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농담 - 기형과 괴물의 역사적 고찰
마크 S. 브룸버그 지음, 김아림 옮김 / 알마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손가락이 6개인 사람, 머리가 두개인 사람, 눈이 하나인 사람, 양성을 지닌 사람, 앞다리가 없는 염소. 우리는 이러한 기형적인 생명체를 보며 매우 놀라워합니다. 과거에 이러한 괴물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혹과 공포, 찬탄과 경멸, 신성화와 모독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집단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기형의 수도 증가했기 때문에, 이런 기형의 독특함과 중요성은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인쇄술의 도래는 괴물을 대하는 태도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고, 18~19세기를 거치며 괴물은 군중들에게 보여주는 쇼가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사회에서 괴물은 배척받게 되었고, 대중은 이런 존재들을 불완전한 자연이 만들어낸 실수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형에 대한 논의는 파레, 리체티, 에티엔을 거쳐 다윈으로 넘어가는데, 다윈은 진화적 변화의 추동력은 외부적인 힘이며 연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윈에게 괴물은 그저 지독한 기형일 뿐이어서 그의 진화론 속에서 괴물의 역할을 완전히 거부해버립니다. 이러한 연속성은 20세기 다윈주의의 핵심적 원리가 되었고 사회 주류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변이가 점진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생성되며 그 동물 안에 어떠한 제한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다윈주의적인 개념은 점점 많이 등장하는 괴물에 대한 해석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윈주의에 반해 베이트슨은 변이를 진화의 필수적 현상이라고 부르며 불연속성을 주장합니다. 베이트슨은 괴물의 불연속적인 특징이 다윈이 주장한 진화의 연속성을 위반한다고 생각했고, 다윈주의자들과 많은 논쟁을 낳습니다. 그후 피셔가 멘델주의 유전학과 다윈주의 자연선택을 결합한 이론을 내세우면서 두 이론의 양립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고, 발생학과 불연속성이 진화 연구에 포함되게 됩니다.

괴물들은 자연의 실수가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오히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자연은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룬다. - 이시도르 조르푸아 생틸레르 

기형의 원인으로 유전적 이형, 변칙으로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DNA를 프로그램, 조리법 또는 청사진으로 은유하는 것은 명쾌하고 박력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지만, DNA만능설은 생물학적 형태와 행동에 관한 이해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 맙니다. DNA는 발생을 위한 원료 제공을 돕는 분자로만 인식해야 하며, 복잡하고 고도로 협동적인 시스템의 많은 공헌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을 지녀야 합니다. 즉 기형은 유전자적 돌연변이일 수도 있지만, 모든 기형이 돌연변이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괴물은 배아의 발생 과정에서 어떤 대안적인 경로로 빠져 생긴 결과물입니다. 탄생과정에서 많은 환경적 요소는 그 결과를 결정합니다. 1980년대 과학자들은 개구리의 난자를 원심분리기에 돌려서 올챙이 쌍둥이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중력의 30배, 4분, 원심력 방향에 90도 각도 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있으면 올챙이는 쌍둥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머리가 2개인 두머리증과 같은 증상도 후성적 과정으로 일어난 변동을 통해 쉽게 생겨납니다. 머리 하나를 생성하는 가능성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우연히 머리 두 개를 생성하는 가능성이 진화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은 때론 스스로 기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인간의 몸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켰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수단에 사는 수르마족과 부미족 여성은 입술에 동그란 판을 끼워넣고, 페루에서는 신생아의 머리를 우뚝 솟은 두개골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나무판으로 머리를 동여맸습니다. 중국에서는 조그만 발을 만들기 위해 전족을 사용했고 서양의 코르셋은 내장의 위치를 바꿉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의 성형수술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이런 이형적 변화의 가능성은 전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진화의 기간은 매우 길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 자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두개의 눈, 머리카락, 하나의 코, 두개의 팔과 같은 특징이라는 전형은 자연에 대한 개념을 흐리게 만듭니다. 전형적이란 것은 실제 세계를 떠도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 p.56

사물을 절대적으로 구분 지으려는 우리의 경향은 그 구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대상에 대한 수용력과 충돌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동물들, 딱정벌레, 은연어, 아귀와 같은 존재들은 우리의 확고한 선입견에 경종을 울립니다. 그들은 암컷과 수컷이라는 자연에서 확고해보이는 구분조차 거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은 인간에게도 있습니다. 직립보행은 오랜 세월에 걸친 위대한 진화의 사례로 보이지만, 앞다리가 없는 염소는 그 진화의 과정을 순식간에 이루어냅니다. 그들은 개체와 집단, 신체와 행동 속에 감춰진 가능성과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했듯이, 인간의 우주적인 오만은 고작 살인 토마토, 식인 토끼, 엄청나게 큰 개미 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창조물은 결코 자연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보다 더 놀라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형들은 과학적 영감과 진보를 가로막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바로잡는 존재들이며, 자연의 농담이라 불렸던 이들이 발생하는 불완전한 자연의 세계는 진화를 위한 새로운 선택의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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