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정여울 글.사진, 이승원 사진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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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국적인 것을 찾아서, 풍경이 주는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은 직접 떠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때론 따뜻한 거실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여행의 쾌락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KBS의『걸어서 세계속으로』, EBS의『세계 테마 기행』같은 여행 프로그램만 봐도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이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로운 호기심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직접 가봤던 곳이라도 다른 사람의 렌즈를 통해 색다른 여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낯선 땅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며, 작은 것에서도 더 큰 위안과 더 큰 재미와 더 큰 감동을 느낍니다. 여행이란 단어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오늘날 매일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순간의 휴가 그리고 여행은, 노동이 가져다주는 최후의 안식처로 인식됩니다. 18세기 이후 부유한 계층이 여행과 관광을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특정 지역이 휴양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차와 비행기의 발달로 여행이 대중화되었고, 여행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서 소비주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본질은 개인의 만족감을 채우는 것이라는 풍조가 공고해지면서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빛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여행에서 화려한 성, 박물관, 호텔, 번화가, 유적지, 맛있는 음식들을 만납니다.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간 여행지는 실존하는 지역이자, 이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입니다.

좋은 점만 보고 결혼했다간 나중에 후회하는 것처럼, 우리는 빛을 보는 만큼 그림자를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경복궁, 명동, 남산을 가고 호텔에서 한식을 즐기며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만으로 한국을 여행했다고 말한다면, 한국이라는 대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경험입니다. 그림자 여행은 내키지 않는 여행이며, 찾기 힘든 여행입니다. 좋은 것만 보며 살기에도 삶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상시 해볼 수 없으면서도 즐거운 것을 찾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림자 여행은 순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림자 여행은 엄연한 여행입니다. 다만 현대인들이 잊어버린, 혹은 의식적으로 잊고자 하는 여행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여행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누구의 도움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야생의 길을 완주하는 것. 몇 달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작은 텐트 하나에 온몸을 의지한 채, 오직 '자연과 나' 외에는 어떤 만남도 기피하는 그런 여행. 여행이라기보다 고행에 가까운 여정. - p.337

그림자를 마주봄으로써 비로소 빛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저자 정여울은 말합니다. 저자는 50개의 글, 50개의 사진을 통해 50개의 그림자 여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그림자는 자신에 대한 그림자이면서, 사회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이 그림자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에서 든든한 동반자는 바로 책입니다. 헤르만 헤세, 남재일, 빅토르 위고, 조지 오웰, 박노해, 괴테, 루소 등 수많은 동반자들과 함께 정여울 자신의 그림자를, 한국 사회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여행엔 일반적인 여행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함과 편안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멋들어진 음식도, 어떤 나라에 간 여행객이라면 무조건 들려야 한다는 필수 관광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사유와 진실됨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떠납니다.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즐기는 스포츠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자식이 있다면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에, 연인이 있다면 꽃놀이 여행을 갈 수도 있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한 여행도 있고, 취업을 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는 않지만 억지로 가는 국토대장정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은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한 번쯤은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고합니다. 사회의 그림자를 향한 여행이 부담스럽다면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여행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림자 여행은 큰 돈이 필요한 여행도 아니고, 멀리 나가야 하는 여행도 아닙니다. 어떤 여행회사도 이 여행계획을 만들어 줄 수 없으며, 어떤 유명 여행지도 여행의 목적은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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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다
필리스 체슬러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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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것들에 대해 친밀감을 느낍니다.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조국의 사람을 만나거나,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왠지 반가움을 느낍니다. 같은 게임을 하거나, 같은 책을 보거나,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 결과는 이사를 할 때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도시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소속감을 원하고자 하는 사람의 성향은 여자와 여자간 관계에서도 비슷한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같은 성이기에 서로 많은 것을 이해해주고, 듬직한 친구관계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입니다. 특히나 걸핏하면 서로 싸우는 청소년기의 남자들을 보고 있자면,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비밀의 화원은 대단히 지적이고, 교양있는 공동체로 인식됩니다.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참상과, 과도한 생산과 소비가 낳은 환경 파괴는 남성성의 부정적 특징으로 인지되었고, 이에 대해 글로벌 자매애라는 페미니즘의 비전은 새로운 시대의 사상으로서 여성스러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평화, 자애, 친자연적 가치는 모성이라는 이미지 아래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성성에 대한 이미지, 기대와 실제 여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필리스 체슬러는 원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여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경쟁하는 여자, 투쟁하는 여자, 여자를 공격하는 여자들입니다. 체슬러는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은 능력과 똑같은 욕망과 똑같은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자들은 남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명백히 말하면 소녀가 소년들과 다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소녀들이 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여자들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동정심과 잔인성, 협동심과 경쟁, 이기심과 이타심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공격성이 관측되기 힘든 이유는, 경쟁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남자들은 공개적인 경쟁을 벌이지만, 여자들은 간접적인 형태로 경쟁을 벌입니다. 소년의 무기는 신체지만, 소녀의 무기는 언어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간접적이고 비육체적인 형태의 공격을 하는 법을 배웁니다.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과 같은 싸움은 용납되기 힘듭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그런 성향이 더 강합니다. 여자들은 위험이 덜하고 부상을 덜 입는 접근 방식의 하나로 간접적인 공격을 취하도록 문화적으로도 훈련을 받습니다.

세라 블래퍼 허디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과 영장류 암컷이 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동물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고 지적했다. 그녀는 영장류 암컷이 어떻게 그들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는지, 그리고 영장류 암컷의 사회적 관계가 집단의 역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센스 앤 넌센스》p.144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공개적인 경쟁, 직접적인 경쟁, 신체적인 공격이 감정적으로 위험한 것일 뿐 아니라 공격을 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남자에게 허락된 특권입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에로틱한 욕구나 공격적인 욕구를 강압적으로 눌러야 합니다. 여자들은 자신의 공격적인 본성을 누름으로써 많은 이점을 누립니다. 공격적인 본성을 숨기는 여자들이 남자들 사이에 더 가치 있는 짝으로 인식되고 여자들의 사교집단 안에서도 더 유쾌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자신들의 공격성을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에 간접적인 형태로 풀어놓습니다. 여자들의 공격과 적의, 폭력과 잔인성의 주요 표적은 다른 여자들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덜 적대적이고 충돌을 빚는 성향이 덜하다고 단정해야 할 논리적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소녀들은 다른 사람을 안전하게 공격하는 방법이 그 사람의 뒤에서 공격하는 것이라는 점을 학습합니다. 그래야만 공격의 표적이 된 사람이 그 공격이 누구의 짓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끊임없이 소문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며, 육체적으로 서로를 죽이지 않고도 싸울 수 있습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육체적 폭력의 사용을 피한다는 것이 갈등을 의미 있고 영속적인 방식으로 풀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회피이며, 집단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만 모인 파벌 집단은 그 안의 여자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런 파벌 집단은 자신들보다 더 아름답거나 똑똑하거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자면 누구든 경계합니다.

여자에 대한 여자의 적의는 또한 낮은 자신감, 낙관적인 태도의 결여, 내면에 대한 통제력의 부족, 신체에 대한 높은 거부감, 자아의 상실, 여자들이나 남자 파트너와의 친밀한 관계의 부족, 여자들과 함께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 여자들과의 치열한 경쟁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폭력의 측면으로 넘어가면 그런 적의가 강간과 성희롱을 둘러싼 신화들을 쉽게 수용하게 만들고 개인간의 폭행을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 p.156

연구조사 결과 소년들은 자신의 집단에서 친구들이 자기보다 뛰어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단의 누군가가 승리를 거두면 그 집단의 다른 소년들도 자신의 지위가 올라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때문에 특정 구성원의 활약은 집단을 더 강화시킵니다. 때문에 남자들의 경우 서로 잘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을 때조차도 힘을 합쳐 인명을 구하거나, 사업을 운영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소녀들의 집단은 상호 호혜를 요구하고 있으며, 구성원 간에 지위가 조금의 변화라도 일어나게 되면 위협을 강하게 느낍니다. 여자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평등을 바탕으로 한 신뢰입니다. 집단에서 한 여자가 혼자 활약한다면, 그것은 집단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가부장적일수록,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일수록 여자들은 더 은밀하고 어두운 형태로 여자들을 공격하며, 여자들이 서로에게 입히는 상처도 더 커지게 됩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복종하고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의존하는 태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여자들끼리의 공개적인 경쟁은 금기시된다고 학습됩니다. 원칙적으로는 거부되지만 현실 속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경쟁이 여자들에게 훨씬 더 심각한 상처를 남기며, 그 상처는 훨씬 더 치열하고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사회에선 성폭행을 당한 여성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여성인 경우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이 낮은 나라일수록 노동자들이 고용주와 싸우기보단 노동자들끼리 패를 갈라 싸우는 것처럼, 여성의 인권이 무시되는 나라일수록 여성들은 남성의 성차별적 가치관을 습득해 여성들 스스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투쟁합니다.

여러 구조를 지닌 기업에서의 연구 결과는 환경이 여자들의 공격성을 배출하는 방법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성 지배적인 조건에서는 여자들이 서로에게 거칠게 구는 반면, 지배층이 동등하거나 여성 지배의 조건에서는 여자들끼리 거칠게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구조의 정상 부분에 여자들이 더 많아지면, 여자들은 다른 여자들을 더 공정하고, 더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즉 여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이유는, 여자들이 동족을 혐오하는 어리석은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여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극히 적은 남자 위주의 지배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남자들만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갖추었을때, 여자의 적은 남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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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권력이다 - 남자의 키는 신분, 연봉, 연애와 결혼생활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걸까
니콜라 에르팽 지음, 김계영 옮김 / 현실문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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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프로그램『미녀들의 수다』에서 나왔던 "남자의 키가 최소 180cm 안되면 loser"라는 발언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180cm, loser 라는 명확하고 신선한 표현 덕분인지 루저 발언자가 집중 조명되었지만, 방송 전체로 봤을때 한국 출연진들의 의견은 비슷했습니다. 키 작은 남자가 폭력 남자보다 인기가 없다는 설문조사가 제시되었고, 결혼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춰진 남자여도 키 작으면 싫다, 그것이 장동건 정도의 외모를 갖춘 남자라도 키 작으면 안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남자 패널도 자기보다 키 큰 여자는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남자와 여자의 조합에 있어서, 키가 큰 쪽은 당연히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 사회 통념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방송이었습니다. 키는 중요하며, 루저 발언자의 말대로 굉장한 경쟁력이 됩니다. 키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 니콜라 에르팽은 큰 키의 프리미엄을 이야기합니다. 큰 키의 프리미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남자들입니다. 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여자들은 13%정도가 자신의 키를 속인 반면, 남자들은 27%정도가 자신의 키를 속였습니다. 예를 들어 168cm이나 169cm의 남자들은 자신의 키를 170cm이라고 높게 잡았습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남자의 큰 키는 취향의 문제, 즉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요소로 평가될 수 있는 신체의 특징은 아닙니다. 큰 키는 남성성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키가 작은 남자는 키가 큰 남자에 비해 덜 성숙하고, 더 수동적이고, 더 소심하고, 더 억눌려 있고, 덜 개방적이고, 능력이 모자라고, 믿음이 덜 가고, 덜 남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설문조사에서 여자 응답자의 84%는 자신보다 최소한 7.6cm이상 큰 배우자를 선호하며, 여자 응답자의 30%는 자신의 이상형 남자는 자신보다 키가 15.2cm 더 큰 남자라고 말합니다.

키 큰 남자에 대한 선호는, 가정이나 학교, 생활에서의 경험 전체를 통해 이해하고 적용된 남녀의 사회적 차이가 내면화된 평가에 근거합니다. 키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성년 때에 키가 큰 것만으로는 큰 키의 혜택을 누리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큰 키의 혜택은, 청소년기에, 특히 16세 즈음에서 키가 커야 합니다. 청소년기 내내 루저였다가 19세, 20세에 이르러서 갑자기 큰 경우는 키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때의 큰 키는 동성친구들간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하고, 이성관계에 있어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효과를 지닙니다. 남자의 키가 작을수록 첫 데이트 시기는 늦어집니다. 키가 큰 소년은 더 예쁜 소녀와 데이트를 할 수 있고, 더 자신감있게 자랍니다. 그 결과 성인이 되서도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됩니다.

키와 관련해 생물학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미래의 키가 아니라 잠재적인 키다. 생활환경, 건강상태, 영양상태, 노동의 강도에 따라 각자 체질에 입력된 키만큼 완전히 클 수도 있고, 또는 덜 클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가정의 자녀는 자신들의 잠재적 키에 가장 근접한다. - p.35

여자들이 키 큰 남자들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좋은 유전자 때문만이 아니라, 키 큰 남자들이 일터에서 보수를 더 잘 받고, 경력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고, 부모로서 투자를 키가 작은 남자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에서 키, 피부색, 외모는 중요합니다. 키 큰 사람의 리더십이 더 뛰어나다는 편견은, 신상 정보의 부족 혹은 더 나은 방법이 없어서 채택된 고정관념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키 큰 사람이 실제로 능력을 가졌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평가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상적이게도, 큰 키의 특권은 사기업에서는 잘 작동하지만 공기업에서는 관찰되지 않습니다. 민간분야에선 익명의 원칙이 작게 작용하고, 고용주의 개인적 편견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큰 키에서 얻을 수 있는 프리미엄은 여자에게도 작용합니다. 즉 키 큰 사람은 키 작은 사람보다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여자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사 결과 남자들은 절반 가량이 자기보다 키가 큰 여자와 사는것을 거부하며, 여자들은 70%가량이 자기보다 키 작은 남자와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키 큰 남자와 키 작은 여자라는 구도를 더 기피하는 것은 여자들입니다. 키가 큰 여자는, 자신의 키가 크기 때문에 키가 큰 남자를 원하고, 키가 작은 여자는, 자신의 키가 작기 때문에 키가 큰 남자를 원합니다. 키가 큰 여자들은 키가 작은 남자들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이는 키 큰 여자들은 큰 키 때문에 자신이 배우자를 지배한다는 평가를 거부하고, 결국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지배 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남자주부와 외벌이 하는 여자의 구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분명히 집안의 주도권을 지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남자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것이 여자들이 하는 걱정거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의 지위를 정하는 것은 남성의 우위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체격의 뒤바뀜을 여자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자들로 하여금 지배하는 쪽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고 이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격하된 남자와 함께 있게 되면, 여자들은 자신 또한 격하된 것으로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 p.71

키가 가진 권력적 요소는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국가 규모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키는 한 사회 내에서 권력층과 비권력층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고,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성인남녀의 평균 신장과 긍정적인 관계가 있으며,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사회계층 간에 키 차이가 심하게 나타납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키 성장잠재치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부모들이 받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아이들에게 재생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키는 유전적 특징과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남한과 북한의 키 차이를 보면 사회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정 소득 이상을 충족하고, 더 평등한 건강 시스템을 갖춘, 소득 재분배가 잘 되는 나라일수록 시민들의 키 성장 잠재치를 최대로 끌어올립니다.

니콜라 에르팽은 키의 편견은 명백히 차별적이라고 말합니다. 정여울이《그림자 여행》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렸을 때 앉은 키가 크다는 사실, 즉 숏다리라는 사실은 한 사람에게 수치심으로 작용합니다. 루저 발언에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도, 자신의 의지로 해결하지 못하는 요소인 키 때문에 차별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키가 180cm이 넘는 남자의 비율은 10%대에 불과합니다. 피부 색이나 종교, 성적 취향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는 것처럼, 키로 인한 차별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니콜라 에르팽은 주장합니다. 키의 차별에 대한 저항은, 빈부격차에 대한 도전이며, 사회의 미적 기준에 대한 도전이고, 사람들의 의식에 대한 도전입니다. 키의 특권이 사기업과 공기업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기준의 변화는 분명히 차별의 강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들, 루저들이 단결하고 투쟁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루저가 아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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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은 없다
김대식.방명걸 지음 / 올리브(M&B)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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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갓난아기였던 브루스는 포경 수술 도중 의사의 실수로 페니스를 잃어버렸고, 부모의 뜻에 의해 여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괴로워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만약 브루스의 부모가 포경수술만 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브루스처럼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포경수술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루스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포경수술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남자들입니다.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미국은 유독 포경 수술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19세기 미국인들은 자위행위가 수십, 수백가지 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해 자위행위를 금기시했습니다. 이런 만병의 근원 자위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포경 수술을 이용했습니다. 미국의 포경 수술은 성에 대한 공포를 배경으로 성을 최대한 억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포경 수술을 통해 자위행위를 금지시킨다면, 그것을 통해 요실금, 정신 이상, 두통, 간질, 영양 장애, 결핵, 당뇨병, 심장병 등 수백가지의 질병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19세기 미국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비과학적 미신은 미국인들이 포경 수술을 많이 받는데 영향을 미쳤고,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포경 수술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은 아프리카, 중동, 미국, 필리핀, 그리고 한국입니다.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 유대인들, 그리고 미국 영향권의 나라들입니다.

병사들의 성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포경수술을 권유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탄생》p.210

포경 수술은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들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군들이 받고 있던 포경 수술은 빠르게 대한민국에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미군과 일하는 한국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고, 이들이 미국인들처럼 포경 수술을 받은 뒤 우쭐거리며 자랑하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포경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추측합니다. 포경 수술은 현대성을 지닌 신체, 선진국의 문물로 승격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시민들 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지닌 포경에 대한 인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선진국은 포경을 하고 후진국은 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선진국의 상징이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산업화, 박정희 정권의 잘살아보세 정신이 융합한 결과 과학을 밀어내고 편견이 승리했습니다. 오늘날 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맹목적으로 대학교에 보낸 결과 80%가 넘는 광적인 대학 진학률이 나타나는 것처럼, 한국인들은 포경수술에도 광적으로 열광했습니다. 경쟁이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에서 "남들이 다 하니까" 뒤쳐질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포경 수술은 할례입니다. 할례는 여성의 성적 쾌락을 막기 위해 성기의 일부를 자르고, 남자에겐 포경을 합니다. 포경을 하면 귀두의 천연색이 변화하고, 성기의 길이와 둘레를 감소시킵니다. 포경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 자연 그대로의 남성이 조루도 훨씬 적고 여성들의 반응에 더 민감하며 더 큰 성적 만족을 주었다고 합니다. 성교 시간은 자연 그대로인 남성은 평균적으로 14.9분인데 반해 포경 수술을 한 남성은 평균 10.7분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성교 중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확률도 포경 수술을 한 남성과 했을 때 더 낮았습니다. 포경 수술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성적 쾌감을 현저하게 감소시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포경 수술이 인간의 성적 쾌락을 억제시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술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유대인들은 포경 수술이 정력을 감소시키며, 섹스는 적게 할수록 종교적으로 좋다고 믿었기 때문에 포경 수술을 권장합니다.

포경 수술 받은 인구 내에서는 환자와 그들 부모 모두 구두로 얻은 정보 외에는 포경 수술에 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포경 수술을 안 받은 아이들이나 부모는 포경 수술에 대한 지식이 훨씬 풍부했다. 흥미롭게도 포경 수술을 받지 않은 남자아이들은 정보를 압도적으로 인터넷에서 얻은 것에 반해, 포경 수술을 받은 남자아이들은 신문에 정보를 의지하고 있었다. - p.43

포경 수술은 시민들의 성적 쾌락을 억제시키는데 있어서 음란물 규제보다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포경 수술 비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0년만 하더라도 14~16세의 88.4%가, 17~19세의 95.2%가 포경 수술을 한 반면, 2011년엔 14~16세의 56.4%가, 17~19세의 74.4%만이 포경 수술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20~30대 남성들이 잃어버렸던, 더 크고 두껍고 매끈한 페니스를 한국 남자들이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비뇨기과 학회지에 실린 논문『아들의 포경 수술에 대한 한국 부모의 지식과 태도』은 한국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포경 수술이나 포피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이 최근 의학적 지식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며, 포경 수술을 함에 있어서 의학적 지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포경 수술을 권장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좋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서도 귀두와 포피가 분리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포경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은 100명 중에 1명 꼴로 나타나는데, 현재는 비외과적인 치료로도 대부분 치료가 가능합니다. 즉 포경은 어렸을 때 받을 필요가 없으며, 성인이 되서 필요하더라도 칼을 대지 않고 대부분 해결이 가능한 현상입니다.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귀두와 포피의 구조는, 눈과 눈꺼풀과 비슷합니다. 눈을 쓰기 위해 눈꺼풀을 절제하지 않는 것처럼, 포피도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일시에 포경 수술을 한 덕분에, 포경 수술 전후 성관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대한민국은 최고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국 남자들, 그리고 그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여자들의 성적 쾌락을 희생시킨 덕분에, 포경 수술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라는 실험 결과를 대량으로 도출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과학의 학술 발전에 대한민국이 지대한 기여를 한 점을 외국인들은 감사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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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 2015-04-1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포경이 그런 거였군요. 처음 알았네요 . 기독교 문화가 유대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유포시킨 가장 적절한 사례라는 생간이 들었습니다. 책 한번 사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2020-06-19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봐서 나쁘다고 하는군요 수술은 선택이고 또한 해방이후 이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한다고 써있는데 그랬다로 팩트로 받게 되는분들도 계실 수 있겠네요.문화 환경 건강문제 등을 이용해서 반대하고자하는 어떤걸 녹여낸듯한 느낌이 드네요.
 
냉면열전 - 담백하고 시원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백헌석.최혜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한국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 중 하나는 바로 냉면입니다. 살얼음이 떠있는 냉면 한 그릇은 무더운 여름을 나게 해줍니다. 차가운 면 요리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기 때문에, 냉면은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요리라고 할만 합니다. 저자 백헌석과 최혜림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냉면열전》이 아니라《평양냉면열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평양냉면의 비중이 큽니다. 함흥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냉면의 역사 속에서 평양냉면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냉면의 주 원료인 메밀은 한반도의 식량사정에 큰 도움을 주는 식품이었습니다. 메밀을 활용한 음식은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리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냉면이라는 단어는 17세기 초에 문헌 속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의 냉면은 오미자 육수를 사용한 냉면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부터 냉면문화가 구체적으로 발달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맛볼 수 있는 메밀 면과 동치미 국물, 메밀 면과 고기 국물의 조합은 19세기에 정립되었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동치미 국물을 선호했고, 남쪽으로 갈수록 고기 국물을 선호했습니다. 여름에 동치미 국물을 보관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들인 튀김, 초밥, 소바가 에도의 패스트푸드에서 출발한 것처럼,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설렁탕, 냉면도 조선의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설렁탕과 냉면은 가격이 저렴했을 뿐 아니라 배달이 가능했기 때문에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리는 맛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가 그 나라, 민족, 지방, 개개인을 나타내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냉면의 독특한 개성은 조선 후기부터 격동의 근대, 현대 동안 한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날 주로 여름에 선호하는 것과는 달리 냉면은 원래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냉장고와 무쇠 제면기의 등장으로 냉면의 시원한 국물을 겨울 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양냉면에 붙은 또 하나의 별명은 '배워야 하는 음식'이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은 사람치고 첫입에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대체 이게 무슨 맛이냐!"하는 반응.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 심심하고 밋밋한 맛이 자꾸만 입가에 맴돌면서 다시 한 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너 번쯤 먹었을 때야 비로소 밋밋한 평양냉면 속에 숨은 섬세한 맛의 미학을 깨닫게 된다. - p.7

한국은 쌀 문화권이기 때문에 밥을 주식으로 하지만,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밥이 아니라 반찬입니다. 박상현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당은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밥을 미리 퍼놓고 보관합니다. 이런 방식은 아무리 요리사가 요리실력이 좋더라도 그 맛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밥맛을 보여준다며 광고하는 한식당들을 가봐도 자신있게 내놓는 것들은 반찬이지 밥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런 식단에서 주역은 반찬이기 때문에, 강한 맛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음식 문화에서 평양냉면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평양냉면은 지금까지의 맛의 기준을 흩뜨리는 독특한 맛이기 때문입니다. 담백하고 슴슴한 맛은 다른 한국 음식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맛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런 개성 때문에 평양냉면은 쉽게 맛들이기 힘들지만, 한번 맛들이면 어떤 음식들보다도 열정적인 마니아를 많이 보유하게 됩니다.

열정적인 마니아가 많기 때문에, 평양냉면 식당들은 계속 경쟁하고 유명한 맛집들을 다수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우래옥, 평양면옥, 을지면옥, 남포면옥, 봉피양, 을밀대, 강서면옥, 경인면옥, 강산면옥 등 개성적인 가게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양냉면 육수중에서 최고로 친다는 꿩고기를 삶아 만드는 가게도 있고, 소고기를 활용하는 가게도, 돼지고기를 활용하는 가게도, 동치미 국물을 활용하는 가게도 있습니다. 이 맑고 깨끗한 음식의 계절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독특한 맛을 즐기기 위해 냉면집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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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e 2015-07-0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탕 냉면은 소울푸드 맛는거 같은

치맥 라면 자주먹는게 소울푸드라고 하는건 머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