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민주주의
토머스 D.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꿀벌 집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자비로운 독재자, 즉 여왕벌이 지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꿀벌 집단이 여왕벌을 비롯해 수천 마리의 자손으로 구성된 거대한 가족이기 때문에 여왕벌이 전체 활동의 중심임은 사실이고, 여왕벌이 낳은 수천 마리의 딸인 일벌이 여왕벌을 보살피면서 궁극적으로 여왕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왕벌에게 유일한 권한이 있다면 다른 여왕벌을 키우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뿐이며, 여왕벌은 일벌에게 명령을 내리는 대장이 아닙니다. 꿀벌 집단에는 수많은 벌을 감독하는 전지적인 존재가 없습니다. 꿀벌 집단을 단순히 수천 마리가 모인 낱낱의 개체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독립체로 생각하면 꿀벌의 독특한 생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꿀벌 집단은 미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선택을 할때 민주주의라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러한 꿀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는 독일의 마르틴 린다우어의 집터 정찰대 연구에서 시작되어 60년간 이어져온 연구 성과 덕분입니다. 린다우어의 스승인 카를 폰 프리슈는 일벌이 동료 벌에게 먹이가 풍부한 곳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기 위해 8자 형태의 춤을 춘다는 것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습니다. 린다우어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벌들이 새로운 집터를 찾는 과정을 연구했고, 집터 정찰대가 8자춤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논쟁함으로써 집터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꿀벌과 인간의 직접 민주주의엔 유사점이 있습니다. 미래의 행동 방침을 의결할 때 수백에 달하는 개체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이들은 각기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데, 이는 집단행동에 대한 통제권이 소수의 통치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에게 분산됨을 말해줍니다. 또한 어떤 정보에 대한 소스가 광범위하게 분산된 경우에도 각 개체가 참여함으로써 동시에 그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제시된 대안을 갖고 공개적인 경쟁을 함으로써 선택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우호적인 경쟁입니다. 꿀벌들은 개인에게 분산되어 있는 정보를 모두 활용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의사 결정자가 모든 대안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각 대안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중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대안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최적 의사 결정이 거의 불가능한데, 의사 결정자는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 및 기타자원을 들여야 하고, 그러한 자원을 무제한으로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고려해 현실세계의 의사결정을 제한적 합리성, 즉 발견법이라는 단순화된 선택 메커니즘에 의존한다고 보며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은 대부분 발견법이라는 도구 상자에 의존해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꿀벌은 최적의 집터 선택과 관련한 거의 모든 정보를 포괄하는 매우 정교한 의사 결정 전략을 추구합니다. 즉, 꿀벌들의 민주주의는 거의 최적에 가까운 의사 결정을 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합의 형성은 그다지 흔하지 않으며, 구성원이 각자의 선호에 따라 완전히 분리된 채 논쟁이나 선거, 기타 민주적 과정을 끝내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이런 종류의 집단 결정을 당사자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종류의 결정은 당사자의 이익과 선호가 상충하는 집단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꿀벌의 집단 결정은 통합 민주주의이며, 반대 없는 결정은 꿀벌의 민주적 의사 결정에서 흔히 등장합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는다는 문제에 직면하면, 정찰벌은 수십 개의 후보지를 찾아내 8자춤으로 광고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꿀벌이 미래의 보금자리를 선택하는 민주적 과정은 일종의 선거와 같습니다. 8자 춤의 강도는 새로운 둥지 후보지의 질과 상관관계가 있는데, 더 좋은 집터 후보지를 지지하는 춤은 한층 강하고 추가 지지자를 모으는데 효과적입니다. 그 주장을 들은 다른 벌들은 자율적으로 그 장소를 방문하고 평가합니다. 해당 장소를 지지하는 춤벌의 주장을 검증하고, 검증되지 않은채 퍼져나간 소문은 무시합니다. 그런 다음 마찬가지로 자신의 평가에 따라 강하거나 약한 춤을 통해 그 장소를 알립니다. 정찰벌의 행위는 논쟁에서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행위와 완전히 다릅니다. 꿀벌과 인간 모두 첫 번째 견해를 고집스럽게 지지하는 행동은 피할 필요가 있는데, 인간은 우월한 대안을 찾아야만 대부분 자기 입장을 포기하는 반면 꿀벌은 자신의 지지를 자동적으로 철회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정찰벌은 조용해지고 나머지 논쟁을 새로운 벌들에게 넘기며 완전히 합의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둥지를 향해 떠납니다.

원숭이의 뇌를 연구해보면, 자연 선택은 꿀벌 집단과 영장류의 뇌를 유사한 방식으로 구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꿀벌 집단과 뇌는 다소 무지하고 한정된 인식을 지닌 개체들이 모여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꿀벌이나 인간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개인보다 집단이 한층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집단은 가장 똑똑한 개인보다 더 똑똑합니다. 하지만 집단이 항상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집단 결정에서 생기는 단점을 극복해가며 꿀벌들은 최소 3000만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왔고, 집단 결정에 이르는 꿀벌들의 지혜는 시간이 증명해준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꿀벌들은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집단이 생산적으로 협동하려면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합니다.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했는데, 정찰벌들은 훌륭한 집단 결정을 하면서 가장 큰 위협인 군림하려드는 지도자를 깔끔하게 피해갔습니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문제의 규모에 맞춰 집단을 크게 꾸리고,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지닌 개체로 집단을 구성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지를 지지하는 정찰벌들의 격렬한 논쟁이 핵심인데, 이 꿀벌들의 상호 의존성과 독립성 사이의 균형은 탁월합니다.

꿀벌이 지닌 집단 지혜와 효율적 결정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공동체의 인간은 꿀벌 집단처럼 단일한 목적을 공유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씨름할 때 꿀벌보다 협력적이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협력하고자 한다면 꿀벌들의 방법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고, 지도자가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토론의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형성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지도자의 군림은 집단적 힘을 약화시키며, 만약 지도자가 토론을 시작할 때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불쾌감을 드러낸다면 훌륭한 집단 결정을 망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 구성원을 다양하면서도 독립적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보 공개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꿀벌들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최적의 답을 도출해내는 이유는 모든 벌들에게 훌륭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강력한 동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선택은 생존의 문제이며, 그러한 생존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민주주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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