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산책 중 담은 사진에 제목을 '봄밤'으로 붙일까 싶어 시들을 뒤졌다. 노릇하게 데워진 바람의 무릎이 세상 모든 창을 타넘는다는 류경무. 앞산을 바라보다 눈물이 나오기 전 아는 시인에게 쓸데없이 전화를 걸었다는 최병무. 그대가 이 봄밤 어느 마당가에 한 그루 살구나무로 서서 꽃을 피워내고 있다는 안도현. 봄밤엔 볕을 보지 않아도 되건만 네 얼굴이 더욱 빛나 아프다는 이성복.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이라는 김수영. 굴러다니는 빈 바람 소리 싣고서 겨우내 말라붙은 꿈을 적시며 떠도는 발들의 아픔이라는 최승자.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다는 변영로. 그러나 내게 가장 사무치는 봄밤 정취라면, 김윤아의 야상곡이다. 사진은 폐기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애달피 지는 저 꽃잎처럼
속절없는 늦봄의 밤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구름이 애써 전하는 말
그 사람은 널 잊었다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 같아 부질없다

 

꽃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 지네
이제 님 오시려나
나는 그저 애만 태우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그레이 2019-05-24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순수의 전조 번역자를 찾아 왔다가 김윤아까지 듣네요. 고맙습니다.

풀무 2019-08-31 19:21   좋아요 0 | URL
제가 고맙습니다.
 

 

 1.
이유 없는 반항, 1955년, 니콜라스 레이

 2. 위험한 질주, 1953년, 라슬로 베네덱

 3. 폭력 교실, 1955년, 리처드 브룩스

 4. 용자들은 외롭다, 1962년, 데이빗 밀러

 5. 군중 속의 얼굴, 1957년, 엘리아 카잔

 6. , 1954년, 페데리코 펠리니

 7. 달콤한 인생,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

 8. 인생유전: 천국의 아이들, 1945년, 마르셀 카르네

 9. 피아니스트를 쏴라, 1960년, 프랑소와 트뤼포

10.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1958년, 리처드 브룩스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 찰리 채플린의 [어깨 총] 역시 중요하게 언급했다고.

 

출처: http://www.daysofthecrazy-wild.com/video-ten-films-that-had-a-big-impact-on-bob-dyla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의 삶에 덧씌워진 여러 치장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며 그 치장들을 하나씩 거둬내고 있는 진화생물학 지식들... 그에 대해 나는 종종 학부 시절 투신했던 회계학의 역분개를 떠올리곤 한다. 발생주의에 입각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는 기업의 실체를 이상적인 이론대로 드러내줄 수 있되 흑자도산을 감지 못한다. 그에 재무제표의 이론적 치장을 거둬내는 역분개의 현금흐름표가 진화생물학 이론, 가설들이나 마찬가지다. 허나 현금주의 회계만으로 한 경제 주체의 본질을 파악하려다간 배가 산으로 가 버림에.


젊을 적 겉멋든 실존을 찾으며 속된 행복이나 희망 따위 개념 자체를 부정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해왔다. 나는 씁쓸한 현실 인식, 자각만으론 살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다. 돌이켜 보면 행복이란 개념 자체를 내 생에서 배제하고 해체하려던 몸부림 역시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금 다른 신작을 몇 편 더 챙겨볼까 하다가 저절로 손이 옮겨간 [사요나라 이츠카]를 또다시 플레이, 뻘려들다시피 보았다. 도대체 이 작품은 왜 열 번을 넘게 거듭봐도 나를 이토록 사로잡는 걸까. 서재혁이 작곡한, 황홀할 정도로 파고들어 혼을 뒤흔들어 놓는 음악이.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나카야마 미호의 마성이. 무엇보다 젊었을 적 가지 않은 아니, 가지 못한 길에 서린 초로의 회한이... 점점 이렇게 현실 도피, 혼자만의 세계에 나를 두고서 행복을 찾는다. 그런 나를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하지 않으려 한다. 얼싸안고 가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직접 하진 않지만 선호하는 몇몇 인사들 트윗을 즐겨찾기 등록해 놓고 가끔 둘러 본다. 다음은 원혜영 의원 트윗 중에서. '집 안에 쥐가 있으면 고양이를 길러야 하죠. 그런데 고양이로는 안된다며 호랑이를 풀어 놓겠다고 합니다. 쥐가 죽을까요, 사람이 죽을까요? 테러방지법이 이와 같습니다. 테러방지법은 사실상 국정원 권한 강화법이며 현행법에 이미 테러대책은 들어있습니다.' 연이어 황현산 교수 트윗을 접했다. '윤리는 지치지 않아야 윤리다.'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말이다.


- 잇따라 공감되는 군가산점 사안 관련 멘션을 읽었다. 그대로 옮겨 둔다. '군가산점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것은 군대에서의 고생을 여성들이 몰라준다는 것이다. 가산점은 그 고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고생한 나에게 밥 한 그릇 더 준다고 남의 밥그릇 밀어준다면 그건 고생을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모욕하는 것이다. 군대 갔다온 남자에겐 편법으로 군대를 면제 받은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있다. 그는 이 나라가 내세운 명분과 함께 모욕을 받은 것이다. 허나 그 명분이 분노를 여자들에게 돌릴 이유가 되지 않을 뿐더러 그런 분노의 전가는 자기를 이중으로 모욕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허풍 섞어 하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상처를 달래는 방식일 뿐이다. 그게 상처가 아니라고 고집부리다 보면 이상한 괴물이 탄생한다.'


- 정성일 평론가는 대부분 영화계 작가감독이나 그에 준하는 비평가들의 명문, 어록을 트윗한다. 본인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몰라도 그래서 더욱 좋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지 마세요. 반복해서 볼수록 처음 본 인상이 점점 둔해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한번 볼 때 온 힘을 다해서 보세요. 다시 볼 때는 그 영화를 거의 잊어버렸을 때입니다. (모리스 피알라)' '영화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영화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어떤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는 것만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나쁜 것은 하지도 않으면서 하겠다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허우샤오시엔)' '작품이 타오르는 장작이라면 이론가들은 장작과 타고 남은 재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겠지만 비평가는 불꽃 자체가 감추고 있는 수수께끼만이 관심의 대상이다. (발터 벤야민)' '영화학교 졸업 작품에서조차 눈치를 보면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놈들은 평생 그런 영화나 찍을 것이다.' '당신이 말한 그게 정말 거기 있습니까? 그게 정말 보입니까?' 하스미 시게히코가 비평수업시간에 영화평을 발표한 학생하게 자주 하던 반문이라고 한다.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지 못하는 비평은 실패한 거죠. 우리들은 다시 한번 영화를 마주보게 만들어야만 해요.' 그러므로 이 공간에 쌓아놓는 영화 포스트들은 99% 실패한 리뷰들이다. 아무리 나 자신을 위한 글들이라 자위한다 해도. '위협적일만큼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 감탄을 하면 시네필이고 질투를 느끼면 시네아스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때 시네아스트이(고 싶)던 때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수의 전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탄생 125주년을 맞아 영국 국영방송 BBC에서 그녀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를 3부작 드라마로 제작·방영 중이다. 오웬이라는 익명의 인사에 의해 '인디언 섬'에 있는 외딴 별장에 초대된 각계 여덟 손님과 집사 부부의 연이은 죽음을 다룬 미스터리로, 1945년에 만들어진 영화 속 설정을 차용해서 원작에 나오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 대신 꼬마 병정 인형으로만 바뀌고 그 특유의 을씨년스런 기조와 법조망의 한계를 비튼 내용은 그대로라고 한다. 소설 속 중요 모티브인 마더 구즈(Mother Goose)의 동요는 원래 '검둥이' 이야기였는데 초판 발행후 인권 문제로 항의가 빗발치자 출판사와 협의 하에 인디언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 열 꼬마 검둥이  Ten Little Nigger Boys -


열 꼬마 검둥이가 밥을 먹으러 나갔네 Ten little nigger boys went out to dine;

하나가 사레들려 아홉이 남았네  One choked his little self, and then there were nine.


아홉 꼬마 검둥이가 밤이 늦도록 자지 않았네  Nine little nigger boys sat up very late;

하나가 늦잠에 깨지 않아 여덟이 남았네  One overslept himself, and then there were eight.


여덟 꼬마 검둥이가 데븐에 여행을 갔네  Eight little nigger boys traveling in Deven;

하나가 거기 남아 일곱이 남았네  One said he'd stay there, and then there were seven.


일곱 꼬마 검둥이가 도끼로 장작을 팼네  Seven little nigger boys chopping up sticks;
하나가 두 동강 나서 여섯이 남았네  One copped himself in helf, and then there were six.


여섯 꼬마 검둥이가 벌통을 갖고 놀았네  Six little nigger boys playing with a hive;

하나가 벌에 쏘여 다섯이 남았네  A bumble-bee stung one, and then there were five.


다섯 꼬마 검둥이가 법률 공부를 했다네  Five little nigger boys going in for law;

하나가 법정 소송에 걸려 넷이 남았네  One got in chancery, and then there were four.


네 꼬마 검둥이가 바다 향해를 나갔네  Four little nigger boys going out to see;

하나가 청어에게 먹혀 셋이 남았네 A red herring swallowed one, and then there were three.


세 꼬마 검둥이가 동물원 산책을 나섰네  Three little nigger boys walking in Zoo;

하나가 큰 곰에게 짓눌려 둘이 남았네  A big bear hugged one, and then there were two.


두 꼬마 검둥이가 볕을 쬐고 있었네  Two little nigger boys sitting in the sun;

하나가 홀랑 타버려 한 명이 남았네  One got frizzled up, and then there were one.


한 꼬마 검둥이가 외롭게 남았다네  One little nigger boy living all aline;

그가 목을 매어 아무도 남지 않았네  He got hanged, and then there were none.

​사실 마더 구즈 동요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일려진 작품은 아마도 [노간주 나무] 이야기 중에 나오는, 의붓어머니에게 학대 당하다 죽어 새가 된 소년의 한맺힌 노래 '내 어머니 날 죽이고(My Mother Has Killed Me)'일 것이다.


나의 어머니, 그녀는 나를 죽였고  My mother she killed me,

나의 아버지, 그는 나를 먹었다.  My father he ate me.

꼬마 마를렌, 나의 여동생은  My sister, little marlinchen

나의 모든 뼈를 한 데 모으고  Gathered together all my bones,

그것들을 비단 손수건에 묶어  Tied them in a silken handkerchief, 

노간주 나무 아래 묻어버렸다.  Laid them beneath the juniper tree,

아아,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가.  Kywitt, kywitt, what a beautiful bird am I.

 

 

그리고 나는 저 마더 구즈의 '검둥이' 동요를 접할 때마다 한창 나이에 요절한 빌리 홀리데이의 절창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가 떠오른다.


남쪽 지방 나무들은 이상한 열매를 맺네  Southern trees bear stange fruit
피로 물든 나뭇잎들, 뿌리에 흥건한 피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남풍에 흔들리는 검은 몸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훌륭한 남부 전원 정경에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부풀어 오른 눈과 뒤틀린 입  The bulging eyes and the twisted mouth
목련의 부드럽고 신선한 향기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 
그때, 불현듯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g flesh
 

여기 열매가 있네, 뜯어먹을 까마귀를 위한  Here is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거둬들일 피, 피를 빨아들일 바람,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부패시킬 태양, 쓰러뜨릴 나무들을 위한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여기 이상하고 쓰디쓴 수확물이 있네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 얘기로 돌아와서, 소설 자체가 동서고금을 통해 워낙에 인기있는 텍스트인 만큼 여러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그중에 필견작으로 르네 클레르 감독이 헐리우드에서 연출한 1945년작 흑백영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꼽힌다. 원작의 음습한 완전범죄 결말과 무겁고도 과격한 문제 의식을 포기하고 해피엔딩을 택한 대신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와중에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인간군상을 치밀하게 묘사, 그들 각자가 지닌 범죄와 양심의 긴 꼬리을 집요하게 응시함으로써 완성도를 인정받아 여지껏 수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애거서 크리스티
    from 잿불의 기억 2016-02-19 13:25 
    2009년 8월 31일 월요일은 내 개인사에 있어 매우 뜻깊은 날이다. 당일 이사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그중 뼈아픈 것 하나가 예전 살던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수백 권의 소설을 분서(焚書)한 사건이다. 중2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엔 추후 아이들이 추리소설 입문할 때 필독서라고 판단되는 세 권만을 남겨뒀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독자들이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