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는 이성에 의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진화되어 왔다. 사회는 인체와 마찬가지로 인간 유전자의 진화적 산물이다.  -본문 중에서 -

 

리처드 도킨스의 저작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 대응되는 제목을 붙인 이 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유전자의 이기성 내지 이해관계에 의해 '진화적으로 안정화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 추동되어 개체, 군집 단위의 이타주의 성향이 형성된다는 '이기주의적 이타주의'에 다름 아니다. 즉 이기적인 유전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현하는 이타적인 인간성의 아이러니를 이미 언급하고 규명한 [이기적 유전자]의 주제에 주류 인문·사회과학적 해제를 덧붙인 동어반복인 셈. 따라서 원제가 '德의 기원(The Origins of Virtue)'인데 '이타적 유전자'로 명명한 번역/출판 의도는 '이기주의'에 대한 또 다른 역설적 표현이어서 흥미로우나 다분히 선정적이며 이기적 유전자론의 본질을 곡해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내겐 결정적인 감점 요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알라딘에서, 아내는 예스24에서. 우리 하나로 뭉칩시다. 마일리지를 위하여.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츠지 히토나리가 쓴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원작 [안녕, 언젠가]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 질 들뢰즈가 진정한 모럴리스트라 칭했다는 조에 부스케의 [달몰이], 테렌스 멜릭 감독의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트리 오브 라이프]에 대해 '이 영화작가의 겸허함의 결여는 보는 사람의 관용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일침을 가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 평론집 [영화의 맨살].

 

 

 

 

학원 끊은 둘째 자습 교재와 '평범한 아이도 공부의 신으로 만드는 기적의 교육법'이라는 해괴한 헤드 카피를 내세운 [하루 10분 엄마 습관]. 이런 책 안 봐도 당신은 이미 좋은 엄마라고 생각. 내가 운동, 영화, 블로그 중 한둘 접고 아이 공부 봐주는 거 도와주면 되지. 라고 말하려던 순간 '난 이 책 도서관에서 읽었고, 당신 좀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라고.' 헐.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15-09-18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과 예스, 상황이 우리집이랑 같네요. ^^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도 있군요.

풀무 2015-09-18 08:42   좋아요 0 | URL
네. 글도 좋더라구요. 히로카즈 감독 영화들 좋아하는 팬들에겐 더더욱 뜻깊은 책일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예스24에서 주로 구입하다 알라딘으로 넘어왔죠. :)

프레이야 2015-09-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 오브 라이프, 를 무척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평을 받군요. 감독이. 리뷰도 썼었죠. 지금은 좀 잠궈뒀어요.
영화를 참 깊이 보시는 서쪽섬님 ^^

풀무 2015-09-18 12:36   좋아요 1 | URL
[트리 오브 라이프]는 평자마다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향을 띠는 듯합니다. 서양의 종교적인 풍토와 정서 영향일까요. 작년엔가 작고했던 미국의 로저 에버트는 자기 인생의 영화 열 편 안에 넣었을 정도인데 하스미 시게히코를 비롯한 아시아 비평가들은 낮게 평가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하스미는 [트리 오브 라이프]가 관객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순종`, 혹은 순종에의 착각을 부추기는 `맹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주인공 - 제시카 차스테인 - 을 남성중심적인 편파적인 시선으로 마냥 청초한 여성상으로만 담아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게 여성을 소외시켜 배제한 채로 남자들만의 고뇌, 삶의 기원을 향한 사고에만 집중한다고... 이런 여성주의적인 시각은 저도 영화 보면서 놓쳤던 것인데, 어쨌든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와닿는 바가 다양하지 않겠습니까. :) 제 주변에도 감동받은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프레이야님 리뷰도 읽고 싶어지네요. ^^

프레이야 2015-09-19 05:42   좋아요 0 | URL
그런 비평을 듣군요. 저도 제시카 차스테인의 영화속 태도가 인상 깊었는데 모든 걸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비평하면 한계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평은 창작보다는 높지않은 단계라는 게 기본적으로 제 생각이구요. 서쪽섬님 영화 보시는 눈이 참 좋습니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제가 배울 게 많아요

풀무 2015-09-19 12:35   좋아요 0 | URL
예. 프레이야님의 기본,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제가 프레이야님과 여러 분들 알라딘 공간에서 배울 게 많지요. :)

라로 2015-09-1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쪽섬님이 말씀하시는 블로그는 알라딘은 아닌 거죠??ㅎㅎ

서쪽섬님 영화 깊이 보시는 건 알겠는데 책도 깊이 읽으시는 군요!! 멋지심!!!^^

풀무 2015-09-18 23:22   좋아요 0 | URL
예.. 제 주력(?) 블로그는 다른 닉네임으로 네이버에.. ^^;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5-09-1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달몰이> 샀는데^^! <영화의 맨살>은 집중해서 읽을 때 사려고 장바구니 대기중입니다ㅜㅜ...
테렌스 맬릭 <트리 오브 라이프>를 엄청 충격적으로 봐서 다음 작품 <투 더 원더>도 기대하고 봤다가 ....음....벌써 매너리즘? 했던 기억이...제 감상을 나무라며 <나이트 오브 컵스>(2015)를 기대합니다. 크리스찬 베일과 나탈리 포트만과 케이트 블란쳇....! 테렌스 맬릭의 호화판 캐스팅은 불변인가? 합니다;;;

프레이야 2015-09-19 05:32   좋아요 1 | URL
테렌스 멜렉 신작이 오군요! 저도 기대해야겠습니다. :)

풀무 2015-09-19 12:37   좋아요 1 | URL
저도 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의 맨살 ^^; 제 경우엔 그때그때 마음가는 챕터 뒤져가면서 여러 달에 나눠 읽곤 해요.

나이트 오브 컵스,는 정말 캐스팅만으로도 설레이네요. 특히 크리스찬 베일과 케이트 블란쳇은 제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들입니다.
 
에너미
드니 빌뇌브 감독, 제이크 질렌할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일 뿐이다. (Chaos is order yet undeciphered.)' 영화 오프닝에 제시되는 화두를 영화에 맞추자면 이렇게 쓸 수 있겠다. '도플갱어는 아직 의식되지 않은 자신의 무의식 내지 또다른 욕망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도플갱어 (The Double)]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소설을 각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에너미]는 한마디로 괴작이다. 허나 망작은 아닌, 되려 모호함이 겹겹의 다의성으로 확장되는 가작 이상의 영화다. 

 

권태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역사학 교수 아담(제이크 질렌홀)은 동료가 추천한 2005년 영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를 보던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우 앤서니(역시 제이크 질렌홀)의 존재에 이끌려 그를 찾아 나서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의 실존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처음엔 만남에 뚱했던 저돌적인 성격의 앤서니가 되려 자신과 얼굴은 물론 목소리에 흉터 자리까지 똑같은 아담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아담의 연인 메리(멜라니 로랑)에게까지 흥미를 느끼면서 서로의 삶을 바꿔보자 제안한다. 앤서니의 임신한 아내 헬렌(사라 가돈)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끼던 아담 역시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두 사람 간의 기이한 불안과 혼돈의 정체성 게임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국을 맞는다. 

 

연출 의도 자체가 영화를 어떤 결로 읽어도 통하는 텍스트로 열어둔다. 내 경우 어찌 봤느냐,면 앞서 언급한대로. '도플갱어는 아직 의식되지 않은 자신의 무의식, 또다른 욕망이었을 뿐', 자신의 삶에 위기감과 환멸을 느끼던 주인공 아담이 도피처(도피자아)로서, 욕망의 해방구로서 도플갱어 앤서니를 만들어낸, 한 사람이 겪는 두 겹의 삶에 관한 영화로 봤다. 내가 짚은 층위에선 아담과 앤서니가 동일인물이고 헬렌은 아내이며 메리는 혼외연인이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쾌락을 추구하고픈 욕망에 추동됨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결국 다시 현실로 소환될 수밖에 없고, 자꾸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욕망 덩어리, 도플갱어 앤서니는 그에게 위협적인 존재 즉, 가공할 적(enemy)이 된 셈이다. 따라서 메리와 함께 앤서니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아담에게 마지막 순간 지금껏 앤서니를 통해서만 접촉하던 금기시된 욕망을 대변하는 거미가 엄청난 위압감으로 현현하는 건 수순이다. 결국 아담은 자아 통제에 실패한 것이다.

 

도입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거미(를 짓이기는) 여인이나 잿빛 안개로 자욱한 도시에 서있는 대형 거미 등 거미의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한편으로 중간중간 카메라가 스쳐 지나며 잡아내는 황색 도시 하늘을 덮은 전신줄, 아담이 도플갱어 앤서니를 찾게 되는 인터넷 웹 자체, 마지막 앤서니와 메리가 타고 있던 차가 전복되면서 방사형으로 금이 간 차창 등을 통해서 거미줄 이미지가 간접적으로 반복된다. 아마도 드니 빌뇌브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 아담 스스로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도시의 이쪽과 저쪽을 묶어놓고 거미줄에 스스로 걸려들었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듯하다. 전반적으로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다소 식상한 감이 아쉽지만 주인공 아담을 통해서 잿빛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웃픈 초상을 볼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우화이고 희비극이니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9-19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아주 식상하고 지루했는데, 서쪽님이 마지막 인용하신 `도시의 이쪽과 저쪽을 묶어놓고 거미줄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해석, ˝카프카의 작품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인상˝ 부분은 아주 잘 캐치하신 듯!

풀무 2015-09-19 12:42   좋아요 1 | URL
제 경우는 예전에 들떠서 [그을린 사랑]을 봤다가 드니 빌뇌브 감독에게 무척 실망했던.. 그 반사작용인지 이후 [프리즈너스]와 [에너미]는 되려 그보다 재밌게(?) 본 편입니다. 헌데 정말 이 작품은 너무 크로넨버그 스타일이긴 했죠..? :) 제가 그간 알라딘에 자주 접속하지 못했었는데 아갈마님도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예전에 연극(그리피스)이 있었다. 시(무르나우)가 있었고 회화(로셀리니)가 있었으며 무용(에이젠슈테인)이 있었고 음악(르누아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은 니콜라스 레이를 말한다. (장 뤽 고다르, [카이에 뒤 시네마] 기고 평론 '별의 저편에: 니콜라스 레이의 씁쓸한 승리')

 

니콜라스 레이만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데이빗 와크 그리피스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도, 로베르토 로셀리니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도, 장 르느와르도 모두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의 작품은  연극도 시도 회화도 무용도 음악도 아닌 영화 그 자체였으며 아직도 세계 주류 영화사에서 니콜라스 레이 이상으로 평가받으면 받았지 그 밑은 아닌 대작가들이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의 장 뤽 고다르는 '영화라는 것은 니콜라스 레이를 말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 자리에 안소니 만이나 로버트 올드리치 내지 조셉 로지나 사무엘 풀러 혹은 누벨바그나 시네마누보 아니면 아예 고다르 본인 이름을 박아 넣는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고다르로부터 '픽션적인 대담한 단순화'야말로 확고한 자기주장이 없으면 무시당하기 십상인 환경에서 비평가에게 '필수불가결한 자세'임을 배웠다고 썼다.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비평선)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다음 얘기, 그 전제 사항이다. 이 '픽션적인 대담한 단순화'에 대하여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면서 완강히 버티는 것'. '영화는 복수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혹은 무수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디에서부터 들어가도 좋을 것이지만 그러나 나 자신은 이 측면에서부터 작품에 접근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그것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진다'는 자세. 영화는 무수한 세부로 이루어져 있어 그 복수의 세부가 서로 다른 기능의 뒤얽힘으로 무한히 펼쳐지기 마련, 그 모든 방향과 차원까지 통틀어 완전히 알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누구나 어느 한두 지점에 대해 언급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비록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은 기껏 여기까지지만 '마치 그것이 결정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끝까지 글을 몰아 붙이는 결기, 동시에 그렇게 결의한 책임을 반드시 자신이 '자신의 언어로 짊어지겠다는 긴장감'이야말로 평론가의 자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 보이지 않는 사랑
오오타니 타로 감독, 마츠시마 나나코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영화가 플레이 되면 CJ와 파라마운트 그리고 어느 일본 영화사 로고가 차례로 지나간다. 그렇다. [고스트: 보이지 않는 사랑]​은 1990년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한 히트작 [고스트: 사랑과 영혼]이 개봉 20주년을 맞아 아시아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한일 합작영화다. 일본에 도자기를 배우러 온 한국 도예가 김준호(송승헌 扮)와 잘 나가는 신생 인터넷 기업의 사장 나나미(마쓰시마 나나코 扮)의 애틋한 사랑 얘기. 여자 쪽이 모종의 음해로 영혼이 되어 남자 곁을 맴돈다는 설정으로 남녀 역할이 바뀐 걸 제외하곤 원작 [사랑과 영혼]을 그대로 답습한다.

 

 


안이한 기획부터 식상한 연출까지 요즘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한참 부족한데다 두 주연 배우 간의 화학작용마저 그닥이다. 결정적인 패착은 바로 저 백허그 녹로 장면으로 대변된다. 스토리에 캐릭터, 세트와 배우들 동선까지 그대로 따라한대도 주요 장면마다 지겹도록 민망하게 반복되는 '언체인드 멜로디' 만큼은 꼭 다른 곡으로 바꿨어야 했다. 차라리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OST로 쓰던지(읭?). 화면 속 두 남녀는 물론이고 이걸 공짜라고 끝까지 감상하며 앉아있는 옆사람과 나까지 딱하게 여겨지던. 다만 캐주얼 차림 위주의 송승헌 영상 화보집으로서의 가치는 있달까. 그의 팬들에겐 소장 가치가 있을지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5-09-1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ㅎ 이렇게 쉬원한 리뷰라니요!! 이 영화 듣보잡이지만 다 본 듯 합니다아~~~~더구나 서쪽섬님 부부의 그 지겨움(?) 적나라하게 느껴지네요~~~ㅋㅎㅎㅎ

풀무 2015-09-15 08:49   좋아요 0 | URL
영화 한 편 보면서 옆사람이 이래 하품을 많이 하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자기가 먼저 보자 해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