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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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전은 실로 놀라운 것이였습니다. 기원전 400년의 히포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하비의 혈액순환 이론, 제너의 종두법 등으로 이어지는 발전은 의학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마취와 항생제를 제공하고, X-ray를 통해 우리 몸을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 각종 이식수술이 성공하고, 동물복제까지 다다른 지금의 현대의학은 사람들에게 하여금 신비로운 마술과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학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속성이긴 하지만, 대중이 과거에 의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비하면 현재는 훨씬 겸손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원인입니다. 일반외과의인 저자는 이런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레지던트 시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외과의 레지던트는 오랜 시간 동안 중심정맥관 삽입, 탈장 교정술 등 의사가 되기 위한 기술을 환자의 몸을 통해 익힙니다. 하지만 이런 훈련에도 불구하고 의사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의료사고가 납니다. 1991년의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나오는 하버드 진료실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44,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료과실이 원인이 되서 목숨을 잃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사고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료소송이 있지만, 이런 법적 대응은 그 이후의 의료사고 발생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의료소송에서 문제는 의사의 과실을 죄악시함으로써 의사들이 과실을 인정하고 공공연하게 논의하지 못하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법 시스템은 환자와 의사를 적대시키고, 일이 잘못될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얼마 전, 한 소년이 헬리콥터로 이송되어 왔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음직한 소년으로, 안색이 창백해지고, 덜덜 떨고, 숨을 쌕쌕대며 몰아쉬더니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근처 병원의 응급실 의사들은 천식성 발작으로 생각하고 증기호흡 치료를 했다. 그런데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흉부 가운데에 커다란 종양이 보였다. 내 소견은 기도에 호흡관을 삽입해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아외과 전임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우측 흉부에 카테터를 꽂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카테터를 삽입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중에야 나는 우리의 선택에 의문이 생겼다. 그건 정말 장님 문고리 잡기에 다름 아니었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비슷한 사례들에 대한 보고서를 찾아보고 나서야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자책하지 않았다. 소년은 살았다.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실제 의학이 벌어지는 순간들이다.  

사망 이후 부검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MRI촬영, 초음파 검사, 핵의학 검사, 분자적 검사 등으로 무장한 현대의학은 사망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굳이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검으로 사인에 대한 중대한 오진이 들어나는 경우는 1999년 연구에 따르면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부검 연구를 검토한 결과, 오진된 사례 중 3분의 1은 적절한 처치를 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 의학적 분야의 지식 발전이 더 나아갈 수 있으며, 죽은 자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으며, 우리의 명쾌한 확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불확실성 때문에 더 고뇌하는 의사들의 일화는 인상적입니다. 외과의학은 의학으로서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들조차도 과학과 인간 기술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동료의 실수나 검사때 나타나지 않았던 징후 등으로 고생하는 모습들은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 줍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들은 늘 확률을 따지고 여러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불완전한 과학으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들이 제공되는 실제 상황에서는, 그런 기회를 잡았다고 결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거나 유익한 조치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성과를 거두며, 환자들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의학을 지식과 처치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입니다. 과학과 동시에 습관과 직감이 공존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류가능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의료과실이 발생하는지, 의사가 어떻게 칼을 쓰는 법을 배우는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이며 그런 의사가 어떻게 나빠질수 있는지, 의학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저자는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단순성이 개별 생명들의 복잡성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의학의 생생한 사례들은 우리가 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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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농담 - 기형과 괴물의 역사적 고찰
마크 S. 브룸버그 지음, 김아림 옮김 / 알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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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6개인 사람, 머리가 두개인 사람, 눈이 하나인 사람, 양성을 지닌 사람, 앞다리가 없는 염소. 우리는 이러한 기형적인 생명체를 보며 매우 놀라워합니다. 과거에 이러한 괴물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혹과 공포, 찬탄과 경멸, 신성화와 모독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집단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기형의 수도 증가했기 때문에, 이런 기형의 독특함과 중요성은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인쇄술의 도래는 괴물을 대하는 태도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고, 18~19세기를 거치며 괴물은 군중들에게 보여주는 쇼가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회에서 괴물은 배척받게 되었고, 대중은 이런 존재들을 불완전한 자연이 만들어낸 실수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형에 대한 논의는 파레, 리체티, 에티엔을 거쳐 다윈으로 넘어가는데, 다윈은 진화적 변화의 추동력은 외부적인 힘이며 연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윈에게 괴물은 그저 지독한 기형일 뿐이어서 그의 진화론 속에서 괴물의 역할을 완전히 거부해버립니다. 이러한 연속성은 20세기 다윈주의의 핵심적 원리가 되었고 사회 주류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변이가 점진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생성되며 그 동물 안에 어떠한 제한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다윈주의적인 개념은 점점 많이 등장하는 괴물에 대한 해석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윈주의에 반해 베이트슨은 변이를 진화의 필수적 현상이라고 부르며 불연속성을 주장합니다. 베이트슨은 괴물의 불연속적인 특징이 다윈이 주장한 진화의 연속성을 위반한다고 생각했고, 다윈주의자들과 많은 논쟁을 낳습니다. 그후 피셔가 멘델주의 유전학과 다윈주의 자연선택을 결합한 이론을 내세우면서 두 이론의 양립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고, 발생학과 불연속성이 진화 연구에 포함되게 됩니다.

괴물들은 자연의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오히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자연은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룬다. - 이시도르 조르푸아 생틸레르 

기형의 원인으로 유전적 이형, 변칙으로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DNA를 프로그램, 조리법 또는 청사진으로 은유하는 것은 명쾌하고 박력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지만, DNA만능설은 생물학적 형태와 행동에 관한 이해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 맙니다. DNA는 발생을 위한 원료 제공을 돕는 분자로만 인식해야 하며, 복잡하고 고도로 협동적인 시스템의 많은 공헌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을 지녀야 합니다. 즉 기형은 유전자적 돌연변이일 수도 있지만, 모든 기형이 돌연변이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괴물은 배아의 발생 과정에서 어떤 대안적인 경로로 빠져 생긴 결과물입니다. 탄생과정에서 많은 환경적 요소는 그 결과를 결정합니다. 1980년대 과학자들은 개구리의 난자를 원심분리기에 돌려서 올챙이 쌍둥이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중력의 30배, 4분, 원심력 방향에 90도 각도 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있으면 올챙이는 쌍둥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머리가 2개인 두머리증과 같은 증상도 후성적 과정으로 일어난 변동을 통해 쉽게 생겨납니다. 머리 하나를 생성하는 가능성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우연히 머리 두 개를 생성하는 가능성이 진화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때론 스스로 기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인간의 몸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켰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수단에 사는 수르마족과 부미족 여성은 입술에 동그란 판을 끼워넣고, 페루에서는 신생아의 머리를 우뚝 솟은 두개골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나무판으로 머리를 동여맸습니다. 중국에서는 조그만 발을 만들기 위해 전족을 사용했고 서양의 코르셋은 내장의 위치를 바꿉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의 성형수술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이런 이형적 변화의 가능성은 전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화의 기간은 매우 길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 자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두개의 눈, 머리카락, 하나의 코, 두개의 팔과 같은 특징이라는 전형은 자연에 대한 개념을 흐리게 만듭니다. 전형적이란 것은 실제 세계를 떠도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 p.56

사물을 절대적으로 구분 지으려는 우리의 경향은 그 구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대상에 대한 수용력과 충돌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동물들, 딱정벌레, 은연어, 아귀와 같은 존재들은 우리의 확고한 선입견에 경종을 울립니다. 그들은 암컷과 수컷이라는 자연에서 확고해보이는 구분조차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인간에게도 있습니다. 직립보행은 오랜 세월에 걸친 위대한 진화의 사례로 보이지만, 앞다리가 없는 염소는 그 진화의 과정을 순식간에 이루어냅니다. 그들은 개체와 집단, 신체와 행동 속에 감춰진 가능성과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이, 인간의 우주적인 오만은 고작 살인 토마토, 식인 토끼, 엄청나게 큰 개미 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창조물은 결코 자연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보다 더 놀라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형들은 과학적 영감과 진보를 가로막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바로잡는 존재들이며, 자연의 농담이라 불렸던 이들이 발생하는 불완전한 자연의 세계는 진화를 위한 새로운 선택의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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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유전자
뤽 뷔르긴 지음, 류동수 옮김 / 도솔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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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17일, 스위스의 TV프로그램 『슈퍼트레퍼』에 두명의 과학자가 나옵니다. 스위스의 거대 제약업체 치바가이기 그룹의 물리화학자인 구이도 에프너 박사와 하인츠 쉬르히가 자신들의 독창적인 실험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고사리의 홀씨를 전기장 안에서 키운 결과 기존의 어떤 식물군에도 포함되지 않은 종으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이 고사리는 선사시대의 고사리 잎 화석과 놀랄만큼 유사했습니다.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가 연구 주제로 삼은 것은 정전기장, 전압이 존재하되 전류는 흐르지 않는 장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정전기장은 건강에 무해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작용이 생물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베일에 가려진 상태였습니다.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는 고사리, 밀, 옥수수, 송어 등을 다양한 단계의 정전기장에서 키우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고사리의 경우 4년동안 이 관중의 이파리 모양은 매년 달라졌는데, 성장 과정에서 마치 모든 진화 과정을 다 겪는 듯했습니다. 포자들은 모두 같았지만, 그 포자에서 완전히 다른 고사리가 생겨났습니다. 관중도 나왔고 가래고사리도 나왔고, 남아프리카 가는쇠고사리가 나타나는가 하면 보통의 골고사리도 생겼습니다. 밀의 경우 성장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보통은 완전히 성장하는데 7개월이 걸리는 데 비해 4주만에 성장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줄기와 이삭은 좀 작았지만 대신에 풀 하나당 이삭 수는 더 많아서 수확량이 증가되었습니다. 성장기간이 짧기 때문에 봄과 여름이 짧아 종래의 밀은 성장하지 못했던 지역에서도 이 밀은 재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옥수수 실험 결과 옥수수 한 그루당 달리는 옥수수자루 수가 더 많았고, 페루에서 발견되는 야생 옥수수와 같은 형태를 보였습니다. 무지개송어 실험에선 전기장 처리를 한 경우 3분의 1정도 더 컸으며 몸무게도 더 무겁고 힘도 더 강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만이 재현해낸것은 아니였습니다. 1991년 다니엘 칼버마텐이라는 학생은 전기장 실험으로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학생은 전기장과 일반 조건하에서 여름밀 종자인 소노라의 발달을 연구했는데, 연구 결과 전기장에 있던 씨앗에서 세배나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상적인 결과 덕분에 방송국에서는 치바 그룹의 실험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고 단 하루만에 치바 그룹이 촬영 허가를 별안간 취소해버립니다. 취소 이유를 묻자 치바그룹은 공식적으로 이 실험이 회사의 핵심 연구 분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를 포기했다고 답변합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연구결과 나온 곡물들이 오늘날의 재배형보다 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했기 때문에, 당시 살충제를 생산하던 치바 그룹이 회사의 수입 감소를 우려했을 것이란 전망을 합니다. 그 후 연구지원은 중단되었고, 정전기장 연구에 대한 특허권은 회사안에서 잠들게 됩니다.

말하자면 DNA는 그저 핵산을 구성하는 단위인 뉴클레오티드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실 한 가닥이 아니며,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전자기 특성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전기 도체로서의 특성을 가져서, 전자기파를 가공하고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전기장은 당연히 그런 시스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릅니다. 현재 우리는 유전자 수준에서 생각할 뿐, DNA 전체의 복잡한 양상을 관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에프너 박사와 하인츠의 연구 결과는, 유기체가 보이는 특징이 진동 체계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아주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유전자, 그러니까 단백질을 생성하는 순수 DNA-매트릭스로서의 유전자와 그것을 포괄하는 특징 간의 차이라고 봅니다. - p.114 

이러한 연구는 연구자들이 생각치 못했던 전혀 다른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바이오 해커들은 1995년 치바가이기 기업 내부 데이터뱅크에 침입해 실험 설비의 개요와 자료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전기장의 최적 강도까지 포함하여 이 정보를 인터넷에 올렸고, 네티즌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됩니다.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이 해킹사건은 실험재현이 매우 간단한 편이였기 때문에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한 아마추어 유전공학자는 온라인 포럼에 올린 글을 통해 가시 달린 튤립의 실험에 성공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는 특허 문건과 연구 보고서 형태로만 실험을 남겼고 학계의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실험들에 대해서 미디어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곧 공식적으로 검증을 통과한 연구가 등장했습니다. 2001년 독일의 생물학자 악셀 셴은 구텐베르크대학교에서 정전기장이 배아의 상태에 가하는 작용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당시 1111~5555V/cm의 정전기장으로 실험을 했는데,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곡류와 옥수수를 실험한 결과 발아 가능성이 엄청나게 향상되었고, 서너배나 더 빨리 성장했습니다. 수확량은 400퍼센트까지 증가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들 씨앗은 비료도 거의 필요하지 않았는데, 대조군 식물들에 비하면 사용한 비료의 양은 5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가 내렸던 것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원리로 인해, 정기장이 세포로 하여금 더 이상 사용되지 않던 정보를 읽어내도록 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정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다른 연구로 2005년 미국 퍼듀대학교 연구원들은 식물들이 옛 유전자질을 실제로 이용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는 내용을 전문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유전적으로 변화된 식물의 발달이나 유전 질환의 처치와 관련해서도 아직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든 유전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것입니다.

에프너 박사의 자제들은 이러한 기술을 공익의 이익에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 대신 공동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 윤리적 접근 방식으로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대규모 야외 실험을 계획중입니다. 과학적 성과가 직접적으로 빈곤해결을 위해 쓰인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이란 인간과 권력에 따라 선하고 공익적인 목표에 쓰일 수도 있고, 악하며 수탈적인 목표에 투입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러한 양가성은 결국 개개인의 윤리도덕관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과학자는 인류뿐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것을 의미합니다. 몬산토나 신젠타와 같은 다국적 농산물업체와 과학자들 사이의 갈등은 과학적 혁신과 윤리적 가치의 조화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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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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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꿀벌 집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자비로운 독재자, 즉 여왕벌이 지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꿀벌 집단이 여왕벌을 비롯해 수천 마리의 자손으로 구성된 거대한 가족이기 때문에 여왕벌이 전체 활동의 중심임은 사실이고, 여왕벌이 낳은 수천 마리의 딸인 일벌이 여왕벌을 보살피면서 궁극적으로 여왕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왕벌에게 유일한 권한이 있다면 다른 여왕벌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뿐이며, 여왕벌은 일벌에게 명령을 내리는 대장이 아닙니다. 꿀벌 집단에는 수많은 벌을 감독하는 전지적인 존재가 없습니다. 꿀벌 집단을 단순히 수천 마리가 모인 낱낱의 개체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독립체로 생각하면 꿀벌의 독특한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꿀벌 집단은 미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선택을 할때 민주주의라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러한 꿀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는 독일의 마르틴 린다우어의 집터 정찰대 연구에서 시작되어 60년간 이어져온 연구 성과 덕분입니다. 린다우어의 스승인 카를 폰 프리슈는 일벌이 동료 벌에게 먹이가 풍부한 곳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기 위해 8자 형태의 춤을 춘다는 것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습니다. 린다우어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벌들이 새로운 집터를 찾는 과정을 연구했고, 집터 정찰대가 8자춤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논쟁함으로써 집터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꿀벌과 인간의 직접 민주주의엔 유사점이 있습니다. 미래의 행동 방침을 의결할 때 수백에 달하는 개체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이들은 각기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데, 이는 집단행동에 대한 통제권이 소수의 통치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에게 분산됨을 말해줍니다. 또한 어떤 정보에 대한 소스가 광범위하게 분산된 경우에도 각 개체가 참여함으로써 동시에 그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제시된 대안을 갖고 공개적인 경쟁을 함으로써 선택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우호적인 경쟁입니다. 꿀벌들은 개인에게 분산되어 있는 정보를 모두 활용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의사 결정자가 모든 대안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각 대안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중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대안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최적 의사 결정이 거의 불가능한데, 의사 결정자는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 및 기타자원을 들여야 하고, 그러한 자원을 무제한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고려해 현실세계의 의사결정을 제한적 합리성, 즉 발견법이라는 단순화된 선택 메커니즘에 의존한다고 보며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은 대부분 발견법이라는 도구 상자에 의존해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꿀벌은 최적의 집터 선택과 관련한 거의 모든 정보를 포괄하는 매우 정교한 의사 결정 전략을 추구합니다. 즉, 꿀벌들의 민주주의는 거의 최적에 가까운 의사 결정을 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합의 형성은 그다지 흔하지 않으며, 구성원이 각자의 선호에 따라 완전히 분리된 채 논쟁이나 선거, 기타 민주적 과정을 끝내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이런 종류의 집단 결정을 당사자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종류의 결정은 당사자의 이익과 선호가 상충하는 집단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꿀벌의 집단 결정은 통합 민주주의이며, 반대 없는 결정은 꿀벌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서 흔히 등장합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는다는 문제에 직면하면, 정찰벌은 수십 개의 후보지를 찾아내 8자춤으로 광고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꿀벌이 미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민주적 과정은 일종의 선거와 같습니다. 8자 춤의 강도는 새로운 둥지 후보지의 질과 상관관계가 있는데, 더 좋은 집터 후보지를 지지하는 춤은 한층 강하고 추가 지지자를 모으는데 효과적입니다. 그 주장을 들은 다른 벌들은 자율적으로 그 장소를 방문하고 평가합니다. 해당 장소를 지지하는 춤벌의 주장을 검증하고, 검증되지 않은채 퍼져나간 소문은 무시합니다. 그런 다음 마찬가지로 자신의 평가에 따라 강하거나 약한 춤을 통해 그 장소를 알립니다. 정찰벌의 행위는 논쟁에서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행위와 완전히 다릅니다. 꿀벌과 인간 모두 첫 번째 견해를 고집스럽게 지지하는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는데, 인간은 우월한 대안을 찾아야만 대부분 자기 입장을 포기하는 반면 꿀벌은 자신의 지지를 자동적으로 철회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정찰벌은 조용해지고 나머지 논쟁을 새로운 벌들에게 넘기며 완전히 합의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둥지를 향해 떠납니다.

원숭이의 뇌를 연구해보면, 자연 선택은 꿀벌 집단과 영장류의 뇌를 유사한 방식으로 구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꿀벌 집단과 뇌는 다소 무지하고 한정된 인식을 지닌 개체들이 모여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꿀벌이나 인간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개인보다 집단이 한층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집단은 가장 똑똑한 개인보다 더 똑똑합니다. 하지만 집단이 항상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집단 결정에서 생기는 단점을 극복해가며 꿀벌들은 최소 3000만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왔고, 집단 결정에 이르는 꿀벌들의 지혜는 시간이 증명해준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꿀벌들은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집단이 생산적으로 협동하려면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합니다.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했는데, 정찰벌들은 훌륭한 집단 결정을 하면서 가장 큰 위협인 군림하려드는 지도자를 깔끔하게 피해갔습니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문제의 규모에 맞춰 집단을 크게 꾸리고,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지닌 개체로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지를 지지하는 정찰벌들의 격렬한 논쟁이 핵심인데, 이 꿀벌들의 상호 의존성과 독립성 사이의 균형은 탁월합니다.

꿀벌이 지닌 집단 지혜와 효율적 결정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공동체의 인간은 꿀벌 집단처럼 단일한 목적을 공유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씨름할 때 꿀벌보다 협력적이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협력하고자 한다면 꿀벌들의 방법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고, 지도자가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토론의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형성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지도자의 군림은 집단적 힘을 약화시키며, 만약 지도자가 토론을 시작할 때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불쾌감을 드러낸다면 훌륭한 집단 결정을 망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구성원을 다양하면서도 독립적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보 공개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꿀벌들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최적의 답을 도출해내는 이유는 모든 벌들에게 훌륭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강력한 동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선택은 생존의 문제이며, 그러한 생존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민주주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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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개미 - 개미가 부지런하다고? 80%의 일개미는 논다
하세가와 에이스케 지음, 김하락 옮김, 최재천 감수 / 서울문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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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개미는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오래 전부터 여러 방법을 통해 개미의 부지런함을 강조해 왔습니다. 유명한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물론이고, 구약성경 잠언 6장 6절에 보면 게으른 자에게 개미의 모습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알려져 있는 개미와 베짱이식의 교훈이 정말로 개미가 주는 교훈일까요? 저자는 사회성 곤충인 개미가 가져다 주는 진짜 교훈을, 진짜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꿀벌, 개미, 진디 등과 같은 동물들은 마치 인간과 비슷한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동물들은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언제나 열심히 일하라는 노동윤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개미처럼' 일하라는 메시지와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개미들의 모습은 그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 줍니다. 개미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개미들은 먹이를 모으고, 유충을 보살피며, 여왕을 시중들고, 개미집을 수리하는 등 군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자기 몸을 핥거나 꼼짝도 하지 않는 등 노동과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합니다.

개미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벌에 비해 관찰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개미집을 통째로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이런 연구 결과, 놀랍게도 개미집 안의 일개미 중 무려 70퍼센트 정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개미의 종류를 불문하고 똑같다. - p.34 

찰스 다윈이《종의 기원》에서 말한 바대로라면, 이러한 행동은 자연선택에 의해 도태되어 마땅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그러한 행동을 보이고도 지금껏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부지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이 오히려 자연선택에 걸맞다라는 말입니다. 집단의 운명에 있어서 모든 개체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놀기만 하는 게으름뱅이 개체가 있어야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얼핏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먹이의 발견, 느닷없는 홍수로 인한 개미집의 파손 등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여유 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미는 얼핏 보면 같은 일개미끼리는 똑같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개미사회를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조건 중 하나는 바로 개미 각 개체의 개성입니다. 개미는 언제나 일하지 않는것이 유리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에 대한 부지런함의 개인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극량에 따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양의 노동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개미의 개성은 지능지수에서도 나타납니다. 똑똑한 개미가 있는가 하면, 멍청한 개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멍청한 개미는 자연적으로 도태되지 않았습니다. 연구 결과 똑똑한 개체만 있을 때보다 조금 멍청한 개체가 있을 때 조직이 좀 더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물은 먹이를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개미 또한 마찬가지로 먹이를 찾지 못하면 군락이 소멸해버립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먹이가 너무 많을 경우에도 군락이 괴멸해버립니다. 너무나 많은 먹이감이 있게 되면 혹독한 노동 환경에 놓이게 되고 결국 과잉 노동은 일꾼의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이는 근육을 사용하는 동물의 신체적 특성상 필연적입니다. 동물은 움직이면 반드시 피로해지고, 피로를 풀려면 쉬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일제히 일하는 시스템에서는 모두 지쳐서 결국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때가 생깁니다. 이는 일하지 않는 개체를 갖고 있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야말로 생존에 필요한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은 개성의 강조, 규격 외의 구성원을 많이 가지고 모든 구성원이 일제히 일하지 않는 효율 낮은 시스템 등을 진화의 해답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에 반하는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학교 시스템을 통한 획일화, 언제나 열심히 일할것을 강조하는 노동윤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만을 찾고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시스템 등은 현대의 경제적 세계화가 요구하는 현대인의 요소들입니다. 과연 어떠한 방법이 옳은지는 다윈의 말처럼 훗날 자연이 선택할 것입니다. 만약 현재의 사회에 문제를 느낀다면, 그 해답은 개미가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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