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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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전은 실로 놀라운 것이였습니다. 기원전 400년의 히포크라테스부터 시작해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하비의 혈액순환 이론, 제너의 종두법 등으로 이어지는 발전은 의학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마취와 항생제를 제공하고, X-ray를 통해 우리 몸을 보여주는 단계를 넘어 각종 이식수술이 성공하고, 동물복제까지 다다른 지금의 현대의학은 사람들에게 하여금 신비로운 마술과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은 여전히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학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속성이긴 하지만, 대중이 과거에 의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비하면 현재는 훨씬 겸손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원인입니다. 일반외과의인 저자는 이런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레지던트 시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야기합니다.

외과의 레지던트는 오랜 시간 동안 중심정맥관 삽입, 탈장 교정술 등 의사가 되기 위한 기술을 환자의 몸을 통해 익힙니다. 하지만 이런 훈련에도 불구하고 의사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의료사고가 납니다. 1991년의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나오는 하버드 진료실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44,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료과실이 원인이 되서 목숨을 잃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사고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료소송이 있지만, 이런 법적 대응은 그 이후의 의료사고 발생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의료소송에서 문제는 의사의 과실을 죄악시함으로써 의사들이 과실을 인정하고 공공연하게 논의하지 못하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법 시스템은 환자와 의사를 적대시키고, 일이 잘못될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얼마 전, 한 소년이 헬리콥터로 이송되어 왔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음직한 소년으로, 안색이 창백해지고, 덜덜 떨고, 숨을 쌕쌕대며 몰아쉬더니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근처 병원의 응급실 의사들은 천식성 발작으로 생각하고 증기호흡 치료를 했다. 그런데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흉부 가운데에 커다란 종양이 보였다. 내 소견은 기도에 호흡관을 삽입해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아외과 전임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우측 흉부에 카테터를 꽂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카테터를 삽입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중에야 나는 우리의 선택에 의문이 생겼다. 그건 정말 장님 문고리 잡기에 다름 아니었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비슷한 사례들에 대한 보고서를 찾아보고 나서야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자책하지 않았다. 소년은 살았다.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실제 의학이 벌어지는 순간들이다.  

사망 이후 부검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MRI촬영, 초음파 검사, 핵의학 검사, 분자적 검사 등으로 무장한 현대의학은 사망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굳이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검으로 사인에 대한 중대한 오진이 들어나는 경우는 1999년 연구에 따르면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부검 연구를 검토한 결과, 오진된 사례 중 3분의 1은 적절한 처치를 했더라면 환자가 살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 의학적 분야의 지식 발전이 더 나아갈 수 있으며, 죽은 자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으며, 우리의 명쾌한 확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불확실성 때문에 더 고뇌하는 의사들의 일화는 인상적입니다. 외과의학은 의학으로서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들조차도 과학과 인간 기술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동료의 실수나 검사때 나타나지 않았던 징후 등으로 고생하는 모습들은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 줍니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들은 늘 확률을 따지고 여러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불완전한 과학으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들이 제공되는 실제 상황에서는, 그런 기회를 잡았다고 결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거나 유익한 조치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성과를 거두며, 환자들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의학을 지식과 처치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입니다. 과학과 동시에 습관과 직감이 공존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오류가능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어떻게 의료과실이 발생하는지, 의사가 어떻게 칼을 쓰는 법을 배우는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이며 그런 의사가 어떻게 나빠질수 있는지, 의학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저자는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단순성이 개별 생명들의 복잡성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의학의 생생한 사례들은 우리가 의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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