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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 -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ㅣ 오파비니아 7
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월
평점 :
1960년대 중엽에 대부분의 과학자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기원을 다소 따분하게 설명했다. 즉, 세포가 일부 DNA를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한 게 미토콘드리아 DNA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린 마굴리스는 20년 동안 미토콘드리아 DNA가 그저 호기심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신에 미토콘드리아 DNA는 훨씬 거대한 사실의 증거, 즉 생명이 섞이고 진화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생물학자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았다.
마굴리스가 주장한 세포 내 공생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두 오래 전에 지구 상에 나타난 최초의 미생물에서 진화했고, 오늘날 살아 있는 생물은 모두 그 유산의 일부로 특정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 수는 100여 개에 이른다. 마굴리스는 큰 미생물이 작은 벌레 같은 미생물을 삼켰는데, 그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주 이상한 일이란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양측은 싸움을 계속했지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수많은 세대가 지난 뒤에 적대적인 만남으로 시작했던 이 결합은 합작 벤처 사업으로 변해갔다. 작은 미생물은 갈수록 산소로 고옥탄가 연료를 합성하는 능력을 발전시켰고, 큰 미생물은 점차 에너지를 생산하는 능력을 잃고 대신에 작은 미생물에게 영양분과 거처를 제공하면서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생물 노동의 분화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은 죽지 않는 한 상대방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합체된 미생물이 바로 우리의 미토콘드리아다.
불행하게도 마굴리스가 이 이론을 발표했을 때 과학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세포 내 공생설을 다룬 마굴리스의 첫 번째 논문을 거절한 학술지는 열다섯 군데나 되었고, 많은 과학자는 그 이론에 포함된 추측들을 단호하게 공격했다. 생물학자들은 세포 내 공생설을 싫어했고, 1980년대에 새로운 스캐닝 기술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DNA가 동물과 식물처럼 선 모양의 기다란 염색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세균처럼 고리 모양의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고리에 촘촘하게 늘어선 37개의 유전자는 세균과 비슷한 단백질도 만들었고, A-C-G-T 염기 서열 자체도 놀랍도록 세균과 비슷했다. 이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심지어 장티푸스균처럼 살아 있는 미토콘드리아 친척도 확인했다. 비슷한 연구를 통해 엽록체도 고리 모양의 DNA를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마굴리스는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엽록체도 큰 조상 미생물이 광합성을 하는 조류를 집어삼키면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세포 내 공생설을 뒷받침하는 이 두 가지 사례는 아주 강력한 증거여서 반대자들도 쉽게 일축할 수 없었다. 결국 마굴리스가 옳음이 입증되었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굴리스의 이론은 미토콘드리아를 설명한 것 외에도 지구상에 탄생한 생명과 관련해 골치 아픈 한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 수수께끼는 진화가 처음에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출발을 한 뒤에 왜 갑자기 오랫동안 정지 상태에 머물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진화에 다시 시동을 건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더라면, 원시 생명체는 우리보다 지능이 훨씬 떨어지는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고등 생물로도 결코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시 미생물은 DNA를 복제하고 유지하는 데 전체 에너지 중 2%를 썼지만, DNA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 데에는 75%를 썼다. 따라서 설사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유리한 형질을 나타나게 하는 DNA가 진화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발전한 특징을 만들려고 하면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화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 교착 상태에서 미토콘드리아가 값싸게 만들어낸 에너지가 이러한 장애물을 뛰어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