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정리
세드릭 빌라니 지음, 이세진 외 옮김 / 해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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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학자 하면 영화『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수학자 존 내시처럼 무언가 떠오르면 벽에 수식을 마구 적는 괴짜를 생각하거나, 그리고리 페렐만이나 앤드루 와일스처럼 몇 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수학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라는 이미지의 근간에는 수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평소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인식을 어느정도 개선시켜 준 작품이 일본의 영화『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였고, 좀더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 프랑스의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가 쓴《살아 있는 정리》입니다.

세드릭 빌라니는 프랑스 리옹대학의 교수이자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에 있으며, 유럽수학회상, 페르마상, 푸앵카레상을 받은 수학계의 스타입니다. 그는 2010년에 '비선형 란다우 감쇠와 볼츠만 방정식에 대한 균형수렴 증명'을 한 공로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습니다. 세드릭 빌라니의《살아 있는 정리》는 필즈상을 탄 수학 정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학자의 역동적인 삶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별명인 '살아 있는 정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즈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단한 수학 정리도 첫 시작은 두 학자의 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학자가 내뱉은 사소한 이야기에서 서로의 의문점을 물어보고, 토론합니다. 마치 평범한 사회인들이 술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대화처럼 수학 정리는 태동하게 됩니다. 무언가 어렴풋이 시작된 프로젝트는, 일상생활에 치여 마음속에만 있을 뿐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교수로서 강의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맛있는 치즈가게를 찾기도 해야 합니다. 프랑스 수학계의 패셔니스타로 불릴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깊다 보니 마음에 드는 옷들을 쇼핑할 시간도 필요하고, 락 콘서트에 가서 헤드뱅잉을 하기도 해야합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기도 하는데, 지하철에서 읽는 만화책은 수학자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제격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옆 책상에서 클레르는 노트북으로「데스노트」를 보고 있다. 프린스턴에는 극장이 없지만 저녁 시간은 잘 보내야 하는 법. 나는 클레르에게 이 마성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강력 추천했고 이제 클레르도 푹 빠졌다. - p.82

세드릭 빌라니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가게 되면서 연구는 급진전을 보이게 됩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이는 만큼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수학자들도 쟁쟁한데, 세드릭 빌라니의 수학 영웅인 존 내시부터 앤드루 와일즈 등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구름 위의 존재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즈도 그랬지만, 세드릭 빌라니도 첫 성과물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학술지『악타 마테마티카』에 제출한 논문이 거부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학자들 특유의 번뜩임, 수학 신의 계시를 받은 세드릭 빌라니는 아침에 불현듯이 생각난 아이디어로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파트너 클레망 무오와 함께 '무오-세드릭 정리'를 만들어냅니다.

수학계의 발전에 진전을 이루고, 지금도 이루고 있는 세드릭 빌라니는 특유의 재치로 수많은 대중강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수학을 알리고 있으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학이 죽기보다 싫은 학생들과 시민을 인터뷰한 뒤 수학의 매력을 설득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왜 나는 수학이 싫어졌을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학은 엄격하지만 창의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보편적이고, 불평등하지만 민주적이라고 말합니다. 수학은 철저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정말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학은 모순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섹시(sexy)하다고 말합니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는다. 응?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항을 다른 변으로 넘기고 푸리에 변환을 취해서 L2로 뒤집어야 해.' 말도 안 돼! 나는 종이 쪼가리에 한 줄을 홱 휘갈겨 써놓고 애들에게 빨리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9일의 이 아침에 또 다른 작은 계시가 모든 것을 밝혀주고자 내 두뇌의 문을 두드렸다. 안타깝다. 논문을 읽은 사람들은 이 충만한 행복감을 모를 터이니 - p.166

2014년엔 우리나라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렸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시상하는 전통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필즈상을 수여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언제나 좋은 성적을 거둘 정도로 우리나라는 수학 우등생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필즈상을 수상할 날은 멀어 보입니다. 장 피에르 브르귀뇽 유럽연구재단 총재는 세드릭 빌라니가 참석한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의 기자회견장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최악의 교육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수학 영재들이 수학을 입시과목으로만 배우기 때문에 필즈상 수상까지 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성적 등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적지 못하게 하자 응시 지원자가 급감했다는 통계는, 우리나라가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세드릭 빌라니가 보여주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경이롭고, 섹시합니다. 수학을 단순히 수능을 보기 위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섹시한 매력을 지닌 수학의 세계를 알고 싶다면, 세드릭 빌라니의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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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2022-03-0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 수학교육 때문에 필즈상이 안나오는게 아니랍니다.
대한민국은 최근에 국가별 수학등급에서 최상급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최단기간에요.
(최상급 국가가 되면 투표권도 5표나 행사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국내 수학올림피아드 응시자 수랑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출전자는 크게 상관이 없답니다. imo에 출전할 정도면 준천재급들이거든요.
강요해서 가르친다고 도달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란 얘기죠. 실제로 imo수상자들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학자로 커가고 있구요. 아마도 멀지 않아 필즈상 수상자도 나오게 될 겁니다. 허나, 필즈상 수상자가
그나라 수학수준을 곧 대변해주지는 못하죠. 베트남은 벌써 필즈상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으나
누구도 베트남이 한국보다 수학강국이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실정인데 필즈상 수상자 나오지
않았다고 곧바로 한국 수학교육이 문제라는 사고방식... 이런 성급한 문화가 오히려 연구자들을
압박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님 한사람의 영향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으나 님과같은 성향을
가진 많은 한국분들이 존재하다보니 수학자도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거죠.
필즈상급 논문을 쓰려면 상당한 시간과 또한 실패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임해야 하는데, 가족들
눈치가 보이지 않을까요? 당장 번듯한 교수자리부터 잡아야 부모님 면이 설테니까요.
이게 우리나라 현실에 좀 더 가까울 겁니다. 허나, 그런 인식도 개인주의문화 발달과 함께 점차
줄어드는 추세인지라... 필즈상 수상자는 아마도 20년안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20년이나?!˝ 라는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20년이라 해본들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수학자대회인만큼 기회가 많은게 아니랍니다. 그러나 수학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저같은
사람들은(저는 수학올림피아드근처도 가본적없는 준수포자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수학자들이 나왔고, 특히 imo 출신들 중에(20~30대) 필즈상급 수학자로 커가고 있는
인재들이 적잖이 존재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개정판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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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ⁿ + yⁿ = zⁿ (n은 3이상의 정수)을 만족하는 정수해 x,y,z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x ,y, z 중 하나가 0이거나 모두 0인 경우는 제외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과거 수많은 수학자들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도 주석으로 무한 반복성 귀류법을 통해 n=4일경우를 증명해 남겨놨음이 밝혀졌습니다. 수학자 오일러는 페르마와 마찬가지로 무한 반복성 귀류법을 사용해 n=3일 경우에 도전했지만 논리상의 허점이 발생했고 오랜 노력 끝에 허수를 이용, 논리의 허점을 보완하는데 성공해 n=3일 경우를 증명했습니다. n=3과 n=4가 이미 증명되었으므로, 3과 4의 배수들 역시 자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 소피 제르맹은 ‘만약 그 방정식에 해가 있다면 그 해는 어떠한 조건을 만족할 것이다’ 라는 방식을 제안했고, 제르맹의 제안을 바탕으로 페테르 구스타프 르죈느 디리클레와 아드리앵 마리 르장드르에 의해 n=5인 경우를 증명했고, 프랑스 수학자 가브리엘 라메는 제르맹의 방식에 새로운 논리를 첨가해 n=7인 경우를 증명합니다. 그후 '모든 타원방정식은 모듈 형태와 연관되어 있다'는 타니야마 - 시무라 추론이 나오게 되고, 독일의 수학자 프레이가 페르마정리는 타원방정식으로 치환될수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프레이는 이런 변환을 통해

1) 만일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모든 타원 방정식은 모듈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
2) 만일 모든 타원 방정식이 모듈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면 프레이의 타원 방정식은 존재할 수 없다.
3) 만일 프레이의 타원 방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페르마의 방정식에 정수해란 있을 수 없다.
4) 따라서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맞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프레이는 자신이 유도한 타원방정식이 정말 그 정도로 비정상적인지를 완전하게 증명해내진 못했는데, 그 후 수학자 켄 리벳이 (M)구조의 감마 제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프레이의 오류를 해결합니다. 결국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을 증명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할수 있음이 알려지게 됩니다.

 

20세기의 세계적인 논리학자인 힐베르트는 사람들이 “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실패할 것이 빤히 보이는 그런 무모한 일에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와일즈는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기 위해 최신 계산법을 익혀나갔습니다. 그는 타원 방정식과 모듈 형태에 관련된 모든 수학을 익히는데 18개월을 사용했고, 10년 이상의 세월을 인내하려고 결심합니다. 그는 학술모임과 세미나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관련없는 모든 일에서 손을 뗍니다. 그는 1년간의 심사숙고 끝에 증명의 기본틀로 귀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귀납법의 원리는 도미노와 비슷한데, 도미노처럼 첫 번째 도미노와 두 번째 도미노가 쓰러지면서 결과적으로 무한개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방식입니다. 와일즈는 이런 귀납법을 위해 수학자 갈루아가 만든 갈루아의 군론을 도입합니다. 타원방정식의 E급수와 모듈 형태의 M급수에 대해 모든 원소의 값을 일일이 대조하여 일치함을 확인한 뒤 다음 급수로 넘어가는 기존의 방법 대신에 한 원소와 한 원소를 비교한뒤 다음 원소로 넘어간다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합니다. 그는 2년의 도전 끝에 갈루아 군을 이용,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와일즈였지만, 그 후 나머지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학적 테크닉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타원 방정식을 분류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인 이와자와 이론을 선택해봤지만, 이와자와 이론은 와일즈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칩거 5년만에 세상 밖으로 나가 콜리바긴과 플라흐가 고안한 수학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된 와일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방정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와일즈는 이것이 몇 가지의 패턴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모든 패턴의 타원 방정식에 적용될 수 있도록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을 강화하는 것이 해답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6년째에 접어들며 매 주마다 새로운 패턴의 타원방정식과 모듈 형태가 일치함을 증명해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모든 정리를 증명하게 됩니다. 그 후 와일즈는 1993년 케임브리지에서 6월 21일,22일,23일에 걸쳐 세 번의 강연을 하며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개했고, 몇 년에 걸친 심사를 받게 됩니다.

저는 8년 동안 한 가지 문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 한시도 그 문제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보낸 시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지요.

 6명의 심사위원이 와일즈의 논문을 검토했고, 순조롭게 검토가 이뤄지던 중 닉 카츠는 하나의 오류를 발견합니다. 여섯 편의 논문 중 3편의 일부분에서 발견된 그 오류를 해결하는데 와일즈는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세간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할 수 없을거라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와일즈는 심사숙고 끝에 리처드 테일러라는 수학자를 영입합니다. 테일러와 작업을 하던 도중 와일즈는 문득 2년전 단 한 개의 도미노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이와자와 이론을 생각합니다. 이와자와 이론은 와일즈에게 부적절한 것이였고,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 역시 부적절했지만,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합쳐놓는 순간 모든 문제점이 기적과도 같이 말끔하게 해결됩니다. 그는 결국 1994년 10월 25일에 두편의 논문을 공개하는데 성공합니다. 앤드루 와일즈의 『모듈적 타원 곡선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리처드 테일러, 앤드루 와일즈의 『헤케 대수학의 고리이론적 성질』이 그것입니다. 이 두편의 논문은 13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였고, 수학 역사상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이였습니다. 그는 20세기 정수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대의 수학과 미래의 비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이였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전혀 다르게 보였던 수학분야를 하나로 통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학 문제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페르마의 문제가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너무나도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와일즈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열 살배기인 저도 문제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 문제를 푼 수학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떤 운명 같은 걸 느꼈어요."

300년만에 페르마의 족쇄를 걷어낸 앤드루 와일즈가 증명을 끝내고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대사로 마무리하는 순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7년의 칩거생활과 30년 만에 이뤄낸 꿈이 이루어졌을때 와일즈가 어떤 심정이였을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그가 한번 이뤘던 꿈이 좌절될뻔했던 순간과 다시 그것을 해결해냈을때의 기쁨은 부러운 감정마저 느끼게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가 수학에 대해서 애매한 감정을 지닌 독자거나, 만약 당신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글을 읽을 의욕을 심어주거나 수학 과목을 더 신청할 생각을 하게 만들기를 희망한다면, 그 희망은 이미 이뤄줬으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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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선 2015-12-11 18:07   좋아요 0 | URL
답변 메일 보냈습니다.

blogsun@hanmail.net

2015-12-14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 사랑과 전쟁과 천재성에 관한 DNA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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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시대를 초월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요구에 대해 현대과학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DNA를 통해 우리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전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모두 소닉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닉은, 일본의 게임 회사 세가의 대표적인 마스코트 케릭터의 이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슴도치 소닉 유전자는 인간을 만들때 사용되는 필수 유전자로, 대칭적 구조를 만듭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눈이 좁거나 넓은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이 고슴도치 소닉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평균과 대칭이라는 요제프 라이히홀프의 지적대로라면, 고슴도치 소닉 유전자는 미의 유전자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유전자에 관한 이야기는 곧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작은 몸에 들어있는 유전자라는 방대한 도서관에는 수만 수억년에 걸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도서관을 찾는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경우가 더 찾기 힘들 정도로 쟁쟁한 과학자들, 멘델과 미셔, 모건, 멀러, 미리엄, 왓슨, 크릭 등이 유전자를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과학사이며 이야기거리입니다.

인간은 물 35L, 탄소 20kg, 암모니아 4L, 석회 1.5kg, 인 800g, 염분 250g, 초석 100g, 유황 80g, 불소 7.5g, 철 5g, 규소 3g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 속에는 정말로 인간을 제외한 수없이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몸 속에 우주가 있다는 사상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코끼리는 물론이고 고양이, 길거리에 피어있는 잡초의 DNA 뿐만 아니라 우리는 바이러스의 유전체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체 중 8%는 오래된 바이러스의 유전자라고 합니다. 미토콘드리아 역시 진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DNA는 다른 생물의 DNA와 섞이면서 진화해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유전체를 조사한 결과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중요한 조절 DNA도 제공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소화관에는 탄수화물을 단당류로 분해하는 효소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똑같은 효소를 침 속에서도 작용하게 하는 스위치도 주었다. 그 결과, 탄수화물을 포함한 음식은 우리 입 속에서 단맛이 난다. 이 스위치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빵이나 파스타, 곡물에 대한 기호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 p.187

손가락이 6개인 사람, 머리가 두개인 사람, 눈이 하나인 사람, 양성을 지닌 사람, 앞다리가 없는 염소. 우리는 이러한 기형적인 생명체를 보며 매우 놀라워합니다. 과거에 이러한 괴물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혹과 공포, 찬탄과 경멸, 신성화와 모독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게 했습니다. 대다수의 사회에서 괴물은 배척받게 되었고, 대중은 이런 존재들을 불완전한 자연이 만들어낸 실수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전자적인 관점에서 돌연변이는 현재의 정상적인 인간을 만든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22만 년 전에 등장한 돌연변이 apoE유전자 덕분에 우리는 육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20만 년 전에 등장한 돌연변이 헤어스타일 유전자 덕분에 미용사들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이시도르 조르푸아 생틸레르의 지적처럼 괴물들은 자연의 실수가 아니며, 그들의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됩니다.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합니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세상에 괴물이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자연의 농담》p.56

톡소포자충과 고양이 애호가의 이야기는 우리가 절대 인지할 수 없는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애인에게 두근거리는것이 사랑 때문인지 페로몬 때문인지 부정맥이 안 좋기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DNA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위대합니다. 유전자가 척추측만증을 주더라도 우사인 볼트는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냈으며, 어떤 사람이 아인슈타인과 동일한 유전자와 뇌를 지녔다고 해서 상대성이론을 창시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자 샘 킨은《사라진 스푼》에서 화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바 있는데,《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에서는 한층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 또한 그의 유전자하곤 상관없는 그만의 능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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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캄브리아기 폭발의 비밀을 찾아서
마틴 브레이저 지음, 노승영 옮김, 이정모 감수 / 반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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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런던에서 출간된 한 권의 책은 전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은 분명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과학책들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신학적, 철학적 반응이 일어났고, 언론인, 문필가, 상인, 사업가, 교육자,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너도나도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주교, 시인, 개 사육자, 가정교사도 다윈의 책을 읽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신분과 직업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개념을 논의하고, 그 쟁점을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편입시켰습니다. 그것은 일반 사회에까지 뻗어나간 과학에 관한 최초의 진정한 대중논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윈의《종의 기원》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학적인 현안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 대규모의 反다윈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윈이 책을 내기 이전부터 기독교의 논리는 도전받고 있었고, 이미 성경의 내용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다윈의 책은 신학적인 부분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더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윈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사회다윈주의는 산업계의 부호들과 공장주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권력을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것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줬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더 나아가 제국주의와 우생학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다윈의 책은 세계 역사에 의도하지 않았던 자국을 남겼습니다.

다윈이 남긴 기록을 보면 신중했던 그는 자신의 책이 미칠 영향력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내용을 점검하고 수정했으며 출간 이후에도 계속적인 보완을 거쳤습니다. 특히 인간과 관련된 부분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신중했는데,《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의 출간은《종의 기원》출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신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과학적인 영역에 있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늘날 과학책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이러저러한 일반적인 사항들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개인적이며, 그래프나 수식도 없고, 실험실에서 하얀 실험복을 입고 일하는 연구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전문 용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윈은 진화가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윈 사후 한 세기가 더 지난 뒤에야 등장합니다. 다윈은 책을 통해 그저 생물들에서 변이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다윈은 어떤 경우엔 운이 없었고, 어떤 경우엔 기술이 없었습니다. 다윈은 동물의 돌연변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문제는 운이 없었습니다. 다윈이 완두콩을 연구했거나 초파리를 연구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마틴 브룩스의 지적처럼 다윈이 그런 행운을 얻을 수 있다면 턱수염을 밀고 린네 학회에서 알몸으로 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며, 최신 부리 측정 장비까지 덤으로 제공하는 갈라파고스 제도행 무료 여행 티켓도 포기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p.141 

마틴 브레이저의《다윈의 잃어버린 세계》는 다윈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문제를 다룹니다. 다윈이 활동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화석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전의 선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석기록만 보면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동물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화석기록은 다윈의 가설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창조론자들은 이 사실이 신이 동물들을 만들어낸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캄브리아기 화석에 대해 화석 동물은 난데없이 등장하고, 지질 기록은 커다란 틈새로 가득하며, 골격이 전혀 없는 생물은 보존될 수 없다는 등 다윈은 다양한 가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고자 했습니다.

다윈의 숙제는 찰스 둘리틀 월컷이 해결했습니다. 월컷은 껍질이나 골격이 없는 연한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서 선캄브리아기가 동물 진화의 공백기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였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화석들은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야 했기 때문에 다윈에게는 불가능한 지식이었습니다. 마틴 브레이저 역시 전세계의 다양한 광물들, 특히 인산염 광산에서 얻은 광물들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선캄브리아기의 역사는 다윈 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되찾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선캄브리아기도 끊임없이 진화의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왜 캄브리아기에 폭발적으로 골격을 갖춘 동물들이 등장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존의 주류 가설은 캄브리아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동물들의 눈이 발달했고, 눈으로 인해 빛에 적응했고, 갑옷을 두르고, 보호색을 갖추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틴 브레이저는 동물들이 골격을 갖추기 시작된 원인으로 입을 지목하며 화석기록에 최초로 나타난 육식 동물을 지목합니다. 단순히 플랑크톤을 흡수하던 동물들이 입을 만들면서 생태계 피라미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구도에서 골격이 발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학자가 된 마틴 브레이저는 오랜 여정을 통해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선캄브리아기와 캄브리아기의 난제에 도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부터 지렁이, 대구, 토끼, 고래, 늑대, 코끼리,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진화를 하는 공생관계에 있는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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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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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정론으로 채택된 이론이지만, 다윈이 생존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진화론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론이었습니다. 당시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은 유전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 종 내에서 변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이 변이가 어떻게 나타나고, 물질적 기반은 무엇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윈의《종의 기원》은 살아남은 이론이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살아남은 것은 다윈과 후대의 수많은 학자들, 그리고 초파리의 힘이 컸습니다.

생물학은 과거엔 신학의 연장이었습니다. 생물학의 목적이 신이 이룬 위대한 설계의 복잡성을 관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물학을 이끌던 사람들은 박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자연계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생물학적 유물론이 대두하게 되었고, 생물학은 신학을 버리고 실험생물학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생물학이 실험을 받아들이면서 동물행동학, 진화론, 생리학 등의 분야로 분화해 가기 시작했고, 생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 개념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용 생물로 적합한 동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개, 고양이, 비둘기, 쥐 등이 가장 이상적인 실험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동물을 실험용으로 선택하느냐로 인해 생물학자들 개개인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 대신 핀치를 조사했던 것이 그의 불운이었다. - p.141 

초기 실험생물학에서 초파리는 하등생물로 취급당했고, 젊은 학생들의 실습용 동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초파리의 가능성을 알아챈 사람이 컬럼비아대학의 토머스 헌트 모건이었습니다. 모건은 우연히 초파리의 눈 색깔이 자연발생적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건은 돌연변이를 통해 역으로 진화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개체수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러한 조건에 초파리는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파리는 과일 껍질만 있어도 풍족하게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이 탁월했고, 일 년 내내 번식하며, 12일마다 새로운 세대가 생기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을 압축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자연의 농담》p.56 

결국 모건과 초파리가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우게 됩니다. 모건은 초파리에서 유전의 물리적 바탕이 세포 속의 염색체이 있음을 입증했고, 유전자들이 염색체에서 직선으로 늘어서 있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유전자 지도 또한 초파리의 것이었습니다. 초파리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초파리는 가장 선호하는 실험동물로 떠올랐습니다. 초파리 몸의 청사진은 일반적인 생물의 신체 형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는 유익한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초파리를 연구한 학자들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일상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고,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제인 구달과 같은 사례를 제외한다면 초파리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일이었습니다.

초파리가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것들은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틸리는 초파리 연구를 통해 학습 장애를 유전자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더 나아가서 뇌졸중 환자,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치료하는 미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기억 조작과 같은 SF적인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초파리는 인간이 왜 술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진화적 기원에 통찰을 제공해주며, 짝짓기를 둘러싼 진화 게임에서 암컷과 수컷에 대한 관계에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장수 유전자의 발견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전자는 평균 수명을 35퍼센트나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신체 또한 보통 초파리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오래 살고 싶다면, 섹스를 아예 포기하는 쪽이 나을지 모른다. 만약 무성 생식이 노화를 막는 열쇠라면, 우리에게 불로 장생은 생각만큼 먼 목표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전체 인류 중 절반인 '여성'만 가리킨다. 어느 모로 보나 수컷은 무성 생식을 하기에 부적합하다. 여러분이라면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섹스를 포기하겠는가? - p.225 

초파리는 유전학을 탄생시켰고,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을 결합시켰으며, 20세기 생물학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획기적인 사건들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초파리는 거의 모든 생물학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초파리를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개구리, 생쥐 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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