노 구상을 포함해 일본 전 국토에 카지노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카지노 합법화 추진 법안의 가장 큰 목적은 중국의 부자들이 뿌리는 막대한 원정도박자금입니다.

중국인 부자들을 유치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린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카지노 산업은,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일본이 카지노를 추진한다고 해서 결코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성공을 답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성공엔 중국과 같은 중화권 문화에 기반을 둔 중개업자 '정킷'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중국인 부자들을 염두해 두고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16개나 만든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이 싱가포르의 4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며, 절반 이상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카지노가 VIP 외국인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면, 자본의 목표는 일반 시민을 노리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그리놀스는 도박중독으로 말미암은 연간 사회적 비용은 미국역사상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 앤드류가 휩쓸고 간 손해 또는 1993년에 발생한 미드웨스트 홍수피해의 2배와 같다고 주장한다. -《도박의 사회학》p.40

사행산업의 부작용은 가족붕괴, 자살, 지역 공동체의 파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파친코 때문에 아이가 방치되어 사망하는 사건 등 도박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합니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도박의 사회적 영향을 조사한 결과 사회적 비용은 도박산업이 거둬들인 수익의 4배에서 6배에 달한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도박 산업이 호황일수록, 그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산업이 추진되는 이유는 이익은 자본에 귀속되는 반면, 비용은 세금으로 부담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김성이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카지노 강원랜드가 개업한 이후 지역 범죄율이 급증했으며 한국의 도박산업 매출액이 16.5조 원을 기록했지만, 결국 가정붕괴와 노동의욕 저하 등으로 60조 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 정부가 도박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시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카지노의 핵심 손님인 VIP들은 탈세, 불법, 부정 등을 통해 번 돈을 합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돈세탁의 용도로 카지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검은돈을 통해 잘 살아보자는 카지노 추진파의 주장은,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추악한 철학이 깔려있다고 말합니다. 도박은 아무리 미화한다고 해도 극소수의 막대한 이익을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통 받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습니다. 카지노를 짓는다면, 종합건설사, 국제적 카지노 자본, 관료, 정치가들은 이득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다수의 시민들입니다. 실업률은 고공행진하고 있으며,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대인관계, 희망, 꿈 등을 포기한 세대들 앞에서, 고통에서 탈출할 방법은 이민이나 로또밖에 없다고 속삭이며 도박판을 펼쳐줍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주 로또를 사고, 토토를 하며, 경마장에 가서 자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의 삶은, 한국마사회의 브랜드명 'Let's Run' 이란 말처럼, 지옥을 향한 달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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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가치
이타마르 시몬슨.엠마뉴엘 로젠 지음, 고영태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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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두 개의 가방 사진이 올라온 적 있습니다. 두 개의 가방은 동일한 제품이었지만, 한 사진은 가방의 브랜드 마크를 뗀 사진이었습니다. 같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마크를 뗀 가방에는 혹평 일색이었던 반면, 프라다 마크를 단 가방에는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반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브랜드의 가치가 가진 힘이 강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진을 올린 사람은 같은 품질의 가방임에도 불구하고 로고에 현혹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면서, 제품 본연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구매가 합리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지만, 변화는 시작되었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저자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이 말하고 있는것도 이 새로운 변화입니다.

현대의 마케팅은 심리연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기법들을 동원해 소비자의 판단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프레이밍 효과, 맥락 효과, 태스크 효과, 포지셔닝 효과 등 다양한 심리학적 기법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같은 소고기임에도 불구하고 90퍼센트 살코기로 홍보하느냐, 10퍼센트 지방으로 홍보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같은 48%의 지지율을 보인 대통령을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반쪽짜리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느냐, 과반수에 육박한 진정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평가하느냐의 차이는 받아들이는 유권자 입장에서 분명 다르게 느낍니다. 기업들은 이런 마케팅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며, 제품의 외적인 가치를 통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쇼핑 환경이 등장했고, 새로운 환경에서는 이전의 마케팅 효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소비자들이 마케팅 전략에 영향을 덜 받는 것은 이전보다 더 똑똑해졌거나 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검색 엔진의 발전, 다른 사용자들의 평가, 전문가와 지인들에 대한 접근성 등 여러 가지 새로운 도구들의 등장 덕분입니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대형 인터넷 쇼핑몰과, 블로그, SNS를 통한 수많은 상품평가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의 절대적인 가치를 더 주목하게 합니다. 과거엔 기존에 써봤던 브랜드라는 이유로, 막연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했다면, 요즘은 제품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평가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로튼토마토를 통해『라스트갓파더』대신『다크나이트』를 선택할 수 있고, GOTY를 통해『빅 릭스』대신『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체육관 이름을 '여성을 위한 피트니스 타임'이라고 짓기만 하면 여자들이 알아서 등록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핏타임이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징으로는 청결, 금남, 다양한 피트니스 수업, 놀이방 등이 있다. 핏타임이 이런 특징을 갖추면 고객들에게는 이곳을 선택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다. -《로드사이드 MBA》p.84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정보들의 중요성은 마케팅 회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수십만원을 주고 산다고 제의하고, 웹툰의 평점을 조작하며,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가짜 상품평을 올리는 등 어뷰징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쇼핑 환경에 암적인 부분이지만, 평가 사이트 및 기관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조작을 방지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가트너 그룹은 소셜미디어에 있는 평가 가운데 10~15 퍼센트 정도가 가짜일 것이라고 추정했고, 바자보이스는 인터넷의 1 퍼센트 정도가 가짜라고 추정했습니다. 평가 사이트를 자주 활용하는 소비자들 역시 가짜 평가를 은연중에 감지하기도 합니다.

전문가, 사용자, 그리고 다른 유용한 정보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브랜드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자신의 강점을 홍보한다면 소비자들은 그 주장을 확인할 여러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볼보 자동차가 안전하다는 추상적인 믿음 대신에 객관적인 충돌 테스트 수치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삼성 갤럭시 핸드폰이 타사 핸드폰보다 튼튼하다고 홍보한다면, 유튜브엔 삼성 갤럭시와 노키아 핸드폰의 강도 테스트 영상이 올라올 것입니다. 옴니아가 손톱터치가 된다고 말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이 전문가를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말해도 소비자들은 회사가 말하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을 평가함에 있어서 회사가 말하는 부분을 평가하는 대신, 평가 포인트를 자신들 스스로 결정합니다.

새로운 소비형태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듯 계속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하는 카우치 트래킹 현상,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이 더 빨라진 현상,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이 가슴보다 머리에 더 의존하게 된 현상을 보입니다. CF에서 말하는 것보다 인터넷의 글을 더 신뢰하고, 그런 수많은 글들을 신뢰해 주저없이 구매하며, 믿는 브랜드여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자체의 질적 측면을 고려해서 구입합니다. 이런 경향이 기존의 유명 브랜드에게 위기라면, 새로운 브랜드에겐 기회가 됩니다. 수많은 돈을 들여 브랜드를 홍보하지 않아도, 제품 자체의 질적 경쟁력만 갖춘다면 소비자들이 찾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가진 힘이 전부 무력화된 것은 아니며, 기존의 심리학적 연구결과에 기반을 둔 마케팅 기법들이 통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마케팅 회사의 심리기법에 따라 구매가 유도되며, 제품의 질과 상관없이 브랜드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가방, 화장품과 같은 사치품이나 음식 등 개인적 기호에 해당하는 제품들은 여전히 브랜드가 강세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느냐 하는 점입니다. 평생 델 컴퓨터밖에 모르던 사람은 다음 컴퓨터 역시 델 컴퓨터를 구입하겠지만, 다른 대안들을 접하게 되면 선택은 변화할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분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진로 소주만 마시며 술의 맛, 어른의 맛 운운하던 사람도 수많은 술들을 접하게 된다면 다른 술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자들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정보에 더 의지하게 되면서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선호를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쟁사의 제품보다 좋다고 홍보할 시간에, 경쟁사의 제품보다 질적인 우위, 절대 가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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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주식회사 - 진보는 어떻게 자본을 배불리는가
피터 도베르뉴 외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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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로벌 거버넌스는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NGO, NPO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린피스, 월드비전, 국제보전협회, 환경보전기금, 수잔 코멘 유방암 재단, 옥스팜, 시에라클럽 등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정부나 기업들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받으며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비영리단체들이 활동을 통해 정부나 기업의 권력을 견제하거나, 더 친환경적인 세상을 만들고, 약자와 어린아이들을 돕고, 빈곤과 싸울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저자 피터 도베르뉴와 제네비브 르바론은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이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비영리단체의 제도화, 운동의 제도화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빌리자면, 가능성의 한계입니다.

존 던이《민주주의의 수수께끼》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모든 의심을 인정하지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의심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칙도, 대안도, 그것은 민주주의의 틀에서만 존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심지어는 상식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환경오염의 해결책도, 빈곤을 극복하는 방법도, 빈부격차에 대한 대안도 전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영리단체의 저항도, 투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영리단체 자체가 자본주의화되었고, 기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법들은 자본주의적입니다.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 기업의 후원에 의지하게 된 원인에는 경제의 세계화 과정이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게 되면서 사회복지는 점점 기업에 의지하게 되었고, 기업의 자선은 정부의 재원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행정부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활동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지원금은 단체의 행사비용등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월급과 임대료, 기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합니다. 비영리단체의 직원으로 NPO 공동회의의 컨퍼런스에 갔을 때 언제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는 모금 마케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비영리단체가 활동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의 성금이나 회원들의 회비는 주요한 수입 중 하나지만, 더 매력적인 것은 기업의 후원입니다.

비영리단체가 기업의 후원을 중시하는 것은 자본주의로 인해 시민들의 사회생활이 사유화, 파편화되면서 운동과 정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노동과 소비, 휴가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지역사회와 작업장의 유대, 문화 행사, 급진적 토론을 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지역 신문, 노조 활동 등의 하부구조가 존재해 사회운동은 일상적인 사회적 구조에 뿌리내릴 수 있었고, 저항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비영리단체의 기반도 위태로워졌고, 과거보다 더 기업의 후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다보면 단체의 목적이나 현장의 필요성보다 타협과 실용주의,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기업을 위한 편익을 더 우선시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저항이 줄어든데다 9.11이후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정부의 강경대응은 비영리단체가 시위와 같은 강력한 대응을 포기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하도록 만듭니다. 후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 시위 현장의 외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그곳을 경찰차로 포위하듯이 둘러쌈으로써 외부에서 집회, 시위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는 등 헌법에 어긋나는 대응을 하는것이 일반화되었고, 강경 시위를 해도 시민들이 예전만큼 호응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항적인 단체는 정부에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거나, 지원금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별도의 지원법에 근거해 출연금 및 보조금 지원, 조세감면 등 세금을 통해 지원을 해주는 박정희가 만든 새마을운동협의회, 전두환이 만든 한국자유총연맹, 노태우가 만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3대 관변단체가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단체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권 내부의 기회 구조에 기대는 '제도화' 중심의 활동 방식은 위기를 맞았다. 아직 제도권 내부의 의제가 되지 못한 구조적이고 사회 개혁적인 이슈들을 다룸에 있어서, 시민단체들에게 익숙한 활동 방식, 즉 미시적 수준에서의 현실적 대안을 찾는 방식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시민단체들, 특히 대변형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나 제안이 정치권 혹은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를 압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감시자를 감시한다》p.90

국가의 탄압, 삶의 사유화, 공동체의 붕괴, 시민들의 사회성 위축은 비영리단체의 기업화, 운동의 제도화를 불러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는 기업이나 정부처럼 명확한 관료체제를 갖추었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브랜드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기업에서 주주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하는 것처럼, 후원자들에게 경영가적인 태도로 접근합니다. 다국적 기업들 역시 이런 비영리단체와 연결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후원하려고 합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일지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영리단체와의 협력은 윤리적이고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좋은 이미지는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북극곰을 구하기 위해 코카콜라를 마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주식회사화된 세계적인 비영리단체의 하향식 운영을 거부하는 운동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공동체단체와 풀뿌리운동은 비공식적이고 위계가 없는 조직을 지향하며, 기업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합니다. 이는 상당한 활기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구조나 통일성이 부족하며, 장기적인 영향력을 희생해야 합니다. 형태는 더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너무 약하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존재하지 않는 행사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옵니다. 결국 변화는 체제의 틀 안에서, 체제의 도움을 받으면서, 체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수준에서 겸손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은 소비를 통해 착한 일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콜라를 마시면 북극곰을 구할 수 있고, 스타벅스에서 물을 마시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물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잃고 소비로밖에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소비만 해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뿌듯해 할 수 있으며,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얻고 더 높은 매출을 올리며, 단체는 장기적이고 높은 기업 후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소비자와 기업, 비영리단체는 서로 윈윈하는듯 보이지만, 결국 구조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때문에 저자들은 주식회사로 변한 비영리단체들은 또 다른 세계라는 대안이나 대안이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대항책이라기보단,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형태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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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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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과 러브 플러스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방송에서 말한 한 일본인의 말은, 어느 정도 진실성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편의점은 식당이면서 약국이고, 서점이자 은행이며, 파출소이자 우체국입니다. 편의점에서 김밥은 물론이고 치킨도 먹을 수 있으며, 사랑도 298엔이면 살 수 있고, 손톱깎이, 우산, 콘돔, 각종 가전제품들, 심지어는 외제 자동차와 요트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ATM기를 통해 돈을 찾을 수도 있고, 택배를 맡겨놓을 수도 있고, 편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루이비통 가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없지만, 편의점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자 전상인은 24시간 내내 현대인들을 환영하는 편의점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봅니다.

유통 단계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편의점은 냉동 기술과 같은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등장했습니다. 프랜차이즈 방식을 통해 급속도로 증가한 편의점은, 전통적인 지역 소매상들을 대신해 새로운 시대의 소매상 기준을 제시합니다. 효율성, 계산성, 예측가능성, 통제성이라는 합리적 근대 사회가 요구하는 미덕들을 편의점은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편의점의 물건들은 판매정보관리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며, 판매량을 예측하고 통제합니다.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었던 호객행위도 편의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소매상들, 구멍가게 할머니와의 대화도 편의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편의점에서 오직 물건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비 그 자체인 것입니다.

편의점은 원칙과 표준화가 지배하는 매뉴얼의 공간이다.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사물들 혹은 로봇 간의 기계적 관계를 방불케 한다. 거래 행위에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편의점 방문은 '쿨한'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도시적 심성에 적절히 부합한다. 일종의 '무관심의 배려'인 셈이다. - pp.83~84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크게 발달한 편의점은 세계화의 단편을 볼 수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현지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편의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의 편의점은 지역적 특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본 편의점이 일본식 주먹밥으로 크게 유행하면서 일본적인 상품진열과 목록을 갖추었듯이, 우리나라의 편의점 역시 우리나라 특유의 물건들을 팝니다. 더 나아가 편의점은 판매정보관리시스템 덕분에 지역에 최적화된 물건들을 파는 카멜레온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은 우산을 더 배치하고, 삼각김밥의 수요가 많은 곳은 삼각김밥을 더 배치합니다. 이런 유동적인 모습이야말로 편의점이 가지고 있는 최대 강점입니다.

현대인의 삶이 분열된 형태로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편의점 또한 링크화되어 전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골의 면 단위에도 서너개의 편의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마라도에도 편의점이 있습니다. 북한의 개성공단까지 진출한 편의점은 현대사회의 인프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편의점은 어디에서나 소비주의를 홍보하는 광고판과 같습니다. 자동차를 무엇을 타느냐로 인간의 품격이 결정된다고 광고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기호를 소비하며, 기호를 소비함에 있어서 편의점은 최적의 장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편의점을 통해 전국 어딜 가더라도 모 브랜드의 음료수를 마실 수 있고, 자신이 매일 피우던 담배를 살 수 있으며, 평소 즐겨 사용하는 모 브랜드의 콘돔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촛불 시위'때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촛불집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잘못된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바르게 만들자는 것일텐데, 집회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일용할 자원과 무기는 주로 인근 편의점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실시간으로 공급한다. 하지만 촛불을 든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편의점의 배후가 거대 자본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을 미처 상기하지 못한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과 그런 세상을 치밀하게 지배하는 자들의 기막힌 공생 혹은 태연한 공존의 현장, 바로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편의점의 현주소이다. - p.158

최저시급은 5,580원이라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최저시급은 받으라고 말한 '알바몬 광고'가 유례없는 비난과 관심을 불러일으킨것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청년들과 그들을 주로 고용하는 PC방과 편의점, 그리고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편의점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객들은 20대 청년과 30대 직장인들이며, 주요 판매물품들은 담배, 컵라면, 삼각김밥, 도시락 등입니다. 3천원 내외로 식사를 해야 하는 돈 없는 사람들, 시간 없는 사람들, 사회의 을들이 주로 찾는 곳이 편의점이라는 것을 통계는 말해줍니다. 그런 을들의 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 을인 편의점 점주들이며, 을 중의 을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입니다. 을 중의 을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절반 이상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73퍼센트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며, 87퍼센트가 4대 보험 중 단 하나도 가입받지 못합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씨유, GS25, 세븐일레븐의 점포 점유율은 전체 편의점의 90.7퍼센트에 달합니다. 편의점 업계의 매출은 증가추세에 있지만, 정작 편의점 점주나 아르바이트생의 처우는 미래를 장담하기 힘듭니다. 편의점은 자본의 집적 및 집중의 증가 현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양극화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편의점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소비하며 살아가는지, 그 소비를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24시간 내내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편의점과 러브 플러스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 현대인의 외침은,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야만 하는 젊은 세대의 말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입니다. 편의점을 가장 많이 애용하는 사람들은, 편의점만 있으면 충분한 사람들이 아니라, 편의점밖에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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